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급식업체의 이상한 채용…최종합격 뒤 회사가 권하는 ‘아르바이트’만
▣ 박수진 기자jin21@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최동현(가명·20대 중반)씨는 지난 5월 (주)아워홈 조리사로 최종 합격했다. 6개월의 인턴 조리사 기간을 거쳤고 최종 면접도 통과했다. 아워홈은 지난해 급식 부문에서만 4200억원의 매출을 달성하며 업계 1위로 올라선 회사다. 초봉도 업계에서 가장 높은 2200만~2300만원 수준이다. 식구들은 모두 “대기업에 취직했다”며 축하해줬고, 최씨도 뿌듯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깐, 최씨는 합격한 날로부터 2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발령이 나지 않아 일 없이 대기 중이다. 언제 어디로 발령날지 기약이 없으니 여행을 갈 수도, 다른 회사를 알아볼 수도 없다. 옴짝달싹 못하고 매여 있는데다, 돈도 없다. 발령 대기 중엔 월급이 안 나온다.
46명 중 정직원 발령은 14명
최씨가 지난 2개월 동안 할 수 있었던 일은 공교롭게도 회사가 권한 아르바이트였다. 아워홈 인사팀은 최씨와 같은 대기자들에게 ‘아르바이트하지 않겠냐’는 전화를 자주 한다. 최씨는 지난 7월 초 “급하게 인력이 필요하다”는 연락을 받았다. 최씨는 ‘혹시 정직원 발령에 영향이 있을까’ 하는 마음에 곧장 달려갔다. 일을 한 12일 동안 밥 볶기, 육수 뽑기, 재료 다듬기, 배식 등 전형적인 조리사 일을 하고, 하루에 4만원씩 모두 48만원을 받았다. 최씨는 “일하다가 점포 실장님에게 ‘왜 일손이 부족한데 정직원을 뽑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돈도 없는데 인건비라도 줄여야지’라는 답을 들었다”며 “일손이 상시적으로 부족해도 정직원을 채용하면 비용이 드니까, 저렴한 ‘알바’로 돌려 쓰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1등 급식업체 아워홈이 정직원으로 뽑은 조리사들을 곧바로 채용하지 않고 몇 달씩 싼값의 아르바이트생으로 쓰는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게다가 그런 일은 올해만 있었던 게 아니다. 지난 5월 인턴 조리사에서 정직원 여부를 판가름하는 최종 면접을 통과한 이들은 모두 46명. 이 중 정직원으로 발령난 이들은 14명에 불과하다(7월 말 기준). 32명이 대기 상태다. 이들보다 6개월 전에 뽑은 47명의 조리사들도 정식 발령이 나기까지 평균 55일이 걸렸다. 가장 늦게 발령난 이들은 5개월 반을 기다렸다. 2005년에 뽑아 최종 합격한 조리사들도 짧게는 3개월, 길게는 10개월까지 발령을 기다리며 회사에서 권한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이런 관행이 수년째 계속돼온 것이다. 최씨처럼 대기발령 상태인 구재명(가명·20대 중반)씨는 “인사팀이 얼마나 기다리라는 말도 없이 ‘자리 나면 채용한다’면서 ‘그동안 아르바이트를 시켜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고 전했다. 발령을 전제로 일손이 빌 때마다 싼값에 불러 쓸 수 있는 시급 알바생 취급을 한 것이다. 구씨는 “발령에 영향을 줄까봐 회사 쪽에 항의도 제대로 못한다”고 덧붙였다.
아르바이트 급여는 시간당 3500~3800원, 또는 일당 3만5천~4만원이었다. 주 5일씩 꼬박 일해서 받을 수 있는 돈은 80만원대이다. 연봉 2200여만원의 정직원이라면 매월 실수령액이 170만원선으로, 최소 90만원은 차이가 난다. 대기발령 중 한 달간 아르바이트를 한 김수용(가명·20대 초반)씨는 “정직원이랑 같은 일을 하는데도 급여는 시간당 3500원이어서 억울했다”고 말했다.
