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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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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품 붕괴로 집부자들 타격 입을 것”

김헌동 부동산값거품빼기 본부장 “정부가 투기꾼에 도박자금 대줘”
등록 2008-11-14 14:24 수정 2020-05-03 04:25

정부가 지난 11월3일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이란 걸 내놨다. 서울 강남3구를 뺀 수도권의 모든 투기지역을 해제하고, 재건축 용적률을 300%까지 허용한다는 내용이 뼈대였다. 과연 MB 정부의 대책이 현재의 금융·외환·실물 복합 위기에 대한 처방전이 될 수 있을까. 지난해 친형인 김태동 성균관대 교수와 함께 라는 책을 펴냈던 김헌동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부동산값거품빼기운동본부장은 “정부의 지속적인 투기 조장 정책이 경제난국을 키우는 장본인”이라며 “내년 2월께에는 국가 부도를 선언해야 할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김헌동 부동산값거품빼기 본부장.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김헌동 부동산값거품빼기 본부장. <한겨레21> 김정효 기자

-환란이 다시 올 수 있다는 말인데, 재벌들의 과잉 투자와 금융사 부실이 문제였던 11년 전과 지금은 다르지 않은가.

=1997년을 전후해 우성·청구·우방·건영·보성 등 아파트 건설 5인방이 무너졌고, 해태·진로·기산·한보 등 그룹 계열사들의 부도가 시작됐다. 외환 부족 위기가 아니라 ‘주택 200만 가구 공급 정책’이 부른 부동산 거품이 붕괴된 위기였다. 당시 미분양 물량이 16만 채에 이르렀고, 내가 다니던 쌍용건설도 2만 채나 됐다. 그런데 지금 지방은 물론 서울·수도권까지 가격이 내려가고 미분양 단지들이 쌓인 상태다. 전국 1600만 채 중 보통 1년에 160만 채 정도는 거래가 이뤄지는데, 한 채당 2억원씩 한 달 30조원어치가 거래되던 게 지금 4개월째 끊겼다. 100조원 이상이 부동산에 잠겼고, 재벌들의 과잉 투자 토지는 얼마나 되는지 실상조차 모른다. 요즘 대형 건설사들이 60일 내에 줘야 하는 하도급 대금을 4~6개월짜리 어음으로 지급하고, 거래 중소기업들에 아파트를 강매하고 있다. 11년 전과 판박이 상황이다.

-국내 부동산, 특히 아파트 분양값의 거품 규모는 얼마나 되나.

=정부 공식 통계로 국내 토지와 주택 가격이 3800조원이라고 한다. 아파트를 제외한 토지·건물들의 공시지가가 실제 시장가격과 괴리가 큰 점을 고려하면, 실제 시가는 8천조원대라고 봐야 한다. 참여정부 직전 공시지가는 2200조~2300조원대 수준이었고, 경실련은 실제 지가가 4500조원 정도였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노무현 대통령이 키운 거품이 3500조원 정도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공개한 서울시 산하 SH공사 공급 주택의 분양원가를 보면, 토지·건축비가 강남은 3.3㎡당 800만원, 강북은 600만원이었다. 그런데 그동안 강남은 3.3㎡당 3천~3500만원 정도가 시세라며 분양값으로 책정됐다. 적정 가격의 3배라는 소리인데, 이게 다 거품이다.

-경제난국 극복 종합대책을 평가해달라. ‘난국’이라는 표현을 쓴 걸 보면 나름대로 절박한 상황 인식에서 나온 카드인 듯한데.

=이번 대책은 세금을 쏟아부어 건설경기를 부양하고, 은행들을 압박해 건설사들에 돈 대주고, 투기꾼들에게 도박자금을 대주겠다는 거다. 서울 강남3구를 뺀 나머지 어디나 줄 서서 분양받으면 곧장 분양권을 거래하도록 터줬다. 또 투기지역에서 해제되면 비용의 60%는 대출로, 30~40%는 전세대금으로 충당할 수 있다. 조·중·동과 건설업계의 간절한 요구사항을 들어준 것인데, 이게 50만 채라고 보면 100조원짜리 투기판이다. 이런 대책이 통할 리도 없겠지만, 만약 성공해 거품 붕괴가 지연되면 곧이어 훨씬 끔찍한 사태가 닥치게 될 것이다.

-거품 붕괴의 피해자는 누구인가. 외환위기 때처럼 중산층과 서민들이 직격탄을 맞게 되는 것 아닌가.

=아니다. 한국의 상위 5%가 전체 토지의 82%를 차지하고 있고, 이 부자들과 재벌들이 피해를 입는 것이다. 서민·중산층은 지난 10년간 더 나빠질 게 없는 최악의 상황이 지났다. 전셋값이 내려가면 이들의 임대료 부담도 줄고 내 집 마련도 가능해질 것이다. 앞으로 MB 정부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와 분양가 상한을 없애는 등 거품 붕괴를 막기 위한 모든 수단을 쓰겠지만 효과가 없을 것이다. MB 정부의 탄생 자체가 정상적인 거품 붕괴를 1년 정도 지연시켰고, 이렇게 늦출수록 병은 깊어진다. 그런데도 건설사들은 아직 분양값을 낮출 마음이 없고, 대한주택공사는 약속한 분양원가 공개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한국의 분노한 서민·중산층이 ‘불매운동’을 벌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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