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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 보석에 뿔난 소 된 조선일보

등록 2008-08-22 00:00 수정 2020-05-03 04:25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안진걸 조직팀장의 보석을 결정한 판사, 에 뭇매 맞아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베이징에서 들려온 잇따른 메달 소식에 온 국민이 들떠 있을 때, 가 발끈했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에 18년 만에 공권력이 투입돼서도 아니고, 여당 고위 관계자들이 군납 금품 로비와 관련된 사실이 드러나서도 아니었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의 일원이던 한 시민단체 활동가가 보석으로 석방됐기 때문이다. 사주가 ‘밤의 대통령’이란 소리까지 들었던 거대 언론사가,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피의자 한 명의 석방에 발끈한 이유는 뭘까?

‘법복 벗고 시위 나가라’ 사설서 막말

의 심기를 언짢게 한 원인 제공자는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안진걸(35) 조직팀장. 참여연대 민생희망팀장이자 성공회대 외래교수이기도 한 그는 지난 6월25일 서울 광화문 경복궁역 앞에서 미국 쇠고기 수입 장관고시 철회와 재협상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연 뒤 청와대 쪽으로 진행하려다 경찰에 연행됐다. 이후 집시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왔는데, 담당 재판부는 지난 8월11일 두 번째 공판을 연 뒤 이날 오후 늦게 안씨의 보석을 허가했다. 안씨는 구속 50일 만에 자유를 맛봤다.

안씨가 석방되자 는 안씨의 보석을 결정한 서울중앙지법 형사7단독 박재영(40·연수원 27기) 판사에게 집중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는 8월13일치 사회면에 ‘판사가 불법시위 피고인 두둔 발언’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불법 촛불시위 주동자에 대한 재판을 맡은 판사가 재판 과정에서 잇달아 피고인을 두둔하고 현행법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의 사견을 드러내 물의를 빚고 있다”고 보도했다. 박 판사는 안씨에게 “풀어주면 촛불집회에 다시 나가겠느냐”고 질문하면서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해 위헌성 논란이 있는 만큼 (이 질문이) 자칫 양심의 자유를 침해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는데, 이를 두고 “굳이 야간집회 금지 조항에 대한 위헌 논란까지 거론하며 안씨의 입장을 두둔했다”고 비난한 것이다. 또 안씨가 “문화제 형식의 합법 집회에 참여하겠다”고 답변한 뒤 보석이 허가된 점을 들어 “재판부가 사실상 재범을 방조한 것으로 풀이된다”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8월14일에는 사설까지 동원됐다. 는 이날 ‘불법시위 두둔한 판사, 법복 벗고 시위 나가는 게 낫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이 판사는 일반인도 아는 법의 상식도 모르고, 모든 판사가 지켜야 할 법관윤리강령에도 관심이 없는 사람이란 말이다. 이런 판사가 아직껏 판사 노릇을 하고 있는 사법부의 현실이 놀랍기만 하다. …그동안 촛불시위에 나가지 못하게 했던 거추장스러운 법복을 벗고 이제라도 시위대에 합류하는 게 나을 것이다”라는 극언을 쏟아냈다. 한마디로 판사 같지도 않은 판사가 엄청난 죄를 지은 피고인을 그냥 풀어줬다는 얘기다.

그런데 과연 야간집회 금지 조항의 위헌 가능성을 언급하고 “합법 시위에만 나가겠다”고 말한 피고인의 보석을 허가한 일이 판사로서 잘못한 일일까?

우선, 야간집회 금지 조항의 위헌 가능성 언급과 관련해 는 “현행법을 이렇게 취급하면서 이 판사는 무엇을 규준으로 재판해왔는지 자못 궁금하다”고 비아냥거렸다. 하지만 판사가 재판 중에 일부 법률에 대해 “위헌 논란이 있다”고 판단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일이다.

