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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과 오키나와는 똑같다

등록 2008-04-25 00:00 수정 2020-05-03 04:25

세 지역에서 회복하기 어려운 환경파괴를 일으키는 미군… 이해당사자들이 매년 공동 교환 조사 실시하기로

▣ 도쿄·오키나와=글·사진 황민혁 녹색연합 녹색사회국 활동가

미군기지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오키나와가 손을 잡았다. 지난 4월14일, 일본 도쿄 국회의원회관에서 ‘2008년 한국·오키나와·일본 공동 미군기지 환경조사연구 국제심포지엄’에 관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미군의 주둔과 재편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오염의 실태를 알리고 앞으로의 공동 대응 계획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지난 1년간 한국·일본·오키나와의 지방의회 의원과 시민단체는 서로의 지역을 교환 방문해 공동으로 미군기지 환경오염을 조사하고 연구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최초로 양국의 미군기지 공동 조사보고서를 발표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미군이 세 지역에서 모두 미국 내 환경기준은 물론 주둔국의 환경기준도 무시하며 회복하기 힘든 환경파괴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럼즈펠드와 듀공의 대결

양국 참석자들은 앞으로 한국·일본·오키나와의 이해당사자들이 매년 미군기지 환경문제에 대해 공동 교환 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연례보고서로 작성하기로 결의했다. 연례보고서는 미국 의회와 미국 정부, 유엔 등에 제출된다. 국제사회에 미군기지의 환경문제를 본격적으로 알리는 활동의 일환이다.

기자회견에 앞서 4월12일 일본 오키나와현 오키나와 국제대학에서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이 대학에는 2004년 미군 헬기가 추락한 일이 있다. 오키나와대학 사쿠라이 구니토시 학장(환경공학 전공)은 “국제적인 연대와 협력을 통해 현재의 불평등한 주둔군지위협정(SOFA) 조항을 개정하고, 미군이 오염자 부담 원칙을 철저히 지키도록 하는 국제법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미군을 상대로 정보공개를 요구하고 시민들의 환경권·생명권·안전권을 지키는 데 앞장서 ‘반미 시장’으로 불리는 이하 요이치 기노완시 시장도 참석했다. 그는 “도저히 미국 내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환경범죄가 오키나와에서는 버젓이 행해지고 있다”며 “앞으로 미군의 환경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시민들과 함께 추궁할 예정”이라고 했다.

듀공(Dugong)은 오키나와 인근 바다에 사는, 길이 약 2.5m의 포유류다. 귀엽게 생긴 듀공은 류큐시대 이전부터 오키나와의 역사와 문화를 함께해온 일본의 천연기념물이다. 그러나 지난 2003년 미군이 후텐마 비행장 대체부지로 헤노코 앞바다에 2500m 활주로 건설 계획을 세우면서 듀공의 서식지가 파괴될 위험에 처했다. 듀공을 보호하기 위해 2003년 9월, 미국과 일본 변호사들이 함께 미 국방부 장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시작부터 당시 미 국방부 장관이던 럼즈펠드와 듀공의 대결로 불리며 큰 관심을 모았다. 미국의 문화재법(NHPA)과 행정절차법(APA)을 근거로 해외 미군의 활동을 규제할 수 있는지에도 관심이 모아졌다. 법 조항에는 “해외 주둔지의 문화유산을 보존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소송을 시작한 지 6년째. 지난 1월2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기쁜 소식이 날아왔다. 샌프란시스코 법원은 미군이 헤노코 기지를 건설하면서 듀공의 역사·문화적 중요성을 배려하지 않고 기지 건설을 진행하는 것은 NHPA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소송을 맡았던 가토 변호사는 이날 심포지엄에서 “이제 미군의 헤노코 기지 건설은 듀공 서식에 대한 환경영향평가가 면밀히 진행된 뒤에나 가능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승소 소식은 벌써 농성 투쟁을 해온 헤노코 주민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주민대표 아시토미씨는 “지금까지 주민들이 맨몸으로 벌여온 미군기지 확장 반대운동에 앞으로도 온 힘을 다할 것이며 5월24일 반대투쟁 1500일 기념 대규모 집회에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모두 함께 참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미군기지 환경문제에 관해서는 한국과 일본은 한마디로 ‘똑같다’. 오키나와에는 주일 미군기지의 70%가 자리잡고 있다. 동북아 최대 미군기지인 가데나 공군기지와 후텐마 미 해병대 기지로 인해 소음, 토양·지하수 오염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오키나와 북부 다카에 지역에는 미군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정글 전투훈련을 할 수 있는 북부훈련장이 있다. 최근 미군은 이곳에 6개의 대형 헬기 임시 착륙장을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바다와 가까이 닿아 있는 이 지역에 헬기 착륙장이 생기면 상공과 해상, 육상을 잇는 훈련이 더 많아질 게 불보듯 뻔하다. 동양의 갈라파고스라고 불릴 만큼 생물종이 다양한 다카에의 생태계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평택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지난 1973년까지 미군이 사용했던 오키나와 북부 훈련장 부지 중 일부는 반환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풀이 자라지 않는다. 더운 아열대 지역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이 사용했던 고엽제를 미군이 이 훈련장 일대에서 계속 사용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일본 본토에서 미군기지가 가장 밀집돼 있는 가나가와현은 토양·지하수 오염, 소음 문제가 심각하다. 오는 8월19일 원자력 항공모함이 배치될 예정인 요코스카의 주민들은 핵 위험에 그대로 노출될 상황에 처했다. 요코스카 시의원인 다키가와씨는 이날 발제에서 “요코스카 미 해군기지 안에서 잡힌 물고기에서 허리가 휘어지는 기형적 모습이 발견되고 있다”며 생태계의 파괴를 우려했다.

한국의 군산 미 공군기지에는 약 40개동의 탄약고와 패트리엇 미사일, 400만 갤런의 연료저장 시설이 있다. 시설이 클수록 환경오염 가능성도 커진다. 윤철수 군산미군기지우리땅되찾기 시민모임 사무국장은 “2003년 미군기지 안에서 기름이 새어나와 인근 논밭이 오염됐는데도, 미군이 아직도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고 발생 1년 뒤에야 실무회의를 열었던 미군은 현재는 아예 회의조차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기 평택에는 3개 권역에 걸쳐 총 8개의 크고 작은 미군시설이 있다. 현재 약 9천 명이 주둔하고 있다. 2013년, 주한미군 재배치사업 계획에 따라 주한미군의 약 88%인 2만2천 명이 이곳에 주둔하게 된다. 현재 하루 평균 40~85회 이착륙하는 헬기의 소음과 진동 피해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이날 심포지엄에서 서재철 녹색연합 녹색사회국장은 59개 미군기지의 환경오염 실태를 밝혔다. 서 국장은 “2007년 80%에 달하는 한국 국민이 ‘반환 미군기지 환경오염 복원 비용을 미국에서 부담해야 한다’고 본 여론에도 불구하고 미군은 아무런 비용 부담 없이 기지를 반환시켰다”고 말했다. 이로써 작게는 1200억원, 많게는 6천억원으로 예상되는 23개 반환 미군기지의 치유 비용은 모두 한국이 부담하게 되었다.

한국 참가단 대표 문정현 신부는 “한국과 똑같이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오키나와와 일본의 모습을 보고 들으며 답답하고 화가 났다”며 “이번 공동 심포지엄을 계기로 한국과 일본 사람들이 힘과 지혜, 용기를 모아 미군기지에서 발생하는 모든 환경문제를 없애자”고 말했다. 멀고도 가까운, 다르면서도 같은 두 나라 주민들의 연대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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