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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사태 쟁점] 광고로 ‘한겨레’를 통제하려는가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서해안 원유 유출 대국민 사과 광고 두고도 ‘계산’한 ‘삼성중공업 광고 사태’

▣ 장호순 교수·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언론의 자유는 국민의 알 권리 충족과 민주주의 수호에 필수적인 장치이다. 그러나 언론의 자유는 끊임없이 위협을 받는다. 국민의 귀와 눈을 가리고 민주주의를 왜곡하려는 세력들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있지만 언론의 자유의 위협 요인은 상존하고 있고, 오히려 더욱 심화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단지 과거 군사독재 시절처럼 눈에 드러나지 않고 있을 뿐이다. 권력의 언론 통제가 약화되고 대신 자본의 통제가 강화됐다. 삼성중공업이 서해안 원유 유출 대국민 사과 광고를 1월22일치 주요 일간지에 게재하면서 유일하게 만 제외한 것은 그 극명한 예다.

‘있는 자의 언론사’끼리 모여 담합

권력의 언론 통제는 일제 식민지 시절에 특히 심했다. 3·1 독립운동 이후 일제는 조선인에게 마지못해 신문 발행을 허용했지만, 발행 지역을 서울로 제한했다. 그 결과 서울에서만 와 등 3개 신문이 창간됐다. 반면 한반도에 진출한 일본인들에게는 전국 각지에서 무려 30여 개의 신문을 발행할 수 있게 했다. 당시 조선인 인구는 2천만 명이고 한반도 내 거주 일본인은 그 100분의 1인 20만 명에 불과했다.

해방 뒤 언론의 자유가 점차 신장됐지만 박정희 군사정권 들어 가혹한 통제가 다시 시작됐다. 박 정권은 쿠데타 직후 사이비 언론 정화 명목으로 90%에 가까운 언론사를 폐쇄했고, 조용수 사장을 간첩 누명을 씌워 처형했다. 조폭식으로 언론에 본때를 보여, 권력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언론의 싹을 잘라버리려는 시도였다. 권력의 언론 통제는 전두환 정권에 이르러 정점에 올랐다. 일제 시절의 1도1사제를 부활시키고, 언론기본법, 보도지침 등을 통해 언론 보도 내용을 일일이 간섭하고 조작했다.

군사정권 시절 언론의 자유는 가장 열악했지만, 언론기업의 수익성은 최고 절정에 올랐다. 자본에 순종하는 언론으로 변질된 덕분이었다. 권력은 언론을 직접 조종하고 간섭할 필요 없이 자본의 적절한 통제를 통해 언론의 비판과 감시 기능을 차단할 수 있었다.

자본을 통한 언론 자유의 침해는 크게 세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첫 번째는 시장진입 제한을 적용해 언론기업에 적절한 이윤 보장을 해주는 것이다. 제도적으로는, 방송의 경우 허가권을 활용했고, 신문에는 ‘시설 기준’을 적용했다. 일정한 규모의 윤전기를 소유하지 못하면 신문 발행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값비싼 외제 윤전기를 구입할 정도의 경제력과 정치적 배경이 없다면 신문시장 진입은 불가능했다. 시장진입 제한은 일단 시장에 진입한 언론들에는 큰 혜택이었다. 1960년부터 1988년까지 신문시장은 연평균 10~20% 성장했지만 그 기간에 새로 생긴 종합일간지는 3개에 불과했다. 신문발행 허가권만 확보하면 수익은 저절로 보장되는 상황이었다. 특히 경제성장에 힘입은 광고시장은 연평균 30%의 높은 성장률을 보였고, 기업들은 신문지면 광고를 확보하기 위해 웃돈까지 얹어주어야 했다.

시장진입권을 획득한 언론사들은 1962년 한국신문발행인협회를 결성하고 카르텔 체제를 시작했다. 신문의 발행 면수, 구독료, 휴간일, 광고 단가 등을 담합해서 결정했다. 모든 신문의 구독료가 동일했고, 구독료 인상 날짜도 함께 맞추었고, 광고 단가도 동일하게 책정했다. 시장독과점 혜택 외에도 군사정권이 신문사들에 제공한 각종 재정 지원도 듬뿍 누렸다. 외국 차관을 통해 윤전기 구입을 하도록 했고, 잡지 발행, 공연사업 등의 특혜를 주었다. 권력의 재정적 지원을 스스로 포기하는 무모한 언론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덕분에 언론사는 고수익 기업이 되었고, 언론사 직원은 ‘언론고시’를 통해 입사하는 고임금 직종이 되었다.

