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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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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효의 대북정책 정밀폭격

2005년 경제 걱정하며 ‘전쟁과 무력 사용’ 언급…
통일부 목소리는 아예 없고 외교부는 ‘미국 라인’이 장악해
등록 2008-12-05 18:18 수정 2020-05-03 04:25

개성관광이 중단됐다. 남북을 잇는 철도는 끊겼다. 개성공단 상주 인력도 크게 줄었다.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기 위한 북한의 카드가 속속 현실화되고 있다. 정부의 대응은 무대책에 가깝다. 공식적으로는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고 포장하고 있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누가 이기나 해보자’라는 경직된 태도가 엿보인다. 이런 대북 강경 노선을 주도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

11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자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대통령 왼쪽), 안광찬 국방부정책실장(대통령 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이날 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배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11월5일 청와대에서 열린 외교안보자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주미대사를 지낸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대통령 왼쪽), 안광찬 국방부정책실장(대통령 오른쪽) 등 참석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은 이날 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배석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우리 쪽으로 끌려올 조짐 있으니…”

최근 청와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을 만나고 왔다는 한 종교계 원로의 말이다.

“(그 핵심 인물에게)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특사 파견의 필요성을 아무리 강조해도 받아들이지를 않았다. 정부에도 다 생각이 있고, (북쪽이) 우리 쪽으로 끌려올 조짐도 있으니 우리에게 나설 필요가 없다는 식이었다. 기다리라는 대답만 되풀이하기에 마냥 기다리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더니 ‘김대중 정부 때도 1년6개월 걸렸고, 참여정부에서도 그만큼 걸렸기 때문에 결코 늦지 않았다’고 되받았다. 그는 확신에 가득 찬 인물이었다.”

그 종교 원로가 만난 핵심 인물은 김태효(41)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이었다. 그 원로는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사업을 협의하기 위해 청와대를 찾았던 길이었다.

“꼬인 남북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풀어야 한다는 우려에 대해서도 김 비서관은 오히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다는 식으로 답했다. (태도가) 웬만해야 설득도 하고 그럴 텐데…. 정부에 어떤 복안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걱정스러웠다. 생각해 보니, 대북 문제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이따금 내놓는 발언을 복기해 보면 당시 김 비서관이 했던 말과 너무도 흡사했다.

개성공단 사태 이후 김태효 비서관에게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에게 대북 강경 노선을 조언하는 핵심으로 김 비서관이 꼽히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전략비서관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아래에 있는 4명의 비서관 가운데 가장 선임이다. 나머지 외교와 국방, 통일비서관은 해당 부처의 영향력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처지다. 소속 부처가 없는 대외전략비서관은 대북정책은 물론 외교와 안보 분야까지 폭넓게 아우른다.

김 비서관은 올해 갓 마흔을 넘겼다. 서열을 따진다면 1급 행정관에 불과하다. 차관급인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아래다. 공직 경험도 거의 전무하다. 그럼에도 청와대 안팎에서는 김 비서관의 입김이 김 수석보다 세다는 것이 정설로 통한다. 그가 외교안보 라인의 핵심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여기에서도 현 정부 시스템의 문제점이 똑같이 반복되고 있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 한나라당 관계자의 말이다.

“대북정책을 컨트롤하는 쪽은 (통일부가 아니라) 청와대다. 대통령에게 직보할 수 있는 사람이 김태효 비서관인데, 여기서 나오는 대북정책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 거기서 문제가 꼬이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이 먼저 바뀌어야 상대하겠다는 자세로는 남북관계를 풀기 어려운 것 아닌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은 형식과 절차를 중시하는 모범적 관료 스타일이다. 김태효 비서관은 저돌적이고 공격적인 참모 스타일이다. 이 대통령은 후자의 스타일을 선호한다.

