펀드에서 반토막 난 투자자들은 또 분노한다. 수수료 때문이다. 펀드를 운용하는 운용사와 펀드를 팔았던 증권사·은행은 투자 손실은 아랑곳하지 않고 꼬박꼬박 수수료를 떼어간다. 펀드를 장기로 갖고 있으면 오히려 수수료를 더 내야 한다. 대형 은행들은 펀드를 팔아 수조원의 수수료를 챙겼다. 금융당국 수장들이 펀드 수수료를 내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펀드 수수료는 내려갈까?
전광우 금융위원장과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이 11월12일 증권·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들을 만나 펀드 수수료 인하를 주문했다. 전 위원장은 이틀 뒤 라디오 방송에 나와 “최근 세계적인 증시 침체로 펀드 투자자들이 손실을 보고 있는 상황을 감안할 때 자산운용사와 판매사가 고통을 분담한다는 차원에서 운용보수와 판매보수를 인하하는 자율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펀드 운용사와 판매사는 펀드 가입 뒤 일정 기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판매보수가 낮아지는 ‘가입 기간별 차등 보수제’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펀드의 첫해 판매보수가 1.5%였다면 이듬해에는 1.25%, 그 다음해에는 1.0%로 떨어지는 식이다. 자산운용협회 관계자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한 ‘판매보수 표준약관 개정안’을 마련해 상품심의위원회에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판매사들이 가입자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별로 보수를 차등화하는 방안 등도 수수료 인하와 관련해 논의되고 있다.
가입 기간별 차등 보수제 주목펀드는 자산운용사가 상품을 만들면 은행이나 증권사 창구를 통해 판매된다. 이때 자산운용사는 펀드 운용에 대한 대가로 운용보수를 받고, 은행·증권사는 별도로 판매보수를 받는다. 이들 보수(fee)는 펀드 가입 기간 내내 내야 한다. 펀드에 가입하거나 환매할 때만 내는 수수료(commission)와는 구분된다. 하지만 보수와 수수료를 합쳐 수수료로 통칭하는 경우가 많다.
수수료(commission)는 펀드 설정 금액을 기준으로 내지만, 보수는 펀드 자산이 기준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의 평균 보수는 순자산액의 연 1.99% 수준으로, 이 중 판매보수가 1.35%로 비중이 가장 크고 운용보수는 0.68%, 수탁·사무관리 보수는 0.04% 수준이다. 펀드 수익률은 자산운용사가 얼마나 투자를 잘하느냐에 따라 결정되는데, 보수는 운용보수보다 판매보수가 오히려 높다. 또 보수는 펀드 수익률과 관계없이 내야 한다. 펀드 운용·판매와 관련한 일상적인 서비스에 대한 대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펀드를 산 뒤 은행이나 증권사한테서 특별한 사후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은행들은 펀드를 팔아 짭짤한 이익을 챙겼다. 지난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펀드 판매 수수료만 3조원이 넘었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이 국감 때 낸 자료를 보면, 지난 2006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은행권의 펀드 판매 수수료만 3조4천억원에 이르렀다. 국민은행은 1조1천억원의 펀드 판매 수수료를 챙겨 1위에 올랐고, 다음으로 신한은행 7600억원, 씨티은행 4600억원, 외환은행 3300억원 등이었다. 이어 우리은행 3200억원, 하나은행 2800억원, 제일은행 1700억원 차례였다. 신 의원은 “은행들이 국가의 지급보증을 받게 되는 이상 과도한 수수료 문제도 짚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은행들은 펀드를 한번 팔면 환매할 때까지 꼬박꼬박 보수를 챙기기 때문에, 고객에게 수수료 없는 적금보다 판매보수가 높은 펀드를 권하는 실정이다. 다른 나라의 판매보수 비중은 우리나라(67.8%)에 견줘 훨씬 낮은 편이다. 보수 가운데 판매보수 비중은 미국이 14.1%에 그치고 오스트레일리아(21.3%), 프랑스(31.6%), 독일(36.5%), 영국(42.8%) 등 대부분의 국가가 20∼40% 수준이다. 선진국들은 대신 운용보수가 훨씬 많은데 영국(57%), 독일(63%), 미국(85%) 등이 그렇다.
은행권 예·적금보다 펀드 판매 열중미래에셋의 인사이트 펀드는 출시 1년 만에 원금이 반토막이 났다. 하지만 은행권은 인사이트 펀드 판매수수료만으로 200억원에 육박하는 수입을 거둬들였다. 공성진 한나라당 의원이 낸 국감 자료를 보면, 14개 국내 시중은행은 인사이트 펀드 설정일인 지난해 10월 말부터 올해 9월 말까지 판매 수수료로 총 193억7300만원을 거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은행별로는 국민은행이 78억9200만원으로 가장 많았고 우리은행(34억3900만원), 기업은행(32억4500만원), 대구은행(16억7500만원) 등이 뒤를 이었다. ‘미래에셋인사이트혼합형자투자신탁1호 A형’은 판매사 수수료 1% 외에 순자산 총액의 0.9%를 매년 판매보수로 지급한다.
펀드 판매와 운용이 분리돼 은행과 증권사가 펀드를 팔기 시작한 것은 외환위기 이후다. 이전에는 투자신탁회사가 운용과 판매를 함께 맡았다. 하지만 대규모 적자로 투자신탁회사가 증권사와 자산운용사로 분리되면서 증권사는 판매를, 자산운용사는 운용을 전담하게 됐다. 당시 정부는 투신사 부실을 떠안은 증권사에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해 펀드 보수 중 판매사 몫을 높여줬다.
운용사와 판매사는 일단 여론의 따가운 시선 탓에 수수료 인하를 검토한다고 밝히고 있다. 펀드 수익률 급락으로 투자자들의 소송이 잇따르고 있는데다 금융당국도 수수료 인하를 압박하고 있다. 국내 최대 펀드 운용사인 미래에셋자산운용은 장기 투자자를 우대하는 방향으로 운용보수 인하를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펀드 판매사 1위인 국민은행은 펀드 수수료 인하를 구체적으로 결정하지 않았지만,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운용사와 판매사의 연대는 여기까지다. 누가 얼마만큼 내릴 것인지에 대해선 동상이몽이다. 운용사들은 ‘갑’의 위치인 판매사들이 판매보수를 조금 내리고 운용보수를 많이 내리라고 요구할 경우 운용사 부실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은행·증권사는 은행 건전성이 나빠지고 증권사 실적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금융당국이 지나치게 인기 영합적인 정책을 진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 자산운용사 임원은 “전체 수수료의 약 70%를 차지하는 판매보수가 더 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 부장은 “미래에셋 같은 펀드는 운용보수가 높아 판매보수 마진이 높지 않다”고 말했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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