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공화국은 절대 국민의 표를 조작하지 않는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지난 6월19일 테헤란대학에서 열린 금요성일 예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개혁파 후보인 미르 호세인 무사비 전 총리의 표차는 무려 1100만 표에 이른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10만 표나 20만 표, 최대 100만 표까지는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며 “하지만 어떻게 1100만 표 규모의 부정선거가 있을 수 있느냐”고 재차 강조했다. 그런가?
지난 2005년 대선 당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571만1696표(19.43%)를 얻어, 621만1937표(21.31%)를 얻은 악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 뒤졌다. 62.66%의 투표율을 보인 당시 선거에서 개혁파 후보인 메디 카루비 전 마즐리스(의회) 의장은 507만114표(17.24%)를 얻으며 아쉬운 3위를 차지했다. 2차 결선투표 결과는 사뭇 달랐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1728만4782표(61.69%)를 얻어, 1004만6701표(35.93%)를 얻는 데 그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을 압도적으로 따돌리고 당선됐다. 투표율은 59.6%였다.
무려 85%의 투표율을 보인 이번 대선에선 어땠을까? 지난 6월13일 이란 내무부가 공식 집계한 대선 결과를 보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무려 2452만7516표(62.63%)를 얻었다. 개혁파 후보 무사비 전 총리는 1321만6411표(33.75%)를, 카루비 전 의장은 고작 33만여 표(0.85%) 얻는 데 그쳤다. 보수파인 모센 레자이 전 혁명수비대 사령관도 67만여 표(1.73%)에 만족해야 했다. 총투표 3916만5191표 가운데 유효표는 98.95%인 3875만5802표로 집계됐다.
얼핏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무사비 전 총리의 득표율만 보면, 지난 2005년 대선의 결선투표 결과와 비슷해 보인다. 보수·개혁파 후보의 득표율이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얻은 표의 규모를 놓고 보면 사정이 확연히 달라진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번 대선에서 2005년 대선 1차 투표에 비해 1881만5820표를 더 얻었다. 결선투표와 비교해도 724만2734표나 많은 지지를 이끌어냈다. 그러니 묻게 된다. 대체 이 많은 보수표는 다 어디서 왔을까?
영국의 외교안보 전문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왕립국제문제연구소)가 이번 대선 결과를 통계학적으로 분석해 6월21일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보고서는 먼저 ‘획기적’으로 높아진 투표율에 초점을 맞춘다. 채텀하우스는 “보수층 유권자가 두터운 북부 마잔다란과 중부 야즈드 등 2개 지역에선 투표율이 100%를 넘어섰고, 90% 이상의 투표율을 기록한 지역도 잔잔·길란 등 이란 30개주 가운데 4개주에 이른다”며 “지난 대선에 비해 전 지역에서 투표율이 고루 상승하면서 투표율의 지역적 편차가 거의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5년 대선에선 60% 이하 투표율을 기록한 지역이 7개주에 이른 반면, 70% 이상의 투표율을 보인 지역은 10개주에 불과했다. 하지만 올 대선에선 단 2개주에서만 투표율이 70% 이하를 기록했고, 24개주에선 80%를 넘겼다.
문제는 치솟은 투표율과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표 쏠림 현상’ 사이에 인과관계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실제 이란 유권자의 3분의 1가량이 개혁파 성향의 30살 이하 젊은 층이다. 선거에 앞서 투표율이 높아질수록 개혁파 후보에게 유리하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럼에도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났다. 이유가 뭘까?
지난 2005년 대선 1차 투표에 출마한 보수파 후보는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필두로 모하마드 칼리바프, 알리 라리자니 등 모두 3명이었다. 이들이 얻은 표를 모두 합하면 1150만여 표(약 39%)다. 이번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이들 보수층의 표를 모두 얻었다고 전제하더라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추가로 1300만 표를 더 얻었다는 얘기가 된다. 채텀하우스는 그의 추가 득표 가능성을 크게 세 가지로 나눠 분석했다. 첫째, 지난 대선에 참여하지 않았던 신규 투표 참여층 1060만여 명이 있다. 둘째, 지난 대선에서 중도파인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620만 유권자가 있다. 셋째, 지난 대선에서 개혁파에 표를 던진 1040만여 유권자도 있다. 보고서의 분석 내용을 보자.
“내무부가 밝힌 공식 선거결과가 들어맞으려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전체 30개주 가운데 지난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인 카루비 전 의장이 강세를 보였던 10개주에서 신규 투표 참여층의 모든 표를 얻고, 중도파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게 갔던 표와 개혁파 쪽으로 갔던 표 가운데서도 상당 부분을 추가로 얻었어야 한다. 내무부 발표가 사실이라면 앞선 대선에서 카루비 후보를 지지했던 유권자들이 대거 아마디네자드 대통령 지지로 돌아섰다는 얘기가 된다. 카루비 전 의장이 정치·문화·경제·외교정책 등 모든 측면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과 날선 대립을 해왔다는 점에 비춰 극히 가능성이 낮은 얘기다.”
카루비 고향 로레스탄, 개혁파 44.47%가 변심?카루비 전 의장의 고향인 로레스탄주는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난 대선에서 카루비 전 의장은 전체 79만3천여 유효표 가운데 44만여 표를 얻으며 압도적 승리를 거뒀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12만1천여 표로 2위를 기록했고,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6만9천여 표를 얻어 같은 보수파인 칼리바프 후보(7만1천여 표)에게도 못 미쳤다. 보수파 세 후보의 표를 모두 합해도 17만1천여 표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전체 95만5천여 표 가운데 모두 67만7천여 표를 얻어, 각각 21만여 표와 4만4천여 표를 얻는 데 그친 개혁파 무사비 전 총리와 카루비 전 의장을 압도했다. 채텀하우스는 “앞선 대선에서 투표에 참여하지 않았던 이 지역 유권자 16만2천여 명과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에게 갔던 표를 모두 끌어왔다고 해도,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개혁파 유권자 44.47%의 지지를 추가로 얻었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분석했다.
