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지클럽’ 자원봉사 참여자이자 냉정한 관찰자 강금실 전 법무장관의 진단
▣ 진행 성한용 한겨레 선임기자
▣ 정리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강금실을 만났다. 그는 지난 10월15일 끝난 통합민주신당 경선에서 최초로 도입된 모바일 투표의 홍보를 위해 결성된 홍보모임 ‘엄지클럽’의 자원봉사자 중 한 명이었다. 한때 탈당을 고민한 평당원이다. 한동안 범여권 대선 후보로 제법 이름이 오르내렸다. 지난해 5·31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직에 도전했으나 패배했다. 그는 첫 여성 법무부 장관이자 참여정부의 초대 법무장관이었다.
지난 10월17일 서울 여의도의 한 찻집에서 대선을 앞두고 이른바 ‘평화민주 개혁세력’의 위기로 압축되는 현 정치 상황에 대한 그의 진단을 들어봤다. 그의 말은 때론 자신이 뿌리를 둔 세력한테도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담백했다. 훈련된 여의도 정치인한테서 풍기는 근거 없는 확신이나 과장된 수사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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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물게도 그는 참여자이면서도 관찰자다. 참여자로서 그는 평화민주 개혁세력의 후보 단일화에 마지막 희망을 건 듯했다.
국민들은 정말 바꾸길 원할까
성한용(이하 성): 대선이 두 달 남았다. 단순히 대선을 어느 후보가 이기고 어느 후보가 지느냐는 문제로 보는 분들이 있다. 그렇지 않고 세력 전체, 그러니까 범여권 기반 전체가 붕괴 위기에 처했다고 보는 분들도 있다. 어느 쪽인가?
강금실(이하 강): 어렵다. 지난 5년 동안 충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남겨두고서…이후 우리 미래가 어느 쪽으로 가는지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대선이 될 거 같다.
성: 붕괴 위기에 처한 건 동의하는가?
강: 전체 ‘여권’이라고 할 수 있는 정당은 무너진 상황이다. 대선 후보 지지율만 보더라도 1년 이상 (범여권 후보 진영의) 지지율 변화가 없다는 건 국민들이 실패했다고 평가하는 거다. 그걸 부인할 순 없다.
성: 국민들이 왜 그렇게 평가한다고 보나?
강: 20세기, 21세기에 합의된 근본가치의 지향은 평화와 민주다. 국민들이 군부독재 이후 평화와 민주를 지향하는 정치세력에게 정권을 맡겼는데 제대로 못하니 실망한 거다. 참여정부의 대북관계는 햇볕정책을 이었지만 일관성에선 흔들렸다. 복원돼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정권 초기 대북송금 특검을 했다.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지지세력에게 엄청난 충격을 줬고 이탈을 가져왔다. 참여정부가 큰 방향에선 잘 갔다고 평가할 수 있지만 단계적으로 보면 일관성이 흔들리는 첫 번째 사건이었다.
민주주의 문제에선 파괴적인 실험을 했다. 창조적 파괴를 못했다. 검찰개혁이나 정당개혁 등 권력기관의 민주화를 시도했지만, 과연 파괴 이후 창조를 했나? 답이 안 나온다. 당은 붕괴됐다. 열린우리당 실험은 실패했다. 신당으로 넘어갔다. 물론 실패로 단정할 것만은 아니다. 어쨌든 국민들은 탄핵 이후 제1당으로, 역사상 처음으로 과반이 넘는 정당을 추인해줬다. 이후 곤두박질친 건 심각한 타격으로 남아 있다.
최장집 교수도 지적하지만 ‘민주화 이후 사회적 균등 등 실질적 민주주의를 이뤘나’란 물음에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경제성장 중심의 담론에 빠져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이 시대의 진보인 것처럼 비쳐지는 거다. 범여권이 최소한 노력을 다하는 과정이라도 보여줬으면 다행이었을 텐데….