결정적인 것은 이 대통령과 김 비서관의 인연이다.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출신인 김 비서관과 이 대통령의 인연은 지난 2004년 시작된다. 김 비서관은 이때부터 외교안보 분야 자문을 맡았다. 2007년 대선 직전에는 캠프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김성환 수석이 대통령을 만나려면 대통령비서실장을 거쳐야 한다. 김 비서관은 수시로 대통령과 마주할 수 있는 관계다. 자연스럽게 외교안보 현안에 대한 김 비서관의 목소리가 높아지게 됐다는 분석이다. 인사에서 사적 인연을 유난히 강조하는 이 대통령의 성향도 김 비서관의 영향력이 높아지게 된 배경이다.

김태효 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보니, 대북정책을 조율하는 자리에 이 대통령과 김 비서관이 함께하는 일도 잦다고 한다. 지난 10월18일 이 대통령이 직접 주재한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서도 김 비서관이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는 정부의 대북정책과 외교안보 정책을 논의하는 최고위급 회의체다. 대개 외교·통일·국방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국무총리실장, 외교안보수석 등 6명의 장·차관급 인사가 참석한다. 여기에 1급 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김태효 비서관이 배석했다. 김 비서관은 11월5일 이 대통령이 한승주 전 외무부 장관 등 외교안보자문단과 간담회를 했을 때도 역시 유일하게 배석한 비서관이었다.

1급 비서관으로는 유일하게 조정회의 참여

문제는 김태효 비서관의 경직된 대북관이다. 외교안보에 대한 김 비서관의 노선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강경 보수’다. 그는 2005년 5월20일 북한에 대한 ‘정밀폭격’(surgical strike)도 가능하다는 극단적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다. 주최 북핵 관련 전문가 좌담에서 나온 당시 김 비서관의 발언을 보자.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여당 일각에서 대북 컨트롤타워로서의 통일부 기능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김하중 통일부 장관. 여당 일각에서 대북 컨트롤타워로서의 통일부 기능을 부활시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한겨레 강재훈 기자

“전쟁과 무력 사용만은 안 된다는 생각은 신화고, 강박관념이다. 그것이 오히려 북핵 문제를 흐리게 하고 한반도 문제의 해결을 막을 수 있다. 정밀폭격에 따른 주가 폭락이 위험한지, 북한의 핵 보유로 한국 경제의 도산이 더 위험한지 생각해야 한다. 하루 전쟁은 무섭고 20년, 30년 국가 경제를 거덜내는 건 무섭지 않다는 것인가. 정밀폭격은 카드로만 존재해서도 안 되고, 북한에 대해 어떤 가능성을 열어둬서 평화도 지키고 핵도 막는다는 자세가 필요하다.”

이날 좌담회에서 김 비서관은 “북한의 고농축우라늄은 분명 존재하는 것이고, 플루토늄 핵시설도 의심되는 곳들이 있어 정밀폭격 한 번으로는 없애지 못한다”며 “북한에 심리적 충격을 줘서 제대로 판단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태효 비서관은 기본적으로 북핵이 미국이나 일본이 아닌 한국을 향한 것이라고 믿었다. 그는 대북정책을 언급할 때 항상 ‘북핵의 완전하고 분명한 폐기’가 이뤄지기 전까지 남북 정상회담과 평화협정은 물론 심지어 인도적 지원까지도 허망하다고 주장해 왔다. 그 배경에는 북핵은 대남용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김 비서관은 대미 관계에 대해서는 참여정부의 대미 자주외교를 꾸준히 비판하며 철저한 한-미 동맹 강화를 주장했다. 그가 철저한 ‘친미’ 노선을 주장했던 이유는 “한국의 뜻에 맞게 필요한 시점에 강력한 힘을 행사할 수 있는 나라는 결국 미국”이라는 신념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

학계에서는 젊은 교수의 허황된 주장쯤으로 치부됐던 이런 외교안보 철학이, 이 대통령을 만나 현실화되고 있다는 사실이 우려스럽다. 그 결과물이 현 정부 대북정책의 근간을 이루는 ‘비핵개방 3000’ 정책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개방하면 국제사회와 협력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 3천달러를 만들어주겠다는 내용이다.

