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 중심에서 ‘실용’ 중심으로 바뀐 ‘통합논술’, 잡지·신문 이슈 챙기고 친구들과 바꿔가며 채점해보라
▣ 김창석 한겨레 교육서비스본부kimcs@hani.co.kr
▣ 사진·정수산 기자 jss49@hani.co.kr
2008학년도 논술고사의 화두는 ‘통합논술’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그동안 ‘통합논술’이라는 단어는 허공에 떠도는 유령처럼 고3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을 괴롭혀온 게 사실이다. 이전 논술고사와는 다른 양상으로 출제된다는 점만 확실하고 어떤 유형이 될지는 미지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2학기 수시 논술고사까지 치른 현재 시점에서 보면 2008학년도 통합논술의 경향은 지난해까지의 논술고사 양식과는 확실히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교과서 지문 많이 나오고 쉬워졌다
일단 쉬워졌다. 교과서 지문이 예상보다 많이 활용됐고, 주제도 대부분 고교 교과 과정안에서 골라졌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통합논술’이라는 말이 결국은 ‘통합교과형 논술’이었다는 점이 입증된 셈이다. 일부 대학을 빼고는 미리 발표했던 예시·모의 논술고사 유형과 비슷하게 출제돼 수험생들이 느끼는 당혹감도 많이 줄었다. 이런 경향은 앞으로 내년 1월에 치러질 정시 논술고사에서도 그대로 반영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까지의 논술고사는, 거칠게 정리해본다면, 프랑스 철학 바칼로레아 시험의 한국적 변형이었다. 우리나라가 논술고사를 처음 도입할 때 염두에 둔 것이 프랑스 철학 바칼로레아 시험이었기 때문에 시험의 유형이나 문제의식이 그것과 맞닿아 있는 측면이 강했다. 이 때문에 논술고사 주제는 철학적인 주제와 관련한 게 많았고, 제시문 역시 철학 관련 고전에서 주로 나왔다. 상위권 대학들의 문제에 등장했던 제시문들은 너무 어려운 탓에 “철학과 대학원 전공자도 풀기 어렵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일부 상위권 수험생들은 입학하려는 해당 대학 철학과의 대학원에서 어떤 철학자의 강의를 많이 하는지를 알아본다는 얘기도 돌았다. 그나마 한국의 논술고사가 달랐던 점은 프랑스에서는 한 줄짜리 논제(예를 들어 ‘예술 없이 아름다움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 ‘감각을 믿을 수 있는가’ ‘인류가 한 가지 언어만을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등)가 달랑 출제되는 데 비해, 여러 개의 제시문이 참고자료로 등장한다는 사실이었다. 프랑스식으로 하면 한국의 수험생들이 전혀 쓰지를 못하는 사태가 벌어질 것을 염려한 대학 쪽의 자구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올해 인문계 논술고사는 프랑스 철학 바칼로레아 시험보다는 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SAT)의 읽기(critical reading)와 쓰기(essay writing)를 결합한 모양새다. ‘읽기’가 추가됐다는 분석은 ‘요약형 문제’와 ‘비교·분석형 문제’가 크게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 이전에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문제 유형인 요약형은 긴 글을 읽고 200자, 또는 300자 정도로 줄여서 쓰라는 것이다. 독해력이 좋다면 어느 정도 좋은 점수를 보장받을 수 있는 유형인 셈이다. 비교·분석형 문제 역시 2개 또는 3개의 제시문을 함께 읽고 비교하거나 연관지어 생각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독해력이 좋고 유연한 사고력을 갖추면 풀기에 어렵지 않은 유형이다.
‘심화학습’ 간 상충 내용, 문제 가능성 높아
논술 채점에 관여하고 있는 서울 지역 대학의 한 교수는 문제 유형이 다양화한 것과 관련해 “대학들이 독해력 테스트 부분을 전체 논술고사 배점의 3분의 1 정도로 채택하고 있는 것은 그만큼 수험생들의 글쓰기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이라며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라도 평가해보자는 뜻이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올해와 달리 지난해까지는 평균 다섯 개 안팎의 제시문을 주고 각 제시문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논제를 해결하라는 방식의 문제가 주류였다. 특히 정시 논술고사는 이런 경향이 짙었다. 이른바 ‘문제해결형’ 논제인데 이는 독해력과 사고력을 충분히 갖춘 수험생이 영역을 넘나드는 통합적·비판적 사고력까지 지니고 있어야 해결할 수 있다. 당연히 답안 수준은 떨어졌고, 이는 채점자들을 당혹스럽게 하는 요인이었다는 게 대학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심한 경우에는 전체 응시생의 절반가량이 제시문에서 공통적으로 얘기하고 있는 중심 개념어를 찾지 못해 엉뚱한 주제에 대해 글을 쓰기도 했다. 해당 대학은 관련 사실을 쉬쉬 했지만, 알 만한 이는 다 아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한마디로 논술고사의 효용성이 바닥을 치고 있었다는 얘기다.
