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경영의 성역을 깼다는 상징적인 의미 크지만 “10년 전에 이루어졌어야 할 일”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월14일 조준웅 특별검사 수사팀의 압수수색을 당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집무실 ‘승지원’(承志園)은 1985년에 지어졌다. 삼성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으며, 승지원이란 이름에는 삼성의 경영 이념인 사업보국(事業報國)을 잇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전한다.
강원도 최고 적송으로 지은 한옥
한옥에 조예가 깊었던 이병철 회장은 생전에 두 채의 한옥을 남겼다. 1973년 용인자연농원(현 에버랜드)에 들어선 ‘호암장’과 승지원이다. 이 회장이 작고하기 1년 전인 1986년에 펴낸 자서전 (중앙일보사)에는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이 나와 있다. “용인자연농원의 한옥을 지은 지 10여 년 후에 좀더 정교하고 좀더 한국 고유의 건축미를 갖춘 150평 정도의 한옥을 서울 한남동(현 행정구역으로는 이태원동)에 하나 지어 승지원이라 이름 붙였다.” 여기서 보듯 승지원이란 이름은 이병철 회장이 직접 붙인 것인데, 어찌된 일인지 세간에는 이건희 회장이 선대 회장의 유지를 받든다는 뜻을 담아 이름 붙인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승지원 공사 때 도편수(우두머리 목수)를 맡았고, 호암장을 지을 때는 부편수(도편수 바로 아랫자리)로 일했던 신응수 대목장(大木匠·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은 2002년에 펴낸 (김영사)에서 이병철 회장의 한옥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달랐다고 회고했다. 이 회장은 호암장을 짓기 위해 무려 10년 동안이나 강원도에 사람을 파견해 해마다 좋은 소나무가 생산되면 구입해 대구 제일모직 창고에 쌓아놓았다고 한다. 하나같이 멋지고 좋은 적송들이어서 감탄이 절로 나왔다고 신 대목장은 전하고 있다. 승지원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 것이니 이병철 회장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신 대목장에 따르면 승지원 공사 때는 특수 공법이 활용됐다. 기와 부분을 20~30년 간격으로 갈아끼워야 하는 기존 한옥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기와 부분을 어떻게 하면 더 튼튼하게 보완할 수 있을까 궁리하던 설계팀은 일본 도편수에게까지 찾아가 자문을 구했다. 그리고 우리의 전통 방식과는 달리 나무로 덧집을 지어 기와를 받치면 150년도 더 버틸 수 있다는 일본식 공법을 배워와 승지원 기와 공사에 응용했다. 더불어 이 회장의 지시에 의해 1985년 호암장의 지붕 개수 공사도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져 그 틈에 내가 그토록 맘에 걸려 하던 연목(서까래) 부분을 수정할 수 있었다.”
영빈관 겸 집무실로 활용
이병철 회장은 승지원에 기거하며 만년을 보냈으며 여기서 손자들에게 를 가르치기도 했단다.
선대 회장의 타계 직후 삼성그룹 회장 자리에 오른 이건희 회장은 승지원을 물려받아 영빈관 겸 집무실로 활용해왔다. 홍하상씨는 (한국경제신문사, 2003)라는 책에서 승지원을 ‘재계의 안방’으로 평가한다. 이곳의 한옥 안방에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이 여섯 차례나 회동을 하고 제2 이동통신 주도 사업자 선정 문제를 논의하는 등 재계의 중요한 모임이 열렸다는 점에서다.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을 비롯한 세계 유명 경영인들이 이 회장을 만나 협조 방안을 모색한 곳도 승지원이었다.
승지원은 2001년 들어 내부에 최첨단 디지털 시스템을 갖춰 새롭게 탄생했다. 승지원의 지하 집무실에는 위성통신 장비 등이 갖춰져 있고 미래의 주택이라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이 구축돼 있다고 전해진다. 이건희 회장이 업무를 수행하고 지시하거나 처리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는 수준이다. 홍하상씨는 이런 시스템이 미국 시애틀에 있는 마이크로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의 저택을 본뜬 것이라고 말했다. 승지원 설계팀은 그해에 빌 게이츠 회장의 저택을 시공한 회사를 방문해 조언을 받기도 했다고 홍씨는 밝히고 있다.
