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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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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 없는 강에 돈 붓기

4대강 사업 예비타당성 조사 대부분 안 받고, 선도사업은 구체적인 용처 없이 예산만 요구
등록 2009-08-20 14:55 수정 2020-05-03 04:25
진보신당 부산시당 당원들이 8월9일 오전 낙동강 하류 부산 구포대교 근처에서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탄 뗏목은 페트병 420여 개를 이어 한 달 동안 만든 것으로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상징한다. 사진 연합 김선호

진보신당 부산시당 당원들이 8월9일 오전 낙동강 하류 부산 구포대교 근처에서 4대강 사업을 중단하라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들이 탄 뗏목은 페트병 420여 개를 이어 한 달 동안 만든 것으로 4대강 사업의 허구성을 상징한다. 사진 연합 김선호

서울에서 부산까지 1시간40분 만에 주파한다고 했다. 6년만 기다리면, 5조8천억원만 들이면 ‘꿈의 교통수단’을 경험할 것이라 했다. 그로부터 18년이 지났다. 1시간40분은커녕, 공사조차 끝나지 않았다. 경부고속철(KTX) 이야기다. 경부고속철을 대선 공약으로 내놨던 노태우 전 대통령은 ‘임기 내 착공’을 지상 과제로 삼았다. 교통부의 타당성 조사와 노선 확정, 설계 등엔 2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수요 예측이 2배 이상 부풀려졌다는 등 비판이 끊이지 않았지만, 정권이 의지를 갖고 추진하는 사업을 막을 방법은 아무것도 없었다. 2004년이 되어서야 서울~대구 1단계 구간이 겨우 개통됐고, 쏟아부은 돈은 애초 계획의 2배가 넘는 12조7377억원이었다. 2002년 착공한 2단계 대구~부산 구간은 2010년 완성될 예정인데, 그동안 사업비 계획은 5조6981억원에서 14차례나 변경되면서 2조381억원이 늘어난 7조7362억원이 됐다. 1단계 구간에 투입된 사업비를 합치면 처음 계획보다 4배 가까이, 사업 기간은 3배나 늘어난 것이다.

KTX·인천공항철도와 닮은꼴

1998년 양해각서를 체결한 뒤 2007년 1차로 김포공항~인천공항 구간을 개통한 인천국제공항철도는 하루 이용객이 당초 예측 수요의 7%에 불과한 1만7천여 명(올해 3월 기준)이다. 총사업비 4조995억원 가운데 1조원을 정부가 댔다. 나머지는 현대건설·대림그룹·포스코건설 등의 컨소시엄이 마련하는 대신 준공(2단계 김포공항~서울역 준공 예정 시기는 2010년) 이후 30년 동안 철도 운영권을 갖는다. 그동안 운영 수입이 예상보다 모자랄 경우엔 90%를 정부가 보장해준다. 철도 이용객이 예상보다 적어 이익이 나지 않으면 세금으로 충당해준다는 말이다. 한국교통연구원은 이용객 추세가 지금과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면, 정부가 컨소시엄에 줘야 할 세금이 공사비의 3배가 넘는 13조8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오는 10월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상식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 두 사업과 닮은꼴이다. 적어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최대한 피해간다는 점에선 그렇다. 예비타당성 조사란 총사업비가 500억원 이상이거나 국가재정이 300억원 이상 투입되는 대규모 사업을 대상으로 사전에 타당성을 검증하는 절차로 1999년부터 시행됐다. 수요, 비용 편익, 재원 조달 방안, 위험 요인 등을 분석해 사업의 경제적·정책적 타당성을 따진 뒤 사업 추진 여부를 판단함으로써 예산 낭비를 막는 안전장치다.

그동안 사업 예산이 도중에 폭증한 사례는 대부분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은 경우라는 점에서 이 제도의 효과가 입증된다. 조승수 진보신당 의원이 ‘총사업비 관리 대상 사업’(기획재정부가 사업비를 조정·관리하는 사업) 가운데 규모가 1천억원 이상인 사업들을 확인한 결과, 사업비가 애초 계획보다 5천억원 또는 두 배 이상 변경된 사업은 32건이었다. 이 중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은 사업이 22건이나 됐다. 덕소~원주 복선전철 사업은 17차례나 사업비 계획이 바뀌어 처음 7740억원 규모에서 1조2291억원 늘어난 2조31억원, 대구~포항 고속도로 사업은 9600억원에서 11차례 사업비 계획이 바뀌면서 두 배 넘게 예산이 뛰어 1조9336억원이 됐다.

