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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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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투로 얼룩진 진흙탕 싸움

정준양-윤석만, 포스코 회장 자리 놓고 상호 비방 폭로전
등록 2009-05-14 11:11 수정 2020-05-03 04:25

지난해 11월18일 정준양 포스코 사장(현 포스코 회장)이 돌연 포스코건설 사장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당시 포스코는 포스코건설의 경영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신속한 조처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포스코 안팎에선 정 사장이 ‘밀려났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결과적으로 ‘이구택 회장-윤석만 사장-정준양 사장’ 3인 대표이사 체제에서 ‘이구택-윤석만’ 2인 대표 체제로 재편된 셈이었다. 포스코 안 권력 구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이었다.
포스코건설은 규모에서 포스코의 10분의 1 수준이다. 포스코건설은 2007년 기준으로 매출액 3조4685억원에 영업이익 2471억원을 올렸지만, 매출액 22조2066억원에 영업이익 4조3082억원의 포스코에는 한참 미치지 못한다.
사실상 포스코의 3인자를 계열사 사장으로 내려보내는 인사를 하는 데 정작 이구택 당시 회장은 국내에 없었다. 이 전 회장은 30여 명의 국내 경제계 인사와 함께 11월17~22일 브라질과 페루를 순방 중인 이명박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었다.

2008년 1월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왼쪽)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전세계 완성차 및 부품업체 관계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2009년 2월27일 정준양 신임 포스코 회장이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포스코 제공· 연합 진성철

2008년 1월 윤석만 당시 포스코 사장(왼쪽)이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전세계 완성차 및 부품업체 관계자 300여 명을 대상으로 포스코의 자동차 강판 제품 설명을 하고 있다. 2009년 2월27일 정준양 신임 포스코 회장이 서울 강남구 포스코센터에서 취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포스코 제공· 연합 진성철

초기엔 윤석만 사장이 앞서나가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박태준 명예회장과 윤석만 사장(현 포스코건설 회장)이 정준양 사장을 방출시킨다는 결론을 내리고 이구택 회장에게 통보하는 수준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포스코 관계자는 “박 명예회장이 정준양 사장을 굉장히 예뻐했다. 그런데 2008년 봄, 박 명예회장이 정 사장 처남에 관한 비리 의혹을 듣게 된다. 그 뒤부터 박 명예회장은 정 사장을 탐탁지 않게 여기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윤석만 사장이 앞서나갔다. 윤 사장은 2002년 포스코 전무에 이어 2004년 부사장, 2006년 사장에 올랐다. 2004년 전무, 2006년 부사장을 거쳐 2007년 사장이 된 정준양 회장보다 항상 한발 앞섰다.

이구택 회장은 퇴임을 결정하면서까지 윤 사장을 후계자로 삼으려 했다. 하지만 전세는 역전된다. 1월7일 이후부터다. 정권 실세의 인사 개입 뒤, 정준양 사장은 화려하게 복귀한다. 그 뒤 후보 인선 작업은 각종 투서와 암투로 ‘진흙탕’이 되고 만다.

먼저 ‘엔지니어 대세론’이 나왔다. ‘홍보맨 출신 윤 사장보다 엔지니어 출신 정 사장이 우위를 점했다’는 이른바 ‘정준양 대세론’이 급부상했다. 그동안 김만제 전 회장을 빼곤 엔지니어 출신들이 포스코 회장직을 맡아왔다는 논리다. 쇳물을 아는 사람이 회장이 돼야 한다는 얘기도 심심찮게 흘러나왔다. 이즈음 윤 사장 계열인 핵심 임원 몇 명이 정 사장 지지 세력으로 돌아섰다는 얘기도 들렸다. 기자들에게는 투서 뭉치들이 배달되기 시작했다.

언론플레이도 시작됐다. 한 신문은 1월15일 기사에서 이구택 회장이 정 사장을 계열사로 보내고 윤 사장을 남긴 것을 두고 정 사장을 후계자로 염두에 둔 포석이라고 분석했다. 정 사장을 1년 정도 핵심 계열사에서 훈련한 뒤 자신의 후임자가 되길 바랐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포스코 관계자는 “정 사장 쪽에서 흘린 것”이라고 단언했다.

