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대학 연구실적 위해 이름을 뺐다 넣으며 저서 조작… 교수들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되나”</font>
▣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감수만 하고서 단독 저자로 등장하기, 고인이 된 사람은 공동 저자에서 이름 빼기, 공동 저자를 쪼개어 두 번 출간하기, 공동 저서를 ‘증정용’이라며 몇 권만 단독 저서로 출판하기…. 일부 교수들이 다양하고 화려한 방식으로 ‘저자 바꿔치기’를 하고 있다. 해당 교수들은 자신이 쓰지 않은 책에 저자로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자유자재로 이름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도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태도를 보인다.
똑같은 책에 저자 이름은 나눠서
대학 교재 전문출판사인 ㄷ사가 펴낸 . 호텔경영학과나 관광경영학과 등에서 수업 교재로 쓰이는 교과서다. 2004년 7월 초판이 나온 이 책은 고진철·장상태·정찬희·정헌정·홍철희 다섯 명이 저자로 표기돼 있다. 고진철·정헌정 두 명을 제외하고 모두 현직 대학교수이다.
2년 뒤인 2006년 8월 이 책은 제목, 내용, 차례, 참고 문헌은 물론 페이지 수까지 바뀌지 않은 채 다시 출판됐다. 분명 재판이지만 책의 서지 정보에는 초판으로 나와 있다. 달라진 건 표지 디자인과 저자뿐이다. 저자 중 고진철·홍철희 두 사람만 그대로이고 장상태·정찬희·정헌정은 김종규·김상호·송대근·심홍보로 바뀌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
에는 애초 9명의 저자가 참여했다. 홍철희 순천청암대학(호텔외식조리과) 교수는 “9명이 보내준 내용을 내가 취합했다”고 말했다. 홍 교수는 “9명의 이름을 한꺼번에 올리기엔 너무 많아, 책을 두 번에 나눠 내고 이름도 나누자고 합의했다”고 말했다.
두 번째 책에만 이름이 올라 있는 송대근 동서울대 교수(관광정보처리학부)는 “2004년 처음 출판할 때에는 내가 쓴 다른 저서가 있었기 때문에 굳이 저자로 참여한 책이 한 권 더 필요하지 않아서 2006년 판에만 이름을 올리기로 했다”고 말했다. 첫 번째 책에만 이름이 올라 있는 장상태 경민대학 교수(관광경영)는 “만들어진 책을 보니 책의 질이 별로 좋지 않아 두 번째 출판 때 제 이름이 빠지는 것에 별 불만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이 책을 대학에 제출하는 연구업적 목록에 ‘저서’로 올렸다. 저서나 논문의 점수를 매길 때 단독 연구인지, 공동 연구인지, 공동 연구라면 몇 명이 한 건지는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된다. 이 교수들은 9명이 쓴 책을 5명, 6명으로 일부 겹쳐 쪼개 실제 자신이 책을 쓰기 위해 들인 노력보다 높은 점수를 받았다.
대외적으로는 연구 업적으로 내세우고도 정작 자신이 쓴 내용은 잘 몰랐다. 송대근 교수는 과의 전화 통화에서 “냅킨 접는 법, 식음료의 이론적 배경 등 A4용지 스무 장 정도의 내용을 주저자인 홍철희 교수에게 보냈고, 홍 교수가 취합하면서 어느 부분이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장상태 교수 또한 “내용을 보낸 지 오래돼 어느 부분에 참여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책을 출판한 ㄷ사 담당자는 “9명이 한 것보다는 4~5명이 했다고 해야 그래도 ‘저서’로서 점수다운 점수를 받을 수 있다”며 “교수들이 그렇게 해달라고 하면 출판사에서 이를 거절할 이유도 없고 거절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이 담당자는 “저자들이 합의할 경우 법적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덧붙였다.
출판사가 교수들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든 이유는 ‘갑’과 ‘을’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대학 교재는 구매자가 한정돼 있다. 한 권이라도 더 팔려면 교수가 그 책을 교재로 선정해서 한 명의 학생이라도 더 사게 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출판사는 그런 까닭에 교재 개발 대신, 표지만 바꿔 재출간하고, 가급적 여러 대학교수를 참여시켜 ‘판로’를 넓히는 일에 열심이다. 한 교재 출판사 사장은 “책을 살 학생 수를 늘리기 위해 친한 교수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우리 쪽 관례”라고 말했다.
