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떨고 있는 에버랜드

경영진단 끝나면 2차 감원 몰아칠 듯… 업무 재배치는 삼성식 구조조정
등록 2009-04-02 15:51 수정 2020-05-03 04:25

임원 29명 중 15명 퇴임. 지난 1월 이뤄진 삼성에버랜드 임원 인사 결과였다. 삼성그룹 계열사 중에서 교체 폭이 가장 컸다. 박노빈 당시 사장도 물러나야 했다. 이재용 전무의 삼성에버랜드 지분 편법증여와 지배구조 형성에 큰 역할을 했던 그였다. 삼성에버랜드의 지난해 매출은 1조8천억원이었다. 2007년 매출(1조4천억원)에서 30% 가까운 성장을 이뤘다. 경영성과를 따져본다면 임원진들이 가혹한 평가를 받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 더 큰 이유가 있었다는 뜻이다.

에버랜드의 봄날 퍼레이드 풍경. 놀이동산 에버랜드의 웃음 뒤에는 주말과 공휴일이면 더 긴장하고 일해야 하는 에버랜드 직원들의 고생이 숨겨져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에버랜드의 봄날 퍼레이드 풍경. 놀이동산 에버랜드의 웃음 뒤에는 주말과 공휴일이면 더 긴장하고 일해야 하는 에버랜드 직원들의 고생이 숨겨져 있다. 사진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삼성그룹 관계자는 “지난해 10월께 A가 박노빈 전 사장을 직접 불러 삼성에버랜드의 경영 전반에 대한 책망과 함께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을 지시한 것으로 안다. A가 당시 ‘명색이 삼성그룹의 지주회사가 이게 뭐냐’며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에 대해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고 한다”고 말했다(A는 삼성 직원들이 이건희 전 회장을 지칭할 때 의전적으로 쓰는 일종의 대명사다. 부인 홍라희씨는 A′로 불린다). 이건희 전 회장이 은퇴 뒤 서울 한남동의 자택과 용인을 오가며 건강관리에 힘쓰던 시기였다. 이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 경영 전반에 대해 살피게 됐고 개혁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다는 식의 설명이다. 그 직후부터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대대적인 ‘경영진단’이 이뤄진 것으로 여러 삼성그룹 관계자들은 말했다. 경영진단은 감사를 뜻하는 삼성식 용어다.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감사는 그룹 경영진단팀에서 직접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부장급 인사 20여 명 사표

이부진 전무가 삼성에버랜드의 경영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말이 처음 나온 것도 이때부터였다. 삼성에버랜드 경영에 참여하고 싶다는 이부진 전무의 뜻에 따라 삼성에버랜드 개혁이 이뤄지게 된 것인지, 삼성에버랜드의 실태에 실망한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부진 전무가 등장하게 된 것인지 전후 관계는 파악할 수 없었다. 이와 무관하게, 결과는 대대적인 조직개편과 인원 감축이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임원들을 대폭 감축하는 과정에서 삼성에버랜드의 유닛(팀)가 30~40% 줄어든 것으로 안다”며 “유닛이 줄어드니 과거 임원과 부장의 경계에 있던 유닛장들도 대폭 줄어드는 결과를 낳았다”고 전했다. 그 결과 20여 명의 부장급 인사들도 사표를 냈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현재 삼성에버랜드를 대상으로 진행되는 경영진단이 5~6월에 끝나면 또 한 번 인원 감축과 교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이런 상황이 삼성에버랜드에만 닥친 일은 아니다. 삼성그룹은 지난 1월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인사를 통해 대대적인 물갈이를 했다. 조직 전체의 연령을 크게 낮췄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번 인사를 통해 계열사 사장 평균 나이가 58.1살, 부사장이 54.3살, 전무가 50.9살 정도로 크게 젊어졌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도 지난 1월21일 서초사옥에 있던 본사 직원 1400여 명 중 200여 명만을 남기고 모두 현장으로 보내는 개혁을 단행한 바 있다. 1200여 명이 경기 수원·기흥, 충남 탕정 등 생산·연구 현장으로 내려간 것이다. 본사에는 법무·홍보·IR(투자홍보)·감사·경영지원팀만 남았다. 본사 조직이 현장 조직과 곧바로 연결되면서 경영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목적이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의 부장급 이상 간부들은 70% 이상 보직이 변경됐다”며 “이런 격렬한 변화를 견뎌내는 사람은 남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스스로 사표를 쓰게 되는 것이 삼성식 구조조정”이라고 표현했다.

