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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금융 위기] 가장 큰 피해자는 유색인종

등록 2008-02-01 00:00 수정 2020-05-03 04:25

미국 흑인·라틴계의 서브프라임 피해액 1640억~2130억달러에 이를 듯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내 집 마련은 ‘꿈’이다. 경제적 성취와 안정을 상징한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의 뿌리에도 그 ‘꿈’이 자리를 잡고 있다. 걷잡을 수 없이 번져가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장으로 세계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허망한 ‘꿈’을 부여잡으려 했던 저소득층의 고통도 갈수록 커지고 있다. 위기는 곧잘 감춰진 진실의 이면을 드러내준다. 이번 사태의 진앙인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상당수가 우량 대출 가능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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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론 인종 문제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브프라임 사태는 기실 미국의 인종차별적인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미 민간 연구단체 ‘공정경제연합’(UFE)과 ‘정책연구소’(IPS)는 지난 1월15일 ‘차압당한 꿈: 2008년 아메리칸드림의 현실’이란 제목의 보고서를 내놨다. 두 단체는 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 대출자의 절대다수는 유색인종이며,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한 최대의 피해자도 바로 저소득 유색인종”이라고 지적했다. 보고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자.

미 통계청의 자료를 보면, 3억여 미국인 가운데 절대다수인 66.4%가 백인이다. 흑인과 라틴계가 차지하는 비율은 각각 13.4%와 14.8%에 불과하다. 하지만 두 단체가 보스턴 등 5개 대도시 주택 소유자의 대출 현황을 분석해보니, 인구 비율과는 사뭇 다른 결과가 나왔다. 주택을 소유한 흑인의 41%와 라틴계의 32.8%가 고이율 비우량 대출자로 나타난 반면, 백인의 경우엔 그 비율이 6.9%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지난해 펴낸 비슷한 내용의 보고서에서도 확인된 바다. 두 단체는 FRB의 보고서 내용을 따 “뉴욕·시카고·보스턴 등 6개 대도시에 사는 흑인과 라틴계가 고이율 비우량 대출을 받을 가능성은 백인보다 각각 3.8배와 3.6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전했다. 금용 소비자를 위한 시민단체인 ‘책임대출센터’(CRL)의 마이크 캘훈 회장도 지난해 12월19일 펴낸 서브프라임 사태 관련 보고서에서 “주택담보 대출을 받은 흑인 가운데 55%가 고이율 비우량 대출을 받았지만, 백인은 전체 대출의 17%만이 서브프라임”이라고 지적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서브프라임 대출자 가운데 상당수가 저이율 우량 대출을 받을 수 있는 신용등급을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은 지난해 12월3일치 기사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가 불을 뿜기 시작한 지난 2000년 이후 최근까지 고금리 비우량 대출된 2조5천억달러를 분석해보니, 상당수 우량 대출 가능자가 서브프라임 업체의 공세적 마케팅과 금융정보 부족 등의 이유로 비우량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서브프라임 대출이 절정에 이른 지난 2005년의 경우, 전체 비우량 대출자의 55%가 우량 대출이 가능한 신용등급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 수치는 2006년 61%까지 치솟았다”고 덧붙였다.

차압당한 아메리칸 드림

1990년대 초반 자리를 잡기 시작한 서브프라임 시장은 이후 급격한 성장을 이어가며, 지난 2006년엔 미국 전체 대출시장의 20.1%를 장악했다. 대출 총액도 연간 350억달러 규모에서 6650억달러 규모로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브프라임 부실화로 인해 미 저소득층이 입게 될 피해 규모도 그에 비례해 늘어났을 것임은 자명하다. 두 단체는 보고서에서 “지난 8년간 서브프라임이 부실화하면서 흑인·라틴계 미국인이 날려버린 자산 총액은 1640억~213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미 상하 양원 합동경제위원회(JEC)는 지난해 10월 내놓은 서브프라임 사태의 파장을 다룬 보고서에서 “이번 사태로 압류를 당하게 될 주택은 130만 채에 이를 것이며, 이로 인한 자산 손실이 2009년까지 103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단체가 보고서를 펴낸 1월15일은 미국 인권운동의 상징인 마틴 루서 킹 목사가 태어난 지 79주년이 되는 날이다. 1963년 8월28일 킹 목사는 워싱턴에서 열린 인권집회에서 “내겐 꿈이 있다”는 유명한 연설을 했다. 보고서는 “(서브프라임 사태의 여파로) 킹 목사의 꿈은 차압을 당했다”고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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