마지막 변수는 농촌 지역의 표심이다. 채텀하우스는 보고서에서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2005년 대선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지지세가 강했던 건 농촌이 아니라 도시였다”며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농촌 지역의 표심이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에 대한 압도적 지지로 급선회했다”고 지적했다.
50개 도시, 전체 유권자 < 유효투표 수
이란의 농촌 지역은 대대로 개혁파 후보와 소수 인종 출신 후보자에게 몰표를 던져왔다. 실제 지난 1997년과 2001년 대선에서 개혁파인 모하마드 하타미 전 대통령의 주요 지지 기반도 농촌이었고, 2005년 대선에서도 농촌 지역은 개혁파 카루비 전 의장과 모스타파 모인 후보에게 몰표를 던졌다. 이번엔 정반대였다. 2006년 인구통계를 기준으로 농촌 지역 인구가 50%를 넘은 5개주 가운데 북코라산주를 제외한 4개주가 지난 대선에서 개혁파 후보를 지지했지만, 이번 대선에선 시스탄·발루치스탄주를 제외한 4개주에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이 압승을 거뒀다.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지난 4년에 걸친 ‘농촌·빈민층 끌어안기’의 결실인가?
채텀하우스는 “앞선 선거에서 개혁파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유권자의 절반가량이 돌연 보수파 후보 지지로 돌아섰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50개 도시에서 전체 유권자 수보다 유효투표 수가 많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란 혁명수호위원회는 6월21일 선거부정 의혹의 일부를 인정했다. 그럼에도 아바스 알리 캇코다에이 대변인은 이날 국영 <프레스TV>에 출연해 “일부 지역에서 투표율 100%가 기록된 것은 주민들이 자기 지역을 벗어나 다른 지역에서 투표할 수 있기 때문에 빚어진 일로 보인다”며 “총 유권자 수를 초과하는 투표용지가 300만 장이었지만, 1위와 2위의 표차가 1100만 표에 달해 최종 결과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순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선거의 총 유효표는 3872만여 표, 이 가운데 약 8%가 공식적으로 ‘부정한 표’로 드러났다. 이 정도면 재선거를 주장할 만도 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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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 모두 ‘혁명의 아버지’인 그랜드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와 맺은 친분이 정치적 성장의 견인차였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어린 시절 일찌감치 아야톨라 호메이니의 문하에 들어가 성직자로 성장한 것으로 전해진다. 아야톨라 하메네이도 이미 1960년대 시아파 성지인 이라크 나자프에서 아야톨라 호메니이에게 사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두 사람은 팔레비 왕조 반대투쟁에 적극 뛰어들어 1970년대 투옥됐던 경험도 공유하고 있다.
1979년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두 사람의 대립은 본격화한다. 지난 2002년 8월 비밀이 해제된 미 중앙정보국(CIA) 보고서를 보면, 두 사람은 혁명 초기부터 잦은 다툼을 벌여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중재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CIA가 1983년 2월 작성한 19쪽 분량의 이 보고서의 제목은 ‘하메네이와 라프산자니: 이란의 권력투쟁’이다. 보고서 작성 당시 하메네이는 이란의 대통령으로 행정권을 거머쥐고 있었고, 라프산자니는 마즐리스(의회) 의장으로 입법권을 장악하고 있었다.
CIA는 보고서에 따르면, 두 사람은 “사회주의적 계획경제에 대한 믿음, 강경한 반미 성향, 이슬람 혁명의 수출 필요성 등에 대해 견해가 일치”했으나,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후의 정국에 대해선 의견이 판이했다.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후계자로 공식 지목한 아야톨라 호세인 알리 몬타제리를 적극 지지한 반면,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고위 성직자 3~5명이 집단지도체제를 이루는 방식을 선호했다.
하지만 CIA는 당시 “아야톨라 호메이니 사후 두 사람이 서로 받아들일 만한 수준에서 권력 분점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예측은 맞아떨어졌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아야톨라 몬타제리는 정부 정책에 대해 가감 없이 쓴소리를 쏟아내며, 개혁 성향을 뚜렷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국 아야톨라 호메이니는 말년에 그의 후계 지명을 공식 철회했다. 1989년 6월 초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숨을 거두자,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전문가 회의를 거쳐 여타 고위 성직자를 물리치고 최고지도자 자리에 올랐고, 이를 측면 지원한 것으로 알려진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대권을 거머쥐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다시 파열음을 내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대선 때다. 3선에 도전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1차 투표에서 손쉬운 승리를 거두고도, 결선투표에서 아야톨라 하메네이의 지지를 등에 업은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현 대통령에게 완패했다. 절치부심하던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지난 2007년 7월 혁명수호위원회와 함께 이란의 양대 권력기구로 통하는 전문가회의 의장에 올랐다. 최고지도자와 의회가 각각 6명씩 지명하는 혁명수호위와 달리 8년 임기의 전문가회의 위원 86명은 직접 투표를 통해 선출되며, 최고지도자를 선출·해임하는 헌법적 권한을 가진다.
이번 대선에 앞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을 강도 높게 비판하는 공개서한을 아야톨라 하메네이에게 보내기도 했던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은 시위 사태가 격화한 이후 줄곧 시아파 성지 곰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안보 전문업체 ‘유라시아넷’은 지난 6월22일 내놓은 정세분석 보고서에서 “라프산자니 전 대통령이 곰에서 아야톨라 하메네이에 반대하는 고위 성직자들의 여론을 규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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