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마 선언과 함께 심상찮은 지각변동 감지되는 ‘문국현 현상’에 대한 몇 가지 물음표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8월23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는 날, 문국현 대선 예비후보가 던진 메시지는 ‘사람 중심 진짜 경제’였다. 한나라당 관계자는 이에 대해 “소름 돋는 표현”이라며 무릎을 쳤다. 경제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온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의 경제철학을 단박에 ‘재벌 중심 가짜 경제’로 바꿔치기해버리는 효과를 거두었다는 뜻이다.
1월에 감지된 ‘문국현 현상’
문 후보는 지난 1월 한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명박 후보의 대운하 공약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그는 대운하 구상이 ‘배가 산으로 올라가는’ 일이라고 비판한 뒤 “시멘트보다는 소프트웨어와 지식, 이런 쪽에 더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문 후보의 인터뷰 기사는 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그날 최다 댓글이 달린 뉴스로 기록됐다.
당시 최재천 민주신당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문국현 사장 인터뷰 이야기였다. 문국현 사장이 나서니까 비로소 이명박 전 서울시장과 각이 제대로 선다는 것이 큰 화제였다.” 문 후보의 인지도가 지금보다 더 낮았던 올 초의 일이다.
문국현 후보의 ‘사람 중심 진짜 경제’ 캠페인이 대선 구도에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일부 언론에서는 벌써부터 ‘문국현 현상’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정확히 짚어내는 문 후보의 메시지가 메아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다.
문 후보의 캠페인이 호응을 얻고 있는 이유는 그의 이력에서 출발하고 있다. 최근까지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을 지낸 문 후보의 리더십은 투명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 이행, 일자리 창출을 통한 상생경영 등으로 대표된다. 유한킴벌리에서 시작된 근로시간 단축과 평생학습 모델은 포스코와 CJ, 한국타이어 등 약 180개 기업으로 확산됐다.
대선 출마와 함께 문 후보가 제시한 경제 해법 역시 일자리 500만 개 창출과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 절반 이하 감축 등이었다. 한반도 대운하 건설로 대표되는 이명박 후보의 경제 공약과 뚜렷하게 대비되는 대목이다.
인터뷰의 댓글 조회 수도 3천 건
문 후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여러 지표를 통해서도 입증되고 있다. 대부분의 언론에서는 문 후보의 대선 출마 소식을 비중 있게 처리했다. 하루 전인 8월22일 대선 출마를 알린 추미애 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 소식이 단신으로 처리된 것과 비교할 때, 문 후보의 ‘상품 가치’가 윗길로 평가된 것이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지 닷새 만인 8월28일 한국방송 여론조사에서 문 후보는 1.8%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범여권 대선 후보 가운데 손학규, 정동영 후보에 이은 3위였다. 오차범위 내에서 움직인 것이기 때문에 변동폭 자체가 큰 의미를 갖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문 후보 캠프에서는 고무적인 결과로 받아들였다.
문 후보의 기사에 많은 네티즌들이 관심을 보이고 있는 현상도 주목할 만하다. 문 후보 자신도 8월30일 과의 인터뷰에서 “기사에 2천 개씩 댓글이 달리고 밤새도록 토론이 일어나는 걸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기존 정치에 식상해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특이한 것은 네티즌들의 반응이 단순히 호불호를 나타내는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기존 댓글과 양적·질적으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글들이 상당수다. 실제 의 ‘인터넷에서 나에 대한 열기 보고 놀랐다’라는 기사에 ‘민주시민(sapril)’이라는 필명의 네티즌이 남긴 댓글은 3천 건이 넘는 조회 수와 200건에 달하는 찬성을 얻었다. 댓글에서 민주시민은 문 후보를 통해 받은 감동과 그가 대통령이 돼야 할 이유 및 강점을 수십 줄에 걸쳐 적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국현 현상’을 만들고 있는 이러한 움직임을 2002년 노무현 후보를 대통령으로 만든 ‘노사모’ 바람과 비교하고 있다. 문국현이라는 인물의 등장이 그들을 결집할 수 있는 ‘감동의 코드’를 자극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말은 한편으론 본선 경쟁력이 불투명한 유시민, 이해찬 민주신당 대선 예비후보만으로는 그들의 식어버린 열정을 일깨우는 데 충분하지 못했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도 있다. 이명박, 손학규 후보는 물론 민주신당에 대해서도 거침없는 비판을 멈추지 않았던 문 후보도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유시민, 한명숙 등 친노 그룹 후보들에 대해서만큼은 대단히 관대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첫 번째 분수령, 9월15일까지 5%
민병두 민주신당 의원은 “인터넷 댓글을 분석해보면 문국현 후보에 대한 관심이 극대화되고 있는 단계로 보인다”면서 “유시민, 이해찬 후보 사이에 있던 과거 노사모 세력이 문 후보까지 함께 고민의 대상으로 올려놓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지금의 ‘문국현 현상’은 과연 12월19일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탄탄한 콘텐츠와 참신한 이미지를 지니고 있는 문 후보가 ‘이명박 대항마’로 손색없다는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 쪽이 있는 반면, 대선을 불과 넉 달 앞둔 시점에서 조직과 자금도 없이 뛰어든 문 후보의 미래는 불투명하다는 전망을 내놓는 또 다른 한쪽이 있다. 그들은 문 후보에 대해 다음과 같은 물음표를 던지고 있다.
