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민간인 겨눈 민간 경호업체

등록 2007-10-19 00:00 수정 2020-05-03 04:25

가장 민영화된 전쟁 ‘테러와의 전쟁’, 유아르지·블랙워터 등 공격으로 무고한 죽음 잇달아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는 비정한 도시다. 그 거리에서 무고한 죽음은 이미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난 10월9일 시내 중심가 카라다 거리에서 2명의 여성이 무차별 총격에 스러진 사건도 평소 같으면 그리 눈길을 끌 만한 일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총격의 주체가 미군이거나, 이라크군이거나, 또는 무장 저항세력이었다면.

40여 발을 쏘고 유유히 빠져나가

‘테러와의 전쟁’은 인류 역사상 가장 ‘민영화된 전쟁’으로 불린다. 군 병력 훈련과 기지 경비, 각종 병참과 정보 수집에서 심리전이나 첩보활동 등 전통적으로 군부대가 수행했던 각종 업무를 민간업체가 떠맡고 있다. 딕 체니 미 부통령이 회장을 지낸 헬리버턴의 자회사로 비용 과다 청구 등으로 논란을 뿌렸던 ‘켈로그 브라운 앤드 루트’가 그 대표격이다. 카라다의 거리에서 총격을 퍼부은 것도 ‘유아르지’(United Resources Group)란 이름의 오스트레일리아계 민간업체 소속 경호요원들이었다.

[%%IMAGE4%%]

“경호차량 행렬 쪽으로 흰색 승용차량이 다가갔다. 경호원들은 차량을 운전하던 여성에게 차를 세우라고 손짓을 했다. 하지만 그 여성이 차를 멈추지 않자, 갑자기 총격을 퍼부었다.” 카라다 사건은 바그다드에서 벌어지는 무고한 인명 피해의 전형이다. 아랍위성방송 는 10월9일 목격자의 말을 따 “차량 앞좌석에 타고 있던 2명의 여성이 머리에 총상을 입고 그 자리에서 숨졌다”며 “피해자들은 경호요원들이 호송하던 4대의 차량 행렬을 피해 지나가려다 변을 당했다”고 전했다.

삽시간에 발사된 총탄은 모두 40여 발, 총격이 멈춘 뒤 피가 흥건한 채 방치된 피해 차량은 이미 벌집이 된 뒤였다. 그럼에도 총기를 난사한 경호요원들의 신원조차 공개되지 않고 있다. 사건 발생 직후 현장으로 달려간 이라크 경찰은 “총기 난사를 멈춘 경호원들은 마치 갱단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차를 타고 유유히 현장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유아르지’는 미 국무부에 딸린 국제개발청(USAID)의 용역을 받아 활동하고 있는 금융·정책 전문가들의 경호 업무를 맡고 있다.

카라다 사건이 벌어지던 날, 이라크 정부는 지난달 총기 난사 사건을 벌인 미국계 민간 경호업체 ‘블랙워터’에 거액의 피해자 배상을 촉구하고 나섰다. 블랙워터 소속 경호요원들은 지난 9월16일 바그다드 시내 니수르 광장에서 무차별적으로 총기를 난사해 모두 17명의 이라크인이 목숨을 잃고 27명이 중경상을 입는 피해를 입혔다. 이라크 정부는 업체 쪽에 희생자 17명의 가족에게 각각 800만달러씩 모두 1억3600만달러를 배상하라고 요구했다. 카라다 사건이 묻히지 않은 것도 니수르 광장의 ‘핏값’인지도 모른다. 9월16일 니수르 광장에선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오전 11시53분께 니수르 광장 주변에 있는 금융가에서 차량 폭탄이 터지면서 시작됐다.” 영국 〈BBC방송〉은 10월8일 인터넷판에서 사건 당시의 정황을 새삼 종합해 보도했다. 우선 바그다드 주재 미 대사관이 사건 당일 작성한 ‘현장보고서’ 내용을 살펴보자.

[%%IMAGE5%%]

차량 폭탄이 터진 현장 주변에 있던 미 당국자들은 블랙워터 경호팀에 둘러싸여 서둘러 안전지대(그린존)로 귀환했다. 블랙워터 쪽은 차량 폭탄이 터진 현장을 수습하기 위해 제2의 경호팀을 파견한다. 하지만 이들은 현장 부근에서 기습공격을 받았고, 이어 총격전이 벌어졌다. 미 당국자들을 그린존으로 귀환시켰던 또 다른 경호팀이 즉각 현장 재출동 명령을 받고 니수르 광장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광장 부근에 도착한 이들은 현장을 빠져나오는 차량 행렬에 밀려 도로 한복판에 멈춰섰고, 이어 현장으로 달려온 이라크군과 경찰 당국과 대치하기에 이른다. 결국 미군 신속대응팀이 현장으로 급파돼 블랙워터 경호팀을 구출하고 상황을 정리했다는 게 대사관 쪽의 보고 내용이다.

