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00여만원 환급결정에도 병원 ‘처분’만 기다려야 하는 의료급여 수급권자의 현실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도 진료비 일부를 부담하고 만성질환자는 한 군데 병원만 다니게 하는 새 의료급여 제도에 대해 시민단체와 의사협회가 거부운동을 벌이고 있다. 가난한 이들을 차별하고 선택권을 박탈한다는 이유에서다. 가족 중 중한 환자 한 명만 있어도 ‘계층 하락’이 불가피한 의료복지 후진국에서 이는 일부 저소득층에게만 해당하는 얘기가 아니다. 은 지난 668호 ‘선택진료인가 강제진료인가’에 이어 의료 소비자의 권리를 침해하는 병원 시스템과 의료 행정의 문제점을 한 환자의 사례를 통해 들여다봤다. 아울러 의료정책의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시민단체와 같은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의사들의 주장도 들었다. 편집자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김미정(40)씨의 남편 서정열씨는 2006년 1월 백혈병 수술 뒤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골수이식에 따른 후유증으로 신장 기능이 갑자기 떨어져서였다. 발병한 지 8개월 만이었다. 남편은 가고 없지만 막대한 수술비 부담은 남아 있다. 병원에서는 “합병증으로 사망한 것이지 골수이식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니다”라고 했다.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되자 계속 돈타령
자동차 부품 세척일을 하던 남편이 앓기 시작한 건 2005년 5월이었다. 처음에는 감기인 줄 알았다. 열이 나고 자꾸 춥다고 했다. 코피도 자주 났다. 동네 병원에 갔더니 운동 부족인 것 같다고 했다. 큰 병원에 가서 운동 부하 검사를 해봤으나 이상은 없었다. 며칠 뒤 피부에 빨간 반점이 생겼다. 집(서울 장안동)에서 가까운 청량리 성바오로병원에 가서 피검사를 했다. “피가 깨끗하지 않다”면서 큰 병원으로 가라고 해, 이틀 뒤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에 갔다. 예약이 안 돼 있으면 진료를 받을 수 없다고 했다. 회사를 쉬고 아침 8시부터 병원에 나가 기다렸다. 오후 5시가 넘어서야 의사를 만날 수 있었다. 피검사를 또 했다. 백혈구 수치가 너무 많이 나왔다. 그날 저녁, 급성 림프모구성 백혈병 판정이 났다.
백혈병은 피에 암이 생기는 것이다. 암처럼 원인이 똑 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걸렸다 하면 말기이다. 급성으로 올 경우 미리 알 수도 없다. 남편은 직장에서 줄곧 건강검진을 받아왔고, 발병 한 달 전에도 건강검진을 받은 상태였다. 백혈병 환자들의 생존율은 반반이다.
한 달 반에 걸친 1차 입원 기간이 끝나고 집에서 쉬다 2차로 다시 한 달 동안 입원했다. 병원에서는 골수이식밖에는 남은 방법이 없다고 했다. 1차 입원이 끝났을 때 수중에는 돈이 한 푼도 없었다. 입원 3주 만에 병원비가 1200만원이 넘었다. 카드를 긁고 적금을 깨고 보험 들어놓았던 것까지 끌어모아 겨우 메웠다. 석 달 만에 2천만원이 병원비로 나갔다. 입원 도중 남편이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된 덕에 그나마 병원비 부담을 던 게 이 정도이다. 설상가상 2차 입원부터는 보증인을 세워야 했다. 병원에서는 차상위 의료급여 수급자가 된 뒤부터는 계속 돈타령을 했다. 재산세 납부 내역서도 떼오라고 했다. 7천만원짜리 전셋집이 전부인 걸 알아서였을까. 일주일마다 ‘정산’을 요구했다.
골수이식 성공률은 60∼70%이며 돈이 많이 든다고 했다. 병원에서는 1억원은 들 텐데 돈이 있느냐고 했다. 남편을 살릴 수 있다면 뭐라도 해야 할 판이었다. 남편의 큰누나와 골수가 맞았다. 기증자가 없거나 기증 의사가 있어도 맞지 않거나, 가족들의 만류로 막판에 기증이 무산되는 일이 적지 않다. 다행히 시누이가 이식 수술에 동의했다. 다른 문제가 생겼다. 병원에서 이번에는 선수금 1500만원을 요구했다. 보증인도 두 명을 세워야 한다고 했다. 큰시누이가 보증인이었는데 갑자기 새로 두 명의 보증인을 어디서 구하느냐고 하소연했지만 소용없었다. 둘째 시누이가 보증을 섰고, 나머지 한 명은 원무과 직원이 ‘봐줘’ 김씨 이름을 올렸다. 급히 여기저기서 1500만원을 빌렸다. 의료법상 보증인을 세우고 선수금을 받는 것은 불법이나 김씨로서는 이를 알 턱이 없었다.
