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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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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래시장 현대화하면 임대료 폭등

조승수 의원 중소기업청 자료 분석
“시설 고친 뒤 매출은 하락·임대료 상승”… 대형마트 입점이 주요 변수
등록 2009-10-16 14:19 수정 2020-05-03 04:25

‘세금 들여 재래시장을 현대화하면 매출은 줄고 임대료는 오른다.’
믿기 어렵지만 정부가 재래시장을 활성화하기 위해 매년 수천억원을 들이고 있는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이 애초 의도와 달리 상인, 특히 영세한 임차상인들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으로 드러났다.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은 주차장이나 시장 진입 도로, 화장실 등을 신·개축하거나 비·햇빛 가리개, 상하수도와 냉난방 시설 등을 확보해 시장 상인과 이용객이 편리하게 시장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부는 2002년부터 올해까지 이 사업에 1조여원을 들여 전국 재래시장 771곳의 시설을 개선해왔다.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은 임대료 폭등·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규제책과 함께 실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기 한 재래시장의 모습.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재래시장 시설 현대화 사업은 임대료 폭등·대형마트 입점에 대한 규제책과 함께 실시돼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기 한 재래시장의 모습.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임대료 올릴 구실은 있으나, 제재 방법은 없어

그러나 중소기업청이 전국 재래시장 1550곳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시설 현대화 사업을 실시한 재래시장 709곳의 연평균 매출액은 2006년 304억7800만원에서 2008년 244억100만원으로 20%나 떨어진 반면, 같은 기간 평당 한달 임대료는 10만7천원에서 16만9천원으로 58%나 뛰어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비해 시설 현대화 사업을 벌이지 않은 재래시장 841곳의 연평균 매출액은 같은 기간 126억1200만원에서 124억1700만원으로 2%만 감소했고, 평당 임대료도 9만3천원에서 11만8천원으로 27%만 올랐다.

이런 현상은 대형마트와 슈퍼슈퍼마켓(SSM)이 계속 증가하는 데다, 시설 현대화 사업을 이유로 한 건물주의 임대료 상승을 막을 법적 근거가 따로 없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우선 시설 현대화 사업의 법적 근거인 ‘재래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엔 “시장·군수·구청장이 시설 현대화 사업을 지원함에 있어서 임차상인이 불리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규정밖에 없다. 시장 시설이 개선됐다는 이유로 시장·상점 소유주가 임대료를 마구 올려도 이를 제재할 방법이 없는 것이다. 특히 중소기업청 고시에 따라 소유주는 사업비의 10%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임대료를 올릴 구실이 된다.

지역별로 보면, 매출액 감소와 임대료 상승이 두드러진 곳은 대형마트 입점이 집중된 도시 지역이다. 서울의 경우 시설 현대화 사업을 한 재래시장의 연 매출액이 2006년 2186억5500만원에서 2008년 1125억900만원으로 반토막 난 반면, 평당 임대료는 22만4천원에서 40만3천만원으로 80%나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의 대형마트는 9개나 늘었다. 인천 지역에선 연 매출액이 16% 줄었지만 임대료는 41%나 올랐는데, 그동안 대형마트도 3개가 늘어났다. 광주에선 평당 5만2천원이던 임대료가 2년 새 84% 올라 11만9천원이 됐다. 현대화 사업을 벌이지 않은 곳보다 51%나 더 오른 수치다.

2년 새 대형마트 17개가 늘어난 경기 지역의 경우 시설 현대화 시장 연 매출액이 51% 늘긴 했지만, 기존 재래시장의 매출도 26% 올랐다. 반면 임대료는 전자가 32%나 올라 4% 상승에 그친 후자보다 28%포인트나 더 올랐다.

SSM 증가 없는 강원·전남은 매출↑ 임대료↓

한편 대형마트가 하나도 증가하지 않은 강원·전남에서는 시설 현대화 사업을 벌인 시장의 매출이 각각 31%와 105% 뛰었고, 평당 임대료도 각각 6%와 29% 줄어들었다.

중소기업청 조사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은 “재래시장의 임대상인들이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음이 정부 조사 결과에서 확인됐다”며 “예산으로 임대사업자의 배만 불리지 않도록 시설 현대화 사업 대상 시장의 임대료 상승 규제를 포함한 재래시장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하겠다. 정부도 사업의 체계적인 관리와 함께 대형마트·SSM 규제를 서둘러야 한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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