블랙워터 요원 1천 명, 1만6천 작전 수행

하지만 대사관 쪽 보고 내용과는 전혀 다른 증언이 꼬리를 물고 있다. 〈BBC방송〉은 “이라크인 목격자들은 블랙워터 경호팀이 니수르 광장 부근에서 차량 흐름을 차단시키려 했으며, 이를 무시하고 달려오는 차량에 발포를 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고 말한다”며 “일부 목격자들은 블랙워터 경호요원들의 로켓포 공격을 받은 피해 차량이 화염에 휩싸였다고 주장했다”고 전했다. “이어 경호원들이 주변 지역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퍼부으면서 이를 피해 달아나는 인파로 현장 일대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는 게 상당수 목격자들의 증언이다.

또 다른 증언도 있다. 미 〈CNN방송〉은 10월2일 익명의 이라크 경찰 고위 간부의 말을 따 “첫 번째 총격 사건 당시 블랙워터 쪽이 보유한 헬리콥터도 공중에서 기총 사격을 가했다는 목격자의 증언을 확보했다”며 “니수르 광장에 방치된 피해 차량에 생긴 커다란 총격 흔적도, 강력한 기총 사격이 아니라면 생길 수 없는 것”이라고 전했다. 등은 미 당국자들의 말을 따 “(무차별 총격이 계속되자) 현장에 있던 블랙워터 경호원 1명이 동료들에게 총을 들이대며 ‘사격을 멈추라’고 외쳤다는 증언을 확보했다”고 전했다. 친미 성향의 누리 알말리키 총리 정부마저 “천인공노할 만행이자, 의도적인 살육”이라고 격분하는 이유다.

[%%IMAGE6%%]

현재 이라크에서 활동하고 있는 민간 경호업체는 줄잡아 170여 개, ‘블랙워터’ 소속 경호요원만 1천여 명에 이른다. 지난 2005년 이후 최근까지 블랙워터가 이라크에서 수행한 각종 경호·호송 ‘작전’은 무려 1만6천여 차례나 된다. 사건이 일파만파로 번지면서 이 업체를 창업한 미 해군 특수부대(네이비 실) 출신의 에릭 프린스 회장은 10월2일 미 하원에 출석해 니수르 광장 사건과 관련한 청문회 증언대에 섰다.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가 최신호에서 정리한 이날 프린스 회장의 증언 내용을 보면, ‘테러와의 전쟁’은 블랙워터에 말 그대로 황금의 땅 ‘엘도라도’를 만들어줬다.

‘테러와의 전쟁’이 시작된 지난 2001년 이 업체는 미 연방정부로부터 모두 73만6906달러 상당의 계약을 따냈다. 이듬해인 2002년엔 이보다 5배 가까이 늘어난 340만달러 상당의 계약을 따냈고, 2003년엔 다시 그보다 8배가량 늘어난 2500만달러로 계약금이 늘었다. 블랙워터의 연방정부 계약고는 2004년 4800만달러로 다시 두 배 가까이 증가하더니, 2005년과 2006년엔 각각 3억5200만달러와 5억9300만달러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현재 이라크 주재 미 당국자 절대 다수의 경호 책임을 맡고 있는 이 업체가 2006년 말까지 따낸 미 연방정부 계약고는 10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었다. 같은 기간 프린스 회장은 미 공화당에 22만5천달러의 정치자금을 ‘쾌척’했다.

“그들 없인 정책 유지할 수 없다”

전쟁터에서 민간 경호업체가 활개를 칠 수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각종 임무를 민간업체에 맡김으로써 미군의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인명 피해가 날 경우에도 비난의 화살을 피할 수 있다. 이라크 근무 도중 사망한 블랙워터 요원은 지금까지 모두 27명에 이른다. 무엇보다 민간업체를 통하면 의회의 관리·감독을 효과적으로 비껴갈 수 있으며, 민간업체가 저지른 일에 대해선 책임도 쉽게 피해갈 수 있다. 영국 시사주간지 가 10월9일 발행된 최신호에서 “영국군이 철수하더라도 미군은 큰 어려움을 겪지 않을 테지만, 민간 경호업체 없이는 이라크 점령정책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