‘철학’ 중심에서 ‘실용’ 중심으로 바뀐 올해 논술고사는 내신 시험의 실질반영률이 애초 예상보다 적어지면서 그 중요성이 더 커지고 있다. 특히 중·상위권 학생들의 경우 내신 성적의 실질반영률을 최소화하려는 대학들의 끈질긴 노력 탓에 수능과 함께 논술고사의 비중이 엄청나게 커지고 있다.
앞으로 정시 논술고사를 치러야 하는 수험생들이라면 올해 수시 2학기 논술고사를 찬찬히 뜯어볼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정시 논술고사를 대비하는 게 현명하다는 얘기다.
먼저, 교과서를 제대로 톺아볼 필요가 있다. 제시문 자체가 교과서를 원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는 정시 논술고사에서도 그대로 이어질 흐름이다. 교과서를 볼 때 한 가지 유의할 점은, 국어나 사회 교과목의 각 단원 마지막에 나오는 심화학습 부분을 주의깊게 봐야 한다는 것이다. 통합논술이 요구하는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심화학습 내용 가운데 교과별로 모순되거나 상충되는 내용은 문제로 등장할 가능성이 더 높다. 예를 들어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복무제’ 같은 이슈를 놓고 볼 때 어떤 단원에서는 ‘양심’에 더 강조점을 두는 데 반해 다른 단원에서는 ‘국민으로서의 의무’에 방점을 두기도 한다. 통합논술 문제는 이 둘 사이의 모순을 지적한 뒤에 이에 대한 수험생의 주관적 견해를 묻는 식으로 나올 수 있다. ‘국가와 개인’ ‘자유와 평등’ ‘성장과 분배’ ‘소수자 배려와 사회적 형평성’ ‘지속 가능한 성장과 환경 문제’와 같은 문제도 이런 모순이 쉽게 발견되는 이슈들인 만큼 교과서에서 이런 부분을 요약 정리한 뒤 자신의 생각을 일정한 분량의 글로 써보는 연습이 효율적이다.
그동안의 논술 주제가 인문학적인 사고력에 치중했다면, 최근에는 경제·복지·세계화·정보화 등 시사 이슈와 연관되는 주제들이 많아졌다. 따라서 신문이나 잡지의 기사를 효과적으로 활용한다면 좋은 시험 준비가 될 수 있다. 시사 이슈를 교과서 내용과 독서, 통계 자료, 문화 콘텐츠 등과 통합해 다룬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연재되고 있는 ‘통합논술 교과서’ 시리즈를 찾아 정리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그림이나 도표, 그래프를 꼼꼼히
교과서를 꼼꼼히 보면서 또 하나 챙겨야 할 것은 그림이나 도표, 그래프다. 이런 자료를 제시문 또는 논제와 관련지어 파악하는 능력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이들 자료를 파악하는 데서 중요한 점은 한꺼번에 널려 있는 정보들 가운데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해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공통점과 차이점을 찾아내거나, 제시돼 있는 정보를 범주화하는 과정에서 자료의 특징을 알아낼 수 있다.
교과서와 함께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통계청과 같은 정부기관의 인터넷 홈페이지에 떠 있는 공개 자료들이다. 특히 통계청의 자료는 방대하고 복잡해서 대학들이 문제로 활용하고 싶은 유혹을 많이 느낀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고려대가 2학기 수시 논술고사에서 ‘감정노동’에 관한 시각물 자료들을 다양하게 제시한 것은 정확히 이런 흐름과 맞닿아 있다. 즉, 교과서 내용과 관련이 있고, 시사적인 흐름에도 민감하고, 시각적 자료를 비판적으로 해석한 뒤 글로써 표현해낼 줄 아는지를 물어볼 수 있는 유형이라는 점이다.
