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검찰 수사 결과 복사판 내놓고 퇴장, 숱한 의혹들은 풀리지 않아</font>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비록 너무나 짧은 수사 기간이지만 우리가 의도했던 ‘충분한 조사’의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성했다는 자평을 조심스럽게 해본다. 우리가 의도했던 ‘진실 발견과 의혹 해소’라는 최종 목적에 만족할 만한 결실을 거뒀다는 보고를 드린다.” 지난 2월21일 정호영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이명박의 주가조작 등 범죄 혐의 진상규명’ 특별검사는 오전 10시부터 정확히 40분 동안 수사 결과 발표문을 또박또박 읽어나갔다. 그의 입에선 일찍이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브랜드가 돼버린 “선진화”란 단어도 섞여 나왔다. 역대 특검 중 최단 기간인 36일 동안 수사를 해온 특검팀의 결론은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주가조작 등 BBK 관련 의혹 △도곡동 땅, (주)다스 주식 등 차명소유 의혹 △상암DMC 특혜분양 의혹에 “관여하거나 공모한 사실이 전혀 없다”는 게다. 기실 특검팀이 2월16일 삼청각에서 이 대통령과 꼬리곰탕을 먹으면서, 3시간 동안 출장조사를 했다는 게 알려지면서 결론은 빤히 예상됐다.
도곡동 땅만 검찰과 달라
수사 발표 당일 특검팀이 위치한 지하철 2호선 선릉 전철역 4번 출구 옆 한신인터밸리 빌딩 앞에선 밀행 스님이 단식을 하고 있었다. 그는 “정호영 특검은 역사와 국민에게 죄인이 되지 말라!”고 외쳤다. 한편에선 “대질심문 없는 특검수사 원천무효”란 피켓을 들고 1인 시위를 하는 여성이 눈에 띄었고, 맞은편 도로가엔 친일청산운동본부란 단체가 걸어놓은 현수막이 눈에 들어왔다. “이명박 소환, 대질 없는 특검 수사 무효!”
하지만 다음날치 는 1면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 대한민국 우롱”이란 제목으로 수사 결과를 보도했다. 이는 문강배 특검보가 기자들에게 한 말로, ‘검은 머리 외국인’은 김경준씨를 지칭한다.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의원총회에서 “국력을 소모시키고 이명박 당선인의 발목을 잡은 특검 날치기 세력들은 국민에게 깊이 사죄하고 정계를 영원히 떠나야 할 것”이라고 별렀다.
‘의혹 해소’라는 정호영 특검의 자평과 달리, 의혹은 여전히 남았다. 수사 결과를 놓고 여전히 찬반으로 갈렸다. 지난해 12월19일 대선 직전 “BBK를 내가 창업했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육성이 담긴 이른바 ‘광운대 동영상’에 대한 특검팀의 설명은 곤궁해 보인다. 특검팀은 “김경준을 홍보할 목적이었다”는 이 당선자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한때 이 당선자 스스로 “BBK를 창업했다”고 여러 차례 언론에 밝혔고, BBK와 관련이 있는 증거들은 숱하다. 과거 언론의 ‘오보’였다고 한 이 당선자 쪽 해명이, 특검의 수사 결과 이제 ‘홍보’로 바뀌었다.
지난해 12월5일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 새로 나온 가장 큰 증거에 대한 특검의 판단은 이렇게 ‘홍보용’ 멘트로 결론났다. 나머지 것들에 대한 판단은 검찰 수사 결과의 복사판이다. 딱 한 가지 예외가 있다. 바로 ‘BBK 사건’의 출발 지점인 ‘도곡동 땅’이다. 특검은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었다. 특검의 결론은 한마디로 “이상은 명의 지분은 이상은의 소유인 것으로 판단된다”는 게다. 지난해 8월13일 검찰의 결론은 “도곡동 땅이 (이명박 당선자의) 맏형 이상은씨가 아닌 제3자의 것으로 판단된다”는 거였다. 검찰과 다른 특검의 ‘성과’는 몇 가지 허점으로 되레 불신과 의혹을 더 키웠다.
특검팀은 이상은씨의 도곡동 땅 매입 경위 및 자금 출처와 관련해 1985년 이씨가 젖소를 팔고 두부를 수출해 자산을 마련했다는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난데없이 젖소값이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이씨가 제출한 소명자료엔 1985년 9월 젖소 가격이 한 마리당 130만~240만원으로 기록돼 있다. 특검팀은 “이런 가격으로 100여 마리를 팔아 2억5천만원의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소값이 정확히 얼마이고, 실제 팔았는지 등 “의혹 제기 이후 지금까지 15년여 만에 제출된 자료의 진정성과 신빙성이 의문”(민변)이다.