청와대 내에 김태효 비서관이 있다면, 청와대 외부에서는 유명환 외교부 장관을 필두로 한 외교부 라인이 두드라진다. 앞서 소개한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에 참여하는 6명의 장·차관급 인사 가운데 유명환·김하중 장관과 조중표 총리실장,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등 4명이 외교부 출신이다.

외교 라인 중에서도 이른바 북미 라인이 일방적으로 독주하는 모습이다. 현 정부 외교 라인의 요직은 대부분 북미국장 출신이다. 유명환 장관과 위성락 장관특별보좌관도 북미국장을 거쳤다. 권종락 외교부 1차관, 김성환 외교안보수석 역시 북미국장 출신이다. 정부 외교 라인의 핵심 인사 거의 대부분이 미국과 가까운 ‘미국통’으로 구성돼 있다고 볼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비판 제기

이명박 대통령이 구축해놓은 극단적인 외교 라인 인사는 개성공단 사태가 터진 뒤 부작용을 드러냈다. 통일부의 목소리가 완전 실종된 것이다. 과거 정부에서는 통일부 출신과 외교부 출신이 치열한 토론을 바탕으로 하는 견제와 균형을 이루기 위해 다퉜다. 지금 정부에서는 ‘북한의 핵 폐기를 전제로 한 대북정책과 한-미 동맹 강화’라는 청와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반복되고 있다. 외교부 북미라인의 생각도 복사판이기 때문이다. 개성공단으로 가는 길이 막히게 됐는데도 통일부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런 경직된 태도에 대한 우려는 여당인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나온다. 대북정책 기조를 재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회 통일외교통상위 소속 권영세, 김충환, 남경필, 정의화, 진영, 홍정욱 의원 등이 여기에 속한다. 이 가운데 3선인 권영세 의원은 통일부 기능의 부활을 강조했다.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 지나치게 기능적으로 접근했다. 통일부 기능을 인수분해하듯 나누다 보니, 다른 부처에서 관련 기능을 조금씩 하고 있다는 식의 접근이 이뤄졌다. 그러다 보니 통일부는 필요 없다는 식이었는데, 대북정책의 컨트롤타워로서의 통일부는 분명히 필요하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경색된 탓에 통일부가 할 일이 없어졌고, 너무 위축돼 있다.”

권 의원은 아울러 “대북정책이 지난 10년의 방향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도 옳지 않지만,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것도 옳지 않다”며 “이번 기회에 분단의 고통을 실질적으로 줄일 수 있는 대북정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홍정욱 의원 역시 통일외교 정책 라인에 대한 전면적 쇄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구체적으로 내년 초에는 모든 정파와 계파를 뛰어넘는 탕평 인사를 해야하고, 이때 통일부 장관 등의 교체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통일부의 기능이 청와대 외교안보정책조정회의 등으로 분산되면서 정작 통일부는 고작 이벤트만 담당하는 부서로 전락했다. 그렇다면 정책 수립 역량이 뛰어난 전문가를 발탁하든지, 아니면 정무적 입지가 강한 인사라도 기용했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통일부는 무능 부서에 불과하다.”

한나라당 일부에서도 이런 비판이 제기된다고 해서, 청와대가 ‘비핵개방 3000’으로 대표되는 대북정책 기조를 쉽게 바꿀 것 같지는 않다. 김태효 대외전략비서관 등 대통령을 둘러싸고 있는 외교안보 라인의 성향을 볼 때 청와대가 갑작스럽게 대북 유화 노선으로 돌아서기는 어려워 보인다. ‘비핵개방 3000’을 철회할 경우 이를 대체할 만한 프로그램도 없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주류는 여전히 현 상황을 “정상적 남북관계로 가는 과정”으로 인식하고 있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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