논술 주제는 고교 교과 과정을 기준으로 선정되므로, 그간 배운 교과서의 목차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찾아 주제별로 내용을 정리해두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관련 자료는 참고서, 사전, 주제 관련 서적, 신문 기사 등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것들을 이용하면 된다. ‘함께하는 교육’ 섹션에 연재되고 있는 ‘우리말 논술’ 자료를 참고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자료 정리와 함께 매일 한 편 정도의 글을 써보는 것도 시작해야 한다. 지원하려는 학교의 기출문제와 비슷한 유형의 예상문제를 풀어보는 것도 좋다. 글을 쓴 뒤에는 첨삭을 받아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잘못된 내용은 고쳐나가는 게 중요하다. 첨삭은 전문가의 손길을 거치는 방법도 있지만, 수험생 동료들끼리 해주는 ‘상호 첨삭’도 유용하다. 대신 자신의 글을 객관적으로 볼 줄 알고 타인의 글도 같은 자세로 보는 동료를 구해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은 일이다. 지엽적인 부분을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본질적이고도 중요한 구성 요소에 대해 토론할 줄 알아야 한다는 얘기다.
연습은 실전처럼, 시계 맞춰놓고 연필 쥐고
시험에 임박해서는 제한 시간을 정해두고 그 시간 내에 글을 완성하는 연습을 해야 한다. 특히 정시 전형만 준비해서 수시 논술 경험이 전혀 없을 때는 시간 내에 답안을 작성하는 연습은 필수다. 컴퓨터가 아닌 손으로 직접 쓰는 글쓰기의 경우 아날로그식으로 연습해야 실제 시험에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 긴 글을 요구하는 논제에서는 서론·본론·결론의 형식을 갖춰 써야 하지만, 요약이나 비교적 단순한 비교·분석형 문제라면 본론 중심의 글쓰기를 연습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분량을 채우는 데 급급해 서론을 길게 늘어뜨리면 문제가 요구하는 내용은 쓰지 못한 채 글이 끝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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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학년도 통합논술고사에서는 요약하기만 잘해도 좋은 점수를 얻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100자, 200자, 300자 분량으로 요약하는 일이 그렇게 만만한 일은 아니다. 꾸준히 연습하지 않은 수험생이라면 오히려 더 헷갈릴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요약하기에서 주의할 점은 먼저 핵심 내용을 중심으로 요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불필요한 부분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방식의 글을 좋게 평가할 사람은 없다. 글에서 나타나는 주장이나 중심적인 맥락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방식의 요약 연습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습을 할 때 글에서 드러나는 주장이나 중심 맥락을 2~3문장으로 요약해보고 그 뒤에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등장하는 내용을 3~5문장으로 정리해봐야 한다.
주요 문장을 중심으로 요약하더라도 단순히 짜깁기하는 방식의 요약은 바람직하지 않다. 단순히 베끼거나 나열하는 글 역시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논술고사 문제지의 ‘유의 사항’에 ‘제시문에 나와 있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쓰지 말라’는 항목이 늘 들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같은 내용이라도 자신의 말로 바꾸어 표현하는 게 좋다. 제시문에 나오는 문장을 그대로 옮겨 적지 말고 다른 단어와 표현으로 바꾸되 제시문을 정확하게 정리하는 내용이어야 한다. 자신의 언어로 정리한다고 해서 제시문에 나와 있지 않은 내용으로 요약해서는 안 된다. 어쭙잖은 자신의 견해를 밝히는 방식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이 때문에 서너 문장 정도의 짧은 요약이라면 굳이 개요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지만, 한 단락 이상으로 요약해야 할 경우 간단하게 요약문의 설계도를 만드는 게 좋다. 그렇게 하면 요약문 자체로 완결된 구조를 갖출 수 있다. 요약문만 읽어봐도 제시문의 주장과 근거가 무엇인지 알 수 있도록 써야 한다는 말이다.
제시문과 요약문을 나란히 놓고 읽게 되면 요약문이 허술하거나 적절치 않아도 미처 발견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수험생이 제시문 내용을 머릿속에 담고 있는 상태에서 요약문을 읽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요약문의 부족한 부분을 이해하며 읽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요약문을 완성한 뒤에는 반드시 제시문을 덮은 상태에서 요약문만 따로 읽어보는 게 필요하다.
수험생 독자들에게 1:1 이메일 논술 도움받기 기회를 드립니다.
‘함께하는 교육’ 섹션과 신문활용 논술 준비지 ‘아하! 한겨레’를 책임지고 있는 김창석 기자가 직접 ‘밑줄 좍, 돼지꼬리 땡땡’ 해드립니다. 직접 논술의 주제를 정한 뒤 주제에 맞춰 쓴 글(원고지 6~7매 분량)을 12월21~23일 중으로 이메일로 보내주시면 선착순 10명에게 도움을 드립니다. 이메일 제목에는 [논술 신청]이라고 말머리를 달아주십시오. 글과 함께 제목, 이름, 연락처, 이메일 주소를 정확하게 적어주십시오.
신청이 마감되면 인터넷 홈페이지(http://h21.hani.co.kr)를 통해 공지하겠습니다.
보내실 곳은han21@hani.co.kr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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