단독·200만원 연구비 지원 저서의 실체
이런 ‘관례’ 속에서 밥 먹듯이 ‘저자 바꿔치기’를 한 사례도 있다. 송성인 청주대 교수(관광경영)의 저서를 보자. 2004년 김○○·이○○·황○○ 세 사람이 공동 저술한 은 2006년 송성인 교수 단독 저술인 으로 다시 태어났다. 표지도 제목도 저자도 모두 다르지만, 첫 페이지만 열어보면 같은 책인 것을 알 수 있다. 머리말, 차례, 내용이 모두 같다.
이 두 책을 출판한 ㅅ출판사 이아무개 사장은 “송 교수가 애초 책의 감수를 보고 오·탈자 교정도 했다”고 설명했다. 2년 전 감수자가 2년 뒤 저자로 둔갑한 셈이다. 송 교수는 이 책을 대학에 제출하는 연구업적 목록에 ‘단독 저서’로 써냈고, 200만원의 연구비도 지원받았다.
이 책의 2004년의 공동 저자 중 한 명인 김아무개 인덕대학 교수는 “2004년 당시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무리한 요구를 하도 많이 받아 기억하고 싶지도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을 내 연구실적으로 치지도 않는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그러나 ‘무리한 요구’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말을 아꼈다. 정작 책을 쓴 사람은 연구실적으로 치지 않는 책을 오·탈자 교정 정도만 한 감수자는 연구실적으로 내세운 셈이다.
당사자인 송 교수는 “어차피 교재로 쓸 건데, 가르치는 선생님이 쓴 책이라고 하면 학생들이 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면서 “‘매뉴얼’인 책이라 ‘저작권’ 개념을 생각하지 않았는데 실수라면 실수”라고 말했다.
유독 저작권 개념에 관대했기 때문일까. 송 교수가 ‘저자’를 넘나든 건 한 번만이 아니다. 같은 출판사에서 송 교수가 출판한 은 송 교수와 다른 한 명이 공동 저자인 책과 똑같다. 이아무개 ㅅ출판사 사장은 “송 교수가 가족과 지인에게 줄 용도로 10권 정도만 단독 저자로 내달라고 부탁해서 10권만 일종의 ‘증정용’으로 출판해드렸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이 ‘증정용’ 책을 역시 단독 저서로 연구실적 목록에 올렸다.
‘고인’이 된 스승의 이름을 빼기도 했다. 이라는 책은 다섯 차례 탈바꿈했다. 1993년 처음 출판된 이 책은 애초 신재영·송성인 두 명이 공동 저자이다. 그러나 2005년 송성인 단독 저자로 재출판됐다. 송 교수는 “신재영 교수가 선배인데 몇 년 전에 돌아가셨고, 책을 쓸 때에도 내가 거의 다 썼기 때문에 내 이름만 넣었다”고 말했다. 그는 이렇게 재출판한 책을 역시 ‘단독 저서’로 제출해 연구비를 지원받았다.
이렇게 연구실적을 부풀려 대학에 보고한 송 교수는 지난해 9월 대학 징계위원회에 회부돼, 12월24일 정직 2개월의 징계를 받았다. 허위로 보고한 연구실적에 따라 지원받은 550만원의 연구비도 반납해야 한다. 표갑수 청주대 교무처장은 “연구실적을 허위로 보고했고 그에 따라 연구비를 부당수혜한 것으로 보고 징계를 결정했다”고 말했다. 청주대의 한 강사는 “저자 바꿔치기를 밥 먹듯이 했는데 겨우 정직 2개월로 끝나니 어이가 없다”며 “교수들이 최소한의 ‘도덕성’이 결여된 행동을 해도 대학에서 이를 마땅히 규제하지 않아 비슷한 행동이 계속해서 양산된다”고 말했다.
실적 부풀린 교수, 정직 2개월 처분
취재 중 만난 많은 교수들은 “그런데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라는 질문을 던졌다. 이런저런 ‘편의’에 따라 저서에 이름을 넣었다 뺐다 해도, 자기가 정확히 뭘 썼는지도 잘 모르면서 저서라고 주장해도, 남이 쓴 책을 자기 책으로 둔갑시켜도, 함께 쓰고는 혼자 쓴 척해도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이다.
지난해는 학력 위조와 논문 표절 등으로 교수 사회의 혼탁함이 세상을 시끄럽게 했다. 교재 출판사와 교수들의 ‘검은 공생’은 지금까지 드러난 혼탁함이 ‘빙산의 일각’임을 암시한다. “이게 무슨 문제가 됩니까”라는 교수들의 반문은 그 실체를 보여준다.
▶세금 먹는 하마, 거대한 놈이 온다
▶민노당, 혁신이냐 분당이냐
▶당신의 일상을 탐닉하라
▶나는 비주류, 최선을 다해 부딪히기
▶쉽게 눈 못 뗄 대장정 스타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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