이건희 회장은 1987년 취임 뒤 주로 승지원에서 그룹 경영을 챙기고 있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 28층에 있는 회장 집무실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이태원동에 있는 자택과 승지원을 오가는 게 이 회장의 일상적인 동선으로 알려져 있다. 삼성그룹의 2인자인 이학수 전략기획실장(부회장)을 비롯해 그룹 핵심 관계자들은 수시로 승지원을 찾아 이 회장에게 현안을 보고한다.
삼성 전략기획실 관계자는 “승지원을 영빈관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주요 거래선들을 만나는 ‘비즈니스 장소’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그룹 28층에서 열리는 수요회(매주 수요일 열리는 사장단회의)는 정기모임으로 윤종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주재하고, 승지원 모임은 비정기적으로 이슈가 생겼을 때 열린다. 예컨대 인텔의 앤디 그로브가 회장 시절 삼성전자로 윤종용 부회장이나 황창규 사장을 찾아오면, 승지원에서 만나 협의를 벌이곤 했다.”
이건희 회장의 취임 뒤 수십 년 동안 그룹의 핵심적인 의사 결정이 이뤄진 곳이어서 삼성 임직원들은 승지원을 ‘삼성 경영의 본산’ 내지 ‘성지’로 여긴다. 이 때문에 삼성 쪽은 승지원에 대한 특검의 압수수색을 당혹감 속에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삼성그룹 본관이나 그룹 계열사에 대한 압수수색은 예상했던 바지만, 승지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설마 했던 일”로 여기고 있었다. 승지원을 압수수색한 것은 그 성과와 관계없이 특검의 강한 수사 의지를 내비친 것이며, 더 이상 성역은 없음을 보여준 것으로 삼성 쪽은 보고 있다. 승지원에 대한 압수수색 다음날 삼성 본관과 이건희 회장의 자택도 압수수색을 당해 이런 관측을 뒷받침했다.
삼성도 법 지배를 따라야 한다는 선언
삼성의 불법·변칙 경영권 세습 문제를 앞장서 제기해온 곽노현 한국방송통신대 교수는 “김용철 변호사,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시민단체 등에서 벌인 여러 다양한 노력들이 특검을 통해 나타난 첫 작품”이라며 “성역을 깼다는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이건희 회장의 승지원 집무실에 대한 압수수색은 사람들의 ‘상상력’ 바깥에 있었다. 범죄 사실을 캐기 위해선 집무실이든 자택이든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유독 삼성 총수여서 상상력 밖에서 성역으로 인정받아왔다. 그걸 깬 거다.”
곽 교수는 “이건희 회장이 압수수색과 소환조사를 당하는 게 이제 상상력 밖에 있지 않고 법의 세계 안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법치주의의 한계를 깼고 법치주의의 확장을 이뤄냈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도 “승지원과 그룹 전략기획실이라는 삼성 심장부에 압수수색을 벌였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라며 “삼성도 법의 지배에 따라야 한다는 선언의 의미”로 평가했다.
