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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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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사장, 굴과 그이를 삼켜버렸네

등록 2007-12-21 00:00 수정 2020-05-03 04:25

신참 김경욱 기자,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삽질을 하고 흡착포를 깔며 상상한 것 이상을 보다

▣ 태안=글 김경욱 기자dash@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울컥’ 구역질이 났다. 전방 군부대의 화생방 훈련에서도 군가를 거침없이 빽빽 부르던 몸이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기름바다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태안 유조선 원유유출 사고를 취재하기 위해 태안으로 내려간 건 12월10일 밤 10시. 태안 시내에서 여장을 풀고 다음날 오전 9시 태안 원북면 신두리 현장에 첫발을 내디뎠다. 차 문을 열자마자 기름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얇게 포를 뜨듯 삽을 퍼올려라

우리나라 최고의 사구 지대로 꼽혀온 신두리 해수욕장은 ‘흑사장’으로 변해 있었다. 사고의 규모를 짐작하기 어려웠다. “마스크 하나 얻을 수 있을까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선 틈을 비집고 들어가 마스크 하나를 손에 쥐는 데 성공했다. 옷에 기름이 묻을까 두려워 이리저리 피한 끝에 해변으로 내려갈 수 있었다. 기름 제거 작업을 하고 있던 주민 오세의(43)씨에게 말을 건넸다.

“증거자료는 모아두셨나요? 나중에 피해 보상을 받으셔야 할 텐데.”

“지금 이 상황에서 나 살자고 사진기 들고 양식장이나 찍고 있을 수 있나.”

검은 기름으로 뒤덮인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수첩과 펜을 들고 나는 무얼 하고 싶었던 것일까. 현장을 빠져나와 현장 지휘본부로 달려갔다. 파견 나온 이완영(51) 부산해양경찰서 해양오염관리과 계장에게 작업지시와 안전교육을 받은 뒤 다시 해변으로 내려갔다. 이번에는 방진복, 장화, 장갑으로 무장한 상태였다.

바닷물이 빠져나간 곳에는 떡진 기름이 남아 있었다. 이를 제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자원봉사자들은 크게 두 조로 나뉘어 기름을 제거했다. 한 조는 바위와 그 틈에 남아 있는 기름을 흡착포와 기름 제거용 헌옷으로 닦아냈고, 다른 한 조는 삽으로 모래위의 기름을 퍼냈다.

군대 시절부터 삽질에는 자신이 있었다. 잽싸게 삽을 들고 한 삽 퍼올렸다. “총각, 그렇게 뜨면 쓰나. 기름보다 모래가 많잖아.” 포대를 잡고 있던 아주머니께서 한 방 먹이셨다. 결국 ‘삽질’이 되고 만 것이다. 포를 뜨듯 얇게 기름만 떠야 했지만 군대에서 배운 삽질로 땅을 파내버렸으니 첫 삽부터 폐를 끼치고 말았다.

기름을 포대에 담을 때도 요령이 필요했다. 한 번에 너무 많은 양을 담으면 운반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쌓아둘 경우 포대가 터질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반만 담는 것이 기본. 그리고 반드시 비닐을 덧댄 포대를 사용해야 한다. 일반 포대인 경우에는 안에 비닐을 씌웠다. 기름이 흘러나와 발생할 수 있는 2차 오염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식으로 차곡차곡 포대를 쌓아두면 경운기가 와서 담아간다. 경운기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지역 주민들이다. 이들은 사고 전까지만 해도 이 경운기로 굴을 따서 날랐다. 이창환(70)씨는 사고가 난 다음날부터 매일 새벽 5시30분이면 경운기를 몰고 현장으로 나왔다. 비록 예전의 바다 냄새는 기름 냄새로 덮여버렸지만 어스름에 바라보는 바다는 검든 푸르든 다르지 않았다. 그는 이곳에서 30년 넘게 굴을 키우며 생계를 이어왔다. 두 아들을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킬 수 있었던 것도 굴 때문이었다. 비록 굴을 팔아 1년 동안 벌어들이는 수입은 1천만원 남짓이었지만 자식들과 동갑내기 아내와 함께 행복할 수 있었다. 이제는 이마저도 요원해졌다.

