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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억원 ‘행복한 눈물’ 세금은 0원!

등록 2008-02-15 00:00 수정 2020-05-03 04:25

<font color="darkblue"> 양도세 조항 5차례 연기 뒤 2003년 과세 없앤 수정안 통과… 상속·증여세 실효성 높이는 것이 먼저</font>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font color="#00847C">[삼성 사태 쟁점]</font>

‘삼성 비자금 사태’ 뒤 불거진 고가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과세 문제가 1월29일 한국재정학회 정책세미나에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선진국 진입을 위한 우리나라 세제개편 방안’을 주제로 한 이날 세미나에서 유경문 서경대 교수는 “세법상으로는 상속이나 증여로 충분히 과세할 수 있으나 현실적으로 포착하기 어려운 재산”의 대표적인 사례로 고가의 미술품, 골동품을 꼽고, “(과세) 소멸시효 기간을 두지 말고 상속·증여 재산으로 포착 또는 인지된 시점에서 평가해 과세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경부도 ‘깜짝 놀란’ 국회 개정안

유 교수의 지적대로 미술품, 골동품에도 상속·증여세를 매기게 돼 있지만, 등록 재산인 토지나 건물과 달리 자진 신고하지 않으면 과세 당국에서 보유 사실을 파악할 길이 마땅히 없다. 따라서 실제론 과세 대상에서 빠져 있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상태다. 더욱이 세법상 미술품, 골동품에 양도소득세는 아예 부과하지 않게 돼 있다. 이 때문에 미술품, 골동품은 세금을 피하는 유력한 상속·증여 수단으로 꼽혀왔다.

예컨대 이건희 삼성 회장의 부인 홍라희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에 휩싸인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같은 고가의 미술품을 사고 팔거나 누구에게 증여하더라도 세금을 매기기 어렵다. 만일 홍씨가 자녀들에게 물려준다면 증여 대상이 되지만, 이는 과세 당국에서 거래 사실을 미리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는, 현실적으로 어려운 전제를 바탕에 깔고 있다. 홍라희씨의 미술품 거래를 대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2월1일 삼성 특검팀에 공개한 은 2002년 11월 구입 당시 90억원에서 지금은 200억원대로 값이 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7년여 만에 약 100억원의 시세 차익을 거둔 셈이며, 소득세 체계를 감안할 때 절세 효과는 30억~4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상속·증여세의 실효성 문제는 양도세 과세 근거의 공백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를 통해 거래 기록을 쌓아나가야 상속·증여의 과세 근거도 내실 있게 구축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과세 당국에선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과세망 정상화는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 기반을 갖추는 데서부터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양도소득세 부과 근거가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정부는 지난 1990년에 미술품, 골동품에 대해서도 양도세를 매기는 조항을 세법에 마련한 적이 있다. 이는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한 부동산·주식 시장의 거품 분위기라는 당시 상황을 반영한 조처였다. 재정경제부 소득세제과의 안택순 과장은 “3저 호황의 끝물에 부동산 투기 시장에서 생겨난 시중 부동자금이 미술품 시장으로 대거 옮아간다는 얘기가 집중적으로 나돌던 때였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흥미롭게도 이런 양도세 부과 조항은 단 한 차례도 시행되지 못하고 법전 속에만 머물렀다. 1990년 법을 만들며 이듬해부터 시행하기로 했다가 1993년으로 1차 유예된 뒤 2003년까지 모두 다섯 차례나 시행이 미뤄졌다. 미술시장 위축을 명분으로 든 국내 미술계의 반발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법규의 내용은 미술계의 부담을 줄여주는 쪽으로 조금씩 변질됐다. 급기야 국회 재경위는 2003년에 애초 재경부 방침에서 크게 물러선 개정안을 내놓았다.

정부 방침이 국회 심의 과정에서 후퇴하는 일은 흔하지만, 재경위 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된 뒤 벌어진 일은 상상을 초월했다. 당시 법 개정 실무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던 재경부 관계자도 “깜짝 놀랐다”고 회고할 정도다. 깜짝 놀랄 일의 발단을 제공한 이는 정병국 한나라당 의원이었다. 정 의원은 재경위 의결을 거친 개정안의 통과가 점쳐지고 있던 상황에서 과세 근거를 아예 없애는 수정안을 본회의에 제출했다. 그는 “장기간의 불황으로 미술시장이 고사 직전에 처해 있어 세금 부과보다는 보호 육성책이 더 시급하다”는 이유를 들었다.

