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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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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로 가는 지속 가능한 사회] 기름 먹는 도로만 천지에 깔렸네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고비용·저효율 교통체계, 한국의 철도는 달리고 싶다
등록 2008-09-11 05:51 수정 2020-05-02 19:25

한국의 교통정책은 일본과 유럽 등 선진국들과 정반대다.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고비용·저효율 교통체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 수준까지 뛰어올랐지만,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는 자동차·도로 위주의 교통 시스템은 변화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40년간 정부는 도로를 키우는 데 집중했을 뿐 철도 투자는 소홀히 해왔다. 그 결과 교통과 수송 등 물류 전반에서 고유가와 기후변화에 결정적으로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주문진~속초 구간의 공사 현장을 하늘에서 본 전경. 수도권에서 영동권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이미 서울~원주~강릉~주문진까지 이어져 있으며, 2010년에는 주문진~양양~속초까지 이어진다(왼쪽). 강릉역에서 끊어진 철도. 수도권과 영동권은 낙후된 철도망뿐이고, 대륙철도의 꿈인 동해선철도는 금강산은 고사하고 강릉에서 끊어져 있다. 하지만 영동권에서 도로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영동고속도로 주문진~속초 구간의 공사 현장을 하늘에서 본 전경. 수도권에서 영동권으로 연결하는 고속도로는 이미 서울~원주~강릉~주문진까지 이어져 있으며, 2010년에는 주문진~양양~속초까지 이어진다(왼쪽). 강릉역에서 끊어진 철도. 수도권과 영동권은 낙후된 철도망뿐이고, 대륙철도의 꿈인 동해선철도는 금강산은 고사하고 강릉에서 끊어져 있다. 하지만 영동권에서 도로는 계속 늘어가고 있다.

백두대간 파헤칠 춘천~양양고속도로

가장 최근에 각종 행정 협의를 끝내고 공사를 눈앞에 둔 춘천~양양고속도로의 경우를 보자. 지난 6월 환경부는 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 협의를 해줬다. 산림청도 이 사업과 관련한 산림 형질변경 협의를 해줬다. 백두대간 인근의 주요 산지와 계곡을 파헤치는 산림개발에 관한 허가나 마찬가지다.

환경파괴만이 문제가 아니다. 지난해 5월 국토해양부가 주최한 국가기간 교통망 개편 공청회에서도 이 사업은 철도보다 사업타당성이 떨어지는 첫 번째 사업으로 지목됐다. 현재 수도권에서 강원 영동 지역으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망은 이미 두 개나 있다. 서울~강릉~주문진으로 이어지는 영동고속도로와 서울~홍천~인제~속초로 이어지는 44번·46번 국도다.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4차로짜리 고품질 국도가 이미 만들어져 사용 중인 것이다. 여기에 2010년에는 영동고속도로가 양양·속초까지 확장될 예정이다.

그렇다면 이 두 개의 도로가 포화상태일까? 아니다. 44번·46번 국도는 미시령 아래로 백두대간을 관통하는 터널을 포함하고 있는데, 민자사업으로 시작한 이 터널에는 차가 다니지 않는다. 2005년 개통된 이후 계속 적자 상태이고, 사업자 이윤을 보장하기로 한 약속에 따라 어마어마한 혈세를 업체들에 지원하고 있다. 이는 수도권과 강원 영동을 오가는 교통량이 영동고속도로와 44번·46번 국도로 충분히 수용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정부는 사업비 3조원이 넘는 대형 고속도로를 하나 더 건설하려고 하는 것이다.