성: 범여권에 사회·경제적 평등의 완수를 요구하는 건 어려운 과제 아니었나?
강: 그게 한 10년 만에 해결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렇게 간다는 과정과 이만큼 할 생각이란 걸 밝히고, 최선을 다하고 일관성을 보여줬어야 한다. 큰 방향에서 국민의 정부나 참여 정부가 방향은 제대로 짚었지만 해결은 못했다. 정책의 실패에 앞서 불필요한 정치 논쟁이 문제의 핵심을 가렸다.
성: 많은 이들이 그렇게 진단한다. 그런데 국민들의 태도에도 문제가 있다고 보나?
강: 가치 실현의 일관성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각은 이런데 행동은 다르면 신뢰를 받을 수 없다.
관료사회에선 잘했다는 평가인데…
성: 거칠게 얘기해서, (범여권이) 상당히 오만했다는 얘기로 들린다.
강: 정치의 실천은 메시지 전달과 행위다. 말에서 실패하면 정치의 실패로 귀결된다. 그걸 너무 쉽게 생각한 거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와 인터뷰하면서 ‘조·중·동에 봉쇄당했다. 소통이 어려웠다’고 했다. 그런데 국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에 노력하라는 말에 한 번이라도 귀기울인 적이 있나? 어차피 언론의 장벽을 모르고 집권한 것도 아니었다. 메시지 전달 노력을 얼마나 했나 자성이 필요하다. 난 봉쇄당했다고 보진 않는다.
성: 의견이 다른 정치세력과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느냐도 민주주의에서 중요하다.
강: 한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지지세력을 위하는 정치를 하는 게 아니라 전체 국민을 위해 정치하는 거다. 그 부분에 대한 충분한 철학과 인식이 있었어야 한다.
성: 양극화가 심화됐다. 국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다고 느낀다. 그동안의 정치세력에게 수고했으니 이제 비켜달라고 요구하는 거 아닌가?
강: 그런 국민 의지도 강하다고 본다. 선거를 통해서 정권을 바꾸고 또 일을 시켜본다고 할까, 그런 선거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것도 작용했다고 본다.
성: 그런 부분을 인정하면 진짜 어렵다. 지금까지 얘기한 일관성과 소통, 인식과 철학의 문제를 넘어서 국민들이 현 집권세력의 역할 교체, 임무 교대를 요구한다고 말하면….
강: 왜 지지율 격차가 클까, 국민들이 바꾸길 원하나를 생각해봤다. 이번에 저쪽 후보를 뽑아야겠다는 의지의 투영인데, 거기까지 가게 된 과정을 검토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성: 노무현 대통령 중심으로 얘기를 많이 한 셈이 됐다. 국민들이 정동영, 김근태, 이해찬, 유시민, 강금실 등 노 대통령과 정치를 같이 한 그룹들을 어떻게 평가한다고 보나?
강: 관료사회 안에선 잘했다는 평가가 많다. 예를 들어 이해찬 총리는 관료사회 내부에서나 같이 장관을 한 제 입장에선 국정을 잘 꿰뚫고, 리드를 잘하고, 실력 있는 사람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들한텐 부정적 정서가 있다. 그분의 독설, 말 몇 마디와 에피소드로 부정적으로 평가된다. 왜 그런 일이 생기나? 정치란 게 그게 문제다. 정치인으로서 언행, 정치 행위와 정체성이 일치해야 된다. 따로 갈 경우 더 부정적으로 될 수 있다. 이명박씨가 이상한 발언을 하면 국민들이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성: 원래 그런 사람이려니 한다는 말인가.