수술은 잘됐다. 공여자가 촉진제를 맞고 백혈구 수치를 올렸다가 백혈구만 뽑아 수혈하는 과정인데, 4~5시간 걸렸다. 남편은 무균실로 옮겨졌다. 수술 직후에는 의식도 명료하고 잘 먹었다. 그런데 잠시 뒤 소변에서 피가 나왔다. 이식 합병증 중 하나인 ‘방광성 출혈뇨’였다. 이식 수술을 받은 사람의 5%에게서 나타나는 증상이라고 했다. 방광에 호스를 꽂아서 세척을 시작했다. 30분마다 휴대전화 알람을 맞춰놓고 호스를 갈 정도로 세척량을 늘였다. 하지만 방광 속에서 덩어리진 피가 계속 엉겼다. 남편은 몸을 비틀며 괴로워했다. 움직이면 더 피가 엉겼다. 배가 만삭처럼 부풀어 올랐다. 보름 만에 남편은 의식불명이 됐고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때 심정이 어떠했는지 김씨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알겠는데 아무 감정이 없다고 했다. 그는 이와 비슷한 경험을 20년 전에도 한 일이 있다.
병원비 수천만원 앞엔 금세 ‘계층 하락’
선천성 심장병이던 김씨는 고교 때 수술을 했다. 1천만원이 드는 당시로서는 거액의 수술이었다. 전남 목포에서 여객선 월급선장을 하던 아버지 월급으로는 다섯 자식들이 먹고사는 것만도 버거웠다. 어머니는 수술비를 벌기 위해 날품팔이를 다녔다. 꼭두새벽에 갯지렁이를 잡아 팔고, 식당일을 다녔다. 돈을 모아 딸의 수술 날짜를 받게 된 즈음, 어머니가 위암 말기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수술이 급했다. 어머니는 딸이 다니던 광주 전남대 병원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수술 도중 사망했다. 사흘 뒤 어머니 장례를 치른 김씨가 수술대에 올랐다. 수술에서 깨어났을 때 입에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어 깔깔했던 기억 외에는 당시의 일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고 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선택적 소거’라고 부른다. 너무 힘들고 괴로운 나머지 본능적으로 특정 기억을 지워버리는 것이다.
1천만원 넘은 선택진료비, 절반 환급결정
김씨는 당시 심장병 수술이 깨끗하게 안 됐다는 말을 들었으나 병원에 더는 다니지 못했다. 숨이 차오르지 않게 조심하며 동생들 건사하고 공부를 마치는 것도 힘겨웠다. 학교를 마치고 서울로 올라왔다. 동대문에서 재봉일을 했다. 그러다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성실하고 자상한 사람이었다. 쉬는 날이면 아내를 자전거 뒤에 태우고 아들을 앞에 앉히고 중랑천 뚝방길을 신나게 내달리길 즐겼다. 조금만 무리해도 숨이 가빠지는 아내 대신 살림도 도맡았다. 김씨는 “부부 금실이 좋으면 한쪽이 먼저 떠난다더니, 우리 사이가 좋아서 남편이 먼저 간 것 같다”고 말했다.
돈을 쌓아놓고 사는 사람이 아닌 이상, 수천만원씩 드는 치료비를 감당하다가 ‘계층 하락’이 되는 이들은 한둘이 아니다.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가 아니라도 차상위 계층에 속하면서 병원비가 많이 들어가는 환자에 한해, 본인만 의료급여 1종 수급권자가 될 수 있는 ‘특례 제도’가 있다는 것도 원무과에서 계속 ‘쪼이는’ 김씨를 보다 못한 다른 환자 보호자가 귀띔해줘서 알았다. 전셋집이 시동생과 공동명의여서 재산 3500만원에 수입이 없는 차상위 계층으로 분류될 수 있었다.
김씨는 병원에서 돈을 ‘쪼기’ 전에 이 제도를 알려주지 않은 것을 지금도 의아하게 생각한다. 남편의 산재 문제에 대해서도 그랬다. 골수이식에 앞서 병원에 “남편이 하던 일이 부품 세척일이라 유해물질이나 약품에 늘 노출된 상태였는데 혹시 산재가 아닌가” 의논했다. “백혈병은 어디서고 산재가 없다, 포기하라”는 냉정한 답변만 들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병원 컴퓨터로 인터넷을 뒤졌다. ‘유해물질이 백혈병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내용을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노무사를 사서 산재 신청을 했다.
