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NG증권중개 대주주 적격성 문제, 대한생명 이면계약 문제… 대우조선 입찰에서도 자격 논란
▣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과거는 잊어주세요?’
두산과 한화그룹이 최근 금융회사 인수를 마무리했다. 두산은 지난 7월 말 금융위원회에게서 BNG증권중개 인수를 위한 대주주 승인을 얻었다. 한화도 대한생명 주식 매매 계약이 적법하다는 판정을 국제상사중재위원회로부터 받았다. 하지만 두 그룹은 금융회사 인수에 따른 도덕성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두산그룹은 지난 4월 자회사인 두산캐피탈을 통해 BNG증권중개를 사들였다. 하지만 두산은 인수를 앞두고 마지막 문턱에 걸렸다. 금감위로부터 석 달 동안 인수 승인을 받지 못했다.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면받으면 처벌 사실이 없어지나
현행 증권거래법 시행령은 “대주주가 되려는 자는 승인 신청시 최근 5년간 증권거래법령 및 금융관련법령,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을 위반하여 벌금형 이상에 상당하는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위험관리가 중요한 금융업 특성상 대주주의 도덕성을 강조한 것이다.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과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은 지난 2005년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됐다. 검찰 수사결과 두산 총수 일가는 258억원 횡령과 2838억원 규모의 분식회계 및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이 드러났다. 박용성·박용만 두 회장은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았다. 1심에선 각각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이 선고됐다. 하지만 2007년 2월 사회 대통합을 이유로 경제인 대사면이 단행되면서 두 회장은 모두 사면 복권됐다.
두산의 증권사 인수 논란의 핵심은 그룹 총수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사면 복권된 것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다. 금융위는 “대주주 적격성 심사에서 그룹 총수가 실형을 받은 점이 문제가 됐던 것은 사실이나 법무부 등이 ‘특별사면과 특별복권을 받은 것은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제시해 승인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원 판례는 금융위의 결정과 다르다. 대법원 판례(2002년 8월23일 선고 2000다64298)는 “형 선고의 효력을 상실시키는 특별사면이 있었다고 하여 형 선고 사실 자체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또 다른 대법원 판례(1993년 6월8일 선고 93다852)도 “특별사면에 의하여 금고 이상 형의 선고 효력이 상실되었다 할지라도 사면법 제5조 제2항에 의하면 형의 선고에 관한 기성의 효과는 사면으로 인하여 변경되지 않는다고 되어 있고, 이는 사면의 효과가 소급하지 아니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즉, 박용성 회장 등에 대해 특별사면이 있었다고 해서 기존에 확정판결로 ‘형사처벌을 받은 사실’ 자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경제개혁연대는 즉각 논평을 내어 “증권거래법 위반으로 유죄가 확정됐던 박용성 회장 등은 증권사 대주주 자격이 없다. 두산그룹의 BNG증권 인수 승인은 철회돼야 한다. 만약 금융위가 철회하지 않을 경우 적절한 법률적 대응 조처를 강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 고위 임원은 “금융위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인가를 승인한 거다.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현재 사면 복권됐다. 시민단체들이 계속 물고 늘어질 사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최근 대한생명 인수를 마무리한 한화그룹도 도덕성 논란에 휩싸였다.
한화그룹은 대한생명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여러 의혹을 불러일으켰다. 정부는 부실금융기관으로 판정받은 대한생명에 2001년 9월까지 세 차례에 걸쳐 3조5500억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한 뒤 매각을 결정했다. 대한생명이 보험사인 만큼 매입하려는 쪽은 보험사나 보험사가 있어야 한다고 인수 자격을 제한했다. 미국 보험사인 메트라이프생명과 한화컨소시엄(한화·일본 오릭스·호주 맥쿼리생명)이 인수의향서를 냈지만 메트라이프는 곧바로 포기해버린다. 결국 한화가 인수 대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맥쿼리생명과 이면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났다. 한화가 맥쿼리생명의 대한생명 인수자금 전액과 입찰 참여에 따른 모든 비용을 대신 부담하고 맥쿼리생명이 대한생명 지분 인수 1년 뒤 한화가 지정하는 회사에 주식을 모두 판다는 내용이다. 그 대신 맥쿼리는 대한생명 운용자산의 3분의 1을 보장받았다. 한화가 독자적으로 매각 조건을 충족시킬 수 없게 되자 맥쿼리생명을 끌어들인 셈이다.
검찰은 2005년 2월 한화를 ‘위계에 의한 입찰·업무방해’ 혐의로 기소했으나, 2006년 6월 대법원은 무죄 확정판결을 내렸다. 예금보험공사는 곧바로 같은 해 7월 국제상사중재위원회에 국제중재 신청을 냈고, 국제상사중재위는 7월31일 한화그룹과 예금보험공사 간에 체결된 대한생명 주식매매 계약이 적법하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에 대해 예보 관계자는 “중재 규정에 따르면 중재 결정에 하자가 있을 경우 90일 이내에 중재판정 소송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중재 결정에 절차적인 문제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확인 결과에 따라 재심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시민단체들은 “막대한 혈세가 투입된 대한생명을 불법과 탈법으로 한화가 가져가게 됐다”며 “국회가 나서 철저히 책임을 추궁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마침 두산과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놓고 경쟁을 벌이고 있다. 두 회사의 도덕성 논란이 대우조선 인수에 어떤 식으로 작용할지에 관심이 쏠린다.
두산은 2006년 6월 대우건설 인수전에서 도덕성 문제로 한 차례 쓴잔을 마셨다. 대우조선의 2대 주주인 캠코가 2006년 대우건설 매각 때 만든 구조조정기업 매각 기본방향을 보면 “분식회계, 주가조작, 조세포탈 등 위법행위로 사회·경제적인 문제를 초래한 기업은 이에 상응하는 부담을 지도록 함”이라고 명시돼 있다. 이에 해당하는 기업은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평가에서 100점 만점에 최대 10점을 감점당하게 돼 있다. 가장 배점이 큰 가격 부문에서 두산은 당시 66.00점으로 5개 업체 중 최고점을 받고도 10점이 감점돼 금호아시아나그룹에 대우건설을 넘겼다.
매각주관사 산업은행의 판단은?
대우조선 매각을 주관하는 산업은행이 이를 준용할 경우 감점 대상자는 경쟁에 밀릴 수 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도덕성 등의 문제를 검토하는 비계량적 요소는 이번 인수 평가에도 들어간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배점 비율이 얼마인지는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산업은행은 8월 말 대우해양조선 매각 공고를 내고 이르면 10월 안으로 우선협상 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이에 대해 두산 쪽은 “대우건설을 인수하면서 제재 조치를 받았다. 또 제재를 받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한화의 경우 대법원과 국제상사중재위에서 모두 혐의를 벗었지만, 도덕성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한화 쪽은 “대한생명 인수에 대해 대법원에서도 무죄판결을 받았다. 민형사상 소송에서 이겼을 뿐만 아니라 국제법적으로도 이상이 없다는 판정을 받았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는 “사법기구가 한화에 면죄부를 줬지만, 법적인 문제가 사라졌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까지 해소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박영선 민주당 의원은 “대기업들의 금융기관 인수를 승인하는 데 도덕적인 문제는 없는지, 적법한 절차를 거쳐 진행되고 있는지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에서도 도덕적인 문제가 중요하다. 앞으로 이에 대한 의혹이나 불법이 드러날 경우 국회에서 문제를 제기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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