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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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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가고싶다

등록 2008-03-14 00:00 수정 2020-05-03 04:25

시인과 함께 나서는 섬 산책, 봄따라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섯 섬을 걸어볼까

▣ 글·사진 강제윤 시인 www.pogildo.pe.kr

매물도의 주산은 장군봉(210m)이다. 장군봉에 오르는 길은 당금마을보다 대항마을이 가깝다. 지형이 가파르니 대항포구의 선착장에서부터 등산이 시작된다. 마을 뒤편에 제법 규모가 큰 2층 건물이 서 있다. 붉은 벽돌 건물은 공동주택이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빈집이 된 지 오래다. 빈집이라 했던가. 아니다. 저 집은 더 이상 빈집이 아니다. 사람은 집의 영혼이다. 영혼이 떠나간 저 건물은 더 이상 집도, 빈집도 아닌 것이다.

◎ 매물도
자기 땅에 세 들어 살게 된 주민들

장군봉에는 몇 개의 바위굴이 있다. 일본 제국주의 군대를 위해 파놓은 포진지다. 1945년 3월, 진해 일본군 통제부에서는 충청도에서 끌려온 광부들과 매물도, 소매물도 주민들을 강제 동원해 바위굴을 뚫어 벙커를 만들고 포 진지를 구축했다. 하지만 일제의 패망으로 진지는 무용지물이 됐고 후일 한국 해군의 기지로 사용되기도 했다.

당금마을은 대부분 민박을 친다. 여름 피서철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들어오지만 다른 때는 낚시꾼들만 더러 찾을 뿐 한산하다. 선착장 입구에는 스킨스쿠버 장비 대여점도 있다. 몇 집은 어선을 부리고, 몇 집은 소를 키운다. 하지만 매물도 주민들을 먹여살리는 것은 무엇보다 해초다.

소매물도는 매물도와 바짝 붙어 있다. 소매물도는 더 이상 낙도가 아니다. 오래전 원주민들은 육지의 한 사업가에게 대부분의 집과 땅을 팔았다. 그때는 가난하고 척박한 섬의 땅을 사주는 사업가가 고마웠을 것이다. 더구나 죽을 때까지 살도록 해준다는 조건이었으니. 지금 주민들은 땅을 판 것을 땅을 치고 후회하지만 소용없는 일이다. 갑자기 유명 관광지가 된 탓에 관광 수입이 커졌으나 남의 손에 든 떡이다. 자기 땅을 팔고 그 땅에 세 들어 사는 주민들. 설상가상으로 땅을 샀던 사업가는 부도가 났고 땅은 새로운 주인에게 넘어갔다. 주민들은 서둘러 정든 섬을 떠나야 한다.

많은 섬들이 요즘 어느 시대보다 풍요를 구가하고 있다. 고기잡이나 수산물 채취, 양식업 등으로 바다 일을 하는 주민들의 소득은 도시 노동자들의 소득을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일의 양은 줄지 않는다. 남들이 더 많이 잡기 전에 내가 더 잡고 남들이 기르는 것보다 내가 더 길러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돈을 더 번다 해서 삶에 대한 불안이 줄지는 않는다. 가득 채우고도 늘 모자랄까 두려워한다. 만족을 모르는 삶은 도시나 농어촌이나 다르지 않다.

1년 만의 방문, 그사이 소매물도에도 횟집이 생겼다. 나그네는 내내 수족관 속 물고기들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어부의 그물이나 낚시에 걸려들어 잡혀온 물고기들을 기다려주는 것은 죽음뿐이다. 죽음이 코앞에 와 있어도 물고기들은 눈치도 못 챈다. 수족관 안의 시간이 영원이라도 되는 것처럼 자리다툼하고 쫓고 쫓긴다. 때때로 횟집 주인의 뜰채가 다가오면 서둘러 달아나지만 그래봐야 수족관을 벗어나지 못한다. 발버둥친다 해서 죽음을 피할 길은 없다.

횟집 주인은 부지런히 수족관 안의 물고기를 건져낸다. 불과 두어 시간 사이 수족관은 텅 빈다. 죽음이 있어 삶도 있다. 죽음을 피할 길 없으니 삶 또한 피할 길이 없다. 수족관 안의 생. 건너 욕지도와 연화도 사이로 해가 진다. 삶 밖에 다른 무엇이 있을까. 도달할 수 없다면 있어도 있는 것은 아닌 것. 하늘은 잠시 수족관 너머로 노을빛 연화세계를 보여주지만 건널 수 없는 자들은 그저 애달픔에 유리벽만 치다 돌아간다.

