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부시와의 면담이 좌절된 이명박 후보… 왜 대선 후보들은 미 방문에 집착하나</font>
▣ 류이근 기자ryuyigeun@hani.co.kr
처음 있는 일이었다.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을 만났다. 1987년 9월 대선을 석 달 앞둔 때였다. 미국의 대접도 극진했다. 노 후보와의 면담 자리엔 아버지 부시 부통령, 베이커 비서실장, 듀버스타인 비서실 차장, 켈리 국가안보회의 안보담당 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노 후보는 그해 제13대 대선에서 828만 표를 얻어 대통령에 당선됐다.
1987년 노태우-레이건 이후 두 번째 될 뻔
이번이 두 번째가 될 수도 있었다. 노태우 이후 지난 20년 동안 숱한 대선 후보가 있었지만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은 한 건도 없었다. 원치 않아서 그런 게 아니다. 후보들은 원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는 면담을 성사시킬 뻔했다. 이 후보 쪽과 한나라당은 지난 9월28일 닷새 만에 거둬들일 발표를 내놓는다. “이 후보가 10월14일부터 17일을 전후해 미국을 방문해 조지 부시 대통령과 공식 면담하기로 했다.” 대선이 채 석 달도 남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논란이 됐다. 이해찬 통합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는 “미국을 상전으로 모시는 그런 후보가 어떻게 이 나라 운명을 결정하겠느냐”고 말했다. 이 후보의 부시 면담은 부적절한 사대외교란 비난이다. 같은 당의 정동영 예비후보는 미국 쪽에 더 초점을 맞췄다. “미국 행정부의 중립성이 의심받을 수 있는 지극히 부적절한 만남”이라며 미국 정부에 면담 재검토를 요구했다. 미국 백악관은 서둘러 발을 뺐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대변인은 10월2일 “백악관이 부시 대통령과 이 후보 간 면담 요청을 받은 건 사실이지만, 그런 면담은 계획돼 있지 않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주한미대사관도 백악관의 발표를 되풀이했다.
하지만 이 후보 쪽과 한나라당은 쉽게 뜻을 접지 않았다. 면담을 주선한 강영우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위원의 “면담 계획을 재확인했다”는 말을 믿었다. 다음날 나경원 대변인이 “더 이상 그 부분에 대해 언급하지 않겠다”는 브리핑을 한 뒤에야 모든 게 정리됐다. 모양새를 구겼다. 이 후보의 최측근이자 당 대선준비팀장인 정두언 의원은 에 “기스(흠집)가 났다”고 말했다.
지난 6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이 후보 쪽은 당시 방미 일정을 기자단에 뿌렸다.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를 걸어 부시와의 면담 일정도 잡혀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돌연 취소됐다. 배경 설명은 크게 두 가지였다. 정두언 의원은 당시 “부시 대통령을 만나기는 하는데 모양새가 좋지 않게 돼 있더라. 그래서 시장님(이 후보)이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하나는 당내 정치적 상황을 고려한 탓이라는 설명이다. 이 후보 수행실장을 지낸 이성권 의원은 “박근혜 후보 쪽에서 계속 검증 의혹을 제기하는 마당에 시장님이 며칠 동안 미국에 나가면 제대로 대응할 수 없을뿐더러 도피한다는 느낌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거기까지만 알려지고 말았다.
미국은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것 경계
두 번의 면담 요청이 어떤 경로를 거쳤는지 명쾌하게 드러나진 않았다. 두 번째 면담 시도는 강영우씨와 리처드 손버그 전 미 법무장관이 나서 직접 부시에게 편지를 썼다. 미 대사관에도 도움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나 이명박-부시 면담의 자리와 성격 등은 알려지지 않았다. 면담의 ‘대가’도 그 성격상 비밀에 부쳐졌다. 첫 번째 면담은 다른 라인이 움직였고, 경로는 베일에 가려졌다. 이 과정을 잘 아는 한 워싱턴 소식통(익명 요청)은 에 “지난 6월 중순에 열리는 공화당 정치자금 모금행사에 부시 대통령이 앉는 헤드 테이블을 이명박 후보 쪽이 수억원을 내고 통째로 사려 했고, 이 가운데 일부인 계약금이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 과정에 백악관 정책자문위원 직함을 갖고 있는 척림(미국명)이 깊숙히 개입했다”고 말했다.
이명박-부시 면담의 성격, 그것도 정치적 성격에 대한 백악관의 브리핑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고든 존드로 백악관 NSC 대변인이 “미국은 어떤 식으로든 한국의 대선 정국에 말려드는 데 관심이 없다”고 한 문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부시가 이명박 후보를 만나는 건 한국의 대선 정국에 관여한다는 판단을 한 셈이다. 이명박-부시 면담 불발(성사됐어도 마찬가지이지만)에서 볼 수 있는 본질적인 문제도 여기에 있다. 바로 대선에서의 미국 변수다. 구체적으론 대선 후보가 미국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하고, 미국 또한 때론 이를 정치적으로 활용하거나 경계한 것을 엿볼 수 있다.
1987년 9월 당시 여당 후보였던 노태우는 성공했지만, 1997년 4월 당시 야당 후보였던 김대중은 실패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앨 고어와의 3자 면담을 기대했으나, 끝내 성사되지 못했다. 2002년 1월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는 딕 체니 부통령과 지금은 국무장관이 된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을 만났다. 독특하게도 노무현 대통령은 후보 시절 미국에 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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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이유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선을 앞두고 방미를 정치적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엔 일치한다. 이명박 후보가 부시와의 만남을 시도하고 집착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나라당 대선준비팀에 있는 인사는 “부시와의 면담엔 득실이 따른다. 사대주의로 비쳐 잃는 게 있겠지만, ‘대통령처럼 보이기식’ 행보를 통해 막판 대세론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대통령’이란 대중적 이미지를 굳힌 이 후보가 ‘외교’를 더해 장점을 하나 더 키울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대선 후보 선출을 위한 경선 때부터 이명박 후보에게 외교 영역은 상대적 콤플렉스였다. 박근혜 예비후보는 박정희 대통령의 딸에, 1970년대에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활동했으며, 제1야당의 당대표를 2년 넘게 지내고 4개 국어에 능통했다. 이명박과 달리 박 전 대표는 중국에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만나는 등 여러 나라에서 국빈급 대우를 받았다.
안 만난 게 다행?
부시와의 면담 불발로 주변 4강을 중심으로 ‘경제외교’를 펴나가겠다는 이명박 후보는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겼다. 정치컨설턴트인 김윤재 변호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이 후보가 왜 ‘워터게이트’의 닉슨 대통령 이후 최악의 지지율을 보이고, 2008년 임기가 끝나는 부시를 서둘러 만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 외교력이 없다고 이명박을 찍을 사람들이 안 찍는 것도 아니다. 외교력 등 자신의 약점을 덮으려 할 게 아니라, 장점인 경제로 승부하면 된다. 외교적 성과를 내기 어려운 대선 후보가 표를 의식해 무리해 미국의 대통령이나 부통령을 만나는 건 국가적 이익이 걸린 외교적 차원에서 봤을 때도 부적절하다.”
2002년 이회창 총재의 방미는 실제 이런 우려를 현실화했다. 그의 방미 직후 는 그가 ‘악의 축’ 발언을 지지한다고 썼다. 또 는 그가 부시 행정부에 대북 강경책을 주문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이 총재가 정확히 어떻게 발언했는지 알 수 없었으나, 국내로 돌아온 그는 한국 정부의 대북 정책 및 입장과 달리 부시 정부의 장단에 놀아났다는 비판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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