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진보의 위기가 아니라 미성숙이다

등록 2008-03-07 00:00 수정 2020-05-03 04:25

뒤집기를 통한 ‘진보하지 않는 진보 의식’의 현재, 민노당의 분당은 성장통

▣ 홍세화 한겨레 기획위원

진보신당의 주사위는 던져졌다. 민주노동당의 분당과 관련해 진보의 위기를 말하고 있다. 열악한 진보정치 세력의 지지 기반을 무산시킬 수 있는 위기라고도 말한다. 그러나 이때의 진보는 2004년 총선에서 ‘진보개혁’에 함께 승차해 반짝 약진했던 진보의 위기를 말한다. 그것은 ‘진보개혁’이라고 뭉뚱그린 말을 스스로 받아들이는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진보는 다만 미성숙이며 현실 속에서 단련되고 대중의 삶과 구체적으로 만난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 그런 진보에 위기란 적절치 않다. 이번 분당 사태로 진보정치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사라진다면 그것은 역량이 그 정도임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비정규직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정글화 교육정책, 한반도 대운하 등 시장만능주의 신자유주의에서 별 차이가 없는 한나라당, ‘한나라2당’, ‘한나라3당’의 정당 현실 속에서 넓게 비워진 범위를 채우지 못하는 진보정치 세력의 취약함은 진보의 위기보다 진보의 미성숙에서 온 것이다.

한나라당, 한나라2당, 한나라3당…

이른바 자주파(NL)·평등파(PD)를 낳은 과거의 운동권은 모두 ‘의식화’라는 말을 사용했다. 그러나 이 말은 대중이 의식을 형성하지 않았거나 중립적인 의식을 갖고 있다는 잘못된 전제를 하고 있다. 그래서 “사회적 존재가 의식을 규정한다”라는 명제가 적용될 수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의 황국신민화와 마찬가지로 지배세력은 분단 이래 대중의 의식화를 강력하게 펼쳐나갔다. 대중의 의식 세계는 비어 있는 게 아니라 지배세력이 요구한 의식으로 꽉 차 있다. 존재와 무관하거나 계급적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으로. 그래서 우리 사회의 진보 의식은 희귀하다. 성숙의 과정을 거친 게 아니라, 대부분 ‘뒤집기’를 통한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화 과정에서 제도 교육과 대중매체를 통해 흡수해 어느 시점까지 형성한 의식에 의문을 던지게 한 특별한 계기를 갖게 되고 그 의식을 반전시켜 갖는 진보 의식이다. 실현 가능성이나 적합성과 씨름하는 등 성숙 과정이 아닌 뒤집기를 통한 진보 의식이므로 미성숙인 채로 머물기 쉽다. 당연히 성숙 과정이 필요한데 바로 뒤집기를 통해 갖게 된 진보 의식이라는 점 때문에 ‘진보하지 않는 진보 의식’에 머문다. 지배세력이 주입한 의식을 벗어냈을 뿐, 변화하는 사회현실 속에서 끊임없이 진보하는 진보 의식, 현실과 대중 속에서 검증한 의식이 아님에도 이미 완성된 진보 의식을 획득한 양 자만에 빠지기도 한다. 민주노동당이 정파연합당에 머무르고 학습과 토론이 실종된 채 정파 간 다툼을 정치 행위인 양 일상화하게 된 배경 중 하나다.

북한 체제를 바라보는 시각은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와 그 ‘뒤집기’가 우리에게 어떤 함정에 빠지게 하는지 알게 해주는 적절한 예다. 사회구성원은 지배세력이 장악한 의식 형성 장치를 통해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거의 ‘반북’에 가까운 의식을 형성한다. 나중에 현대사를 읽을 기회를 가진 일부 구성원이 일제 부역 세력 청산과 대미 관계 등에서 남한의 역대 지배세력과 차별성을 보인 북한을 알게 되면서 북한에 대한 시각을 급반전시킨다. 이를테면 지배세력에 의한 체계적인 의식화와 일부 구성원의 ‘뒤집기’는 북한 권력을 대화와 협상 대상의 실체로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정치사회 체제로서 비판 대상으로 바라볼 줄 아는 구성원의 폭을 양쪽에서 협공해 좁히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그 폭을 확대했어야 한 민주노동당이 오히려 그 틀에 갇힌 것도 진보 의식의 미성숙 탓이라 해야 할 것이다.