◎ 매물도·소매물도

통영항에서 매물도 페리가 하루 2회 출항한다. 토·일요일이나 공휴일에는 오전에 한 차례 더 뜬다. 거제도의 저구항에서도 배가 다닌다. 통영에서 들어간다면 소매물도에 먼저 들러 일박을 하고 다음날 매물도로 건너가 둘러본 뒤 다음 배편으로 통영으로 나오는 것이 편하다.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다솔산장에서 정말 기품 있는 ‘사모예드’들을 여럿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한적한 밤을 보내고 싶다면 소매물도보다 매물도가 적합하다. 두 섬 다 민박집은 많다.

◎ 여서도
거대한 돌담에 싸인 마을

한국의 이스터섬, 여서도는 완도에서도 접근이 쉽지 않은 외딴섬이다. 그런데 무엇이 나그네를 이 먼 섬으로 데려온 것일까. 민가의 담장이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저 거대한 돌담들, 돌집들. 여서도는 돌과 바람의 왕국이다. 여서도는 멸망한 이스터섬이나 잉카의 유적처럼 놀랍다. 저 돌들, 돌의 정령들이 나를 섬으로 불러들였다.

마을은 가파른 비탈에 집들을 품어 안았고, 그 절반은 돌로 지은 집이다. 마을은 작지만 길들은 미로처럼 얽혀 초행의 여행자를 헤매게 한다. 어느 곳에서도 나는 저토록 장대한 돌담을 본 적이 없다. 마을은 스스로 거대한 성곽이다.

섬의 돌들을 하나로 모은 것은 바람의 신이다. 돌담은 분리인 동시에 통합이다. 집들을 가르는 경계들이 연결의 끈이 되어 섬을 보호한다. 5m가 넘는 장대한 돌담은 어떤 바람 앞에서도 늘 철옹성이다. 바람막이 하나 없이 큰 바다를 앞에 둔 산비탈 지형이 만든 작품이다.

신석기시대 유적이 출토됐을 정도로 섬의 내력은 길다. 그러나 섬은 오랜 세월 비어 있었고 사람이 다시 살기 시작한 것은 17세기 말부터다. 그때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섬이 숨어 살기 적당하다 생각했겠지. 하지만 그 생각이 며칠이나 갔겠는가. 섬은 결코 숨어 살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묶여 살아야 하는 곳이다. 한 번 들어온 이상 선택의 여지 없이 숙명처럼 살아야 하는 곳이다.

마을의 동쪽 길을 오른다. 당 숲이 있는 이곳은 빈집이 많다. 인적 없는 돌담 길은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통로처럼 신비롭다. 나그네는 과거의 어느 시간 속을 걷는 것일까. 마을 옆을 흐르는 개천에는 돌다리와 돌우물도 남아 있다. 개발된 섬이라면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을 것이다. 마을의 집을 가르는 돌담들에는 네모난 구멍이 나 있다. 경계인 돌담을 소통의 공간으로 활용한 섬사람들의 지혜가 놀랍다. 대체 저 통로로 얼마나 많은 삶의 소식들이 오고 갔을까. 저곳을 지나며 바람은 또 얼마나 많은 이야기들을 묻어갔을까.

등대로 가는 길은 내연 발전소를 지나야 한다. 섬의 서북쪽, 무덤들을 보호하는 것도 돌담이다. 돌담과 함께 섬을 지켜낸 공신은 늘 푸른 나무들이다. 등대 가는 길가의 동백나무 노거수는 내가 본 동백 중 가장 굵다. 동백나무는 단단해서 자라는 속도가 아주 느리다. 두 아름도 넘는 저 동백나무는 필시 천년목이다. 오랫동안 나무들이 섬사람들을 보호했다. 이제는 사람이 그 은덕을 갚아야 할 차례다.

돌담과 동백나무뿐만이 아니다. 여서도 전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해 보호해도 지나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그네는 두려움이 앞선다. 섬을 드러내고 알리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그러나 끝끝내 숨길 수 없음을 안다. 숨겨서 보호될 수 없다면 모두가 함께 지킬 방도를 찾아보는 것은 어떨까.