김만제 전 회장 진술 신뢰할 수 있나
특검팀은 또 이상은씨의 돈 심부름을 맡은 이아무개씨의 지난 2006년부터 2007년까지 최근 1년 동안의 위치를 추적하고, 도곡동 땅을 매입한 포스코의 김만제 전 회장을 조사해봤더니 도곡동 땅이 이명박 당선자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하지만 도곡동 땅 매각 대금 관리자의 행보를 제한적으로 조사하고, 말을 바꾼 김만제 전 회장의 진술을 쉽게 신뢰하기 어렵다. 김 전 회장은 1990년대 후반 감사원 조사에서, 도곡동 땅이 이명박 당선자 것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그는 “당시에는 어차피 검찰에서 다시 조사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신중하게 답변하지 않았고, 답변서를 작성하는 직원이 의미를 왜곡시켰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특검의 결론과 달리 1993년 국회의원 재산 공개 당시, 언론은 이런 기록을 남겼다. “(이명박 당선자가) 85년 현대건설 사장 재직 때 구입한 도곡동 165번지 일대 150억 상당의 땅을 처남 김재정 명의로 은닉한 사실이 밝혀졌다.” 또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특위가 이런 ‘사실’을 바탕으로 (이 당선자에게) ‘경고’ 조치를 검토했음도 나와 있다. 특검팀은 도곡동 땅 원소유자를 소환조사하지 않은 미진함을 밝히면서도, 결론은 확정적으로 발표했다.
특검을 끝으로 수사기관의 ‘BBK 사건’ 수사는 마지막이 될 게다. 수가 결과가 진실이라고 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다고 보는 사람이나, 이제 마침표를 찍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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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변 “우리는 수용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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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특검의 수사 결과 발표가 나오자, 참여연대 등 다른 14개 시민사회단체와 공동으로 성명을 냈다. 성명은 “특검의 수사 의지 및 공정성, 타당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바, 우리는 특검 수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으며, 국민적 의혹에 대한 당선인의 정치적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천명한다”며, 특검 수사의 한계와 문제점을 조목조목 짚었다. 법률 전문가 단체인 민변이 중심이 돼 작성한 이 성명을 간추려 싣는다.
1. 특검은 김경준의 진술이 신빙성, 일관성이 없다 하더라도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최소한 당사자들 간 대질 조사도 행하지 않았다. 당선인과 식사를 겸한 불과 3시간 동안의 방문조사를 통해 피내사자 신분의 진술 조서를 작성했다는 것은 그 절차나 시간, 방식 등에 있어서 당선인에 대한 의혹을 제대로 수사하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2. 광운대 동영상 이외에도 당선인이 BBK 소유자임을 추론할 수 있는 2000년 당시 등 여러 언론과의 인터뷰나 명함, e뱅크코리아 및 MAF 홍보책자에 회장으로 소개된 사실이 있다. BBK, LKe뱅크, EBK 정관 등에 ‘발기인인 이명박과 김경준이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도록 기재돼 있으며, 오랜 미국 생활을 한 34살의 젊은 김경준이 자력만으로 (BBK 투자자들한테서) 712억원을 모았다는 건 금융 현실이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다. BBK투자자인 (주)심텍이 당선인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던 점, 다스만 (BBK 투자금) 190억원 중 140억원을 반환받지 못한 정황에 비추어보면, 설령 BBK가 당선인의 소유가 아니더라도, 712억원을 모으는 과정 및 반환 과정에 당선인의 역할은 규명했어야 한다.
3. 특검이 밝힌 바대로 BBK가 김경준 개인의 것이라 하더라도, 여전히 동업자 관계였던 당선인과 김경준이 어떤 동기, 경로로 만나 어떤 역할 분담 아래 동업을 시작했으며 동업 과정에서 어떻게 자금을 집행했는지 봐야 한다. 30억원을 투자한 당선인이 2001년 4월 LKe뱅크 대표이사직을 사임할 당시 동업자 간에 어떻게 처리하기로 했는지, 왜 헤어졌는지 그 동업 관계 성립부터 해소 과정 전반을 규명했어야 한다.
4. 당선인이 LKe 대표이사직에 있던 동업 기간과 검찰이 김경준이 주가조작을 했다고 밝힌 2000년 12월부터 2001년 12월까지 상당 기간이 겹쳐져 있다. 또 옵셔널벤처스 법인 자금 319억원 중 169억원이 BBK 투자자들에게 반환되는 점 등에 비춰, 이와 관련된 당선인에 대한 의혹을 소상히 밝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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