이런 상징적인 의미와 달리 특검 압수수색의 실질적인 성과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걸기 어렵다는 분석이 많다. 김용철 변호사가 지난해 10월29일 삼성 비자금 의혹을 양심 고백한 지 석 달 가까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이다. 삼성으로선 충분히 대비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이미 알려진 대로 특검 수사팀이 승지원이나 삼성 본관 전략기획실에서 압수한 물품들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 뉴스거리…만시지탄”
1월16일치는 삼성 쪽에서 다양한 증거 인멸을 시도한 흔적을 보도해 이런 정황을 뒷받침했다. 예컨대 삼성전자는 1월 초 본사 주관으로 모든 사업장에 ‘보안 지침’을 내려보내 자료 파기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삼성전자 경영지원 부문에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 이 지침은 △2001년 이전 작성 문서 △시민단체·관청·구조조정본부·자회사·관계사 관련 자료 △구조본이 실시한 경영진단 문서 등을 모두 폐기하라고 돼 있었다. 지침에는 ‘개인 통장은 회사에 두지 말고, 공무원한테서 받은 명함은 즉시 폐기하라’ ‘임원은 부장을, 부장은 차·과장을 점검해 실행 여부를 보고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곽노현 교수는 “불법 승계 문제가 드러난 10년 전에 했어야 할 일이고, 백번 양보해도 검찰 특본(특별수사·감찰본부) 단계에서는 했어야 옳았는데, 이것저것 다 놓치고 증거 인멸 시간을 준 후에 이뤄진 일이어서 아쉽다”고 말했다. “압수수색을 한 게 뉴스가 아니라, 이렇게 힘들고 늦게 한 게 오히려 뉴스 아닌가? 당연히 해야 할 압수수색을 한 게 뉴스거리가 되다니…. 만시지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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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삼성 비자금 사건 특검이 압수수색한 승지원과 이건희 회장 자택은 용산구 이태원동에 있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이 회장은 용산구 한남동 저택에서 살았는데, 이 집은 현재 부인 홍라희씨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가 소유하고 있다. 이 회장이 오랫동안 거주했던 용산구 한남동 **0, **1, **2번지 일대는 ‘이건희 거리’로 불린다. 이와 관련해 재벌의 비업무용 부동산 보유 실태를 폭로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이 펴낸 (동광출판사, 1991)에 따르면, 삼성그룹 임원과 계열사들이 이 회장의 한남동 집터를 차명(명의신탁) 보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비자금 조성뿐 아니라 이 회장의 주거용 토지에까지 계열사와 임원의 이름을 빌리는 차명 보유 형태가 빈번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 따르면, 당시 이 회장의 집(**0-1*번지) 담장은 총 15필지 1865평의 땅에 둘러싸여 있었다. 이 가운데 이회장 본인 명의로 된 땅은 불과 4필지(**0-1*번지 등) 402평에 불과하고, 나머지 1400여 평은 계열회사 임원 19명(당시 이종기 중앙일보 부회장, 양수제 중앙일보 부사장, 이필곤 삼성물산 부회장, 강진구 삼성전자 회장, 이수빈 삼성그룹 비서실장 등)의 이름으로 돼 있었다. 택지소유상한법에 따르면 200평 이상의 토지를 개인 주택지로 사용할 경우 택지초과부담금을 징수해야 한다. 이 전 감사관은 책에서 “여러 사람 이름으로 택지를 분산시켜 초과부담금 1억6천여만원과 연간 종합토지세 3천여만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회장 저택을 둘러싸고 있는 **1번지와 **2번지 일대의 토지 34필지 2648평 역시 삼성 계열사나 임원들(당시 황선두 삼성전기 부사장, 홍종만 삼성전자 전무, 이택화 삼성생명 전무, 최관식 삼성중공업 회장, 오명록 제일모직 전무 등)이 분산 소유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 최근 한남동 저택 일대의 등기부등본을 열람해봤더니 한남동 **1-5번지 토지는 삼성의 보안경비업체인 에스원이 소유하고 있었다. 이 땅은 본래 이종기·이택화·이수빈·삼성전자 등이 지분을 명의신탁 형태로 나눠서 보유하고 있었는데, 1994년 12월 에스원이 ‘명의신탁 해지’를 원인으로 해 한꺼번에 권리를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바로 옆 **1-4번지도 이종기·이택화·이수빈·삼성전자 등이 갖고 있던 지분을 에스원이 명의신탁 해지를 통해 넘겨받았다. 부동산 명의신탁의 경우 1995년에 제정된 부동산실명법에 따라 1996년 6월 말(유예기간)까지 실명등기하도록 의무화됐는데, 1996년 3월에 한꺼번에 명의신탁 해지 등기가 접수됐다.
이 회장 집을 둘러싸고 있는 한남동 **9-4번지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이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고, 그 옆 **9-3번지는 여러 명의 개인 공유지분을 1992년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명의신탁 해지(혹은 매매)를 통해 취득한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0-16번지는 삼성생명이, **2-6번지는 삼성생명공익재단이 권리자다. **0-5번지는 애초 삼성물산과 양수제 전 중앙일보 부사장이 보유하고 있었는데 삼성생명공익재단으로 넘어갔다가 2000년부터 이재용 전무한테 소유권이 넘어갔다. 삼성전자가 소유하고 있던 **0-12번지는 2003년에 매매 거래를 통해 홍라희씨로 소유자가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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