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월든 벨로 교수 “요새는 신자유주의자들도 그렇게 완전 개방 요구 안 해… 불황에 빠져드는 미국 경제와 거리둬야”
▣ 방콕(타이)= 엄기호 저자
[미국산 쇠고기 파동]
지난 20년간 한국의 정치·경제를 관심 있게 지켜보며 많은 글을 써온 필리핀 국립대학의 사회학과 교수 월든 벨로와 미국 쇠고기 사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세계무역기구(WTO)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일관되게 반대해온 세계적인 석학이자 활동가다. 인터뷰는 그가 설립하고 책임을 맡고 있는 타이 출랄롱콘대학 글로벌 사우스(Focus on the Global South)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한국에서는 지금 미국에 쇠고기 시장을 개방하는 것이 광우병과 관련해 뜨거운 사회 이슈가 되고 있다.
=이번 사건은 두 가지 의미에서 의미심장하다. 하나는 한국이 1997년부터 급속하게 추진해온 미국식 신자유주의 체제의 완성이라는 점이다.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IMF의 권고를 전적으로 수용한 나라다. 이번 쇠고기 협상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은 그동안 한국 정부가 추진해온 미국 시장과의 완전한 통합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국은 동아시아에서 가장 신자유주의적인 국가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에서 10대들이 거리를 점거하고 투쟁을 벌이는 것 또한 의미심장하다. 한국은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언제나 아시아에서 선두에 서 있었다. 한국에서 새로운 사회운동이 벌어지면 그것은 곧 전 아시아로 퍼지는 경향이 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화와 새로운 사회운동의 대두라는 점에서 이번 광우병 사태는 의미심장하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검역체계에 이상이 없고 국제수역사무국(OIE)과 같은 국제적인 검역 시스템이 있기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가 안전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말이 되지 않는 소리다. 이는 미국에서 얼마나 철저히 검역을 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는 상관이 없는 검역주권의 문제다. 일본은 왜 아직도 수입을 제한하고 있는가? 솔직히 나는 미국의 농무부가 철저히 감시하고 있다는 것도 믿기 어렵고 OIE가 미국의 압력에서 자유로울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각국이 각자 사정에 맞는 검역 기준을 갖고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은 뼈를 고아먹는 유일한 민족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그런 식생활 습관에 맞춰 그 부분에서는 더욱 민감하고 엄격하게 검역을 실시하는 권한이 한국에 있어야 한다.
한국의 대통령은 질 좋고 맛있는 쇠고기를 싸게 먹게 되는 것이고, 먹고 안 먹고는 국민이 선택할 문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게 바로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에서 자유는 ‘선택의 자유’만을 의미하고 그것은 언제나 소비자의 이름으로 찬양돼왔다. 시장이 개방되고 다양한 상품이 진열되면 소비자는 그 중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고를 수 있다는 게 신자유주의다. 그리고 이를 소비자의 권력이 강화되고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라고 미화해왔다. 그러나 그 ‘소비의 자유’는 대부분 생산자들의 고혈을 착취해 일시적으로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다. 소비자가 권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허상이다. 소비자는 진열돼 있는 것을 고를 수만 있지, 무엇이 진열돼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개입할 수 없다. 그것은 전적으로 금융과 유통자본에 의해 결정된다. 생산자는 일방적으로 수탈당하고 소비자는 자신이 권력을 가진 것으로 착각하게 하는 게 신자유주의 체제다. 국가가 해야 하는 일은 ‘알아서 골라먹으라’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해 먹어서는 안 되는 것을 통제하며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다.
쇠고기 시장 개방은 한-미 FTA 타결과 연계된다. 한국 정부는 경쟁이 가속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과 FTA를 타결하지 않으면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미 FTA는 한국 경제를 완전히 미국에 종속시킬 것이다. 지금도 한국은 정치적으로 미국에 종속돼 있는데, 그동안 추구해온 독자적인 경제발전은 포기하는 것이 된다. 그렇게 될 경우 한국의 경제는 미국과 전적으로 연동돼 미국의 경제 부침에 따라 요동치게 될 것이다. 현재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정책은 신자유주의 중에서도 이미 낡아버려 서구조차 따르지 않는 1990년대식 신자유주의다. 요새는 신자유주의자들도 그렇게 완전 개방을 주장하지 않는다. 대통령 주변의 경제자문 라인에 문제가 있는 것이 틀림없다.
한-미 FTA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더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 거라는 말인가.
=지금 미국 경제는 심각한 불황 국면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럴 때 현명한 정부라면 미국 경제의 소용돌이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미국과 가급적 거리를 둬야 한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과 완전히 경제적으로 연동되는 FTA를 체결하겠다는 것은 자살행위다. IMF를 한번 보라. 1997년 경제위기가 왔을 때만 하더라도 전 지구를 자기 손에 쥐고 있는 것처럼 승승장구하던 것이 IMF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IMF는 생존을 이어가기에 급급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는 IMF 탈퇴 움직임을 보이고 있고, 대출 감소로 재정 압박도 심하다. 이런 IMF가 권고한 것을 그대로 따라한 것이 한국이고 그것이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양극화와 경제불안의 한 요인이 아닌가. 그런데 다시 한-미 FTA로 그것을 반복하려 하고 있으니 한국 밖에 있는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과 한-미 FTA로 선례를 만들어 다른 나라를 압박하려고 할 것이다. 미국은 대만과 일본의 쇠고기 시장 역시 개방하라고 압력을 행사할 것이다. 미국은 지금 타이·말레이시아와 FTA 협상을 진행 중인데 한국과 협상한 내용이 모델이 될 것이다.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곧 아시아 전역에서 벌어질 일이다.
그렇다면 이번 쇠고기 시장 개방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행동 역시 아시아적인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거리로 뛰어나온 한국의 10대들과 주부들은 미처 인식하지 못하고 있겠지만 지금 한국의 쇠고기 시장 개방 반대 시위는 한국민들의 건강뿐만 아니라 전체 아시아인들의 건강을 지키는 엄청나게 중요한 투쟁이다. 좀전에 말한 것처럼 한국이 1997년 이후 가장 충실하게 미국식 신자유주의를 따라왔기 때문에 쇠고기 시장과 FTA로 제도적으로 그것을 완성하게 되면 미국은 전체 아시아 국가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한국의 시위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10대들이 나왔다는 점이다. 그들은 심지어 자신들이 열광하는 스타를 광우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나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웃음) 환상적이다. 멋지지 않은가?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스타를 미국과 광우병으로부터 지켜내기를 바란다. 상대가 누가 됐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하는 모든 행동은 아름다운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아마 아시아에서, 아니 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다. 곧 다른 나라의 10대들도 그렇게 하지 않을까 기대된다. (웃음) 물론 대중스타만은 아닐 것이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학교급식의 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가 10대들과 주부들을 움직였을 것이다. 그들의 삶과 직결되는 문제가 아닌가. 오히려 이런 문제에 전통적으로 한국의 사회운동을 이끌어왔던 대학생 운동과 노조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깝다. 노조에서도 문제의 심각성과 이 투쟁의 세계적인 의의를 깨닫고 10대들과 함께 어깨를 겯고 거리에 서기를 바란다. 한국의 투쟁은 세계의 투쟁이기 때문이다.
[한겨레21 관련기사-미국산 쇠고기 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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