타당성 조사 대상은 10%뿐

그런데 예비타당성 조사 제도가 실시된 지 10년이나 된 지금 시작하는 4대강 세부사업 가운데 정부가 확정한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은 19개에 불과하다. 이들 세부사업의 총사업비는 2조4773억원이다. 결국 4대강 살리기의 총사업비 22조2천억원 가운데 10%를 조금 넘는 부분만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친다는 얘기다. 그나마도 이미 조사가 끝난 송리원댐·보현댐 사업을 제외하면 신규사업 가운데 조사 대상은 1조3771억원 규모에 그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정부가 4대강 사업의 예비타당성 조사를 ‘합법적으로’ 건너뛰려고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주장한다. 국가재정법 시행령 13조는 ‘재해 복구 지원 사업’ 등을 예비타당성 조사의 ‘면제 대상’으로 규정했다. 그런데 지난 3월25일 ‘재해 복구 지원 사업’이란 표현이 ‘재해예방·복구 지원사업’으로 바뀌었다.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사업’도 새로 면제 대상에 추가됐다. 이로써 4대강 사업의 핵심인 보 설치, 준설 등은 ‘재해예방 사업’으로 분류돼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게 됐다.

4대강 살리기 사업 일지

4대강 살리기 사업 일지

조승수 의원이 국토해양부가 제출한 4대강 세부사업 410개(14조5980억원)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예전 기준으론 이 가운데 20.7%인 85개 사업(9조8548억원·금액 기준 67.5%)이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이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으로 62개 사업(6조9789억원)이 예비타당성 조사를 피했다. 조 의원은 “정부가 예산 낭비 소지를 없애려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무력화하고 4대강 사업을 밀어붙이려고 시행령을 개정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며 “곧 내년 예산을 편성해야 하는데, 혈세 낭비를 막으려면 하루빨리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8월7일 열린 예산 관련 당정회의에선 한나라당 의원 14명도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 사업 규모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5월까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을 맡았던 이한구 의원은 “드러나지 않은 문화체육관광부·농림수산식품부의 연계사업비까지 포함하면 총사업비가 6조~7조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며 “사업 타당성을 전혀 알 수 없으므로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당에서조차 이런 요구가 터져나오는 건 이 사업에 돈을 얼마나 퍼부어야 할지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부가 가장 최근 내놓은 총사업비 규모는 22조2천억원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용역을 맡긴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 요약본을 바탕으로 4대강 기본계획을 발표(6월8일)하면서다. 하지만 22조2천억원으로 끝날 것이라 믿는 이는 드물다. 지난해 12월15일 4대강 사업과 관련해 정부가 처음으로 내놓은 사업비 규모는 13조9천억원이었다. 20여 일 뒤인 올해 1월6일 ‘녹색뉴딜 사업’ 발표 때 4대강 사업 예산은 18조원으로 껑충 뛰었다. 5월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재정전략회의에선 18조6천억원으로 보고됐다가 2주 만에 22조2천억원으로 급증했다. 국토해양부는 “국민들이 (4대강 사업 때문에) 수질 문제를 많이 우려해 환경부 예산인 수질개선사업비를 포함했고, 가뭄·홍수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준설, 보 설치 등 사업 물량이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근본 재검토” 목청

올해 예산 8320억원을 따낸 ‘4대강 선도사업’ 추진과 예산 책정 과정을 들여다보면 더욱 기가 막힌다. 선도사업은 4대강 사업에 착수하기에 앞서 ‘지역균형 발전’과 ‘하천 정비’를 위해 대구·부산·안동·나주 등 7개 지구(세부 사업 17개)에서 실시되고 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해 12월15일 선도사업 계획을 발표했고, 사전환경성 검토도 마치지 않은 채 2주 뒤인 12월29일 안동·부산 등에서 기공식을 열었다.

‘빛의 속도’로 밀어붙인 결과는 ‘묻지 마 예산 편성’이었다. 국토해양부는 지난 1월 본예산 편성 때 4820억원을 요구해 전액을 배정받았다. 석 달 뒤인 4월 추가경정예산 편성 땐 3500억원을 더 요구했다. 4월14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에서 강창일 민주당 의원이 “두 달여 만에 필요한 예산이 2배가 늘어나는 엉터리가 어디 있냐”고 따졌다.

