민족사관고등학교(민사고)가 정식 입학전형에 앞서, 지난 9월 사실상 ‘편법 전형’을 시행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올해부터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자사고)의 경우 단 1곳에만 지원이 가능하도록 한 개정 초중등교육법을 기만한 것이다. 다른 자사·특목고가 비슷한 ‘편법’을 차용한다면, 교육과학기술부가 애써 개정한 법은 사실상 형해화한다.
민사고의 ‘편법 전형’은 지난 9월4~16일 ‘집중상담’이란 명목으로 이뤄졌다. 지원자들은 민사고 홈페이지 집중상담 시스템에 내신성적, 국어·영어·수학과 관련된 우수성적 자료, 봉사활동을 비롯한 특기사항 등을 기재하고, 관련 자료를 우편으로 접수했다.
올해 민족사관고의 입학식 풍경이다. 당시 3.64:1의 경쟁률을 뚫고 들어온 이들이다. 여러 입시학원은 올해 특목고, 자사고의 중복 지원 금지 규정으로 민사고의 경쟁률이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해왔다. 사진 민족사관고등학교
이는 합격 가능성을 평가하는 구체적인 요소로, 입학전형 때 제출하는 자료와 같다. 상담 대상도 중학교 3학년이나 졸업자 등 내년도 신입학이 가능한 이들로 제한했다. 사전 공지를 통해 상담을 진행한 뒤 10월1일부터 합격 가능 여부를 알렸다. 외견상 상담이었으나 속내는 일반전형과 다를 바 없다.
민사고 나병률 부교장(학사운영 담당)은 “(상담 결과로) 합격이다, 아니다를 얘기 할 수는 없고, (성적이 좋은 지원자에겐) 지원해봐라, 안 좋은 학생에겐 이런 게 부족하니 더 준비해라 정도로 코멘트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집중상담 전체 지원자 수는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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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홈페이지 집중상담 코너에 마련된 Q&A(질의·응답) 게시판을 보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 지원자가 지난 9월21일 “집중상담 결과가 한 번 나오고 (이후) 새로 나오는 성적에 의한 학생들 성적의 변동에 관계없이 정식 입학전형에서도 집중상담 결과만이 그대로 반영되나”란 질문을 올렸다.
입학관리실의 대답은 이렇다. “집중상담에서 좋은 결과를 얻은 학생은 (중략) 그것과 무관하게 결격 사유가 없는 한 같은 결과를 얻을 것입니다. (중략) 한번 발표된 결과는 학생에게 큰 문제가 없는 한 책임을 질 것입니다.” 사실상 합격을 보장한다는 말이다.
‘반칙’은 오래전에 ‘예고’까지 된 것이다. 한 학생은 Q&A 게시판에 “일전 민사고 입학설명회에서 ‘집중상담에서 (정식 전형 때) 입학사정관전형으로 넣으라는 말을 들으면, 인성면접에 문제가 없으면 거의 100% 합격이다’는 의미의 말을 들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집중상담과 실제 접수 사이 (추가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경우는 어떡하나요?”라고 묻고 있다.
이에 대해서도 학교는 “다른 학생의 점수가 상향되는 것과 관계없이 면접에서 큰 문제가 없거나 제출한 서류가 거짓이 없으면 답변을 들은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명토 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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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서 전제를 달았다. “단 상담보다 좋은 점수를 받아 입학전형에 지원한 학생의 경우 상담시 받은 답변과는 다른 결과도 있습니다.” 그건 뭘까? “당연히 더 좋은 쪽의 결과이겠죠.”
