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size="3"><font color="#1153A4"> #1.</font></font> 10월2일 정부는 과세 대상 기준을 현행 6억원 이상에서 9억원 이상으로 올리는 내용의 종합부동산세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안은 과표 구간과 세율도 조정해, 공시가격 15억원 이하의 주택엔 재산세 최고세율인 0.5%의 세율을 적용하고, 그보다 비싼 주택의 최고세율은 현행 3%에서 1%로 낮추는 내용이었다. 허태열 한나라당 최고위원 등이 “(앞으로 나올) 헌법재판소 결정을 보고 개정안을 내면 될 텐데 왜 정부가 먼저 나서서 비난을 자초하느냐”고 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헌법재판소는 11월13일 현행 종부세의 세대별 합산 과세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 한 달여 동안 한나라당은 정부가 제출한 종부세 개정안을 놓고 백가쟁명을 벌였지만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고, ‘부자비호당’이란 낙인은 더욱 짙어졌다.
<font size="3"><font color="#1153A4">#2.</font></font> 10월30일 대통령 직속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는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을 발표했다. 한나라당에선 즉각 “사전에 아무런 당정협의도 거치지 않았다”며 반발이 터져나왔다. 위원회는 발표 하루 전날에야 임태희 정책위의장을 통해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 이런 내용을 통보했다. “규제 완화 대책은 법률 개정 사항이 아니라 대통령령만 만들면 되므로 국회에 설명할 필요가 없지만 여당이니 미리 알려준다는 게 위원회의 설명이었다”고 한 최고위원은 전했다. 김성조 여의도연구소장을 비롯해 지역구가 지방인 의원들은 야당과 함께 강력히 반발했지만 후속 대책 마련은 아직 지지부진하다.
<font size="3"><font color="#1153A4">#3.</font></font> 11월 초 정부와 한나라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을 조속히 처리하려면 민주당 등 야당 설득과 대국민 홍보 작업이 필요하다며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태스크포스 구성은 외교통상부가 먼저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관계자는 “한-미 FTA 비준동의에 몸이 달아 있는 한-미 재계회의가 ‘외교부가 한국 국회의 비준동의안 처리를 도와주면 우리도 미국 의회를 설득하겠다. 한국이 먼저 비준동의를 하지 않으면 오바마 정부에 당할 수 있다’고 외교부를 설득했다. 이 때문에 외교부가 나서서 당정 태스크포스를 만들자고 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입법 기능은 행정부가 아니라 민의를 수렴하는 국회의 기능인데, 적어도 비준동의안 처리 과정에선 여당과 국회가 종속변수가 돼버렸다”고 덧붙였다.
국민-정부 소통의 매개 역할 못해“한나라당이 안 보인다.”
요즘 당·정·청 관계를 두고 한나라당 안에선 이런 지적이 끝없이 쏟아져나온다. 대표적인 게 이명박 정부가 최대 현안으로 내세우고 있는 종부세 폐지, 수도권 규제 완화, 한-미 FTA 비준동의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이다. 이명박계 한 의원은 “당이 정말 무기력하다. 종부세, 수도권 규제 완화, 한-미 FTA는 모두 찬성 여론보다 반대 여론이 더 많은 이슈인데, 그럼 당이 나서서 국민이든 정부든 설득을 하고 문제를 풀어가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민심의 용광로’인 정당의 특성을 살려 정부 정책을 보완하고, 국민과 관료의 소통을 매개해야 할 여당의 역할을 현재 한나라당이 제대로 해내지 못한다는 얘기다.
당 사무총장을 지낸 바 있는 권영세 의원도 지난 11월12일 CBS 라디오 에서 “당이 이리저리 휘둘리고 무기력하다는 얘기를 하는데, 받아 마땅한 비판이라 생각된다. 현재 한나라당은 숫자로는 170명이 넘지만 실질적으로 절반은 거의 움직이지 않는 반신불수 정당, 눈치 보고 활력이 없는 정당”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청와대나 정부 개편 얘기를 하기 전에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그간의 노선이나 운영 행태를 전반적이고 근본적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역시 한나라당 무기력증의 근거로 수도권 규제 완화 문제를 꺼내며 “당 지도부가 최소한 사전 설명을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나라당 안에선 박희태 대표와 홍준표 원내대표, 임태희 정책위의장 등 당 지도부에 책임을 묻는 이가 적지 않다. 한 중진 의원은 “지도부의 무능과 사심이 당을 정부에 질질 끌려가도록 만들었다”고 직설적으로 표현했다. “권력 핵심이 지목한 대로 당 지도부가 구성돼 청와대와 주파수를 맞추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아무리 정책의총을 활성화하고, 당내 혹은 당·정·청 간 소통을 원활히 하자고 건의를 해도 인사권자의 기호에 맞게만 당이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권력 핵심’과 ‘인사권자’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당내 인식이 이렇다 보니 당 지도부의 ‘영’이 서지 않는다. 서울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박 대표나 홍 원내대표한테 무슨 권위가 있느냐. 누가 그들을 당 지도부로 제대로 인정하느냐”고 반문했다. 특히 원외라는 한계를 안고 있는 박 대표보다 원내인 홍 원내대표를 향한 불만은 훨씬 노골적이다.