보복형 광고 거부, 저항할 수도 없어

자본에 의한 언론 통제의 또 다른 유형은 소유자본을 통한 통제다. 총독부 시절 독과점 체제에서 성장한 와 는 군사정권을 거치면서 ‘언론족벌’ 체제를 갖추었다. 이를 견제하기 위해 군사정권은 재벌의 언론 소유를 허용했고, 재벌기업이 앞다투어 신문시장에 진출했다(박정희 정권 시절, 재벌기업은 방송에도 진출했지만 전두환 정권은 이를 허용하지 않았다). 삼성은 , 현대는 , 롯데는 , 한화는 등 재벌의 언론 소유가 유행인 적도 있었다. 신문을 소유한 가문들은 신문기업을 통해 얻는 이윤으로 만족하지 않고, 신문의 영향력을 이용해 자신들의 정치·문화·사회적 입지를 공고하게 했다. 신문을 소유한 재벌과 대기업들은 신문을 통해 이윤을 얻으려 하기보다는 모기업의 홍보 창구와 타 언론의 비판 기사에 대한 대응 수단으로 활용했다.

자본에 의한 언론 통제는 광고를 통해서도 이뤄진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의 백지 광고 사건이다. 당시 기자들이 군사독재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을 기사화하기 시작하자, 박정희 정권은 광고주들에게 압력을 가해 광고를 철회하도록 했고, 광고 지면은 백지 상태로 채워졌다. 대신 민주언론을 열망하는 국민들의 지원광고로 광고면이 채워졌다. 그러나 경영적자를 우려한 사주는 결국 4개월 만에 박 정권에 백기를 들었고 그에 반대하는 기자들을 해고했다. 그 대가로 하단부는 다시 기업광고로 채워졌지만, 신문은 더 이상 예전의 그 신문이 아니었다. 그 당시 해고된 동아투위 기자들의 복직과 명예회복 요구를 는 아직도 외면하고 있다.

1987년 민주항쟁 이후, 시장진입 제한과 소유자본에 의한 언론 통제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거의 해소됐다. 시설기준 제도는 크게 완화됐는데, 언론사의 친족 소유, 교차 소유, 대기업의 언론 소유 등을 제한한 덕분이다. 그러나 광고를 통한 통제는 현재진행형일 뿐만 아니라 더욱 심화되고 있다. 과도한 시장경쟁과 인터넷 확산 등으로 인해 신문기업의 수익성이 크게 악화되면서 광고의존도가 더욱 높아졌기 때문이다. 신문사들은 전체 수입의 80% 이상을 광고에 의존하고 있다. 특히 전국지의 경우, 전국 단위 대형 광고를 실을 수밖에 없어, 재벌과 대기업 광고의 의존 비율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삼성중공업 광고 사태를 통해 나타나듯, 광고주가 특정 언론에 보복형 광고 거부를 해도 이에 대해 효과적으로 저항할 수 없는 지경이 되고 만 것이다.

특정 기업이 자기가 번 돈으로 광고를 주고 말고 하는 것에 왈가왈부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광고 집행을 통해 보도에 영향을 끼치려는 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결국 대형 광고주들이 자신에게 불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에는 광고를 주지 않고, 자신에게 유리한 보도를 하는 언론에만 광고를 줘 보도를 통제하겠다는 발상이다.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킨 거대 기업이 자본력으로 여론을 통제한다면 민주주의와 경제 체제 모두에 위협이 된다. 국민들이 기업과 경제와 관련된 정확한 진실을 입수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언론이 기업에 유리한 보도만 한다면

언론의 경제적 자립과 독립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언론의 자유는 구호로만 그칠 뿐이다. 권력에 대한 저항과 투쟁을 통해 얻은 언론의 자유가 퇴색되지 않으려면 자본으로의 독립과 자유도 확보돼야 한다. 그러나 그 전망은 밝지 않다. 자본의 오만과 횡포가 더욱 심해지고 있고, 언론을 통한 감시와 견제는 더욱 힘든 상황이다. 자본에 포섭되지 않고 언론이 자립 경영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시장구조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다. ‘삼성중공업 광고 사태’는 와 삼성만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에 자본이 부당한 영향력을 행사한 중요한 사례다. 국가·사회적으로 이런 문제에 대처할 어떤 제도적 기반이 필요한지, 학계·시민단체·언론이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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