“선행사원으로 발령 내도 될 텐데”
사정이 이렇다 보니 ‘대기자’들은 아워홈이 비용 절감을 위해 ‘늑장 발령’에다 ‘알바 전용’의 행태를 보이는 게 아닌가 하는 의혹을 갖는다. 앞선 기수의 미발령자들이 다 발령나지 않았는데도, 다음 기수를 계속해서 채용해왔기 때문이다. 구재명씨는 “일자리가 없어 발령을 못 내준다고 하고는 매년 새로 40~50명씩 신규 채용을 하니까 일자리가 없다는 게 정말인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회사가 ‘선행사원’ 제도가 있음에도 ‘아르바이트’를 남용한 것도 이런 의혹을 부채질한다. ‘선행사원’이란 행사가 있거나, 갑작스런 결원이 생겨 단기적으로 인력이 모자라는 점포를 돌아다니면서 일하는 조리사 혹은 영양사를 말한다. 고정된 점포 없이 여기저기 돌아다니지만 이들은 정직원이다. 구씨는 “선행사원으로라도 발령내면 될 텐데 특별한 이유 없이 계속 아르바이트로 돌리는 걸 보면 회사가 어떻게든 인건비를 아끼려는 게 아니겠느냐”고 불만을 표시했다. 구씨는 직장을 다니다 더 나은 조건에서 일하기 위해 아워홈으로 옮긴 터라 조바심이 더욱 크다.
아워홈은 채용 지연 이유에 대해 “6개월 후 채용 규모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힘들어서 즉각 채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홍무용 인사팀장은 “6개월 인턴 기간을 거치다 보니, 6개월 뒤 어느 점포에 자리가 빌지 등을 정확하게 알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업계 1위의 대형 급식업체가 필수 인력인 조리사와 영양사의 인력 운용 규모를 예측하지 못하고 주먹구구로 뽑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홍 팀장은 “합격자들의 연고지를 배려해 발령하다 보니 제때 발령하는 게 더 힘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회사 쪽의 주장은 실제와는 거리가 있다. 2005년 입사해 3개월간 대기발령을 거쳐 정식 발령이 난 한상호(가명·20대 중반)씨는 “동기 중에 6개월을 기다리던 부산·경남 지역 8명은 구미에서 일할 것을 제안받아, 한 명만 빼고 모두 구미로 갔고, 연고지가 서울 길음동이었던 한 친구는 10개월 대기하다가 영종도로 발령받았다”면서 “기다린다고 연고지나 희망지에 꼭 발령난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현재 대기발령 상태인 김형오(가명·20대 중반)씨는 “지역은 상관없으니 빨리 자리 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지만, 회사에서는 여전히 ‘아르바이트하겠냐’는 전화만 한다”고 말했다.
‘알바 남용’ 의혹에 대해서도 회사 쪽은 “조리사 업무는 전문성이 필요하므로 아르바이트 인력이 할 수 없다. 아르바이트는 조리사 업무가 아닌 돈 계산, 청소 등의 일을 한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대기자’들은 아르바이트로 음식 재료 전처리, 조리, 배식 등 조리사 업무를 했다고 주장한다.
근로기준법 23조는 정당한 이유 없이 해고, 휴직, 정직, 전환 등을 할 수 없게 하고 있다. 몇 개월씩 일을 주지 않고(휴직), 정직원에게 아르바이트를 제안(전직)하는 것은 명백한 위법이다. 아워홈은 이에 대해 “편의상 계약서는 미리 썼지만 날짜를 비워뒀기 때문에 고용관계가 발생한 게 아니다”라며 “발령이 나야 날짜를 채워 정식 (고용) 계약서가 완성된다”고 말했다.
계약서에 날짜 없으니 고용관계 아니다?
회사 쪽은 정식 계약서가 아니라고 하지만, 채용된 사람들은 계약서에 사인을 했기 때문에 고용됐다고 믿고 있다. 또 나중에 발령이 나도 계약서를 다시 쓰는 게 아니다. 기존 계약서에 비어 있는 날짜만 회사 쪽에서 적는다. 발령을 얼마든지 늦출 수 있는 ‘고무줄 계약서’인 셈이다.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혜수 노무사는 “계약서에 임금, 근로내용이 있다고 하더라도 언제부터 효력이 발생하는지 발효일이 없을 경우, 계약 자체가 의미가 없는 것이 돼 노동자들이 권리 주장을 할 수 없게 된다”면서 “노동법상 계약 발효일은 합의사항인데, 회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법의 빈틈을 악용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취재가 끝난 8월 초, 아워홈은 대기 발령자들에게 8월 말에서 9월 말에 발령을 내주겠다는 전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업계 1위 급식 회사가 편법적인 고무줄 계약서를 무기로 늑장 발령, 알바 전용 등 채용 꼼수를 부린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김수용씨는 “처음에는 기다리면 되겠지 했는데 지금은 아예 발령이 안 나는 건 아닐까 걱정된다”며 불안해했다. 날짜도 적히지 않은 계약서만을 믿고 있는 아워홈의 합격자들, 이 시대 또 다른 ‘비정규직’의 모습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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