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 전단에 유서 쓰고 생을 마친 신양… 학생들에 따르면 자살의 주요 원인은 학교의 인권침해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남형석 인턴기자 justicia82@paran.com
지난 7월5일 밤 경기 안양의 한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려 숨진 신아무개(19)양의 경우는 이 세상 사람들에게 또 하나의 ‘여고생 투신자살’일 뿐이었다. 끔찍하게도, 청소년 자살은 이 사회에서 더 이상 뉴스가 되기 힘들 만큼 흔한 사건이 돼버린 것일까. 다만 신양이 남긴 유서가 촛불집회 전단지에 쓰여 있었고 신양의 집이 국민기초생활 수급권자였다는 점이 반짝 부각되기는 했다. 유서에는 “소스케처럼 죽지 않으면 서로 괴로울거야… 본능? 자기파괴 아니면 현실도피… 난 담임과 …만 빼고 미워한 사람은 없었어…” 등 종잡을 수 없는 말들이 담겨 있었다.

화끈하게 묻어버린 경기도교육청
그러나 신양의 부모와 그가 다니던 ㄱ고 친구들의 말을 종합하면, 신양이 그 어두운 밤 홀로 15층 난간에 올라 삶과 죽음의 선을 건너뛴 데는 특별한 이유들이 도사리고 있다. 가정경제 비관도, 촛불집회 참가도 주요한 원인은 아니다. 항상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있는지조차도 인식하기 어려운 학생 인권침해가 신양의 죽음 뒤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1급 지체장애인인 신양의 아버지 신동직씨는 “일부 교사의 부적절한 교육 행태가 아이를 죽음에 이르게 했다”고 주장했다. 지난 7월10일 집에서 만난 신씨는 “평소 딸아이가 ‘선생님이 무섭다’ ‘선생님 때문에 자존심에 상처를 받아서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그는 신양의 담임교사가 다른 학생들이 다 지켜보고 있는 교실에서 ‘기초생활수급자 자녀는 일어나라’고 드러내놓고 요구한 뒤 신양이 일어나지 않자 수급자 명단을 들고 와 읽은 적도 있다고 했다. 또 신양이 급식비와 운영비를 종종 납부하지 못한 일이 있었는데, 담임교사가 급식비를 납부하지 못한 학생들 이름을 공공연히 밝히고 방과후에도 학교에 남기는 등 돈과 관련된 문제는 집요하게 추궁했다고 한다. 신양은 감수성이 한창 예민할 시기에 돈 문제로 정신적 굴욕을 느낀 것이다.
신양의 장례식장을 찾은 같은 반의 한 학생은 “담임 눈에는 오직 돈과 자신밖에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장례식이 끝난 뒤 신양의 집을 찾은 담임교사는 부모에게조차 “지금 학교 재정이 어렵다. 급식비를 안 낸 애들이 많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담임교사만이 신양을 짓누른 공포의 대상이었던 건 아니다. 이 학교의 한 수학교사 역시 신양과 ㄱ고교 학생들에게 수차례 언어적·물리적 폭력을 가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양의 고모 신미경(43)씨는 “조카(신양)가 수학 선생에게 주먹으로 머리를 맞고 돌아와서는 ‘머리보다 가슴이 더 아프다. 자존심이 너무 상한다’며 울음을 터뜨린 적도 있다”고 말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이 학교의 한 학생은 “몇 달 전에는 (이 교사가) 한 학생의 엉덩이를 서른 대가 넘게 때리기도 했고, 어떨 때는 속옷 라인이 드러날 정도로 치마를 끌어당기게 한 뒤 때린 적도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학생은 “수학 문제를 못 풀면 ‘수학도 ×도 못하는 게’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다”고 이 교사의 언어폭력을 고발했다. 이 때문에 신양은 맞지 않기 위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이번 학기 들어 평소보다 40점 이상 점수가 오른 적이 있다. 그럼에도 수학 교사는 칭찬은커녕 틀린 문제 개수만큼 신양의 머리를 주먹으로 때렸다. 신양의 친구는 신양이 “(수학교사가) 계단에서 굴러 몇 달 학교에 안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할 정도였다고 했다.