◎ 여서도

완도항에서 하루 한 번 배가 뜬다. 여서도는 완도와 제주의 중간쯤에 위치한다. 난바다의 섬이라 폭풍주의보를 확인하고 출발하는 것이 좋다. 자주 결항하는 항로이니 촉박하게 다녀올 수 있는 섬은 아니다. 섬에는 민박을 하는 집이 한 곳뿐이다.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식사는 슈퍼를 겸한 민박집에 부탁해야 가능하다. 마을을 둘러본 뒤 등대가 있는 산길을 따라 섬의 뒤꼍을 걸으면 또 다른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

◎ 외연도
정령의 기운이 가득한 연리의 숲

대천항으로 유람 떠났던 배가 돌아온다. 생의 봄날을 다 소진해버린 노년의 유람객들, 오는 봄을 마중 나왔다. 어떤 이는 오늘 유람이 생의 마지막 유람이기도 할 것이다. 생이 지속될 수 없는 것처럼 유람 또한 계속되지 않는다. 이제 선착장에 발 디디면 노인들은 다시 무거워진 발 이끌고 온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마음은 평생을 떠다니면서도 몸은 한순간도 떠돌 수 없었던 서러운 생애들. 어느새 바다 위를 흐르던 경쾌한 유행가 가락은 간데없고 구슬픈 단가가 흐른다.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을 찾아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하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늘 백발 한심허구나…. 세월아, 가지 마라.”

대천항에서 외연도행 여객선이 출항한다. 배가 심하게 흔들린다. 나그네의 뱃속도 울렁거린다. 흔들리는 배 위에서 중심을 잡기 위한 노력은 부질없다. 한동안 허둥대던 나그네는 몸부림을 그만둔다. 그저 파도에 몸을 맡긴다. 파도가 출렁이는 대로 몸도 따라 출렁이며 간다. 몸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는다. 파도 속에서는 파도가 되고, 바람 속에서는 바람이 되어간다.

사람은 걷기 위해 자주 섬으로 가야 한다. 이 나라에서 자동차의 위협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걸을 수 있는 땅은 섬뿐이다. 나그네에게 섬의 시간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느리다. 걷고 또 걸어도 작은 섬에서는 시간이 남는다. 어느 순간 섬은 온몸을 열고 나그네를 받아준다.

초등학교 뒤에 외연도의 당산 숲이 있다. 3천여 평의 당산은 동백나무, 후박나무, 팽나무, 식나무, 찰피나무, 고로쇠나무, 돈나무 등 수백 년 된 늘 푸른 나무와 잎 지는 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다. 이 숲의 주인은 산신이 아니다. 마을 사람들은 옛날 이 섬으로 망명했다고 전해지는 중국의 한 장군을 신으로 모셨다. 사당의 주인은 한고조 유방에게 패한 전횡 장군이다.

외연도에서 남으로 15km 떨어진 군산의 어청도 사람들은 어청도를 전횡의 섬이라 여긴다. 중국의 즉묵시 앞바다의 전횡도 사람들은 자신의 섬을 전횡의 섬이라 한다. 2천 년도 전에 일어난 사건을 오늘의 우리가 확인할 길은 없다. 섬사람들이 그렇게 믿으면 그렇다. 하지만 전설이란 일정한 현실을 반영한다. 혹 그때 서해바다의 섬들 간에는 오늘날보다 더 자유로운 교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숲에는 만나야 할 나무가 있다. 숲은 정령들의 기운으로 가득하다. 나그네를 숲으로 이끈 것은 동백나무 연리지의 정령이다. 가까이 있는 두 나무의 가지가 하나로 이어져 한 나무가 되는 현상이 연리(連理)다. 연리지, 서로의 촉수를 뻗어 한 몸이 된 사랑나무. 이 숲의 동백나무 연리지는 어떤 이루지 못한 사랑이 나무가 된 것일까.

저 동백나무뿐이겠는가. 이 당산나무 숲 또한 연리의 숲이다. 이종의 연리들. 각기 다른 종의 나무들이지만 수백 년 세월 동안 햇볕과 양분을 함께 나누고 큰 바람을 함께 막아내지 않고서야 어찌 이토록 신령하고 단단한 숲을 이룰 수 있겠는가. 팔을 뻗어 하나가 된 나무들, 뿌리를 붙들어 서로 하나가 된 나무들. 수백 수천 그루의 나무들이 하나의 종이 되고 한 그루의 나무가 되어 버린 당산 숲. 외연도 사랑나무 숲은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으리라.