또 다른 신문은 1월20일치 기사에서 정 사장이 포스코 사장 재임(2007년 2월 취임) 때 자사 주식을 사고파는 과정에서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거액의 차익을 남겼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정 회장은 2008년 3월14일 10억원가량을 들여 주당 47만1101원에 모두 2100주를 산 뒤 3개월 남짓 지난 그해 6월16일 주식 일부를 주당 60만7천원에 매각해 모두 9022만원의 차익을 남겼다. 포스코 주가는 정 사장의 매각 뒤 계속 하락해 정 사장은 공교롭게 당시 최고가에 매각한 셈이 됐다. 이같은 시점은 최고급 정보 없이는 사실상 알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정 사장의 자사주 매매 과정에 의혹이 일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정 사장 가족이 자사주 6개월 매도 금지 규정 등을 잘못 알고 이뤄진 매각이고 정 사장이 이에 상응하는 해명을 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1월28일 포스코 최고 경영진이 주요 기자재를 납품받는 과정에서 친인척 회사에 대규모 특혜를 줬다는 의혹도 제기했다. 정준양 사장이 포스코의 부사장·사장으로 있을 때, 처남이 주요 주주로 있던 (주)파워콤에 대량 납품 특혜를 줬다는 내용이었다. 파워콤의 포스코 납품 실적은 2005년 1억4300만원에서 2006년 4억2800만원, 2007년 14억100만원, 2008년 30억5600만원으로 급상승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는 “정 사장이 거래량 확대에 관여한 바 없다”고 해명했다.

이런 의혹 보도는 두 후보 쪽의 언론 홍보전이 극에 이르던 때 나왔다. 이구택 회장은 홍보담당 임원을 집무실로 부른 자리에서 ‘대노’했다고 한다. 흥분한 목소리가 사무실 밖에까지 들릴 정도였다. 그 뒤 윤석만 사장 진영은 급속히 와해됐다.

홍보실 나서 보도 자제 요청까지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정 사장에 대한 부정적 기사가 나가자, 이 회장이 (윤 사장을 배출한) 홍보 라인에서 조장 또는 묵인하는 것으로 보고 강력히 개입했다. 포스코는 회장 선임을 둘러싼 각종 투서나 제보로 언론 보도가 쏟아질 가능성에 대비해 보도 차단용 홍보·광고 집행을 급증시켰다. 물론 회장 후보 결정 전까지는 보도를 자제해달라는 요청도 있었던 걸로 안다. 홍보실이 검증 대상이 돼야 할 특정 후보에 대한 보도를 막으려 나선 것은 문제였다”고 말했다.

이구택 회장은 포스코 감사실을 통해 정 사장과 관련된 의혹들을 철저히 감사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감사 결과 정 사장과 관련된 의혹은 이미 해명이 된 사안이었거나 의혹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서둘러 종결지었다. ‘쇼였다’는 비판도 나왔다.

윤 사장 편에 서서 지지 활동을 했던 포스코의 한 간부는 “CEO추천위 회의를 앞두고 정 사장은 심사 인터뷰를 위한 문답지까지 포스코 기획실에서 다 받았다. 하지만 윤 사장은 자신이 필기한 뒤 이를 비서가 정리해주는 등 비참한 상황이었다. 이는 포스코 공조직까지 특정 인물을 밀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친 뒤, 지난 2월27일 주총에서 정준양 포스코건설 사장은 포스코 새 회장으로 선임됐다. 포스코 관계자는 “아무리 계열사지만 대표이사를 불과 3개월 사이에 바꾼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결국 정 사장이 포스코건설로 갈 때와 그가 3개월 만에 포스코로 입성할 당시의 ‘권력’은 달랐다는 얘기다.