온라인에선 결과 분석 떠돌고 ‘예비생’ 지칭도실제 이미 자신을 “민사고 15기 예비생”으로 칭하는 이들이 생겼다. 민사고 내년 입학생이 15기다. 특목고 등 입시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를 보면, “저희 학교에서 3명이 입사(입학사정관전형)로 발표가 났”다며 그들의 국·영·수 점수를 공개해 수학이 당락을 갈랐다고 분석한 글(10월2일)까지 올라와 있다. 댓글에는 “입사로 발표되면 99% 합격이라고 해요. 면접시 인성에 큰 문제가 없다거나 4km 달리기를 시간 안에 못 들어오는 경우를 빼고는요” “달리기해서 못 들어와도 합격에는 별 차이가 없다던데요. 선배들도 달려주고”와 같은 정보가 오간다.
이를 두고 민사고 나 부교장은 “(자칭 예비 합격생은) 그 아이들의 희망사항”이라고 잘라 말했다. 사실이라면 지원자들이 속은 것이다.
교과부가 올해 자사고·특목고 중복 지원을 금한 이유는 지나친 사교육과 과잉경쟁을 예방하기 위함이다. 내년 자율형 사립고 30곳이 추가 개교를 예정한 가운데 내린 조처다. 이렇게 되면 소신 지원이 늘어나고, 각 자사고·특목고의 지원자 수는 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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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민사고는 새 규정 때문에 지원자가 감소할 가능성을 미리 차단하고, 원하는 학생을 ‘입도선매’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학교의 일반전형은 10월7일에 시작해 14일 접수를 마감했다.
민사고 집중상담의 속사정을 안 학부모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중3 자녀를 둔 박아무개(전북 전주)씨는 “아이가 상산고(전주 소재 자사고)를 준비해왔는데, 이렇게 되면 민사고를 지원했다가 다시 상산고에 지원하는 아이들도 생길 텐데 당연히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며 “그러려면 법 개정은 왜 했느냐”고 따진다.
다른 자사고의 교감은 “집중상담 실시 내용을 전혀 몰랐다”며 “남의 학교라 평가할 순 없지만, 변칙인 것 같다. 합숙 등을 거쳐 먼저 전형을 시작해 합격생을 뽑는 학교가 있지만, 거기서 떨어지면 당연히 일반고에 가게 된다”고 말한다.
이범 교육평론가는 “서울 대치동에 사는 지인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중3 자녀가 이미 합격이 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부 정책 취지를 무력화하는 효과가 있는 편법적 사전 전형”이라고 말했다.
그런데도 법 개정을 했던 교과부는 손을 놓고 있었다. 한 학부모는 교과부에 민원을 넣었으나 “ 문제를 건드리면 오히려 민사고의 전략에 말려들어 이런 편법이 모든 특목고와 자사고로 확산될 수 있다”는 답변만 들었다.
교과부 학교제도기획과 실무담당자는 “(민원 접수 뒤) 바람직하지 않다는 메시지를 민사고에 분명히 전했다”면서도 “애매모호한 것들 때문에 (조처를) 검토 중”이라고만 말했다. 그러나 10월14일 현재 집중상담 지원자, 이를 통해 합격 가능성을 들은 이들의 규모 등 기본적 실태조차도 파악하지 않고 있었다. 이 담당자는 “수치에 대한 판단 기준이 달라서, 학교에서 말해주는 대로 받아들일 수도 없다”며 자세한 설명을 꺼리고, 기사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했다.
교과부, 집중상담 수험생 수도 파악 못해민사고 역시 집중상담과 관련한 모든 수치를 밝힐 수 없다는 태도다. 일반 상담이라면 감출 이유가 없다. 나 부교장은 “평소 수시 상담이 많이 들어오는데, (올해부터) 고교 선발 1곳만 지원하게 하면서 한 번 떨어지면 일반고를 가야 하니 상담 수요가 더 많아졌다”며 “그래서 만든 게 집중상담인데, 교육부에서 민원들이 있다고 하니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다면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민사고 집중상담을 받은 학생이 다른 자사고·특목고에 지원하는 데 제약이 있는지를 묻자 교과부의 또 다른 실무자는 “입학전형 기간에 지원한 게 아니므로 제약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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