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14명 포함한 8·15 특별사면 명단 받아들고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는 뭘 했을까
▣ 김남일 기자 한겨레 사회부문 namfic@hani.co.kr
1995년 ‘검사 홍준표’는 자기가 잡아넣은 사람들이 8·15 특사로 풀려나자 한 주간지에 이렇게 썼다. “대화합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 사정 국면에서 처단된 인사들이 대거 사면·복권됐다. 사면권은 사법체계 근간을 뒤흔드는 대통령의 권한으로 봉건주의 시대의 잔재다. 따라서 사면권은 극히 제한적이고 형평에 맞게 행사돼야 한다.”
4시간 동안 도시락 먹으며 한 회의가 전부
지난해 11월 국회 법사위는 제정 50년 만에 사면법 손질에 들어갔다. “국가사법 작용의 예외적 조처로 일부 절차적 통제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대통령은 왕이 아니니, 내키는 대로 하게 내버려둘 수 없다는 말이다. 이래서 만들어진 ‘절차적 통제장치’가 법무부 사면심사위원회다. 그런데 법의 취지나 만듦새는 멀쩡해도, 시행령이나 실제 법 운용에서 ‘망조’가 드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개정 사면법이 그렇다.
지난 8월12일 이명박 대통령은 34만여 명에게 ‘은전’을 베푸는 8·15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수백억원의 회삿돈을 빼돌리거나 1조원대의 분식회계를 한 혐의 등으로 기소돼 불과 2~3개월 전에 형이 확정된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문제적’ 재벌 총수 14명이 포함됐다. ‘절차적 통제장치’가 대통령이 자기 집 현관문 따듯 쉽게 풀렸다는 말이 된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경제가 어려우니 좀 이해해주길 바란다”고 했다. 사면심사위는 뭘 했을까.
8·15 특별사면 발표를 하루 앞둔 8월11일 오전 10시에 시작된 사면심사위 회의는 오후 2시30분께 끝났다고 한다. 위원들은 도시락을 시켜먹으며 ‘용맹정진’했다지만 길어야 4시간 정도가 심사를 위해 주어진 시간이었다. 상식적으로 정몽구 회장 한 명을 두고서도 몇 시간 동안 격론이 벌어져야 마땅한데, 문제적 인물들의 사면을 두고 제대로 된 논의나 토론이 없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날 회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이게 전부다. 심사위원들이 누구인지 궁금해지지만 알 수 없다. 심사위원 9명의 명단을 밝히라는 시민단체의 정보공개 청구에 법무부는 “신변 보호 및 업무의 공정성을 해칠 수 있어 불가하다”며 거부했다. 몇몇 짐작은 간다. 위원장은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다. 위원장은 ‘법무부와 대검찰청 간부, 판사, 변호사, 법학교수 등’에서 심사위원 8명을 임명한다. 심사위는 과반수로 의결이 이뤄진다. 4명 이상이 민간위원이어야 하는데, 김 장관은 딱 4명만 위촉하고 나머지는 검찰 간부로 채웠다. 장관이 위원장인 상황에서 검찰 간부들의 토론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민간위원도 법무부 입맛에 따라 골랐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심사위원들이 법무부가 짜놓은 사면안을 만지작거리다 마는 ‘거수기’ 노릇만 하더라도 외부에선 알 수 없다. 회의 내용은 심의서와 회의록에 기재된다. 특별사면 뒤 즉시 공개하도록 돼 있는 심의서에는 개별 의견을 기재하지 않는 탓에 공개하나 마나 한 내용뿐이다. 이마저도 조건 없이 공개하지 않는다. 법에 ‘즉시 공개’가 명시된 문서인데도, 정보공개 청구를 하라고 한다. 또 심의서에는 심사위원 전원의 서명·날인이 들어가는데, 막상 공개할 때 이 부분은 자의적으로 삭제한다. 심사위원은 끝까지 베일에 가려진다. 회의 때 누가 어떤 주장을 폈는지 자세히 알 수 있는 회의록은 10년 뒤에나 공개하도록 해놨다. 알려고 하지 말란 소리다.
심사위원 명단도 회의록도 볼 수 없어
법무부 관계자는 마지못해 “(특정 인물의 사면에 대해) 반대 의견은 아니지만 우려의 목소리는 나왔다”며 “밖에선 쉽게 말하지만 이런 제도를 운영하기가 쉬운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제도 운영이 어려운 것과 회의 내용을 공개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밝히기 부끄러운 내용이 있다는 말로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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