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선 변경’ 밝혀낸 함형욱씨의 고독한 싸움 제2막, 건설자본의 폭리 자료 수집하며 세 개의 소송 진행 중
▣ 가평=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함형욱(44)씨의 고향은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다. 그의 집안은 이곳 가평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토박이다. “원래 마을은 일제 때 청평댐 건설(1943)로 수몰됐다는 얘길 들었습니다. 저희 집안이 언제부터 여기 살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함씨의 부친은 그가 태어날 무렵인 40여 년 전 집 뒤 터에 잣나무를 심었고, 시간이 흐르면서 어린 잣나무 묘목들은 울창한 삼림으로 변해갔다. 이제는 건설업자의 포클레인에 엉망이 되고 만 가평군 설악면 송산리 산 108-3, 108-4 일대를 뒤덮었던 잣나무 숲(1만6천여 평)이 조성된 배경이다.

잣나무 숲은 대상지가 아니라고 하더니…
그는 “마을에 고속도로가 지난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무렵”이라고 말했다. 그때 함씨는 고향을 떠나 안양에서 PC방을 운영하던 평범한 시민이었다. 마을 이장을 맡고 있던 그의 작은아버지는 “고속도로가 지나는데, 잣나무 숲은 대상지가 아니다”라는 말을 전해왔다. “그저 그런 일이 있나 보다” 하는 정도에서 함씨는 고속도로를 기억에서 지웠다.
고속도로가 함씨의 인생에 재등장한 것은 1년쯤 시간이 더 흐른 2004년 8월에 접어들면서부터다. 어느 날 그의 집으로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놓기 위해 강제로 땅을 수용하겠다는 건설교통부의 통지서가 날아왔다. 수용 예정지는 부친의 잣나무 숲 한가운데인 송산리 산 108-4 일대 4200여 평이었다. “애초 대상지가 아니었던 땅이 왜 이렇게 됐을까.” 그의 첫 의문은 소박한 것이었다. 그는 “그저 진실을 알고 싶었기 때문에”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고, 춘천시청 홈페이지에 질문지를 올렸다. 그렇게 시작된 함씨와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싸움은 3년째 이어지는 중이다.
함씨의 잣나무 숲을 작살낸 서울∼춘천 고속도로(총길이 61.4km)는 현대산업개발을 대주주로 하는 ‘서울∼춘천 고속도로 주식회사’가 2001년 9월15일 정부 쪽에 사업을 제안해 시작된 악명 높은 민간투자사업이다. 건설교통부와 서∼춘고속도로는 그로부터 2년 반 뒤인 2004년 3월19일 최종 계약서에 해당하는 ‘서울∼춘천 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실시협약’을 맺고 본격적으로 삽질을 시작하게 된다.
함씨 투쟁의 제1막은 서울∼춘천 고속도로의 노선이 변경됐음을 증명하는 것이었다. 노선 변경의 이유는 간단했다. 가평에 대규모 종교단지를 건립한 통일교(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때문이었다. 고속도로는 문선명 총재의 소장품과 그동안 통일교의 발전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는 ‘박물관’ 앞을 지나게 설계돼 있었다. 통일교 쪽은 “노선을 바꿔달라”는 민원을 계속 올렸고, 결국 노선은 바뀌고 만다. 그런데도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노선이 변경됐다”는 함씨의 주장에 “그런 일은 없다”며 버텼다.
노선이 변경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국민의 혈세가 수백억원이 낭비된다는 의미다.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민자사업이긴 하지만,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이는 절반만 사실이다. 토지 보상비를 제외한 전체 공사비 1조4296억원 가운데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투자한 자기자본은 전체의 22.6%인 3238억원에 불과하다. 나머지 돈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지원하는 약정투자금(5023억원)과 정부의 지급보증으로 금융권에서 빌린 차입금으로 충당된다. 감사원은 2006년 4월6일 함씨에게 보낸 ‘서울∼춘천 고속도로 민자사업 관련 민원 검토 결과 통지’에서 “통일교 쪽 민원 수용으로 건설비가 416억원 증가된 사실이 있다”고 회신했다. 그 가운데 150억원은 서울∼춘천 고속도로 쪽이 떠안았고, 나머지 266억원은 사업비 증액으로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됐다.

건설비 증가 416억원, 국민 전가 266원
정신없이 관계기관을 쫓아다니던 함씨는 2005년 6월 흥미로운 자료를 하나 손에 쥐게 된다. 감사원이 2004년 10월 내놓은 감사 보고서 ‘SOC 민간투자제도 운용실태’였다. 보고서 안에는 그동안 함씨를 괴롭게 만들었던 의문들에 대한 해답이 적혀 있었다. 감사원은 사업 진행을 위해 건교부와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저질러온 수치 조작, 편법, 자료 왜곡 등을 호되게 지적하고 있었다. 서울∼춘천 고속도로는 사업 추진을 위해 하루 2만여 대에 불과한 예측 통행량을 5만여 대로 부풀렸고, 이를 잡아내야 할 국토연구원 민간투자지원센터(지금은 한국개발연구원으로 이관)는 이를 날림으로 검토했으며, 건교부는 이자율을 잘못 계산해 고속도로 통행료를 4525원에서 5200원으로 뻥튀기했고, 계약서를 심의해야 하는 기획예산처 민간투자심의위원회는 관련 법(사회간접자본시설에 대한 민간투자법) 규정을 어기고 위원회를 편법으로 열어 사업 시행에 도장을 찍어줬다. 여기서 말하는 편법이란, 재적위원 과반수의 출석으로 개의하고, 출석위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의결하는 위원회를 개회하는 대신 건교부 직원이 서울∼춘천 고속도로 직원과 함께 심의위원들을 하나하나 찾아다니며 서면으로 심의를 받았다는 뜻이다.
이후 함씨의 투쟁은 2막으로 접어들었다. 그는 서울∼춘천 고속도로를 통해 드러나는 민자사업의 병폐에 대해 고민하는 중이다. 첫 타깃은 공사비를 부풀려 수천억원의 폭리를 취한 건설자본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이다. 2006년 1월23일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기자회견 자료를 보면, 민자사업을 시작한 건설회사는 (수의계약 형태로) 1천원에 공사를 발주받은 뒤 하도급 업체에 공사를 넘길 때는 치열한 가격 경쟁을 유도해 624원 정도의 돈만 지급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나머지 돈은 어디로 갔을까?
함씨는 건설자본의 폭리를 확증하려면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하도급 업체에 얼마에 공사를 넘겼는지를 보여주는 ‘건설 하도급 내역서’를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함씨는 이를 위해 건교부에 “자료를 달라”며 정보공개 청구신청을 했고, 건교부는 “그 자료는 우리에게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1천원 받고 하도급에는 624원에 넘겨
함씨는 현재 세 개의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하나는 건교부와 서울∼춘천 고속도로가 맺은 실시계획을 무효로 만들어달라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의 땅을 강제 수용할 수 있도록 못박은 중앙토지수용위원회의 ‘수용 재결’ 결정을 무효로 해달라는 것이다. 세 번째 소송은 건교부가 공개를 거부한 ‘건설 하도급 내역서’를 공개하라는 것이다. 그는 “하도급 내역서를 분석하면 건설자본이 국민들의 혈세로 어떤 장난을 쳤는지 밝힐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생업도 그만두고 3년째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는 중이다. “힘들지만 믿고 있는 원칙이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울 겁니다. 꼭 이길 겁니다. 두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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