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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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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은 어디로 갈까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네티즌·유권자·소비자로 모습 바꾸며 이슈를 진화시키고 있는 시민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일까. 촛불이 끝없이 진화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에서 이명박 대통령 퇴진을 넘어서 이제는 소비자운동, 유권자운동 등으로 발전하고 있다. 시민들은 6월에 들어서도 네티즌, 유권자, 소비자 등으로 얼굴을 바꾸면서 온·오프라인에서 계속 새로운 흐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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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제하듯 광고 체크, 사과하는 기업들

6월1일 저녁, 시위대는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으로 행진했다. 이들은 광화문 조선일보사 앞을 지나가면서 “ 폐간하라”를 외쳤고 동아일보사 앞을 지날 때는 “ 물러나라”를 외쳤다. 시위대는 경찰 버스 위의 사진기자 무리를 향해 “조·중·동 내려와” “조·중·동 내려와”를 외쳤고, 기자들이 ‘조·중·동 기자는 없다’라는 몸짓을 하자 “미안해” “미안해”를 외쳤다. 심지어 한 시민은 버스에 올라가 기자증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렇게 촛불집회가 한 달을 넘기며 시민들은 서로를 교육하고 서로에게 배우고 있다. 촛불집회를 통해 시민적 상식으로 확산된 ‘안티 조·중·동’이 그 증거다. 이런 운동은 와 구독운동으로 이어졌고 실제로 두 신문의 구독 부수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안티 조·중·동은 소비자운동과 결합하는 양상으로 진화했다. 조·중·동에 광고를 내는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6월6일 오전. 포털 사이트 다음 토론광장 아고라에는 ‘6월6일자 및 광고기업’이라는 글이 ‘오늘의 숙제’라는 문패를 달고 올라 있다. 네티즌들은 지난 5월30일부터 매일 1면부터 28면까지 에 광고를 실은 기업과 이들의 전화번호를 올려놓고 광고 게재를 중지하라는 항의 전화를 하자고 제안했다. 이렇게 네트워크를 통해 확산된 불매운동은 기업의 광고 중단과 사과까지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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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3일 지면에 ‘BBQ 참숯바베큐’ 신규사업자 모집광고를 냈다가 빗발치는 전화를 받은 BBQ 사업부는 바로 이날 오후 “광고를 즉시 중단하겠다”고 결정했다. 박열하 BBQ 홍보실장은 “다짜고짜 욕하시는 분, 조근조근 얘기하시는 분부터 시작해서 오전 내내 끊이지 않는 전화에 업무를 할 수 없을 정도였다”며 “네티즌들은 워낙 전파력과 행동력이 빠르다 보니 매출이나 회사 운영에 영향을 미칠까 우려돼 즉각 대응했다”고 밝혔다. BBQ 참숯바베큐처럼 보수 언론 광고를 자제하겠다고 밝힌 기업들은 지난 5월30일부터 천재문화, 동국제약, 명인제약, 보령제약, 신일제약, 삼양통상, 르까프, 서울 척병원, 신선설농탕, 농협목우촌 등 10곳이 넘는다.

조·중·동을 향한 네티즌의 거부운동은 그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이디 Sisyphus를 사용하는 네티즌은 5월29일 ‘조·중·동 광고기업 불매운동’이라는 청원을 아고라 광장에 올렸고 6일 현재 4392명이 불매운동에 참여하겠다는 서명을 했다.

안진걸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간사는 “현재의 촛불집회는 포괄적인 국민주권 운동”이라며 “시민이 유권자, 소비자 등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고 말했다. 촛불의 얼굴이 6·4 재·보궐선거에선 유권자, 안티 조·중·동 운동에선 소비자의 얼굴로 등장한다는 것이다.

전통적 운동 진영과 융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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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이 서로를 교육하는 양상은 ‘헌법의 재발견’에서도 나타났다. 집회와 시위의 자유를 규정한 헌법적 가치를 실정법인 집시법보다 우위에 두고 촛불행진의 정당성을 찾는 흐름이 그것이다. 시민들의 이러한 정서는 집회 현장에서 즐겨 부르는 노래인 에서도 찾을 수 있다. 국회를 통한 탄핵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국민소환운동을 벌이자는 흐름도 여전히 존재한다.

