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만난 것은 2008년 12월24일 밤이었다. 그는 제과점이 건너다보이는 사거리 귀퉁이에서 낡은 봉고트럭 위에 좌판을 열고 있었다. 축 늘어진 그의 손 앞에는 고춧가루가 먼지처럼 굳어진 순대볶음과 떡볶이가 식고 있었다. 꼬치에 꿴 어묵들은 팔 자신이 없었던지 아예 국물에 넣지도 않았더랬다. 옷깃을 세우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 손마디가 굵은 그는 시선을 내리깔았다. 잠시 고민했다. 크리스마스 이브와 순대볶음. 12월24일과 떡볶이. 어울리지 않았다.
‘덜 하는’ 삶을 위해 ‘한겨레21’ 기자들이 제안하는 ‘실천 21’
제과점에 들어섰다. 노랗고 빨간 케이크가 가득했다. 케이크를 사는 이들도 가득했다. 제과점에서 한 상자의 행복을 들고 나온 이들은 그 남자의 좌판을 외면하듯 지나 집으로 종종걸음쳤다. 3만5천원짜리 생크림 케이크를 샀다. 제일 비쌌다. 다들 어렵다, 어렵다고 하니 반작용으로 나온 ‘과소비’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다시 그의 좌판을 지나다 좌판 옆에 줄줄이 매달아놓은 무청 시래기를 보았다.
케이크를 먹으며 그 남자를 떠올렸다. 지금쯤 집에 갔을까. 그의 아이들은 크리스마스 이브 만찬으로 무얼 먹고 있을까. 다시 데운 순대볶음과 떡볶이였을까. 좌판 옆에 잘 말라 있던 시래기를 넣은 된장국이었을까. 내가 2만5천원짜리 케이크를 사고, 순대랑 떡볶이를 5천원어치씩만 사도 그는 아이들을 위한 케이크를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후회는 늦었다.
2009년,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들 한다. 이미 줄어들기 시작한 월급봉투와 직장을 잃어버린 주변의 이야기에 절로 어깨가 처진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삶에 대해. 좋은 것 사고, 맛난 것 먹고, 따뜻하게 지내고, 멀리 놀러가는 것이 행복이었다. ‘소비’가 미덕이었다. 이 논리로 보면, 덜 사고 덜 먹고 더 춥게 지내야 하니 앞으로의 삶이 불행한 것이다. 하지만 ‘덜 하는’ 삶 또한 미덕이다. 덜 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지구를 살리고, 우리 공동체를 살리고, 나아가 내 삶을 다시 한번 살찌울 수 있다. 그러니 경제 위기를 ‘핑계’ 또는 ‘기회’ 삼아, 평소 결행하지 못하던 작은 생활의 변화를 실천해보면 어떨까. 비유하자면, ‘우아하게 내려가기.’
기자들이 ‘덜 하는’ 삶을 위한 작은 실천 목록 21가지를 신년호에 공개한다. 나름의 참신한 목록을 갖고 있을 독자들의 정보 공유를 기다리면서.
이태희 기자 hermes@hani.co.kr·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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