골수이식에 앞서 산재 판정이 났다. 병원비는 뭉칫돈을 빌려 메웠지만 다달이 들어가는 아이 급식비와 교통비, 각종 공과금 등 생활비 대책은 전무하던 참이었다. 산재 판정이 나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비급여 항목이 많은 백혈병 치료 특성상 병원비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산재도 급여 항목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신 산재 보조금으로 간병인 비용을 댈 수 있었다. 백혈병 중환자는 의무적으로 간병인을 써야 한다. 무균 소독을 한 사람만이 돌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비용은 비급여라서 산재 보조가 없었다면, 고스란히 빚으로 남을 뻔했다.
남편은 사망 때까지 넉 달 가까이 중환자실에 있었다. 골수이식 수술 뒤 진료비 총액은 1억원이 넘었고 본인부담액은 4400만원이었다. 원무과에서는 이제 매일 전화를 해왔다. 1월30일 새벽, 또 전화를 받았다. “환자 혈압이 떨어지니 식구들 모두 모이라”는 전갈이었다.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팔순 시아버지와 고1 아들과 살아갈 방도를 찾아야 했다. 집을 처분해 2800만원짜리 임대아파트로 옮겼다. 그래도 빚이 남았다. 8개월 동안 들어간 병원비는 모두 6200여만원. 다른 병원에서 비슷한 병력의 환자는 돈이 절반밖에 안 들었다는 얘기를 듣고, 혹시나 해서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심사 민원을 넣었다. 6200여만원 중 부당하게 징수된 돈이 2800여만원이라며 환급결정이 나왔다. 급여로 할 수 있는 걸 비급여로 돌리고, 허위로 선택진료비를 매기고, 허가 사항이 아닌 의료적 처치를 하고 나서 환자에게 부담지운 돈이다. 김씨는 “의사 얼굴은 거의 못 보고 원무과 직원만 상대했는데 선택진료비만 1천만원이 넘었다”고 말했다. 이 선택진료비도 절반은 환급결정이 났다.
“돈 돌려줄 수 없으니 재판하라”는 병원 쪽
건강보험 대상자는 환급결정을 받으면 병원에서 돈을 돌려받거나 건강보험관리공단(공단)에서 받을 수 있지만, 지난해까지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병원에서 돈을 주지 않으면 돌려받을 길이 없었다. 의료급여는 재원이 각 지방자치단체라 공단이 책임질 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병원이 돈을 안 주면 개별적으로 소송을 내는 수밖에 없었다. 올해부터는 의료급여 수급권자들도 환급결정을 받으면 공단에서 먼저 받을 수 있는 길이 트였다. 그러나 절차상으로만 그렇다. 병원이 이의 제기를 거쳐 심사청구, 나아가 행정소송으로 맞서면 법적 다툼에만 몇 년이 걸린다. 의료급여 수급권자들 가운데 변호사를 사고 소송에 매달릴 형편이 되는 이들은 거의 없다. 많은 이들은 병원의 ‘처분’만 기다리며 속병을 앓는다.
김씨도 그랬다. 병원에서는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면서 “이의신청 절차를 밟을 테니, 정 돈을 받고 싶으면 변호사를 사서 재판을 걸어라”라고 했다. 왜 공단에서 받을 돈을 환자에게 받았냐고 묻자 “(공단에 신청하면) 삭감될 게 뻔하기 때문에 그랬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의신청 기간인 90일을 기다린 뒤 병원에 다시 환급을 요구했다. “회의 중이다” “담당자가 휴가 중이다”는 말만 되돌아왔다. 통장 사본을 보내달라고 해서 보내줬지만 감감무소식이다. 매일 은행에 가서 확인하다가 그마저도 포기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 백혈병 환우회의 도움을 받아 병원을 상대로 ‘부당청구 진료비 반환청구’ 민사소송을 내, 현재까지 재판이 진행 중이다. 사실 조회를 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됐다. 병원이 지난해 6월 김씨에 대한 환급결정을 통고받은 뒤, 정작 김씨에게는 한 푼도 돌려주지 않았으면서 환급결정이 부당하다며 공단에 추가 청구를 내어 석 달 뒤인 9월 500만원 넘는 돈을 또 챙긴 것이다. 돈을 ‘추가’로 받으려면 환자에게 돈을 돌려주고 나서, 이 결정이 부당하니 다시 돈을 달라고 하는 게 상식이다. 다툼이 생겨도 병원과 공단 사이의 문제이다.
“그 돈이면 남편에게 맛있는 거 한 번 더…”
김씨는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내서 억울한 게 아니라 그 돈에 쪼이면서 정작 남편을 돌보지 못한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2800여만원이 남편을 위해 꼭 써야 했던 돈이라면 받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병원이 귀찮고 번거로운 절차를 피하려고 환자에게 부담지운 거라니, 가슴이 막힌다. 그 큰돈에 덜 쪼였다면 남편에게 맛있는 거 한 번이라도 더 먹이고, 웃는 얼굴 한 번이라도 더 보여줬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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