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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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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만 남은 승자 없는 ‘격전지’

해고 둘러싼 극한 대립 있었던 쌍용차…
노사문화·비정규직·대기업노조 이기주의 등 모순 중첩된 현실 보여줘
등록 2009-09-17 16:00 수정 2020-05-03 04:25

깃발은 내려갔다. 쌍용차의 ‘77일 전투’는 8월6일 그렇게 끝났다. 아무도 승리하지 못한 전투였다.
올 1월9일 쌍용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구조조정안을 둘러싼 노사 협의가 진척이 없자 최대 주주인 중국 상하이차가 사실상 경영권 포기라는 강수를 둔 것이다. 상하이차는 세계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와 금융시장의 신용경색 때문이라고 밝혔다.

상처만 남은 승자 없는 ‘격전지’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상처만 남은 승자 없는 ‘격전지’ 사진 한겨레 김명진 기자

쌍용차 사태는 ‘고용‘이라는 약한 고리가 터지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과 무비판적인 외자유치론도 함께 존재한다. 쌍용차는 지난해 스포츠실용차(SUV) 연료인 경유값이 급등한 여파로 판매량(8만2405대)이 2007년보다 33.9%나 감소하며 위기를 맞았다. 상하이차는 국제유가가 오르면서 주력 차종인 대형 세단과 SUV 판매 저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았다. 상하이차는 연구·개발(R&D) 등에 매년 3천억원씩 총 1조2천억원을 지원하겠다던 인수 당시의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상하이차가 단물만 빼먹고 손을 뗀다는 비난을 받았다.

무비판적 외화유치 등이 화 불러

고용 이슈는 노사 간 타협 문화, 비정규직, 사회 안전망 등의 문제와 겹겹이 얽혀 있다. 회사 쪽은 직원 2646명을 자르는 구조조정만 고집했다. 노조는 하루 주야간 2교대를 3조2교대로 바꾸는 일자리 나누기 방안과 무급휴직·임금삭감안을 제시했지만 묵살됐다. 북유럽식 일자리 나누기 모델은 우리나라에 들어설 자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노조가 끝까지 파업을 벌였던 것 역시 실업의 공포 때문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해고는 바로 중하층으로 떨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해고된 노동자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극히 제한적이다. 비정규직, 저임금 중소기업, 영세 자영업, 단순 노무직 이외엔 새로운 일자리를 찾기가 힘들다.

비정규직 문제도 함께 있었다. 지난 2004년 상하이차가 인수할 때 1700명까지 늘었던 비정규직은 2006년 500명, 2008년 300명 등 차례로 잘려나가 지금은 300명 남짓만 남았다. 회사는 경기가 나빠지자 가장 먼저 비정규직부터 줄였다.

쌍용차 노동자들의 파업은 고립된 채 진행됐다. 정리해고 명단에서 빠진 회사 쪽 직원 일부가 파업 중인 노조원과 몸싸움을 벌이는 사태까지 일어났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는 몇 차례 연대 파업을 벌였지만, 주력 사업장인 현대차 지부가 불참했다. 이런 행태는 신자유주의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외환위기 뒤 정리해고가 법제화되고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를 당하면서 ‘내 몫 챙기기’에만 매달리게 됐기 때문이다. 연대는 사라지고 개인주의와 실리주의만 드러내 보였다.

이처럼 구조조정 대상 기업 노동자, 청년실업층, 영세 자영업자, 중소기업 등의 고통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서민은 경기회복을 체감한다. 그래야 내수도 성장한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일자리 대책에 힘입어 반짝 상승하던 고용지표는 다시 곤두박질치고 있다. 정부가 희망근로 프로젝트를 통해 행정인턴·공공근로를 늘리면서 일자리가 지난 5월 21만9천 명 감소에서 6월 4천 명 반짝 증가했으나, 7월 다시 7만6천 개의 일자리가 사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이 어려워지자 아예 취업을 포기한 구직 단념자도 지난해보다 42.8%나 증가했다. 주당 18시간 미만 노동자는 지난 8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넘어 105만7천 명을 기록했다.

곤두박질치는 고용 지표… 고통은 진행형

정부는 고용 부진의 돌파구를 기업 투자 촉진에서 찾는다는 복안이다. 경제부처 장관들이 총동원돼 ‘적극적인 기업 투자’를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김병권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연구센터장은 “수십만 개의 단기 일자리가 올 연말 무렵에는 사라질 가능성이 높고, 민간의 신입사원 채용도 부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실업 고통을 덜어주기 위한 취업 지원과 사회 안전망 확충을 위한 대책과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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