도로와 철도의 사회적 비용 비교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도로와 철도의 사회적 비용 비교 (※ 이미지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반해 수도권과 강원 영동 지역을 연결하는 철도망은 낙후 그 자체다. 서울과 강릉을 잇는 철도노선이 있기는 하다. 서울~원주~영월~태백~삼척~동해~강릉으로 이어지는 노선이다. 일반

국민들에게는 정동진을 비롯한 동해안 관광용 노선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일상의 교통과는 거의 무관하다. 고속도로를 이용하면 3시간도 걸리지 않지만, 꾸불꾸불 돌아가는 철도로는 7시간가량 소요되기 때문이다. 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 연결 얘기까지 나오지만, 강릉은 금강산으로 가는 동해선과도 연결이 안 돼 있는 상태다.

수도권과 강원 영동 지역을 예로 들었지만, 도로와 철도의 양극화는 전국적인 현상이다. 단위면적당 고속도로와 국도의 연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위에 올라있다. 2001~2005년 정부의 교통시설 투자 현황을 보면, 총 66조7594억원 가운데 도로에 투자된 비율은 59%였고, 철도는 22%에 불과했다. 2008년 교통시설 투자도 비슷하다. 여전히 도로 부문이 50%에 이르고, 철도는 그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2007년 한 해 고속도로, 국도, 지방도, 광역도로 등 481개의 도로 건설에 투자한 예산은 7조원에 이른다.

반면 철도는 수십 년 동안 제자리다. 2005년 말 현재 철도 연장은 총 3392km인데, 이는 25년 전인 1980년에 비해 약 260km 증가한 수치다. 2004년 기준 도로의 여객수송 분담률은 82%인데, 철도는 15%에 불과하다.

유럽 선진국들은 우리와 정반대다. 유럽연합 차원의 전체 교통망 계획(Trans-European Transport Network)에 따라 진행 중인 30개 주요 교통 프로젝트 가운데 철도와 관련된 것이 22개에 이른다. 도로보다 철도에 더 많이 투자하는 것이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 등은 도로통행료 수입의 일부를 철도 투자 재원으로 사용하고 있다.

철도보다 온실가스 비용 3배, 사고 비용 600배

남의 나라 예를 들 필요도 없다. 공공성과 경제성, 에너지 효율, 환경보존 등 모든 방면에서 철도와 도로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연구 결과를 보면, 도로가 철도보다 대기오염 비용은 3.1배, 온실가스 비용은 3.6배, 소음 비용은 2.1배, 교통사고 비용은 646배 높게 산출됐다. 2000년 기준 도로의 사회적 비용(대기오염, 온실가스, 소음, 토지이용, 교통사고, 혼잡비용 등)은 48조3856억원이었는데, 철도의 그것은 1조1749억원에 불과했다(표1 참조). 무려 40배나 차이가 나는 것이다. 또 영업용 자동차의 교통사고는 철도에 비해 750배나 많았고, 자가용 승용차는 철도에 비해 무려 1500배나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단위 수송량당 에너지 소모

단위 수송량당 에너지 소모

나라 경제를 휘청이게 하는 고유가 시대에 철도의 장점은 더욱 빛난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의 자료를 보면, 같은 수의 사람을 수송할 때 소요되는 에너지는 철도가 1일 때 버스는 5.5, 택시는 15.7이었다. 같은 양의 화물을 운송할 때도, 도로는 철도에 비해 15.8배에 이르는 에너지를 필요로 했다(표2 참조).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가 본격화하는 요즘 중요시되는 온실가스 배출량도 도로가 철도의 80배에 달한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여전히 도로와 자동차 중심의 교통체계를 버리지 못하고 국제사회의 흐름과 정반대로 가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도로로 먹고사는 왜곡된 카르텔의 구조가 너무 크고 강하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를 중심으로 건설업계과 자동차업계, 또 여기에 기대 살아가는 관련 전문가 그룹 등이 한 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고유가와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변화가 본격화하는 요즘, 철도 투자를 더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될 수밖에 없다. 민만기 녹색교통 사무처장은 “고유가도 기후변화도 우리 정부의 물류와 수송 정책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며 “심각하게 왜곡된 도로 중심 구조를 철도 중심 체계로 개편하지 않는다면, 한국은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시대가 돼도 길에서 행복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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