삼성생명의 경우도 지난 2월에 본사 직원의 20%를 현장 배치하는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본사 조직을 기능별로 통합·축소하고 본사 인력을 영업현장으로 전진 배치하는 결정이었다. 기존의 9개 실·본부 체제를 7개 실·본부로 축소했다. 삼성그룹 관계자는 “삼성생명에서 현장 배치된 인원의 상당수는 사실상 구조조정 대상자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중 일부는 연고지가 아닌 지방으로 배치를 받기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물론 삼성생명의 공식적인 입장은 “인력 감축을 위해 현장 배치를 시행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는 것이다. 본사의 기능을 줄이고 현장의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직원들을 현장 배치하는 것일 뿐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일부 당사자들은 사실상의 구조조정이라고 본다.

사표를 낼지 고민 중이라는 삼성그룹의 한 부장급 인사는 “현장 배치와 업무 재배치를 통해 인력조정에 나서는 것은 물리적으로도 금전적으로도 회사에는 부담이 없는 방법이기 때문”이라며 “인원을 줄이고 싶으면 희망퇴직을 받아서 직원들도 안심하고 나갈 기회를 줘야 하는데 돈을 아끼기 위해 편법을 쓰는 것”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희망 또는 명예퇴직의 경우 최소 1~2년의 연봉을 위로금 차원에서 퇴직금과 함께 지급해야 한다. 현장 배치나 업무 재배치를 하게 되면 이에 적응하지 못한 직원들은 자진해서 사표를 쓰게 된다. 위로금을 줄 필요가 없다. 자연스러운 퇴직이기 때문에 조직적인 반발도 없다는 설명이다.

“희망퇴직 비용 아끼려 편법 사용”

감사(경영진단) 과정에서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삼성 금융계열사 출신인 최아무개씨도 감사를 경험해본 적이 있다. 최씨는 “감사를 당해보니 5년치의 금융 기록과 10년치의 근무 기록을 가지고 따지는데, 통장에 입금된 돈 중에서 월급을 제외한 20만원 이상 금액의 출처를 밝히지 못하면 일단 부정한 돈으로 간주하더라”며 “출처를 밝힌 경우에도 입금자의 확인증을 받아와야 했다”고 고개를 저었다. 그는 “7~8년 전에 처리한 업무의 적절성을 따지는 상황에서는 정말 참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삼성전문가’로 통하는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의 말이다. “인력 재배치 방식으로 정리하는 인력은 대부분 관리직과 사무직들이다. 그런 식의 조직문화가 과거에는 효과적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관리직과 사무직의 조직 충성도를 떨어트리는 요인이 될 것이다. 조직원들의 충성도를 결정적으로 마모시키는 방식으로,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는 삼성그룹의 조직 역량을 발전시키는 데는 부적절한 방식으로 보인다. 삼성그룹이 3세 경영체제에서도 이병철 선대 회장이나 2세인 이건희 전 회장 때 쓰던 방식 그대로 인적관리를 하는 것은 삼성을 위해서나 경제 전체를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않다.”

이에 대해 삼성커뮤니케이션팀은 “삼성그룹 차원에서의 구조조정은 그런 사실도 없고 계획도 없다”며 “각 계열사 별 현장 배치와 경영진단은 경제위기를 돌파하기 위한 자구책이지 구조조정과는 전혀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