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중에 집단난동 일으킨 중국 유학생들, 분노는 어떻게 만들어졌나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딱히 복잡할 것도 없겠다. 찬찬히 따져보자. 무모한 폭력을 휘두른 가해자, 벌건 대낮 도심에서 뭇매를 맞은 피해자, 그리고 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음에도 어리버리 허둥대다 사태를 키운 경찰. 진상을 명백히 가려 책임 소재에 따라 책임을 물으면 될 일이다. 4월27일 오후 서울에서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 도중 중국인 유학생들이 벌인 집단난동 역시 마찬가지다. 아니 그런가?
경찰은 ‘한국인 시위대’만 막는다?
중국 당국의 우세스런 초기 대응이 마뜩할 리 없다. “티베트 폭력시위는 파괴가 목적이었지만, 이번 시위는 올리픽 방해 세력을 막기 위해 당연한 것으로 순수했다”는 장위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관심법’은 쓴웃음을 자아낸다. 반면 허야페이 중국 외교부 부장조리가 4월30일 이용준 외교통상부 차관보를 만난 자리에서 “한국 경찰과 기자가 부상을 입은 데 대해 유감과 위로의 뜻을 전달하고, 관련 중국 유학생들의 선처를 희망”한 것은 사뭇 온당한 처사다.
그러니 ‘치안주권 침해’를 거론하는 건 생뚱맞다. 경찰은 사건 당일 성화 봉송 행사 경비를 위해 무려 9300여 명의 경찰관과 전·의경을 배치했다. 자전거 순찰대 20명과 마라톤 동호회 소속 경찰관 121명으로 구성된 ‘근접 경호팀’에, 사이드카와 순찰차·기마대 등 ‘기동 예비대’까지 대기시켰다. 봉송로 주변에 분산 배치돼 있었다 해도, 상황 파악만 빨랐으면 충분히 대처할 만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경찰은 성화 지키기에만 오로지했다. 막아야 할 대상은 ‘한국인’ 시위대였다. 빗나간 애국심에 눈먼 중국 젊은이들의 일탈을 막지 못한 1차적 책임은 경찰 수뇌부가 져야 한다.
“한눈에 어리고 유치한 친구들이었다. 대부분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친구들의 눈에서 뿜어져나오는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티베트평화연대 대변인으로 활동하는 정웅기 참여불교재가연대 사무처장은 그날 저녁 7시께 서울 덕수궁 대한문 옆에 있다가 횡액을 당했다. 정 처장은 “휘두른 폭력 자체가 심각한 지경은 아니었지만, 군중을 피해 달아나는 이들까지 쫓아가는 모습에서 솔직히 두려움을 느꼈다”고 했다. 그래서 더욱 궁금해진다. 무엇이 ‘그들’을 일탈로 이끌었을까?
사건의 ‘배후’를 찾기 위해선 먼저 이번 올림픽이 중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중국 전문가는 이렇게 설명했다. “중국인들은 베이징올림픽을 미국과 서방에 대한 자존심 찾기의 완성이라고 여기고 있다. 홍콩·마카오 반환을 통해 서구 제국주의의 폐해를 바로잡았다면, 올림픽 개최를 통해 약하고 가난한 나라에서 할 말은 하는 나라로 바로 설 수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올림픽은 상처받은 자존심 찾기, 탈제국주의의 완성이란 얘기다.”
‘인권후진국’ 오명 속 과격한 애국주의
중앙대 백승욱 교수는 이런 중국 민족주의의 성향을 ‘미국 선망적 민족주의’로 표현했다. 백 교수는 “중국인들은 소비 수준에서도, 국제 무대에서의 위상 측면에서도 미국처럼 되고 싶다는 강한 욕망이 있다”며 “사회주의가 무너진 자리에 생겨난 이데올로기적 공백을 애국주의적 열망이 채우고 있다”고 진단했다.