헌법에 규정된 헌법재판소 관할 업무 가운데 첫 번째가 ‘법원의 제청에 의한 법률의 위헌여부 심판’(헌법 제111조 1항)이다. 판사가 특정한 법률 조항에 위헌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될 경우 헌법재판소에 판단을 구하는 것은 헌법이 규정한 판사의 직무인 것이다. 결국 판사가 특정 법률을 두고 “위헌 논란이 있다”고 말한 것만 가지고 “무엇을 규준으로 재판을 해왔는지”라고 묻는 것은, 너무 무식한 주장이거나 악의적인 비난일 뿐이다.

다음으로 안씨에게 보석을 허가한 게 이례적인 일일까? 현행 법률에서 보석을 어떻게 규정하고 있는지부터 살펴보자. 형사소송법 제95조에서는 “보석의 청구가 있는 때에 다음 이외의 경우에는 보석을 허가하여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보석을 청구하면 법원이 원칙적으로 허가해야 하는 ‘필요적 보석’ 원칙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보석 허가를 안 할 수 있는 예외 조항으로는 △징역 10년형이 예상될 경우 △누범이거나 상습범인 경우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의 우려가 있을 경우 △주거지가 분명하지 않은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 또는 목격자 등에게 해를 가할 우려가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이에 비춰 안씨의 경우를 판단해보자면, 우선 촛불집회에 참가(또는 주도)한 혐의가 징역 10년 이상의 형이 선고될 만큼 중한 범죄는 아니다. 또 안씨가 누범이거나 상습범도 아니고, 경찰이 촛불집회마다 채증 활동을 열심히 해온 만큼 증거 인멸 우려가 있다고 볼 수도 없다. 주거와 직장이 명확한데다 부인과 딸을 둔 가장인 그가 도주할 우려가 있다고 볼 수도 없고, 사안의 성격상 피해자 또는 목격자 등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도 전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박 판사는 누범·상습범 조항을 넓게 해석해 “풀어주면 촛불집회에 다시 나가겠느냐”고 물었을 뿐이고 안씨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합법적인 집회에만 참여하겠다”고 답해 보석이 허가된 것이다. 안씨의 보석 허가는 절차상으로도 내용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셈이다.

물론, 실제 모든 재판에서 ‘필요적 보석’ 원칙이 곧이곧대로 실현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보석 허가 여부를 판단하는 가장 큰 기준은 도주 우려다. 수사가 끝나 기소까지 이뤄진 만큼, 재판에 성실히 응하고 그 결과를 받아들일 자세만 있다면 피고인을 굳이 가둬둘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 비춰봐도, 안씨의 보석이 이례적이라고 볼 만한 이유는 전혀 없다.

‘경찰관 폭행’ 등 없는 혐의까지 덧씌워

오히려 는 안씨와 판사를 비난하는 과정에서 허위 보도까지 일삼았다. 8월13일치 기사에서 안씨를 가리켜 “촛불시위를 주도하고 경찰관을 폭행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이라고 설명한 부분이 대표적이다.

검찰이 지난 7월15일 안씨를 기소하며 적용한 주된 혐의는 5월9일부터 6월25일까지 45차례에 걸쳐 불법 촛불시위를 주도(집시법 위반)하고, 그 결과 교통 흐름을 방해(일반교통 방해)했다는 것이다. 죄목 가운데는 공무집행 방해도 있었지만, 혐의 내용은 안씨가 연행 당일인 6월25일 경찰의 시위대 강제 연행에 항의해 “왜 사람들을 잡아가냐”며 큰소리를 치고 경찰들 사이를 뚫고 경찰버스로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 하나뿐이다. 50쪽에 이르는 공소장에는 “(버스에 접근하려 시도하며) 조○○(경찰관) 등을 밀치면서 몸싸움까지 하였다”고 서술돼 있을 뿐, 경찰관을 폭행했다는 구절은 어디에도 없다.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공소장에 없는 경찰관 폭행 혐의는 어떻게 된 것이냐’는 질문에 “노코멘트”라고 말했다.

