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 법안이 이번 임시국회를 모두 통과했을 때, 우리 앞에는 과연 어떤 세계가 펼쳐질까. 시계를 1년 뒤로 돌려 ‘MB 법안’에 둘러싸인 두 시민의 일상을 쫓아가봤다. 그는 당신일 수도 있고, 당신의 가족이나 이웃일 수도 있다. 편집자
#1. 그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며칠 전 경찰로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재미 삼아 블로그에 올린 플래시게임이 문제였다.
게임 제목은 ‘이명박을 맞혀라’였다. 간단한 게임이었다. 주인공은 깊은 흙구덩이에 빠진 일가족의 가장이었다. 주인공에게 주어진 임무는 삽질하는 ‘2MB’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흙구덩이를 향해 삽질하는 2MB가 허리를 굽혔다 펴는 순간을 포착해 신발을 투척하는 것이 포인트였다. 신발이 2MB의 이마에 정통으로 맞으면 ‘빡’ 하며 경쾌한 타격음이 울린다. 일가족은 그만큼 시간을 번다. 흙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속도가 삽질보다 빠르면 탈출 성공이다. 레벨이 한 단계씩 높아질수록 2MB의 삽질 속도는 빨라진다. 정해진 시간 내에 흙구덩이에서 탈출하지 못하면 구덩이는 그대로 일가족의 무덤이 된다. 미국 대통령 부시에게 신발을 벗어던진 이라크 기자 문타다르 알자이디에게 영감을 얻은 게임이었다.
그가 집 근처 ○○경찰서에 갔을 때 담당 형사는 낄낄대며 ‘이명박을 맞혀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꽤 익숙한 듯 그의 컴퓨터에서는 ‘빡’ 소리가 이어졌다. 엉거주춤하게 서 있는 그를 발견한 형사는 책상 위에 올린 다리를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이 게임 이거, 당신이 만든 거 맞지?” 그는 직감적으로 뭔가 일이 꼬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챘다. 잔뜩 위축된 목소리로 그가 대답했다.
“네, 그냥 한번 만들어본 건데, 뭐 잘못됐나요?”
“이거 큰일 낼 사람이네. 몰라서 묻는 건 아니지?”
“몰라서 묻는 건데요….”
“사이버모욕죄 몰라? 대통령이 당신 친구야?”
사이버모욕죄, 들어본 것 같았다. 그래, 2008년 말 TV에서 봤다. 그런데 법안 내용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았다. 당시 국회에서는 여야 의원들의 멱살잡이가 흔했고, 원목으로 만든 출입문이 자주 뜯겼으며, 누군가는 헌정 사상 최초로 다른 정당 의원에게 이단옆차기를 시도했다. 신문 1면에 주로 실린 것은 국회의원의 이단옆차기 사진이었다. 정작 그들이 무얼 가지고 싸웠는지, 내용을 자세히 알 길은 없었다. 뉴스의 초점은 사이버모욕죄의 내용이 아니라 활극 그 자체였다.
재미 삼아 블로그에 플래시 게임 올렸는데“전 누굴 모욕한 적은 없습니다.”
“참나, 내가 읽어줄게. ‘사이버모욕죄, 컴퓨터 등 정보통신 체제를 이용하여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당신은 지금 대통령을 모욕한 거 아냐? 대통령!”
“그게 무슨 모욕입니까. 부시 대통령에게 신발 던지는 게임도 있잖습니까. 우리나라에서만 문제가 됩니까?”
“이 양반아, 다른 나라 이야기는 하지 마. 미국이 좋으면 거기 가서 살든가. 대통령 이마에 신발을 던지는 게 모욕이 아니면, 자네는 그럼 아버지에게도 신발 던지고 사나. 그리고 여기, 대통령이 삽질을 하잖아. 누가 봐도 이건 모욕이지.”
“아니 ‘누가 봐도’라뇨. 만약 ‘모욕’이 문제가 된다고 해도 당사자인 이명박 대통령이 문제 삼을 일 아닙니까. 왜 경찰이 맘대로 개입합니까.”
그는 어이가 없었다. ‘모욕감’이란 사람이 느끼는 주관적 감정이다. 내가 느끼는 모욕감을 다른 사람이 대신 느껴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런데 경찰은 ‘대통령이 모욕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마음대로 판단해서 처벌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바뀐 정보통신망법에 따라 이른바 ‘사이버모욕죄’에서 친고죄 조항이 삭제됐다는 사실을 일러줬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 발의로 2008년 말 국회를 통과한 문제의 ‘망법’이었다. 경찰은 말을 이어갔다.
“당신은 죄질도 나빠. 블로그에 이 게임을 올려놓았을 뿐만 아니라 메신저를 이용해서 모두 7명에게 직접 전파했거든.”
“뭐라고요?”
“가만있어봐. 한 달 전 당신은 대통령 소식을 알리는 기사에 ‘머릿속에 삽 한 자루밖에 안 든 쥐박아’, 이런 댓글을 남겼어. 이거 당신 맞잖아.”
경찰이 보여준 것은 최근 6개월간 그가 인터넷을 이용한 모든 기록이었다. 인터넷에 접속한 시간과 방문한 사이트, 메신저를 이용해 파일을 주고받은 내역, 그리고 댓글을 포함한 모든 글의 내용까지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여자친구에게 보낸 사적인 전자우편도 감시 대상이었다.