◎ 외연도

대천항에서 하루 2회 배가 뜬다. 외연도는 대천항에서 서쪽으로 53km 거리에 있다. 충남 보령시에 속한 70여 개의 섬들 중 가장 먼 곳이다. 당산 숲은 저녁과 아침 두 번 가보는 것이 좋다. 느낌이 전혀 다르다. 섬의 식당은 일찍 문을 닫는다. 늦지 않아야 굶지 않는다. 중간 기항지인 호도와 녹도도 가볼 만하다. 2박3일의 시간만 있다면 외연도에서 나오는 길에 녹도를 걷고 호도로 건너가 섬을 다 둘러볼 수 있다.

◎ 가파도
하멜이 표류했던 ‘게파트’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최고점이 20.5m. 언뜻 보면 섬은 물에 잠길 듯이 위태롭지만 사람살이 내력은 선사시대로 이어진다. 제주도 내 180여 기의 고인돌 중 135기가 가파도에 남아 있다. 섬은 모슬포와 마라도의 중간지점에 있다. 마라도보다 두 배 반이 크지만 불과 5km 차이로 최남단이 되지 못한 가파도는 정기 여객선이 하루 두 번 다니는 낙도다.

1653년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과 그의 선박 스페르베르호가 가파도에 표류했다. 네덜란드로 귀국한 하멜이 가파도를 서양 세계에 알렸다. 하멜의 책에는 게파트로 등장한다.

가파도에는 하동과 상동 두 개의 자연부락이 있다. 섬의 번화가는 하동이다. 구멍가게와 초등학교, 보건진료소, 경찰 초소, 해수 담수화 시설, 발전소 등이 있다. 불락코지, 뒤시여, 멸통안, 까마귀돌 등도 하동 주변에 있다. 마을의 공동묘지는 상동에서 하동으로 돌아가는 북쪽 해안가에 있다. 상동 포구 주변으로는 작은이끈여, 평풍덕과 이개덕, 개엄주리코지, 큰옹짓물 등이 있다. 등대는 하동포구 남부르코지에 있다.

해안도로를 따라 경운기가 다니고 작은 트럭 몇 대가 드물게 다닌다. 화물이나 어구를 운반하는 자동차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가 늘 위협적인 것은 아니다. 자동차가 속도를 다스리지 못하고 속도에 지배될 때 흉기가 된다. 이 작은 섬에서는 가속이 붙기도 전에 길이 끝난다. 과속할 수 없는 자동차는 전적으로 섬의 지배 아래서 움직인다. 길은 섬 안의 어느 곳으로도 열려 있으나 섬 밖의 어느 곳으로도 닫혀 있다.

상동포구 선착장 부근에 패총 안내판이 서 있다. 고인돌과 함께 가파도에 살았던 선사인들의 유적이다. 시간은 사람이 먹고 남긴 쓸모없는 조개껍데기들, 쓰레기마저 귀중한 유물로 만드는 신비한 능력이 있다. 시간은 삶을 지배하는 유일신이고 형체를 드러내는 유일한 신이다. 가파도 북쪽 해안 길은 이승의 길이 아니다. 삶의 이면도로에는 묘지들만 가득하다. 묘지의 주인들은 평생 자맥질하던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바다 곁에 누웠다. 타원형의 섬을 한 바퀴 돌아 다시 하동 선착장으로 왔다. 4.2km의 해안선을 느리게 걸어도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나는 늘 바람과 맞서기만 했다. 바람을 타는 것과 바람에 맞서는 것 어느 쪽이 진리일까. 가파도 하동포구 바다와 정면으로 마주 선 집들의 돌담은 튼튼해 보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허술하기 그지없다. 돌담은 구멍까지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을까? 어쩌면 저 숭숭 뚫린 허술한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돌담은 저 구멍으로 바람을 분산시켜 통과시키며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준 것이다.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인 것이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으니 바람이 지나갈 새로운 길을 만들어주고 함께 살아온 것이다.

◎ 가파도

제주 서귀포시 모슬포항에서 하루 두 차례 배가 뜬다. 가파도는 모슬포항에서 서남쪽으로 5.5Km 해상에 위치해 있다. 오전 배로 들어갔다가 오후 배로 나올 수도 있지만 머리맡에서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하룻밤 자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다. 운이 좋으면 가파도 할머니 해녀들이 잡아온 성게나 소라를 싼값에 맛볼 수도 있다.

