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 투쟁 101일째 되던 날 노동청에서 체포된 사연</font>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긴 팔 입고 시작한 싸움인데 다시 긴 팔 옷을 꺼내 입고 나왔어요. 털옷 입기 전에 매장으로 돌아가야 할텐데…”
10월1일 오후 1시30분, 뉴코아·킴스클럽·2001 아웃렛 등 이랜드 유통 계열사에서 일하다가 지난 4월 말부터 6월까지 순차적으로 해고된 13명의 비정규직 여성들이 ‘우리는 일하고 싶다! 용역전환-전환배치 철회’ 등이 쓰인 펼침막을 들고 서울지방노동청장실 책상 앞에 일렬로 앉아있었다. 킴스클럽 매장에서 4년간 계산원으로 일한 황아무개(45)씨는 “싸움을 끝내고 싶은데 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며 “이상수 노동부 장관을 만나서 비정규직법 때문에 일자리를 잃어버린 우리 상황을 진솔하게 전달하고 싶지만 정부종합청사에 들어가기가 너무 힘들어서 노동청으로 왔다”고 말했다.
“길바닥에 나앉느니 청장실이 낫네요”
10월1일은 이들 뉴코아 노동조합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량해고 철회”를 외치며 반대투쟁을 한 지 101일째 되는 날이다. 지난 100일 동안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조합원들은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고 거리시위·매장점거투쟁·매장앞농성 등을 벌였다. 뉴코아·홈에버 매장을 점거하다가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고, 문화제·촛불시위·이랜드 상품 불매 운동까지 다양한 방식의 운동을 했다. 온라인상에서는 ‘반노동기업 이랜드 반대’ 같은 띠가 유행처럼 번지기도 했다. 100일이 넘게 ‘반이랜드 운동’은 사그라지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10월1일 또 한번의 ‘점거 시위’를 하고 있는 13명의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찾았다. 남편이 대장암으로 다음날 입원하는 이아무개(43)씨는 킴스클럽 매장에서 1년간 계산원으로 일했다. 그는 “일자리가 절실해서 투쟁을 하고 있지만 도대체 100일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 뭔가요? 어차피 갈 데도 없어요. 길바닥에 나앉느니 여기 청장실이 따뜻하고, 카펫도 깔려 있고 좋은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딸이 고3이라는 이아무개(52)씨는 “계산원으로 일한 지 9년이 지났어요. 9년간 일 잘하고 있었는데, 망할 법이 통과된 이후에 잘렸어요. 너무 기가 막혀서 항의를 안 할 수가 없어요”라고 말했다. 이씨는 “그동안 특별히 잘해준 것도 없는데, 고3 때라도 뒷바라지해줘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2년7개월간 계산원으로 일한 김아무개(42)씨는 “정부가 통과시킨 법이니 정부도 책임져야 한다”며 “여러 방법을 고민하다 노동청으로 가보자고 결심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잘못 들어온 걸까. 서울지방노동청은 싸늘하기만 했다. 전재성 노사지원과장은 “우리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없다. 지금 여기 와서 노동부 장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말한다고 만날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느냐”고 말했다. 노사지원과의 한 직원은 “뉴코아 본사는 경기도 안양에 있기 때문에 여기에는 담당자들도 없다. 엉뚱한 데 와서 따지고 있는 셈이니 우리로서는 사실 황당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직원은 “법을 고치려면 국회 앞으로 가야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느냐”고 말했다.
‘잘못된 곳으로 왔기 때문에 우리가 직접적으로 해결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한 서울지방노동청이, 13명의 뉴코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청장실을 점거한 동안 한 일은 ‘퇴거 명령’과 ‘청장실 지키기’밖에 없었다. 10월1일 하루 동안 5번 노동자 대표들을 불러 대화를 나눴지만, 노동자들이 요구한 내용을 듣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게 아니라 “나가라, 아니면 연행한다”는 이야기만 전달했을 뿐이다. 퇴거 요청서만 오후 1시40분, 2시10분, 2시30분, 마지막으로 4시50분까지 네 차례 전달됐다.