시간과의 싸움
“좀 늦었죠. 철학이나 체계는 잘 갖춰져 있는데.”
민병두 의원이 문 후보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하지 않은 이유는 결단이 너무 늦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민 의원은 “지난해 12월부터 범여권에서 꾸준히 출마를 권유했는데도 문 후보 본인은 지난 2월 유한킴벌리 대표이사 사장 임기를 연장했다”면서 “그걸 나중에야 부랴부랴 수습하려다 보니 출마 선언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현재 인터넷을 중심으로 불고 있는 문국현 바람을 조직화해서 길게 끌고 가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민 의원은 지적했다.
남은 정치 일정도 문 후보 쪽을 압박하고 있다. 우선 범여권은 9월5일 예비경선 확정을 시작으로 숨가쁜 대선 레이스를 시작한다. 9월15일부터는 본경선이 시작된다. 여야의 합의에 따라 일정이 조금 늦춰질 수도 있지만 9월10일부터는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다. 이래저래 9월15일 이후 언론의 관심은 민주신당 경선이나 국정감사 쪽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문 후보 쪽에서도 지지율을 올릴 시간이 충분하지 않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공감하고 있다. 최열 환경재단 대표는 “시간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라며 “대선 출마 선언 직전까지 문 후보와 함께 ‘죽을 힘을 다해서라도 민주신당 본경선이 시작되는 9월15일까지 지지율 5%까지만 올리자’라는 논의를 했다”고 말했다.
문 후보 캠프의 또 다른 관계자도 “어찌됐든 9월15일까지는 후보의 상품가치를 최대한 끌어올려놓아야 나중에 ‘장사’를 하더라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독자 신당이 됐든, 아니면 가능성이 낮지만 민주신당 본경선에 뛰어들든 일정 정도 이상의 지지율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이야기이다. ‘9월15일까지 여론조사 지지도 5%’, 문 후보의 성공 가능성을 가늠할 수 있는 첫 번째 분수령인 셈이다.
‘아류는 이류’
“유사 캠페인이 이기는 것 봤소?”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의 반응이다. 문국현 후보의 가능성과 한계에 대해 분석해달라고 하자 홍 의원은 “정치 안 하는 게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선점해놓은 경제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항하기 위해 ‘진짜 경제’를 내세운 것이라면 이는 원조 캠페인에 뒤따르는 유사 캠페인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홍 의원은 “특정 이슈를 띄워서 국민들에게 하나의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며 “문 후보가 성공하려면 차라리 이 후보와는 달리 환경대통령이나 다른 패러다임을 제시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후보가 경제 대통령론을 앞세워 유권자에게 다가설 수 있었던 것은 현대건설 시절을 통해 얻은 ‘샐러리맨의 신화’와 서울시장에 재직할 때 완성한 청계천 복원공사, 단 두 가지만으로 충분했다. 샐러리맨 신화와 청계천 복원공사의 형성 과정 및 효과가 철저하게 검증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전체 유권자의 50%가 넘는 사람들은 이 후보를 경제 지도자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문 후보가 이 후보의 경제 대통령론을 돌파해 ‘진짜 경제’를 알리기 위해서는 유한킴벌리 재직 시절을 통해 이룩한 실적이 이 후보의 그것보다 월등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유권자들이 이를 확인하고 받아들이는 기간도 확보돼야 한다.
문 후보의 경제 공약에 대해 이 후보 쪽 박형준 의원은 “이 후보의 747 공약도 문 후보가 말하는 것처럼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해법을 기초로 하고 있다”며 따지고 보면 크게 다를 바 없다고 강조했다.