포스코는 5년 만에 포스코건설 회장직을 부활시켜 윤 사장을 앉혔다. 직함상으로는 ‘예우’를 했다. 하지만 실권이 없어 고문에 가까운 역할이다. 포스코건설의 경영을 주관하는 대표이사는 정동화 신임 사장의 몫이 됐다. 정동화 사장은 지난 2004년 광양제철소 부소장으로 당시 광양제철소장이던 정준양 회장을 2년간 보좌했다.




이구택 전 회장의 영욕 40년
글로벌화 기여… 골프·스톡옵션 입방아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사진 한겨레 김경호 기자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은 40여 년의 포스코 생활을 마감하고 지난 2월25일 퇴임했다. ‘글로벌 포스코’를 내세우며 회장직에 오른 지 6년 만이다. 국내 기업 포스코를 해외로 나서게 만든 것이 그의 가장 큰 업적이었다. 하지만 그 역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대우조선해양 인수 실패와 베트남 일관제철소 건설 지연, 스톡옵션 논란 등이다.
지난 2006년부터 포스코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모색해왔던 이 전 회장에게 대우조선해양은 좋은 매물이었다. 하지만 GS와 컨소시엄 결렬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실패하고 말았다.
베트남 일관제철소 건설 사업도 오랜 기간의 준비를 거쳤다. 하지만 지난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갑작스레 터 이전을 요청받아 관련 업무를 보던 임직원들이 철수했다. 시작 때는 대대적으로 홍보를 했으나, 지금은 언론에도 일절 알리지 않은 채 덮기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 전 회장은 베트남 현지 사업에서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회사 돈으로 해외에서 골프까지 쳐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는 지난해 3월19일부터 3박4일 일정으로 하노이를 방문했다. 일부 국내 언론은 “이 회장이 베트남 고위 관료들을 만나 제철소 건설이 필요하다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골프 친 사실을 확인하자, 포스코 쪽은 “현지 직원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이 전 회장은 애초 베트남 총리와 장관 등을 만날 예정이었으나 퇴짜를 맞았다. 그 대신 동행한 임원들과 골프를 즐긴 것이었다. 이 시점에 사실상 베트남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당시 포스코는 베트남 중부 반퐁항에 400만t급 제철소 건설을 추진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지 언론과 정부 일각에서 반대 여론이 거셌다. 베트남 해양과학자 단체와 해양부 등이 환경 훼손에 우려를 나타냈다. 이들은 제철소 건설 재고를 강력하게 요청했다. 응우옌 쓰언 푹 총리실 장관도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반퐁만의 환경이 우선이며 제철소 건설 문제는 그 다음”이라고 언급했다.
스톡옵션 논란은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지만 도덕적인 면에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됐다. 이 전 회장의 뛰어난 경영 성과에도 스톡옵션 논란으로 “국민기업이 돈잔치를 한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이 전 회장은 두 차례에 걸쳐 스톡옵션을 받았다. 2001년 7월 4만5184주(행사가 9만8400원)에 이어, 2004년 7월 4만9천 주(행사가 15만1700원)를 추가로 받았다. 이 회장은 2001년에 받은 스톡옵션에 대해 이미 권리를 행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를 통해 총 138억900만원 상당의 차액을 보상받았다. 2004년 7월에 부여받은 스톡옵션은 아직까지 행사하지 않았다. 논란이 일자 포스코는 결국 2005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하지만 이미 부여된 스톡옵션이 행사될 경우 포스코는 이 차액을 지급해야 한다.
한편 정준양 포스코 회장은 지난 2004년 7월 4900주(행사가 15만1700원)의 스톡옵션을 부여받았지만 아직까지 행사하지 않았다. 윤석만 포스코건설 회장은 2002년 9월에 1만1179주(행사가 11만6100원)와 2004년 7월 7840주(행사가 15만1700원) 등 두 차례에 걸쳐 스톡옵션을 받았다. 이 가운데 2002년에 부여받은 스톡옵션 6천 주는 이미 행사했다. 이를 통해 9억8200만원의 차액을 보상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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