그러나 학교는 이와 같은 사실을 전면 부인했다. ㄱ고의 황아무개 교감은 “자체 조사 결과 수학 선생은 학생들을 때린 적이 없는 것으로 결론났다”고 밝혔다. 담임교사도 “그런 기억이 없다”고 했다는 것이다. 신양에 관한 학생들의 일치된 증언은 모두 사실이 아니란 주장이다. 지난 7월15일 학교를 찾아갔을 때 이들 교사는 학교에 나오지 않았으며, 학교 쪽은 개인적인 인터뷰는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철저한 사실 규명에 나서겠다”던 경기도교육청의 진상조사는 그야말로 화끈했다. 결론은 “학생 인권침해 사실이 없으며,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 조치했음”이었다. 교육청은 학생들이 당초 가해자로 지목한 두 교사를 ‘면담’했을 뿐, 인권 피해를 주장하는 학생들은 만나지도 않았다. 진상조사를 담당한 경기도교육청의 정만교 장학사는 “학생들이 민감한 시기에 괜히 더 큰 동요를 일으킬까봐 걱정돼서 학생들은 조사 대상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신양의 부모는 “교육청에서 진상조사를 하는 줄도 몰랐다”며 “교육청이고 경찰서고 부모의 얘기를 듣기 위해 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박범이 참교육학부모회 서울지부장은 “모든 사건은 피해자 입장에서 원인 규명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가해 용의자의 얘기만 듣고 ‘문제없다’고 단정지어버린 것은 또 다른 범죄 행위”라며, “유서를 보면 신양은 담임교사 등 외부로부터 자존감의 상처를 받은 게 분명한데, 이에 대한 원인 규명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비슷한 사건은 되풀이해서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사건 직후 신양의 아버지에게 찾아와 학교의 학생 인권 탄압 사실을 고백했던 신양의 친구들은 지난 7월10일 학교 상담교사와 면담한 뒤 태도가 바뀌었다. 8일까지만 해도 “압박과 모멸감을 주는 선생님의 행동이 신양을 궁지로 몰았다”고 성토하던 학생들이 상담 뒤에는 “선생님들은 별로 상관이 없다”며 “오랫동안 신양을 괴롭힌 한 친구 때문인 것 같다”고 말을 바꿨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학생은 “(상담교사가) 학교의 이미지가 나빠지면 졸업하는 너희들만 손해라는 점을 강조했다”고 털어놨다. 7월15일 오후 ㄱ고 교문 앞에서 만난 한 3학년 학생은 “우리 반은 물론 다른 반 애들까지 신양의 죽음에 관해 어떤 인터뷰도 하지 말라는 얘기를 담임교사에게서 들었다”고 말했다.
동급생에게 괴롭힘 당하기도
물론 신양의 자살 뒤에 학교의 인권유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친구들의 증언에 바탕하면, 신양은 오랫동안 한 동급생에게 괴롭힘을 당해온 것으로 보인다. 그가 퍼뜨린 소문에도 오랫동안 시달렸다고 한다. 신양의 한 친구는 “평소 신양이 그의 이름을 입에 올리기도 싫어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신양이 다소 비관적 성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흔적도 있다. 신양의 유서에 등장한 '소스케'는 일본드리마 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비극적인 인물이고, '마츠코' 역시 영화 에서 불운한 생을 살다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는 여주인공이다.
신양이 숨진 뒤 발견된 일기장에도 이러한 일본 대중문화 속 비극적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많이 담겨 있었다. 신양은 고2 때 일본어 수업을 열심히 들으며 일본 문화에 흠뻑 빠지게 됐다고 한다.
신양이 숨진 지 11일이 지난 7월17일 찾아간 신양의 집에는 여전히 교복을 입은 신양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었다. 아버지 신동직씨의 휴대전화에서는 여전히 신양이 직접 골라준 경쾌한 컬러링이 울렸고, 신양의 방에는 신양의 책과 물품들이 가지런히 정리된 채 그대로 있었다. 다만 신양만 없었다. 평소 새벽 3시까지 노점을 하고 들어오는 부모가 걱정할까봐 자신의 고민을 숨기고 살 정도로 사려가 깊었던 큰딸, 가난을 견디며 전문계 고교를 다니면서도 대학에 수시 합격해 부모에게 꿈을 안겨줬던 큰딸은, 삶의 마지막 순간에서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시원하게 털어놓지 않은 채 그렇게 세상을 떠났다. 몸무게가 40kg이 갓 넘었던 가냘픈 여고생이 견디기에는 학교와 사회는 너무도 차갑고 가혹한 곳이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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