사실 정기국회가 열리기 전까지만 해도 “정치는 제가 알아서 하겠다. 정책은 임태희 의장이 하면 된다. 대통령은 통치만 해달라”는 홍준표 원내대표의 호언은 허언이 아니었다. 한나라당은 한-미 쇠고기 수입협상 관련 고시의 관보 게재를 연기하는 등 민심을 따라가지 못하는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었고, 유가환급금 지급이 핵심인 고유가 관련 추경예산안도 당정협의를 통해 주도적으로 마련했다. 류우익 전 청와대 대통령실장 등 1기 수석 교체를 이끌어낸 것도 사실상 홍 원내대표였다. ‘홍 반장’이란 별명은 곧 ‘일인지하 만인지상’을 뜻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홍 반장’도 한계 부닥쳐변곡점은 추경안 처리였다. 민주당과 기싸움을 벌이던 한나라당은 추석 직전 기어이 추경안 처리를 밀어붙였지만, 예결특위 위원 사·보임 절차상 흠결과 날치기 논란에 휩싸이면서 주저앉고 말았다. 개원과 원 구성 협상, 쇠고기 국정조사특위 증인 채택 등의 협상에서 홍 원내대표가 민주당에 너무 많은 것을 양보했다고 여긴 이명박계 의원들은 이를 빌미로 일제히 그의 퇴진을 요구하고 나섰다. 다행히 추경안 재처리가 원만하게 이뤄지면서 홍 원내대표는 ‘재신임’을 얻었으나, “너는 아무것도 모르니 가만히 있어라. 내가 다 알아서 한다”는 홍 원내대표의 독선을 향해 한번 폭발한 당내 불만은 여전히 그의 리더십을 흔들고 있다.
청와대가 구축한 당의 ‘친정 체제’는 애초부터 한계를 안고 있었다는 풀이도 나온다. 당이 그나마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건 촛불 정국 때 지지율이 10%대까지 주저앉았던 이 대통령이 옴짝달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만, 그가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한 이상 청와대와 정부의 독주에 제동을 거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청와대·정부의 ‘정무 기능 부재’와 당·정·청 간 ‘소통 부재’라는 또 다른 변수들이 더해지면서 한나라당이 더욱 무력화될 수밖에 없다는 자조가 터져나온다.
당 안에선 이명박 대통령과 박희태 대표가 정례 회동을 열기 시작하면서 당과 청와대의 소통이 원활해질 것이라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박 대표 스스로도 회동에서 각급 당정협의를 비롯한 밀접한 소통을 여러 차례 강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금강산 피격 사건 뒤 대북특사 파견 건의,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어청수 경찰청장 경질 요구 등 당의 의견은 번번이 뭉개졌다. 한-미 FTA 비준동의안 처리 시기는 당정협의 한 번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기국회 때 처리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당이 ‘뒤통수’를 맞는 일도 허다했다.
수도권 규제 완화 방침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 최고위원은 “발표 전날에야 최고위에 내용이 ‘통보’됐기 때문에 더는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고 답답해했다. 그는 “당에 내용을 알리면 경제정책을 정치 논리로 판단하려 하고, 보안 유지도 안 된다는 게 청와대와 정부의 판단인 것 같다. 하지만 바둑에서 수순 하나 차이로 대마가 죽고 살듯 위기 상황일수록 정교한 판단이 필요한데, 이 정부엔 그런 정무 기능이 없다”고 지적했다.
