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바라’(Hasbarah). 히브리어로 ‘설명’ 또는 ‘정보’를 뜻한다. ‘프로파간다’(선전·선동)를 일컫는 완곡어법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정부는 자국의 입장을 강변할 때마다, 국제사회에 상황을 ‘설명’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하곤 한다. 전쟁 역사상 처음으로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에 별도 채널을 마련한 이스라엘군이 세계 네티즌을 겨냥해 퍼뜨리고 있는 최신 ‘하스바라’는 이렇다. “멕시코가 샌디에이고를 향해 일삼아 로켓을 쏘아댄다면, 미국 정부는 이를 좌시하고 있겠는가?”
물론 가만있지 않을 게다. 대응의 규모와 양상이야 가늠하기 어렵지만, 미국이 ‘군사적 보복’에 나설 것이란 점만은 틀림없다. 이쯤되면 쉬워진다. 이스라엘도 마찬가지라고. 가자에서 전쟁을 시작한 것은 하마스의 미사일·로켓 공격을 더는 참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프레임’의 함정이다. ‘하스바라’의 논리에 갇히고 말았다.
그렇다. 지난 2005년 9월 이스라엘 정부는 8천여 유대 ‘정착민’을 가자 땅 밖으로 이주시키고 군사도 물렸다. 하지만 ‘점령’은 끝나지 않았다. 가자로 통하는 길목은 이스라엘이 통제했다. 허가 없이 누구도 들고 날 수 없다. 전기, 물, 연료, 식량, 의약품까지 모두 이스라엘이 밸브를 틀어쥐고 있었다. 잠그고 여는 건 이스라엘 맘이다. 가자의 돈줄도 마찬가지다. 총체적 봉쇄, 또 다른 점령이다. 미국-멕시코 상황을 빗댈 수 없다.
“우리로선 조심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일간 는 1월7일 인터넷판에서 군 고위 당국자의 말을 따 이렇게 전했다. 노림수는 두 가지다. 첫째, 가자에 가공할 화력을 퍼부어 ‘모범사례’를 보여주겠다는 전략이다. 이스라엘에 대항하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확인시켜줄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둘째, 전사자가 발생하면 여론이 나빠진다. 전쟁을 이어갈 ‘동력’이 떨어진다. 2006년 레바논 침공 때가 그랬다. 결국 ‘싸움’을 매듭짓지 못한 채 철군해야 했다. 아군 희생을 줄여야 한다. 이스라엘군이 가자에서 필요 이상의 폭력을 남발하는 이유다.
마크 헬러 텔아비브대 국가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도 지난 12월29일치 와 한 인터뷰에서 비슷한 지적을 했다. “과거에는 ‘후과’가 두려워 함부로 이스라엘에 맞서지 못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새 상황이 바뀐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스라엘이 ‘종이호랑이’가 됐다는 게다. 이번 가자 침공은 이런 분위기를 되돌리기 위한 시도다.” 이런 지적이 맞다면, 팔레스타인 주민의 고통이 극에 달할수록 이스라엘의 ‘억지력’은 커 보이게 된다. 휴전협상이 시작됐음에도, 가자의 비극이 쉽게 끝나지 않을 것이란 우려를 낳는 이유다.
가자를 둘러싼 이해득실도 협상의 어려움을 부추긴다. 요르단강 서안을 장악한 파타와 가자를 장악한 하마스로 갈린 팔레스타인 내부 분열은 휴전협상의 ‘대표성’에 대한 논란을 부를 수 있다. 파타와 휴전에 합의한대도, 하마스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하마스와 직접 담판을 짓기도 어렵다. 하마스에 ‘합법성’을 부여해주는 모양새가 되기 때문이다. 개전 초기부터 가자 남단 라파 국경을 닫아 걸고, 원색적으로 하마스를 비난해온 이집트가 중재자로 나선 것도 협상 진척을 비관하는 이유다.
변수는 언제나처럼 미국이다. 이스라엘의 침공 이유 중 하나로 꼽힌 게 버락 오바마 차기 미 행정부가 ‘진정한 평화협상’을 시작할지 모른다는 ‘강박’이었다. 그럴까? 오랜 침묵 끝에 ‘깊은 우려’를 표했지만,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쪽은 개전 2주가 지나도록 적극적인 중재 의사를 밝히지 않고 있다. ‘아직 임기가 시작되지 않았다’는 게 유일한 핑계다.
출발조차 어려운 평화협상, 오바마는?현실은 명확하다. 팔레스타인이 파타와 하마스로 갈려 있는 한, ‘평화협상’은 출발조차 어렵다. 이스라엘로선 ‘누구와 협상하란 말이냐’고 버티면 그만이다. 돌파구는 없을까? 이스라엘을 압박할 카드는 언제나 미국 손에 쥐어져 있었다. 가자 침공은 불법이다. 학살은 전쟁범죄다. 미국산 F16 전투기와 아파치 헬기가 학살에 사용되고 있으니, 군사원조를 중단할 명분이 된다. 오바마 행정부가 여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하스바라’의 틀을 깰 수 있을까? 그게 문제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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