지금도 ‘토론의 성지’로 불리는 아고라에선 ‘이제 촛불집회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를 놓고 난상토론이 활발하다. 거리행진에 정해진 ‘코스’가 없었듯, 이슈의 진화도 예정된 경로가 없다. 촛불의 이슈는 이명박 정부 비판을 축으로 다양한 곁가지를 치면서 진화하고 있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는 “이슈에 대해서도 우발성이 강하게 작동하는 포스트모던 현상이 벌어진다”며 “그렇다고 비판이 근본적 모순을 향해서 가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신자유주의 경제의 틀 안에서 비판을 도모하는 한계도 있다”며 “이를 넘어서는 전망은 없다”고 지적했다.

자발적 촛불의 행렬이 전통적 운동 진영과 어떤 관계를 맺어나갈지도 관심거리다. 5월 말 이후로 민주노총, 한총련 등이 촛불집회에 본격적으로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후 열흘이 흐르는 사이에 개인으로 참가한 시민과 이들 조직 사이에 갈등은 나타나지 않았다. 지금까지 화학적 융합은 아니어도 물리적 결합에는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이렇게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투쟁은 한국적 현실에 반응하고 대응하며 점점 더 빠른 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경찰 차벽 위법 논란

도로 막는 경찰버스, 법 근거 어디?

▣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근대화된 민주국가에서 폭력으로 간주되는 건 반드시 물리력이나 언어를 통해 누군가에게 직접적 해를 가하는 행위만이 아니다. 이동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막는 행위도 소극적 폭력 행위에 해당한다. 그런 점에서 촛불시위대가 청와대로 향하는 걸 막기 위해 경찰이 경찰버스를 이용해 서울 세종로의 왕복 16차로와 인도, 부근 골목길까지 전부 막은 최근의 행태는 위법의 요소가 강하다.
경찰의 차벽도 ‘촛불’만큼이나 진화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집회 때만 해도 경찰버스는 서울시청 앞 광장을 빙 둘러싸 집회 참가자들과 다른 시민 사이를 갈라놓는 구실만 했다. 그마저도 경찰의 법 집행이 자의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그런데 이번엔 대한민국에서 가장 넓은 도로를 아예 막아서는 형태의 차벽이 나타난 것이다.
경찰이 근거로 드는 것은 경찰관직무집행법 제6조다. “경찰관은 범죄행위가 목전에 행하여지려고 하고 있다고 인정될 때에는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관계인에게 필요한 경고를 발하고, 그 행위로 인하여 인명·신체에 위해를 미치거나 재산에 중대한 손해를 끼칠 우려가 있어 긴급을 요하는 경우에는 그 행위를 제지할 수 있다.” 장전배 경찰청 경비과장은 “청와대와 주한 미대사관, 정부청사 등 국가 주요 시설물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며 “경찰이 차벽을 치지 않더라도 시위대가 세종로 앞에 연좌하기 때문에 교통은 막히게 돼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목 하나 들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되는 촛불시위를 놓고 ‘범죄행위가 눈앞에서 일어나는 상황’이라고 보는 건 억지다. ‘다른 사람이나 재산에 큰 손해를 끼칠 우려’도 없고 ‘긴급’하지도 않다. 경찰관직무집행법 1조 2항 “경찰관의 직권은 그 직무수행에 필요한 최소한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하며 이를 남용하여서는 아니된다”는 규정을 한 번쯤 되새겨봤는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경찰은 시위대가 청와대 코앞까지 다가갔을 때 닥칠 권력 핵심부의 추궁을 회피하기 위해 미리 손을 쓰고 있다고 하는 편이 되레 솔직할 것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가 6월10일을 즈음해 경찰의 차벽 설치에 대해 위헌심판 제청을 하려는 까닭도 이런 문제제기에 맞닿아 있다. 한 교수는 “경찰의 차벽은 집회하는 사람의 통행을 막을 뿐만 아니라, 타인에게 집회의 목적을 알리고 동참을 불러일으키는 측면까지 포함된 집회의 자유를 본질적으로 침해하고 있다”며 “경찰이 도로를 가로막을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률은 대한민국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
요즘 촛불들은 ‘준법 질서’라고 적힌 경찰버스에 ‘주차 위반’ 딱지를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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