한 핵심 당직자도 “규제 완화는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과제고, 불필요한 규제를 풀어 국가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에도 공감한다. 하지만 전세계가 경제위기를 겪는 마당에 지금 수도권 규제를 푼다고 거기 공장을 지을 수 있는 기업이 도대체 얼마나 되느냐”며 “실효성도 없고 비판만 살 정책을 왜 서두르는지 청와대의 정무적 판단이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런 비판의 화살은 한승수 국무총리와 맹형규 청와대 정무수석, 정정길 대통령실장에게 꽂히기도 한다. 청와대에서 일한 적이 있는 영남의 한 중진 의원은 “종부세 개정안처럼 중요한 정책을 국회에 제출할 땐 총리가 컨트롤타워가 돼야 하는데 총리는 아무것도 안 한다. 당·정·청이 엇박자가 나면 결국 대통령이 상처를 받는데, 이를 늘 염두에 둬야 하는 청와대 정무수석·비서실장도 뭐하는 사람들인지 알 수가 없다”고 이들을 싸잡아 비판했다. 이명박계 한 핵심 의원은 특히 “정무수석이란 사람이 공천 떨어진 게 창피해서인지, (2006년 지방선거 때 당내 서울시장 후보 경선에서 경쟁했던) 홍 원내대표와 원수지간이어서 그런지, 낮엔 한 번도 국회에 오지 않는다. 정부가 추진하는 주요한 정책을 당과 조율해야 되는 사람이 정무수석 아니냐”고 노골적으로 맹 수석을 비난했다.
갈수록 깊어지는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갈등과 불신도 한나라당을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당’으로 만드는 원인으로 꼽힌다. 수도권 규제 완화 발표에 박근혜 전 대표가 “지방 경제를 살리기 위한 투자환경 개선 등 현실적인 대안을 먼저 내놓고 수도권 규제 완화를 해야 하는데, 대안 없이 전면적으로 규제 완화를 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하면서, 정책의 타당성 논의는 순식간에 양쪽의 싸움으로 번졌다. 수도권과 지방의 이해가 충돌하는 종부세 완화를 놓고도 마찬가지였다. 이명박계와 박근혜계의 주류가 각각 수도권과 지방(영남 지역)으로 나뉜 탓이다. 하지만 “박근혜계는 팔짱 끼고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우리가 숨만 쉬어도 이명박계에선 계파 활동으로 몰아붙인다”며 사사건건 부딪히는 양쪽의 완충지대가 없어 당의 동력은 더욱 떨어진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까. 남경필 의원은 “정부 정책의 방향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당이 뒷받침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며 “‘위기’라는 세계 경제의 틀 속에서 정부가 추진하는 경제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수정하지 않으면 무기력한 당의 모습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금은 종부세처럼 이명박 정부의 ‘핵심 지지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서민복지를 확대하고 중산층을 끌어안을 정책을 내놔야 한다는 인식이 있어야 당과 소통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울의 한 초선 의원도 “나도 종부세 대상자이지만, 소득이 없는 고령층 등 극히 예외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종부세를 완화하거나 폐지하는 건 무책임하고 불공평하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아무리 이런 얘길 해도 듣지 않는다”고 답답해했다.
“천적 메기 있어야 건강한 긴장감”내년 4월 재·보궐 선거를 치른 뒤 조기 전당대회를 열거나, 개각에 맞춰 당 지도부를 교체해 당 분위기를 쇄신해야 한다는 주장도 슬슬 고개를 든다. 지금 같은 분위기라면 재·보궐 선거는 결코 한나라당에 유리하지 않을 것이므로, 선거 결과에 책임을 지고 2010년으로 예정된 전당대회를 앞당겨 당 대표를 바꾸자는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정부가 개각을 하면 입각하는 의원들이 생길 가능성이 높고, 당도 함께 새롭게 시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원내대표단을 교체할 수 있다는 주장도 흘러나온다. 수도권의 한 의원은 “프랑스와 영국의 백년전쟁은 잔다르크라는 권위를 가진 영웅이 나타나 끝을 냈다. 지금은 그런 권위를 만들어내고 뭉쳐서 일을 해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면 당 지도부를 누구로 바꾸더라도 당의 무기력증이 해소되긴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이도 적지 않다. “청와대가 당·청 소통 부재라는 위기에 책임을 느끼고 청와대와 정부의 엉뚱한 정책에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개각이나 당 지도부 교체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한 핵심 당직자는 “미꾸라지를 잡아서 그냥 어항에 넣어두면 죽는다. 하지만 천적인 메기를 함께 넣어두면 건강하게 살아 있다. 172석의 공룡인 한나라당도 마찬가지다. 거수기로 전락해 공룡처럼 도태되지 않으려면 사람이든 시스템이든 당과 청와대에 건강한 긴장감을 심어줄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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