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후의 밥과 찬 ‘도시락 공동체’
매주 목요일과 금요일은 ‘도시락 데이’다. 낮 12시에 노조 회의실 문을 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적을 땐 3명, 많을 땐 10명이 넘게 같이 밥을 먹은 적도 있다. 조건은 한 가지. 뻘쭘하기 없기다.
처음 온 사람들은 몇 번 놀란다. 논설위원부터 젊은 기자까지 긴장감 없이 평등하게 먹는 데서 깜짝 놀라고, 반찬이 푸짐해서 다시 놀란다. 우리가 모임을 시작한 건 3년 전. 건강에 관심 많은 사람 몇몇이 도시락 먹기를 제안했다. 식당밥에 질릴 대로 질렸거니와 입 안에 남은 조미료의 불쾌한 맛을 더 견디기 힘들어서였다. 처음 노조 회의실을 ‘점거’하고는 냄새 때문에 눈치가 좀 보이기도 했다. 차츰 모임이 커지면서 우리는 대담해져갔다. 외국에 특파원으로 나가는 선배에게 용량이 좀더 큰 냉장고를 기증받았고, 반찬을 그득그득 넣어두었다. 이로써 모임의 하드웨어가 완성됐다.
사람들은 ‘할 수 있는 만큼’ 한다. 반찬이 없으면 밥만 갖고 오고, 밥이 없으면 반찬만 갖고 온다. 시골 어머니댁 김치, 수녀원표 된장, 생협의 유기농 야채, 김, 부각, 멸치조림 등 친환경 음식을 냉장고에 넣어 두고두고 먹는다. 가끔은 추억의 분홍색 소시지가 달걀옷을 입고 식탁에 오른다. 가공식품이나 육류는 핀잔을 받지만 인기도 제일 많다.
‘밥상 공동체’는 즐거워서 한다. 건강 챙기고, 통장 챙기고, 신나고, 여유롭다. 식당에 오가는 시간이 줄어들었고, 반찬과 참석자들이 매번 달라 이야깃거리가 끊이지 않는다. 젊은이들은 연륜 있는 선배들에게 삶의 지혜부터 회사일의 노하우까지를 전수받는다. 선배들은 어린 친구들의 연애·가족 상담을 하는 재미가 있다. 무엇보다 돈이 적게 든다. 친환경 유기농 밥상이지만 식당 밥값보다 훨씬 싸다. 자기가 잘 안 먹는 반찬을 갖고 오면 다른 이가 즐거이 먹어준다. 반찬을 썩혀 버리는 일도 줄었다.
요즘은 다른 도시락 모임이 더 생겨 반갑다. 하지만 노조 회의실을 우리만 쓰고 있자니 미안한 감이 든다. 합병을 제안해볼까, 고민하는 요즘이다.
이유진 기자 한겨레 노드콘텐츠팀 frog@hani.co.kr · 일러스트레이션 이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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