◎ 두미도
미륵이 머물던 곳의 자생 겹동백

두미도 북구 마을 양지 녘에서 할머니 한 분이 그물 손질을 한다. 할머니는 로프에 붙은 그물을 긁어낸다. 로프를 재활용하기 위해서다. “어디 친척집에 왔소?” “그냥 구경 삼아 왔습니다.” “우리 집에도 오라고 하고 싶지만 며느리도 있고 아들도 있으니 내 맘대로 못합니다.” “할머니 연세는 어찌 되세요?” “육십입니다.” “에이 할머니도 참.” “작년에 칠십이었으니께.” “그럼 재작년에는 팔십이셨겠네요?” “예.” “해마다 나이가 줄어드시는군요?” “그래도 서른 될라믄 아직 멀었습니다.”

할머니는 나이를 거꾸로 드신다. 마침내 0살이 되면 할머니는 이승을 하직하고 왔던 곳으로 돌아가시려는 걸까.

두미도는 경남 통영시에 속한 섬이지만 생활권은 삼천포다. 두미 섬사람들의 핏줄이 삼천포로 이어져 있는 까닭이다. 오일장도, 결혼식도 삼천포로 간다. 나그네가 투숙한 민박집 주인은 두미도를 본래 둔미(屯彌)섬으로 불렀다고 전해준다. 미륵이 머물다 간 섬. 두미도는 예부터 남방불교의 자장권에 있었다. 1937년에 두미도의 감로봉에서 통일신라시대 금동여래입상이 발견된 것은 그 증거다. 불상은 일본으로 반출되었다가 지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폐교된 초등학교를 지나 두미 남구로 간다. 북구에서 남구로 가는 산길은 고적하다. 옛길은 뭍에서 온 여행자들이나 다니는 잊혀진 길이 되었다. 산길의 중간에 있는 마을은 폐촌이다. 섬을 떠나간 사람들에게 이제 더 이상 고향은 없다.

세 개의 고개를 지나서야 두미 남구 마을이다. 절벽에 매달린 꿀벌집처럼 온통 비탈진 언덕에 집들이 들어서 있다. 마을의 초입부터 동백이 지천이다. 보기 드문 흰동백도 꽃이 피었다. 무엇보다 여기서 자생 겹동백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흔히 보는 개량종 겹동백은 꽃이 풍성한 반면 동백 특유의 절조와 단아함이 없다. 하지만 오늘 두미도의 자생 겹동백은 겹동백에 대한 편견을 일시에 날려버린다. 홑동백에 뒤지지 않는 기품과 결기가 느껴진다. 마을 사람들이 산에 자생하는 고목 동백나무 가지를 꺾어다 심었다. 나그네는 자생 겹동백의 자태에 반해 쉬이 발길을 돌릴 수가 없다.

방파제 안 부두에서는 어장을 보고 온 내외가 생선을 분류 중이다. 부부는 삼천포에 살면서 어장 철에만 여자의 친정이 있는 두미도에 들어와 어로를 한다. 광어나 도다리 등은 살리고 물메기(곰치)는 배를 따서 손질한다. 광주리에 담긴 물메기 한 마리, 아직 숨이 붙어 있는지 눈을 끔뻑거린다. 여자는 꿈틀거리는 물메기의 머리에 칼을 꽂아 숨통을 아주 끊어버린다. 등줄기를 따라 칼집을 넣고 내장을 파낸다. 물메기 손질이 끝나자 내외는 활어를 싣고 삼천포로 떠난다. 호위병처럼 갈매기들이 뒤따른다. 늙은 친정어미는 홀로 남아 할복한 물메기들을 널어 말릴 것이다. 그렇게 또 한 세월이 간다.

◎ 두미도

통영항에서 하루 2회 배가 뜬다. 삼천포 오일장 날은 뱃시간이 바뀌니 미리 확인하는 것이 좋다. 두미도는 해안선 11km의 작은 섬이지만 섬의 산은 높다. 산을 좋아한다면 섬 중앙의 천왕산(467m) 등반을 권한다. 바다랑호 항로의 끝인 두미 북구에서 민박을 하고 다음날 산길을 따라 남구로 이동해 남구에서 통영으로 회항하는 것이 무난하다. 통영에서 일박할 경우 ‘다찌’집 문화를 체험해보는 것도 좋다. ‘다찌’집들은 무조건 술이 한 병에 1만원이다. 안주는 온갖 해산물이 무료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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