조선 기자 “노코멘트”, 법원 “해도 너무하다”

의 의도적인 비틀기는 이뿐이 아니다. 석방된 안씨가 인터넷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경은 촛불을 마구 잡아들이고 있지만 사법부는 현명하게 판단을 하고 있다”고 얘기한 것을 전하면서 “안씨는 ~라고 말했다”가 아니라 “안씨는 ~라고 재판부를 칭찬했다”고 표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재판부를 욕보이기 위해 ‘피고인으로부터 칭찬받는 재판부’라는 표현까지 등장한 것이다.

그렇다면 가 이렇게 뻔한 사안을 두고 무리를 해가면서 안씨와 재판부를 비난한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기사 게재를 결정한 편집진만이 알 일이지만, 법원 쪽 분위기는 심상치 않은 듯하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는 “판사들 상당수가 ‘해도 너무한 것 아니냐’며 격앙돼 있다”고 전했다.



야간집회 금지 조항 위헌 논란

야간집회 금지 조항 위헌 제청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조직팀장이 보석으로 풀려난 8월11일, 안 팀장은 공판에서 야간집회 금지 조항이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해달라고 재판부에 신청했다.
안씨가 위헌이라고 주장하는 이유는 헌법과 해당 법조문을 대조해보면 명확해진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10조에서는 “누구든지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는 옥외집회 또는 시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 다만, 집회의 성격상 부득이하여 주최자가 질서유지인을 두고 미리 신고한 경우에는 관할 경찰관 서장은 질서 유지를 위한 조건을 붙여 해가 뜨기 전이나 해가 진 후에도 옥외집회를 허용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해가 떨어진 뒤’에는 집회·시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경찰서장의 허가를 얻었을 경우에 한해서만 (시위는 빼고) 집회를 열 수 있다는 것이다. 집시법에서는 이를 위반할 경우 △주최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만원 이하의 벌금 △질서유지인은 6개월 이하의 징역 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 △그 사실을 알면서 참가한 자는 50만원 이하의 벌금·구류 또는 과료 등으로 처벌(제23조)받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1항),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2항)고 선언하고 있다. 집회·시위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집회 허가제를 운용할 수 없도록 헌법에서 못박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헌법의 이념과 법률 조항이 ‘충돌’하는 만큼, 이 법률 조항을 둘러싼 위헌 논란은 당연한 일이다.
사실 야간집회 금지 조항이 시대에 뒤떨어진 조항임은 누구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야간에는 별다른 사회·경제적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 농경시대도 아닌데, 해 떨어진 뒤에는 무조건 집회·시위가 금지된다는 것은 합리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또 낮에 생계 유지와 생존을 위해 직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인 현실을 감안하면, 집회·시위 자유를 원천적으로 제한하는데 악용될 우려가 높다. 악용 우려는 이에 그치지 않는다. 야간집회 신고를 하더라도 관할 경찰서장이 집회 시작 1~2시간 전에야 불허를 통보하는 경우가 많아, 행정심판과 행정소송 등 다른 구제 절차도 밟을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독일·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야간집회·시위만 따로 더 규제하지는 않는다.
안씨의 변호인인 김남근 변호사는 “야간집회 금지조항은 1962년에 만들어졌는데 야간 통행 금지가 있었던 당시와 달리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다”며 “이 조항은 이렇게 변한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야간에 사람들이 더 쉽게 흥분할 위험이 크거나 집회장 주변 주민들이 소음 때문에 잠을 편히 이루지 못할 우려 때문에 이 조항을 만들었다고 하더라도, 밤에는 낮 집회에 비해 강화한 소음 기준을 적용하거나 실제 취침 시간인 밤 10시 또는 12시부터 아침 6시까지만 제한하면 된다”며 “이렇듯 포괄적인 금지 조항은 행정편의적인 과잉 규제”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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