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종 광물을 둘러싼 자원외교의 허와 실…‘안 해도 그만’ 식으로 접근하거나 무계획적으로 협상하지 말아야
▣ 타슈켄트(우즈베티스탄)·알마티(카자흐스탄)=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제8광구. 북카스피해 연안도시인 아티라우 동쪽으로 300km 떨어진 곳. 카자흐스탄 옛 수도인 알마티에서 비행기로 2시간, 다시 온통 흙투성이인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를 6시간 달려가야 하는 두메 중의 두메다.
LG상사의 오승은(27·여) 대리는 한 달에 한두 번씩 8광구를 찾는다. 지난 5월7~12일에도 이곳을 다녀왔다. LG상사는 컨소시엄을 꾸려 8광구 육상유전에서 석유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오 대리는 탄성파 조사 결과 등 각종 데이터를 분석해 석유가 있을 확률이 가장 높은 지역을 찾는 일을 한다. 석유가 있을 만한 지점을 정확히 찍어내야 한다. 그러면 시추기가 지하 2천~3천m의 땅을 파게 된다. 158cm 키의 앳돼 보이는 그지만, 현장에선 180도로 변신한다. 등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카락은 고무줄로 질끈 묶는다. 여성이 쓰고 입고 신기에 다소 큰 안전모와 작업복, 안전화도 모두 착용해야 한다.
검은 황금, 모래 밭에서 바늘 찾기
자외선이 살을 찌르는 한여름 땡볕과 영하 30도를 오가는 한겨울에도 현장은 24시간 돌아간다. 8광구 반경 120km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다. 단지 이곳에서 100여 명이 컨테이너 안에서 생활한다. 현지 지하수를 끌어올린 물은 맑지 않고 누렇다. 오 대리는 “육체적으로 어려운 것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더 힘들어요. 석유가 나올 만한 곳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하기 때문이죠”라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석유탐사를 하는 광구에서 유전이 발견될 확률은 10%다.
석유공사 우즈베키스탄 사무소. 이곳에서 일하는 두 명의 직원인 문병찬 지사장과 손봉섭 팀장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하고 있다. 두 사람은 지난해 2월 설도 제대로 못 쇤 채 이곳으로 발령받았다. 하루 4시간 잠자면서 ‘아랄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과 러시아, 중국 등이 컨소시엄을 꾸려 아랄해 근처 1만8천㎢ 지역에서 ‘검은 황금’인 석유를 찾는 계획이다. 경상도 크기의 지역에서 바늘 찾기 정도로 쉽지 않은 일이다.
두 사람은 지사를 꾸리는 일부터 각국 대표들과 컨소시엄을 만드는 일까지 쉽지 않는 작업을 진행해오고 있다. 매일 서류와 씨름해야 한다. 현지 관료조직의 높은 벽도 넘어야 한다. 문 지사장은 “요즘 자원부국들은 ‘처음부터 좋은 광구를 가져갈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투자를 하거나 성의를 보이면 상응하는 조건을 주겠다’고 한다. 자원이 없는 우리로선 열심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21세기 엘도라도’를 꿈꾸며 노다지를 찾는 사람들. 이들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등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자원을 샅샅이 뒤지고 있다. 한때 실크로드의 길목이던 이곳에 문화유산만큼이나 풍부한 석유와 가스, 각종 광물자원이 매장돼 있기 때문이다.
중앙아시아 지역은 잠재 매장량 기준으로 2500억~3천억 배럴의 석유와 15조~20조㎥의 가스를 보유하고 있다. 석유의 경우, 우리나라의 1년 원유 소비량이 9억 배럴인 점을 감안할 때 300년가량 쓸 수 있는 양이다. 카자흐스탄은 ‘멘델레예프 주기율표 화학원소가 모두 매장된 나라’라는 별칭처럼, 우라늄 광산을 비롯해 금·은·구리·아연·망간 등 14종의 광물이 세계 10위권의 매장량을 과시하고 있다. 최근 한승수 국무총리가 중앙아시아 4개국을 순방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세계 10위의 에너지 소비국, 에너지의 97%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다. 에너지 수입으로 지난해에만 945억달러를 썼다. 원유값이 오르면 앞으로 더 많은 달러를 써야 한다. 우리나라 발전량의 40% 이상을 점하는 원자력발전에도 우라늄이 쓰인다. 화력발전소는 대부분 유연탄을 주원료로 한다. 동·아연·크롬·니켈 등의 자원은 전자·철강·조선·화학제품에 필수적으로 들어간다.
하지만 자원외교에 대한 인식은 아직까지 전략적이지 못하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 식으로 접근하거나 실속 없이 무계획적으로 협상하는 일도 종종 있다.
카자흐스탄에 공익활동도 해야
“한국 정부가 옛날 협의만 믿다 자원에도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한승수 국무총리가 자원외교를 위해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5월13일, 수도 알마티에서 만난 현지 자원 전문가는 이렇게 운을 뗐다. 그의 얘기는 이랬다. 지난달 말 카자흐스탄 정부 인사가 한국을 찾았다. 잠빌광구 지분 인수에 대해 논의하기 위해서였다. 잠빌광구는 지난 2004년 노무현 대통령이 카자흐스탄 방문 때 광구 선정 의정서를 체결했으나 카자흐스탄 정부의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탓에 4년 동안 본계약이 미뤄져온 곳이다.