바뀐 통신비밀보호법에 따르면 통신사업자는 통신사실 확인자료를 의무적으로 보관하도록 돼 있다. 통신사실 확인자료에는 전자우편·메신저 이용 내역과 인터넷 사이트 방문 기록이 포함된다. 교통카드나 신용카드를 이용해 교통수단을 이용한 내역도 낱낱이 드러나게 돼 있다. 만약 통신사업자가 이같은 기록을 남기지 않거나 제공에 협조하지 않으면 처벌한다는 것이 2008년 말 이한성 한나라당 의원의 발의로 국회를 통과한 통신비밀보호법 개정안의 특징이다.
물론 수사기관은 과거에도 메신저와 전자우편 내용을 거의 제한 없이 열람해왔다. 그런데 2008년 말 법이 바뀌면서 휴대전화와 인터넷 감청을 아예 법제화했다. 감청의 주체도 이동통신 사업자와 인터넷 사업자로 바뀌었다. 명백한 ‘감청의 민영화’다.
그는 ‘초범이라 이번만 벌금형으로 봐주겠다’는 경찰의 선처에 머리를 숙이고 경찰서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버스요금을 지불하려고 교통카드를 대는 순간 그는 문득 자신을 지켜보는 ‘천 개의 눈’을 느꼈다.
#2. 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며칠 전 법원으부터 전화를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친구들과 함께 기획했던 대학로 ‘플래시몹’ 행사가 문제였다.
행사는 이명박 대통령의 일방주의적 국정운영을 풍자하는 퍼포먼스였다. 애초 계획은 머리에 해바라기를 꽂은 미친 소 가면을 쓰고 숨바꼭질하는 것이었다. 행사 장소와 정확한 시간은 당일 인터넷 메신저와 휴대전화 문자로 정하기로 했다.
다들 정성껏 제작한 가면을 쓰고 약속 장소인 서울 대학로에 나타났을 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엄청난 수의 경찰이었다. 참가 인원은 목표했던 1천 명을 조금 넘긴 수준이었지만, 불청객이었던 경찰이 그보다 몇 배 더 보였다.
경찰은 참가자들로부터 일일이 가면을 압수했다. 2008년 말 개정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에 따라 모든 ‘복면’ 도구를 금지한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었다. 신지호 한나라당 의원 등이 발의한 이른바 ‘복면금지법’이 문제였다. 그가 나섰다.
“부당한 권력 행사에 항의하는 뜻으로 미친 소 가면을 쓰는 건데 왜 막습니까.”
경찰은 대답이 없었다. 얼굴을 조금이라도 가리는 것은 ‘복면’에 해당한다는 설명밖에 없었다. 가면은 물론 마스크도 허용되지 않았다. 눈을 가리는 모자와 입술을 덮는 목폴라티도 ‘신원확인을 어렵게 할 목적’이라고 판단되면 여지없이 착용이 금지됐다. 그래도 행사는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MB OUT’이 적힌 티셔츠를 입고 프리허그를 했고, 인간 기차를 만들며 광화문까지 평화롭게 행진했다. 시민들의 반응도 좋았다. 재밌다며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념촬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오후 4시에 시작한 행사는 저녁 8시가 조금 넘어 끝났다. 그리고 그는 두 달 뒤 법원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불법집회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종로 상인들로부터 집단소송이 제기됐다는 내용이었다.
집회 참여하려면 손해배상 감수 용기 필요손범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불법집단행위 집단소송법, 일명 ‘떼법 방지법’ 때문에 가능한 소송이었다. 불법집단행위로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이 한 명 이상의 대표를 정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만든 법이었다. 소송 대상은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그 행위를 한 자 또는 그 행위를 하게 하거나 도운 자”로 규정했다. 사실상 집회나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을 상대로 손해배상 요구가 가능해진 것이다. 소송을 제기한 종로 상인 100여 명은 그날 미친 소 퍼포먼스가 장사를 방해했다고 주장했다.
“하필이면 손님들이 제일 많이 찾아올 저녁 시간에 시위대가 거리를 누비는 바람에 피해가 큽니다. 각 업소마다 최소 100만원은 손해봤을 겁니다.”
행사가 벌어진 날, 평소보다 장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상인들의 주장이었다. 그들이 요구한 금액은 각 100만원씩 모두 1억원이었다. 그는 행사를 함께 기획한 친구들과 함께 변호사를 선임할 수밖에 없었다. 행사에 참여했던 대다수는 소송에 휘말리기 싫다며 빠져나갔다. 종로 상인들과의 소송에서 그는 졌다. 법원은 그날 행사를 집회로 규정했다. 행사에서 ‘MB OUT’이라 적힌 피켓과 정치적 구호가 나왔다는 이유였다. 하지만 그는 그날 행사를 집회나 시위가 아닌 ‘플래시몹’으로 기획했다. 당연히 집회신고를 내지 않아도 되는 줄로 알았다. 법원은 그에게 종로 상인 1인당 30만원씩 모두 3천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집단소송법에 따르면 서울 광화문과 종로, 신촌 등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거의 모든 도심에서는 집회나 행사가 불가능했다. 집회가 평화적으로 끝났다 해도 안심할 수 없다. ‘피해 상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언제 어디서 출현할지 모른다. 집회에 참여한다는 것은 곧 막대한 손해배상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통했다. 2009년 겨울 광화문에는 맹렬한 추위가 찾아왔다. 대형 옥외 전광판에는 이명박 대통령이 호탕하게 웃는 모습이 흘러나왔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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