강: 그러나 이쪽이 (이상한 발언을 하면) 도덕적으로 더 많은 문제가 생긴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실천하는 정치인 자체의 아이덴티티(정체성)가 일관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런 실수가 되풀이된다. 참여정부는 그런 점에서 문제가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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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한 배달과 맛있는 자장면
성: 옛날 정통성 없는 관료는 국민들 앞에서 연출을 했다. 자장면이 워낙 맛이 없으니 배달하는 사람이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고 국민들을 설득했다. 국민들도 자장면이 가짜라는 거 다 알았다. 그런데 이제 대통령이 자장면이 맛있다고 한다. 하지만 배달하는 태도가 상당히 불량하다. 세수도 안 하고 구질구질한 옷을 세탁도 안 한 채 입고 배달한다. 그 자장면이 맛있다고 아는 국민들 입장에서도 저거 더러울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 점을 노 대통령이나 참여정부가 소홀히 한 거 아니냐?
강: 단순히 자장면과 배달의 문제가 아니다. 왜 배달 불량이 나오냐면,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고, 해야 하는지 근본 규범이 흔들렸다. 열린우리당은 지역주의의 부정적 측면을 깨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는데 실제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답이 있었나? 나는 열린우리당이 따로 나가지 말았어야 한다고 보지만, 그래도 실험은 의미가 있었다.
성: 지역주의 문제는 호남의 문제가 아니라 영남의 문제이고, 3당 합당 이후 수구보수 쪽 성향과 영남의 지역주의가 합쳐져 카르텔이 형성됐다고 보는 분들도 있다. 한나라당과 영남 카르텔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정당을 만들어서 지역주의 해소 기치를 내거는 것으로 풀어가는 방식은 잘못되지 않았나?
강: 그 점은 비판이 가능하다. 김영삼 대통령이 3당 합당을 하면서 영남 진보는 황폐화됐다. 그 기반을 한나라당이 공고히 가져가고 있다. 그게 현실인데, 이쪽만 깨고 가겠다는 발상이 과연 옳았는지?
이번에 범여권 후보를 단일화해야 한다는 이유 중 하나가 통합민주신당이 양적인 거 외에 질적인 통합을 못 보여줬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에라도 질적으로 복원하는 모습을 최선을 다해 치열하게 보여줘야 한다. 이쪽은 열린우리당의 실패를 복원하려는 세력이 다 쪼개져서 대선을 치르겠다는 것에, 나는 근본적으로 동의하지 않는다. 큰 차별성이 없다면 정치세력이 하나로 뭉치는 게 낫지 않냐는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다.
성: 원인 진단은 했고, 자연스럽게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 장관 개인과 범여권 전체를 섞어서 한번 얘기해봤으면 한다. 먼저 지난해 지방선거 이후 정치를 안 했다고 봐야 하는데, 지금은 하는 건가?
강: ‘엄지클럽’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낮은 수준이지만 일종의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고 봐야지.
성: 정계 복귀라고 하기엔 그렇고….
강: 이동하고 있다고, 진입 중이라고 표현해야겠지. 진입 중이라고 한 것은 스텝 바이 스텝으로 판단하면서 나가는 것이다.
성: 통합민주신당 경선 초반에 경선을 굉장히 비판적으로 말한 적이 있다. 경선이 끝났다. 어떻게 평가하나?
강: 잘했다고 하기 어렵다. 시간에 너무 쫓겼다. 어떤 국회의원을 사적으로 만나, 내가 신당 창당을 앞두고서 비전과 메시지를 담는 정당 강령과 정강 정책은 누가 만드냐고 물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에서 넘어가는 거니, 우리뿐 아니라 국민들 평가가 담긴 열린우리당 실험백서가 나와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러나 실제 그런 작업은 시간에 쫓겨 잘 이뤄지지 않았다.
언행은 정치행위, MB는 굉장히 불안
성: 1997년 단일화 협상에선 김종필씨가 대통령 될 가능성이 없었기 때문에 거래와 협상이 가능했다. 2002년엔 반이회창 연합이었다. 시너지 효과가 대단했다. 단일화 직전 노무현 23%, 정몽준 22%, 이회창은 37%였다. 이건 산수만 할 줄 알면 이기겠구나 싶었던 거다. 실제로도 그렇게 됐다. 그 동력으로 됐다. 올해는 다르다. 굉장히 복잡하고 변수가 많다. 어떻게 보나?
