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기 전이나 해 진 뒤에는 집회·시위를 할 수 없다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10조는 진작부터 시민사회단체 쪽에서 독소 조항으로 손꼽아왔다. 다행히 9월24일 헌법재판소가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함으로써 해당 조항은 늦어도 2010년 6월 말이면 생명이 끝난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밤 10시건, 11시건 누가 봐도 명백한 밤 시간대를 못박아 그 이후의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할지, 아니면 아예 관련 조항을 없애버릴지도 국회가 판단해야 할 부분이다.
이참에 그동안 독소 조항으로 지목돼온 다른 집시법 조항도 함께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경찰이 헌법적 권리인 집회·시위 자유를 손아귀에 넣고 자의적으로 쥐락펴락하면서 헌법의 상투를 쥐고 흔들 수 있도록 만드는 조항들이다.
우선 경찰서장이 주요 도시의 주요 도로에서 열릴 집회·시위를 교통 소통을 이유로 금지할 수 있도록 한 12조가 첫손가락에 꼽힌다. 주요 도로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도록 하고 있는데, 9월 현재 서울·부산을 비롯해 춘천, 목포, 진주 등 21개 도시 89개 주요 도로가 포함돼 있다. 서울의 경우, 서대문구 자하문 앞에서 광화문~남대문~서울역~삼각지를 거쳐 한강대교 남단까지의 도로가 첫째 목록에 올라 있다. 구로구 오류동에서 여의도를 거쳐 종로~청량리~망우리에 이르는 도로도 대상이다. 퇴계로, 청파로, 남대문로, 삼일로, 돈화문로, 대학로, 테헤란로 등에 이르기까지, 경찰서장의 판단에 따라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는 도로는 웬만한 서울 시내 큰 도로를 모두 포함하고 있다.
실제 경찰은 이 조항을 시렁에 얹은 곶감 빼먹듯 즐겨 사용하고 있다. 경찰이 지난해 금지 통고한 집회·시위 299건 가운데 교통 소통을 이유로 든 게 69건이나 됐다. 장소 경합을 이유로 금지한 140건에 이어 두 번째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는 “교통 확보의 가치가 집회 자유의 가치보다 중요할 순 없는데도 우리나라는 교통 방해가 절대 가치인 것처럼 집회를 억압하는 핑계로 활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장소 경합을 이유로 경찰서장이 집회·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8조 2항도 마찬가지다. 법은 분명히 “그 목적으로 보아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금지 통고할 수 있다고 제한하고 있지만, 경찰 눈에는 이 제한 규정마저 보이지 않는다. 경찰은 지난 8월 통일 관련 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이 서울 광화문 KT 앞에서 광복절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를 금지했는데, 그 이유는 KT 광화문 지사에서 같은 날 캠페인성 집회를 하겠다고 앞서 신고했다는 것이었다. 광복절 집회와 캠페인성 집회가 상반되거나 방해가 될 것이라고 보는 경찰의 인식 수준이 의심스러운 경우다.
결국 서울행정법원은 평통사가 경찰의 금지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경찰의 집회 금지 처분은 헌법이 보장하는 집회의 자유에 대한 과도한 제한”이라며 평통사의 손을 들어줬다. 경찰은 석 달 전에도 평통사 쪽이 같은 장소에서 열겠다는 집회를 같은 이유로 금지했고 법원은 이때도 경찰에 금지 처분을 취소하라고 판결한 바 있다.
금지 통고 제한 규정 불구 경찰은 “금지” 남발“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한 5조도 경찰이 애용하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의 박주민 변호사는 “검찰이 야간 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이 나올 것 같으니까 지난 9월 초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등 이른바 촛불 관련 단체 간부들의 죄명에 집시법 5조를 집어넣는 공소장 변경을 했다”며 “이 조항에 대해서도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추진하고 재판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헌법소원을 내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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