“어디에 쓸지 계획도 없이 3천억원 달라고 하나”
이명박 대통령이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을 마친 뒤 ‘4대강 살리기’ 사업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나라당 안에서 4대강 사업 재검토론이 불거지자 직접 “여당과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입단속에 나섰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이명박 대통령이 7월1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2회 지역투자박람회 개막식을 마친 뒤 ‘4대강 살리기’ 사업관을 둘러보고 있다. 이 대통령은 최근 한나라당 안에서 4대강 사업 재검토론이 불거지자 직접 “여당과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며 입단속에 나섰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예산 내역이 17개 세부 사업별로 책정되지 않고 4대 강별로만 뭉뚱그려져 있는 데 대해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4월15일 국토해양위 예산결산기금심사소위에서는 “4대강 마스터플랜도 없이 선도사업부터 미리 하는 게 말이 되느냐. 3500억원을 어느 지역에 얼마를 쓸 건지 계획도 없이 예산을 달라고 하느냐”는 이용섭 의원 등 민주당 의원들의 지적이 빗발쳤다. 권도엽 국토해양부 1차관의 답변은 이랬다. “마스터플랜은 5월 말에 나온다. (의원들이 지적한 대로) 절차상 걱정하는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2011년까지는 (4대강 사업이) 완공돼야 학자들이 우려하는 ‘124년 주기 가뭄’에 대비할 수 있다.” 어디에 어떻게 쓸진 모르겠지만 일단 돈부터 내놓으라는, ‘뿌레땅뿌르국’에서나 구경할 법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그렇게 따낸 예산 가운데 지난 6월까지 집행된 돈은 32.9%인 2742억원이다.

이렇게 구체적인 계획을 적시하지 않은 채 예산을 요구하는 방식을 두고, 지난 4월 국회 예산정책처는 “4대강 사업은 국가재정법상 총액계상사업(세부 내용을 미리 확정하기 곤란한 경우 총액으로 예산을 요구할 수 있는 사업)이 아니다”라며 “(이런 방식 탓에) 단기간에 많은 예산을 투입하는 4대강 사업 예산 편성의 적정성 판단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김정권 한나라당 의원도 “4대강 사업 마스터플랜이 수립되면 이런 식의 포괄적인 예산 편성은 개선돼야 한다”고 요구했다. 하지만 정부는 여전히 국토해양부 6조7천억원 등 8조6천억원에 이르는 내년도 4대강 사업 관련 예산을 요구하면서 구체적인 계획 없이 또다시 하도 준설, 보 건설 등 사업명으로 뭉뚱그려진 총액만을 요구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지난 7월20일 국토해양부와 ‘4대강 살리기 추진본부’에 제출한 ‘4대강 살리기 마스터플랜’ 최종 보고서도 부실하긴 마찬가지다. 415쪽인 최종 보고서는 지난 6월에 나온 61쪽짜리 요약본보다 7배 가까이 두꺼워졌지만, 가장 중요한 사업비 부분은 요약본과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2쪽 그대로다. 김홍철 환경정의 공간정의국장은 “요약본과 전혀 달라진 내용이 없다. 이건 4대강 사업의 마스터플랜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4대강 사업이 제대로 검증받을 방법은 없을까? 국가재정법엔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회가 그 의결로 요구하는 사업에 대하여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야 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 조항대로라면 국회가 똘똘 뭉쳐 조사를 요구할 수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 지도부가 내부의 4대강 사업 비판에 제동을 건 이상 불가능에 가까운 얘기다.

MB가 직접 나서 이견 봉쇄

국가재정법상 ‘국회 의결’이 상임위를 뜻하는지 본회의를 뜻하는지 해석도 다르다. 이 때문에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국회 상임위나 예결특위, 본회의를 가리지 않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의결할 수 있도록 명시한 법 개정안을 내놨다. 예비타당성 조사 대상과 면제 대상을 시행령이 아닌 법률로 규정(김재균 민주당 의원)하거나, 국회에 예산안을 제출할 때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보고서를 함께 제출(최철국·최규식 민주당 의원)하도록 하는 등 근본적으로 시빗거리를 없애려는 개정안도 발의돼 있다.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지금껏 망한 국책사업은 청와대 주인이 관심을 쏟는다고 정부는 대충대충 계획을 내고, 여당은 제대로 심의도 안 한 채 따라간 것들”이라고 지적했다. 정부·여당의 책임 있는 태도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사업 추진 의지를 가진 대통령이라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11일 국무회의에서 “여당과 정부에서 다른 목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당정이 힘을 모아야 할 때”라며 한나라당 내부의 ‘4대강 사업 재검토론’을 직접 ‘진압’하고 나섰다. 정말 4대강 사업은 ‘망한 국책사업’이 될 운명일 수밖에 없을까.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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