강: 지난번엔 사실 같은 정치세력이 아닌 다른 세력 간에 단일화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번엔 같은 정치세력이다. 지지세력이나 기반이 같다. 정책의 기본이나 방향에서도 차별성이 없다. 같은 정치세력이 분열할 필요가 있나? 큰 정치세력으로 봤을 때 평화민주 세력, 민주개혁 세력의 복원이란 의미에서 달리 반대할 명분도 없다.
성: 잘될 거라고 보는가?
강: 이런 중요한 시기에 더 큰 가치를 두고 문제를 결정해야 한다. 시대의 큰 원론(원칙)을 흔들지 말고 현실적 여건에서 최대한 노력하고 안 되면 어쩔 수 없는 거 아닌가. 그러나 처음부터 원론을 흔들면 나중에 정치가 파탄 나는 거지.
성: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이 놀라울 정도로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공인으로서 이 후보를 어떻게 보는가?
강: 굉장히 불안하게 보는 부분이 있다. 정치인으로서 정치활동 언행의 문제가 우선 1차적이다. 불안한 언행을 많이 보였다. 최근엔 부시 미 대통령을 만나겠다며 비공식라인을 가동해 성사시키려다 실패해 국제적 망신을 샀다. 어떻게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것인지가 민주주의의 실질화라면 민주주의에 대한 투철한 철학과 의지를 갖는 리더가 바람직한데, 여성 비하나 장애인 비하 등 여러 발언에서 인권이나 사람에 대한 소중함이 결여됐다. 언행이 정치 행위인데 리더십이 불안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성: 이명박 후보는 지난 10년 동안 정권은 말만 잘했고, 자신은 일 잘하는 사람이었다고 주장한다. 국민들은 더 이상 말 잘하는 사람들한테 속지 않는다고 말한다.
강: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나) 말 잘하는 게 아니라, 말 못했다. 지난 10년, 큰 방향에서 옳았다고 본다. 남북 정상회담도 그렇고, 정경유착 고리 끊은 것도 그렇고. 그러나 정치에선 실패했다. 정치적인 여러 가지 이유에서 제대로 평가를 못 받고 외면받는 게 안타깝다.
성: 이명박 후보 자신은 일을 잘한다고 하는 건 어떻게 보나?
강: 일단 청계천 성과가 국민들한테 많이 어필했다. 추진력도 있다. 좋은 점 많은 분이다. 그러나 리더십 방식과 철학에 불안한 점이 엿보인다.
성: 국민의 55%가 이명박 후보가 다음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민들이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하나? 예를 들어 이런 비판이 가능하지 않나? 국민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는 건 아닌지. 민주주의 국가에서 왕을 뽑는 게 아닌데, 일을 잘하니 일자리 민들어주고 경제성장을 이끌어줄 거라고 기대하는 거 아닌가?
강: 국민들이 뭔가 절박하게 대안을 요구하고 있다. 지금 후보 중 이명박씨가 그걸 가장 잘 해결할 수 있을 거 같다는 신뢰감을 주는 데 성공했다. 대안을 요구할 때 꼭 최선이라고 해서 선택하는 건 아니잖나. 이 후보의 지지층 중 40%가 후보를 바꿀 수도 있다고 대답한다.
성: 이번 대선에서 범여권이 희망이 있다고 보는가?
강: 희망? 희망을 가지려면 일단 단일화가 필요하고, 최선을 다해야 할 때다. 패배를 단정할 땐 아니라고 본다.
성:1997년, 2002년 특이한 현상이었다. 51 대 49 싸움이라고 하는데 난 안 믿는다.
강: 지지 세력을 결집하려면 뭉치는 게 낫지 않는가? 뭉쳐서 당내에서 경쟁하고,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된다. 국민 입장에서는 뭉친 세력을 찍고 싶어한다. 꼭 뭉쳐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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