요컨대 문 후보가 범여권 지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진짜 경제’ 캠페인을 펼쳐 이명박 후보에 대항마로 떠오르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추월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검증되지 않은 정치력
“콘텐츠와 자질은 뛰어나다. 하지만 기업을 운영한 경험과 행정, 국정운영 경험은 전혀 다르다.”
한명숙 민주신당 예비후보 쪽 백원우 의원은 이 부분을 문 후보의 약점으로 꼽았다. 백 의원은 개인적 견해라는 점을 전제로 “문 후보가 기업을 훌륭하게 이끌어온 실적은 평가할 만하지만 조직력이나 권력 의지에 대한 부분은 검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문국현 후보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기 직전까지 유한킴벌리 사장직과 킴벌리클라크 동아시아 총괄사장 업무를 수행해왔다. 1974년 유한킴벌리 입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이래 34년 동안 줄곧 한 회사에서만 일해온 것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의원은 “이명박 후보도 현대건설 회장까지 지냈지만 대통령 후보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정치 입문 이후 무려 15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면서 “경제 한 분야를 잘 안다고 곧바로 대통령도 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정치를 지나치게 나이브(naive)하게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 후보 캠프에서는 정치력, 조직력, 권력 의지 부족에 대한 비판을 정면 돌파하겠다는 입장이다. 고원 공보팀장은 “조직력을 따진다면 2002년 오직 천정배 의원 한 명과 함께했던 노무현 대통령은 새천년민주당 경선에서 이인제는 물론 한화갑 후보조차도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었다”고 반박했다.
문 후보 자신 역시 과의 인터뷰에서 “우리가 시대정신에 맞고 국민이 원하는 바를 정확히 알고 있다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성공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며 대선에 대한 의지를 강조했다.
정치적 순결주의
“자기만 똑똑한 줄 안다. 문 후보가 언론에 쏟아내는 말을 보면 현실 정치권에 대한 불만이 지나치게 크다.”
손학규 후보 쪽 김동철 의원의 지적이다. 김 의원은 “깨끗하고 기업 경영 마인드도 뛰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정치권과 정치인에 대한 문 후보의 언급을 살펴보면 대단히 독선적이고 오만한 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의원은 또 문 후보를 겨냥해 ‘독재자가 될 사람’ ‘정치를 하면 큰일 날 사람’이라는 표현도 썼다.
이와 비슷한 지적은 문 후보 캠프 내부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캠프의 한 핵심 관계자는 “문 후보가 계속 기업에만 있다 보니 기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워낙 크고 자기 스타일에 대한 고집도 강하다”며 “세를 불리기 위해서는 기존 정치인도 필요한데 문 후보가 아직까지는 일종의 ‘순결주의’만을 고집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이 부분은 한 꺼풀 더 벗겨보면 문 후보 캠프의 본질적 고민과도 맞닿아 있다. 그동안 문 후보 자신은 진보적 가치를 강조해왔다. 손학규 후보와 민주신당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문 후보가 줄곧 지적한 것은 ‘가치관’의 혼란이었다. 문 후보가 내놓은 비정규직 해법은 오히려 민주노동당의 접근 방식보다 진보적이다. 진보적 가치에 대한 선명성을 강조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형성하는 데 유리할 수 있다. 실제 문 후보의 등장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했던 층위도 민주노동당과 과거 열린우리당 사이에서 방황하고 있던 개혁적 유권자들이라는 분석이다.
반면 지지층의 외연을 확대하기 위해서는 개방과 수용의 자세가 필요하다. 문 후보 캠프에서 ‘문국현 패러다임’은 개혁·실용 세력의 대결 구도를 뛰어넘어 전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제시하는 것이라는, 다소 애매한 태도를 취하는 이유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가치관’ 문제에 대한 해답은
고원 공보팀장은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했던 개혁적 유권자들의 한쪽은 현재 친노파로 대표되는 문화적 진보세력으로, 나머지 일부는 진보적 태도를 버리지 않으면서 시장주의나 세계화를 긍정하는 쪽으로 분화됐다고 본다”면서 “국민통합이라는 과제를 완결하기 위해서는 이들 전체는 물론 호남도 함께 묶어내야 한다”고 말했다.
‘좌파 신자유주의’라는 비난 아닌 비난을 들어야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해결하지 못했고, 열린우리당이 당 간판을 내린 주된 이유로 작용했던 것이 가치관의 충돌이다. 문 후보 본인이 민주신당을 비판할 때 즐겨 사용하는 ‘가치관’ 문제에 대한 해답을, 문 후보 캠프에서 어떻게 찾아갈 수 있을지 결말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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