대선 후보들, 장화·장비는 벗고 가시오

이날 신두리 해수욕장에서 자원봉사에 나선 사람들은 모두 3800여 명. 마을 주민과 육군 62사단 장병을 비롯해 소방대원과 경찰대원, 교인, 새마을지도자 및 친목단체 회원들이 두 팔을 걷고 전국 각지에서 모여들었다.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영화 카피가 아니다. 기름으로 얼룩진 태안은 상상을 가볍게 초월했다. 불과 닷새 전까지만 해도 그곳에서 지복을 누리던 조개와 철새들은 기름을 뒤집어쓴 채 시커멓게 변해버린 몸뚱이를 드러내고 죽어가고 있었다. 해수욕장 인근에 있는 굴 양식장으로 가서 굴을 하나 따봤다. 보통은 사람이 맨손으로 굴 입을 벌리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굴은 쉽게 아가리를 벌렸다. 기름 냄새가 진동한다. 굴에 기대 미래를 꿈꾸던 이곳 사람들은 이제 뭘로 먹고살아야 할까.

하나둘 사람들이 자리를 떴다. 낮 12시. 점심시간이다. 점심을 준비해온 단체는 자체적으로 해결하고, 그렇지 못한 자원봉사자들은 태안 중식업연합회에서 제공하는 자장면을 맛볼 수 있었다. 하얀 면에 얹힌 검은 자장이 백사장을 뒤덮은 기름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아무렇게나 걸터앉아 싹싹 비벼 한입 가득 넣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서는 손이 더욱 분주해졌다. 오전에도 일부 진행됐던 흡착포 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바닷물과 기름띠가 형성된 지역에 자원봉사자들이 길게 일렬로 늘어서 흡착포로 기름을 제거했다. 바닥에 흡착포를 깔고 발로 꼭꼭 밟자 기름이 한가득 배어나온다. 흡착포를 뒤집어 반대쪽도 같은 방법으로 해준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흡착포를 걷으면 안 된다. 바닷물이 밀려들어 오면서 다시 한 번 흡착포에 기름이 흡수되기 때문이다. 효과적인 기름 제거를 위해 백사장을 따라 바둑판처럼 흡착포를 촘촘히 까는 작업이 중요하다. 2시30분까지 같은 작업이 진행됐다. 이후 30분 동안 원북면사무소에서 제공하는 빵과 우유를 먹고 휴식을 취하며 바닷물이 서서히 밀려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큰 사고가 터지자 바빠진 사람들은 따로 있었다.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와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는 12월9일 인근 만리포 해수욕장을 다녀갔다. 12일에는 정근모 참주인연합 대선 후보가 신두리 복구 현장을 방문했다. 30여 명의 수행원과 경호원을 대동한 그는 현장 지휘본부에서 복장을 갖춘 뒤 기름 제거에 동참했다. 대다수의 수행원들과 경호원들은 장화만 신고 후보 뒤를 따랐다. 말쑥한 정장 차림에 장화. 일을 하겠다는 의도는 아니었다.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30여 분이 지난 뒤 현장을 떠났다. 멀리서 그 모습을 보던 한 군청 직원이 “장화와 장비는 다른 사람들이 쓸 수 있게 꼭 벗어두고 가라”고 말했다.

오후 3시부터 물이 완전히 찰 때까지 흡착포를 수거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악!” 갑작스런 비명에 뒤를 돌아봤다. 포대를 끈으로 묶던 이청례(45)씨의 눈에 무언가가 튀어 들어간 것이다. 서산의료원에서 지원 나온 정태은(43) 박사가 급히 그의 눈을 살펴봤다. 흰 눈동자 주변으로 검정색 기름 같은 것이 묻어 있었다. 급히 후송 작업을 마치고 서산의료원으로 향했다. 이씨는 안과치료를 받은 뒤 눈을 뜰 수가 있었다. 눈에 들어간 것은 기름이 아니라 모래와 이물질. 다행이었다.