“잘못 찾아왔다”며 연행, 32시간 구금
직원들은 짜증스런 반응을 보였다. ‘청사와 시설의 관리 및 방호’를 맡고 있는 관리과 직원들은 밤새도록 청장실 주변을 지키면서 점거한 비정규직 직원들이 청장실에 놓인 의자 위 방석 하나 건드릴라 치면 “건드리지 마세요”라고 소리쳤다. 청장 책상 옆에 서 있는 화분에 있는 나뭇잎을 스쳐도 “나무 조심하세요”라고 또 한 번 소리쳤다. 황씨는 “우리 때문에 직원들도 집에 갈 수 없으니 짜증나겠지만, 여기는 다른 곳도 아니고 노동자들을 위한 노동청이 아닌가요?”라며 “우리를 전혀 이해해주지 않아서 섭섭하고 화난다”고 말했다.
밤 10시30분. 여성 12명은 청장실 바닥에 드러누웠다.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는 채로 밖으로 나갈 수 없어서 청장실에서 잠을 청하기 위해서다. 카펫이 깔려 있었지만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왔고, 청장실 안에서 7명의 남자 직원이 이들을 지키고 서 있었다. 킴스클럽에서 3년9개월간 계산원으로 일한 이아무개(48)씨는 “새벽 두 시에 눈을 떴는데, 잠을 자고 있지 않은 2~3명의 직원들이 우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솔직히 섬뜩했다”고 말했다. 다음날 아침 7시, 잠에서 깬 12명의 여성 노동자들은 다들 뻐근해했다. 누가 말만 시켜도 눈물이 난다는 주부 장아무개(45)씨는 “내 평생 이렇게 바닥에서 잠잘 일이 있을 줄 알았겠냐. 돈 없어도 우리는 행복했는데 지금은 여기저기 바닥에서, 때로는 경찰서 유치장에서 잠잔다. 그렇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되찾고 싶다”고 말했다.
오전 8시50분. 남대문경찰서 정보계장 등이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노조원들의 대표를 불러들였다. 경찰은 “지금 여러분이 하는 일들은 불법입니다”라고 말했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우리가 오죽하면 여기 왔겠냐”라고 외쳤다. 벽 보고 이야기하는 식으로 마지막 ‘교섭(?)’마저 끝나고 남대문경찰서 수사과장이 들어와 “지금 즉시 공무집행방해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라는 말과 함께 곧바로 여경 20여 명이 12명의 여성과 1명의 남성을 끌고 갔다. 서울지방노동청 5층 청장실에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연행돼가는 1층에까지 “비정규직 철폐하라, 박성수(이랜드 회장)를 구속하라”는 구호만 공허하게 울렸다. 13명의 노동자 중 비정규직 노동자 12명은 서울지방노동청을 점거한 지 21시간 만인 2일 오전 9시30분께 각각 남대문경찰서와 용산경찰서로 연행됐고, 이후 32시간 뒤에 풀려났다. 같이 청장실을 점거한 뉴코아노동조합 간부 한 명은 구속영장이 신청됐다.
“우리 절실함을 알릴 수만 있다면…”
이 13명의 ‘서울지방노동청장실 점거’는 어쩌면 이번 사건의 해결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할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집회, 점거, 거리농성, 피켓시위, 1인시위, 릴레이시위 등은 모두 개인 혹은 집단이 당한 부당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아무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상황에서 뉴코아·이랜드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00일 넘게 싸움을 이어가며 ‘무관심’에 지쳐 ‘관심’을 끌어내기 위해 여기저기 싸움을 걸고 있다.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연행됐다 하룻 밤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보낸 12명의 비정규직 여성들은 10월3일 오후 5시, 경찰서 밖으로 나왔다. 지친 모습을 한 주부 김아무개씨는 “우리의 상황, 우리의 절실함을 알릴 수 있다면 뭐든 하겠다”라고 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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