이번 방한 때 카자흐스탄 정부 인사는 잠빌광구 지분(27%) 가격을 당초 7500만 달러에서 3억5천만 달러로 높여달라고 요구했다. 한국 정부 쪽은 “합의된 사안에 대해 가격을 올려달라고 한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설득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대해 현지 자원 전문가는 “자원외교를 제대로 할 생각인지 모르겠다. 무조건 계약을 맺었으니 자원을 달라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자원부국들은 기존 계약을 철회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미 자원민족주의 시대에 들어선 것이다. 오히려 한국 정부나 기업들이 먼저 카자흐스탄에 공익활동을 하면서 한국이 카자흐스탄에 뭔가 해주고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카자흐 대통령 직속 전략연구소의 굴누루 라크마툴리나 선임연구원도 “자원외교도 좋지만 친환경 외교, 친노동 외교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총리는 잠빌광구 본계약 체결을 타결하지 못한 채 지난 5월11일 순방길에 올랐지만, 다행히 14일 본계약을 체결했다.
알마티에서 만난 또 다른 자원 전문가는 자원이 중요하다는 생각보다 자기 밥그릇을 먼저 챙기는 태도를 비판했다. 그의 비판은 이랬다. “지난해 한국의 한 공기업이 카자흐스탄에서 우라늄을 장기 도입하는 계약을 맺기 직전까지 갔다. 하지만 끝내 일본에 계약을 빼앗겼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1차 가공한 뒤 우라늄을 가져가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 공기업은 자회사에서 1차로 가공해야 한다며 이를 거절했다. 자원보다 자회사 이익을 먼저 신경쓴 셈이다. 결국 한국은 계약권을 빼앗겼다.”
이와 함께 중앙아시아 현지에선 미국식 글로벌 스탠더드를 들이대며 자원외교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도 높다. 중앙아시아 국가들은 대부분 러시아에서 독립해 사회·경제·문화적 환경이 러시아에 가깝다. 그래서 러시아에 관한 전문가 육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중앙아시아를 엘도라도로 보고 뛰어드는 분야는 자원기업들뿐만 아니다. 중앙아시아를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금융·건설 기업들도 최근 잇따라 이곳에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현지에선 남들이 하니 나도 따라한다는 식의 무차별적 투자에 대한 비판도 거세다.
국익보다 자회사 이익 앞세운 공기업
국민은행이 지난 3월 인수한 카자흐스탄의 센터크레딧은행(BCC)도 현지에선 거품 논란을 낳고 있다. 너무 비싸게 인수했다는 것이다. 현지의 한 금융권 인사는 “강정원 행장이 외환은행 인수에 실패하자 뭔가 보여주려고 무리하게 M&A를 서둘렀다. M&A는 카드를 보여주면 안 되는데, 사겠다는 의지를 갖고 협상을 하다 보니 무리하게 인수를 했다. 살 만한 가치가 있는지, 가치가 있다면 제대로 돈을 주고 샀는지 현지에선 논란이다”라고 비판했다.
시장 개척도 필요하지만 무조건 진출해보자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세계 경제 흐름을 치밀하게 계산해야 하고, 중앙아시아에 해외 금융기업들이 진출을 서두르지 않는 점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중앙아시아에 공격적으로 진출했던 한국 건설업체들 가운데 일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카자흐스탄 역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시장 상황이 악화되면서 철수하기도 했다. 알마티에 위치한 자산운용사 세븐리버스캐피탈의 윤영호 사장은 “최근 김승유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만났는데, 김 회장이 ‘카자흐스탄에 기회를 보고 있다. 현지 은행을 인수·합병할지 등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무리는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우즈베키스탄 경제주간지 의 스베플라나 브도비나 편집장은 5월12일 과 한 인터뷰에서 “각 나라마다 중앙아시아의 비즈니스 정보를 갖추고 있지만, 치밀하게 검토하는 게 필요하다. 현지 비즈니스 환경이 정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라고 조언했다. 중앙아시아 투자자문업체인 리타의 이상욱 회장은 “현지 상황을 철저히 분석해야 한다. 한국에서 잘된다는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웃으면서 들어왔다가 울면서 나가는 기업들도 많다. 특히 자원 분야에선 서로 이익이 되는 방향으로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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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13일 카자흐스탄 알마티 도스틱 거리에 자리잡은 대통령 직속 전략연구소. 굴누루 라크마툴리나 선임연구원은 한국 정부의 자원외교에 대해 묻자 오히려 ‘친환경 외교’ ‘친노동 외교’를 언급했다. 이 연구소는 경제 분야 등에서 국가 정책과제를 발굴해 대통령에 보고하고 국정과제로 채택되면 이를 실행하는 기획안을 만드는 곳이다.
자원외교를 위해 한국 국무총리가 카자흐스탄을 방문했다.
=자원외교도 좋지만 친환경 외교, 친노동 외교를 해야 한다. 자원개발로 인한 환경 문제와 노동안전 문제가 심각한 편이다. 석유 개발이 활발한 카스피해 연안에는 개발로 인해 기름 찌꺼기가 널려 있고 바다생물들이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고 있다. 개발에만 신경을 쓴다. 광구에선 노동자들이 사고로 죽어도 신경을 안 쓴다. 안전을 위한 투자, 환경을 위한 투자가 자원개발에서 첨예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자원민족주의는 어떤가?
=한국과 마찬가지로 러시아, 중국, 미국, 일본도 자원외교를 벌이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는 자원민족주의 차원이 아닌 협력의 차원으로 본다. 협력 차원에서 다양한 면들을 보고 파트너를 선택하는 것이다. 어느 한 나라만 의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하자원 외에 눈여겨봐야 할 것이 있다면?
=잠재력이 큰 분야는 농산물이라고 생각한다. 카자흐스탄은 세계 최대 밀 생산국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제조업이 발전하지 못해 원재료 상태로 수출하고 있다. 그래서 식품산업과 농산물 가공산업에서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 특히 최근 전세계적인 식량 문제와 연관해볼 때는 성장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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