오후 4시께 물이 완전히 찼다. 내일 아침이 되면 또 오늘처럼 물이 빠진 뒤 모래와 바위틈에 남겨진 기름을 퍼내고 흡착포로 기름을 제거하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12월11일 자원봉사자들이 수거한 기름과 폐기물 등의 양이 400여t에 달했다.

“바다가 아프기 전 무릎이 아프더라고”

이튿날 아침 다시 현장을 찾았다. 모래 위와 바위 사이에 남겨진 기름의 양이 전날보다 눈에 띄게 줄어든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박점숙(72) 할머니가 혼자 기름 제거작업을 하고 있었다. “저건 뭔가요?” 모래가 염소똥처럼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어봤다. “‘그이’가 들어가서 그렇지. 기름 때문에 요놈들 땅속에서 곧 죽을 것이여.” ‘그이’는 충청도 사투리로 게다.

박 할머니는 “사고 전에는 이런 게의 흔적이 수도 없이 많았지만 이제는 넓은 모랫바닥에서 마음먹고 찾아야 한두 개 정도 찾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바다가 아프기 전 이상하게 무릎과 어깨가 부서지도록 아팠다”고 말했다. 할머니는 갯벌에 나가 바지락을 캐고 양식장에서 자라는 굴을 까주고 받는 돈으로 하루하루 먹고 산다. 젊은 아낙들은 하루에 20kg 정도 까지만 할머니는 기력이 약해 손놀림이 예전만 못하다. 그는 “자꾸 8년 전에 죽은 남편 생각이 난다”고 말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좋을지 모르겠어.” 할머니는 울진 않았다.

새날이 밝았고, 작업은 다시 시작됐다. 앞으로 꽤 오랫동안 태안의 바닷가에서는 기름을 떠내고, 흡착포를 깔고 걷어내는 작업이 계속될 것이다. “나는 ‘그이’처럼 죽을 날이 멀지 않았어. 그래도 총각은 어리잖여. 여기 깨끗해지는 것 볼 수 있잖여.” 바다가 다시 예전의 모습을 찾으려면 또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야 할까. “그게 10년이 걸리든, 20년이 걸리든 바다는 다시 깨끗해질 것이여. 그때 애들 손 잡고 꼭 한 번 다시 여기를 찾으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먼저 태안군청에 전화해보라

무작정 뛰어들기 전 챙길 것들

사상 최악의 기름 유출 사고로 피해를 본 충남 태안군에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자원봉사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이들은 대부분 직장과 교회, 친목단체 단위로 움직인다. 하지만 무작정 뛰어들었다가는 도움을 주기보다 폐를 끼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단체로 자원봉사를 할 때 가장 먼저 신경써야 할 부분은 ‘장비’다. 기름 제거를 위해서는 방진복·장화·장갑·마스크를 꼭 갖춰야 한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귀마개·우의·방한복 등을 챙기는 것도 좋다.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식사 준비’다. 현장에선 태안 주민들과 적십자 등 자원봉사 단체들이 식사와 차 등을 대접하고 있지만, 사람이 몰리면 밥을 먹지 못할 수도 있다. 단체로 현장을 찾는 사람들의 경우 미리 도시락 등을 준비하면 민폐를 줄일 수 있다.
의사들은 “방제 활동을 하려면 반드시 마스크를 쓰라”고 말한다. 원유에 포함된 위해 성분인 벤젠·톨루엔과 담배 연기에서 검출되는 벤조피렌 등이 공기 속으로 휘발되기 때문이다. 이들은 모두 발암물질이다. 실제로 지난 12월11~12일 태안 신두리 해수욕장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작업하다가 두통과 어지러움증으로 의료봉사팀을 찾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천리포에서 의료봉사 활동을 한 임형준 한림대 산업의학과 교수는 “갑자기 어지럼증이 느껴지면 현장에서 가급적 멀리 벗어나 두세 시간 찬바람을 쐬라”고 말했다.
모든 준비가 끝났으면 무작정 현장으로 가기보다는 태안군청으로 미리 전화를 걸어 도움이 필요한 지역을 사전에 배정받는 것이 좋다. 태안군청 상황실(041-670~26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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