진보의 미성숙은 곧 민주주의의 미성숙

‘지배세력에 의한 의식화-뒤집기’의 관계는 대중과 진보 사이의 소통을 거의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대중과 소통하기 어려운 진보는 ‘대중 속으로’를 말하지만 실제로는 대중을 피하고 자기들만의 세계에 빠진다. 특히 시민의식조차 형성되지 않은 우리 사회의 노동자 의식은 미성숙 그 자체라고 말해야 한다. 일부 노동자가 ‘뒤집기’를 통해 형성한 노동자 의식도 일상성을 획득한 노동자 의식이 아니라 의식적인 노동자 의식에 머문 경우가 대부분이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응에서 그 실체와 한계가 드러났듯이, 노동자 간 단결과 연대라는 가치는 물신주의 가치관에의 투항과 함께 ‘투쟁’이란 구호 속에서 덧없이 사라지고 있다. 단결과 연대가 사라진 현장에서 노동 권력은 책임과 결과가 따르지 않는 ‘투쟁’으로 자신을 보위하는 중이다. 이처럼 미성숙한 진보 역량 앞에서 미성숙한 진보는 사회 모순을 한꺼번에 해결하고 싶은 조급증과 서민 대중이 아닌 권력과 자신을 일치시키는 권력 의지로 ‘자아팽창증’에 걸려 사회주의혁명과 노동자계급 해방의 이념 속에 자신을 가두기도 하고, 사회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평가하면서도 정작 대중 속에서 대중과 소통하는, 어려운 길에는 선뜻 동참하지 않는다.

진보의 미성숙은 곧 민주주의의 미성숙이다. ‘20:80으로 양극화된 사회’는 분명 민주주의와 모순이다. 하지만 사회 양극화는 서민 대중과 노동자들의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과 함께 더욱 심화될 전망이고, 교육에 의한 신분계급화까지 관철될 판이다.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사회귀족 체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파업 농성에 참여한 이랜드그룹의 어머니 노동자들 몇 분에게 짓궂은 질문 두 가지를 했다. 파업에 들어가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파업 당사자가 되기는커녕 노조 가입조차 상상하지 못했던 분들이다. 내가 던진 질문은 “하루 8시간 꼬박 서서 일해 받은 월급 80만원의 용처와 지금까지 어느 정당에 투표했느냐”라는 것이었다. 어려운 살림과 자녀 사교육비에 보태기 위해서라는 첫 질문에 대한 답변보다 둘째 질문에 대한 답변을 듣기가 더 어려웠다. 무척 겸연쩍어했는데, 한참 뒤 얻은 답변에 ‘당연히’ 한나라당이 가장 많았고 민주노동당에 투표한 사람은 없었다. 그중 한 분이 이런 말을 했다. “정작 나에게 일이 닥치니까 세상이 조금 보이는 것 같아요.” 그 말에 다른 분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에게 일이 닥치기 전에 진보는 어디에 있었나?

진보여, 대중 속으로

다시 강조하고 싶다. 우리가 바라는 사회를 미리 그리기보다는 지금 여기의 고통과 불행, 불평등을 끊임없이 줄여나가는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사회가 열릴 것이다. 각 지역과 각 부문에서 ‘대중 속으로’는 진보의 성숙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문화교육 공간으로서 ‘민중의 집’을 건설하는 것도 하나의 예가 될 것이다.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은 자아상실의 시대에 더욱 강고하게 관철된다. 존재와 관계가 마구 파괴되는, 오로지 경제동물의 조건반사적 행위로 다이내믹한 사회다. 자아와 가치의 상실 시대, 더욱 대중의 삶에 밀착해 실천하면서 대중과 더불어 진보하는 성숙한 진보가 요구되고 있다. 민주노동당 분당은 분열이라기보다 성숙통이고 그래야만 한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