당시 재경부 쪽은 정 의원 안의 부결을 예상했다가 허를 찔렸다. 수정안에 대한 표결 결과 찬성 143표, 반대 29표, 기권 8표였다.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부과 근거가 법전 속에서나마 명맥을 이어오다 완전히 자취를 감추는 순간이었다.

화랑협회 “10년 숙원을 풀었다”

양도세 부과 근거를 삭제한 당시 국회 본회의장의 ‘이변’이 미술계의 ‘로비’ 때문이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한국미술협회, 한국화랑협회, 한국고미술협회 등 미술 관련 단체들은 2003년부터 ‘미술품 양도소득세 폐지를 위한 연대 모임’을 결성해 100만인 서명 운동과 세미나 개최, 관련 부처에 대한 탄원서 제출을 추진하고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한 1대1 접촉과 설득 작업을 벌였다. 정병국 의원의 수정안 제출도 이와 밀접하게 얽혀 있었다. 정 의원 안은 애초 국회 재경위 심의 과정에서 폐기된 것이었음에도 미술계의 설득 작업에 힘입어 국회의원 171명의 지지 서명을 받아내 이례적으로 본회의에서 부활했던 것이다. 정 의원의 수정안 통과일인 12월18일 밤에 열린 화랑협회 송년회에서는 “10년 숙원을 풀었다”는 환호와 축배가 터졌다.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양도세 부과 근거가 사라진 지 4년 만에 터져나온 삼성 비자금 사태는 당시의 면세 조처가 미술시장의 장기적 발전에 거름이었는지 의문을 품게 한다. 기업 비자금을 동원해 초고가 미술품을 사고팔고, 자손에게 물려주는 행태는 극소수 재벌가에서 벌어지고 있음에도 미술시장 전체가 불법과 탈법의 ‘오물 이미지’를 공동으로 뒤집어쓰고 있다는 점에서다.

최영태 회계사는 “일반인들까지 참여해 작품을 사고파는 시장을 만들려면 거래 과정이 투명해져야 하고, 투명해지려면 과세를 통해 (거래) 자료를 갖추도록 해야 하는데, 2003년의 법 개정은 부정직한 돈을 증여할 길을 터놓은 것”이었다며 “정상적인 시장을 통해 매매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장애물로 작용했다”고 말했다. 안택순 과장은 “미술품, 골동품에 대한 상속·증여세를 법대로 과세하려면 그 앞 단계에서 양도세 과세를 통해 보유 내역을 파악해야 한다”며 양도세 부과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일반 재화와 다른 미술품의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는 미술계의 지적에 대해선 “창작 예술품에 대해선 부가가치세를 물리지 않는 등 여러 혜택을 이미 주고 있다”고 말했다.

소멸시효 없는 과세 어떤가

미술계의 반응은 이런 당위론과 여전히 멀어 보인다. 화랑협회 회장을 역임한 노승진 노화랑 대표는 “국내 화랑가에선 작품 거래 때 등기부등본에 해당하는 거래 문서 없이 작품을 사고파는 경우가 여전히 다수”라며 “세무 당국이 과세를 하려고 해도 정확한 원가를 산정할 근거를 구하는 게 어렵다”고 말했다. 양도세 부과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유경문 교수는 이미 과세 근거가 마련돼 있는 상속·증여세의 실효성을 높이는 데서 문제를 풀어가자고 제안한다. 예컨대 미술품, 골동품처럼 평가 가능한 재산임에도 상속·증여 시점에서 신고 또는 포착되지 않아 세금을 매기지 못했다면, 과세 소멸시효 기간(10년)을 두지 말고 상속·증여 사실을 알아낸 시점에서 평가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이다. 이럴 경우 미술품, 골동품을 양도할 때 세무 당국에 알리지 않을 인센티브가 훨씬 줄어든다. 예를 들어 20년 전에 1억원짜리이던 미술품이 현재 50억원으로 올랐다면, 애초에 세금을 내는 게 훨씬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든 세무 당국에서 포착하기 어렵고 원가를 산정해내기 어렵다는 미술계 쪽의 지적에 대해선 “그런 사정은 음식점이나 중소사업자 또한 마찬가지”라고 밝혀 공평 과세의 예외로 치부될 수 없음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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