애초 중국은 지난 1993년에도 올림픽 유치를 꿈꿨다. 출발은 좋았다. 그해 9월 모나코의 몬테카를로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에서 베이징은 시드니·베를린·이스탄불·맨체스터 등과 맞서 1·2·3차 투표에서 모두 1위를 기록하며 기세를 올렸다. 하지만 최종 4차 투표의 승자는 시드니였다. 예비투표에서 흩어졌던 서방국가의 표가 결선에서 하나로 모아지면서 단 2표 차이로 석패한 게다. 1989년 6월 학생 시위를 짓밟은 톈안먼 사태로 뒤짚어쓴 ‘인권후진국’이란 오명이 패배의 주요 이유로 꼽혔다. 유치 직전에 분루를 삼켜야 했던 중국에서 올림픽이 ‘정치화’한 건 당연했다.
그로부터 6년 뒤인 1999년 재도전에 무난히 성공하면서, “중국의 성장을 국제사회로부터 당당히 인정받고 싶다”는 중국인들의 바람은 이뤄졌다. 올림픽의 ‘정치색’은 탈색되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3월14일 벌어진 티베트 사태가 ‘올림픽 정치화’에 다시 불을 댕겼다. 서방의 반중시위는 중국인에게 자신들을 고립시키려는 부당한 압력으로 비쳐졌다. 위기의식은 이내 반서방 열풍으로 번졌다. 반중 시위대가 성화를 향해 달려들수록, 성화의 상징성은 커져만 갔다. 서구의 부당한 간섭에 맞서는 중국의 국가적 자존심을 상징하는 한줄기 빛이 돼버린 게다.
이런 중국 내 분위기를 절정으로 치닫게 한 계기는 미 〈CNN방송〉이 제공했다. 이 방송 잭 카퍼티 앵커가 지난 4월9일 이란 프로그램에 출연해 중국인들을 ‘깡패’라고 부르고, 중국 제품을 ‘쓰레기’에 비유한 것이다. 중국 현지에선 이를 ‘4·9 사건’이라 부르며 치를 떨고 있다. 류준필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는 “결과적으로 많은 중국인들에게 올림픽은 내세우고 싶은 자랑거리에서, 서방의 탄압으로부터 스스로를 지켜내야 하는 성스러운 의식으로 변해갔다”고 지적한다.
“중국인들의 민족주의는 ‘피해자 의식’이 강하다. 자신들은 언제나 피해자였으며, 외부 세력은 항상 가해자였다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배어 있다.” 이남주 성공회대 교수는 “경제 규모가 커지고 정치적 영향력도 날로 확대되고 있는 터에, 여전히 자기들은 피해자란 의식에 사로잡혀 있다”며 “이런 인식의 불균형이 민족주의적 열정으로 이어지면 간혹 과격한 행동을 부르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힘이 커질수록 동반자보다는 위계적 관계가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역사적 경험으로 되새기고 있는 이웃나라의 정서와는 사뭇 다른 게다.
‘중궈, 짜요~!’에 연상되는 ‘대~한·민·국’
그동안 중국 당국은 ‘민족주의적 분출’을 통제 가능한 선에서 유지·관리해왔다. 지난 2005년과 2006년 들불처럼 번진 반일시위 때도, 1999년 옛 유고연방 코소보의 중국대사관 오폭사건으로 촉발된 반미시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3월14일 티베트 사태 이후 격해진 반서방 시위도 사실상 한 달여 방치했다. 은근히 즐겼다는 표현이 정확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4월 중순 이후 급속히 ‘관리모드’로 돌아서고 있다. 반서방 열풍의 휘발성이 도를 넘어서면서, 대외적 격정이 불평등한 ‘격차사회’를 향한 내부적 분노로 타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중궈, 짜요~!’(중국 파이팅)는 ‘대~한·민·국’을 연상시킨다. 볼에 붉은 별을 그려넣은 채 오성홍기로 몸을 휘감은 중국 젊은이들은 2004년 여름을 뜨겁게 달군 붉은 악마와 닮아 있다. 세계인과 만나고, 그들에게서 인정받고 싶은 열망도 엇비슷할 터다. 하지만 ‘성찰 없는 민족주의’는 허망하다. 그리고 때로 위험하다. 4월17일 오후 서울 도심에서 일부 중국 유학생들이 벌인 ‘일탈’이 한·중 두 나라 젊은이들에게 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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