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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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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의 기술, ‘임의비급여’로 후려치기

등록 2007-07-13 00:00 수정 2020-05-03 04:25

현장에서만 존재하는 비급여… 심평원 환급 결정분 32억2천만원 중 28억원이 성모병원건

▣ 글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병원을 찾아간 환자가 부당하게 턱없이 높은 비용을 무는 것은 선택진료비만이 아니다. 선택진료비 말고도 환자에게 큰 경제적 부담을 주는 잘못된 진료비 항목이 널려 있다.

지난해 10명의 백혈병 환자들은 병원의 치료비가 지나치게 많이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여겼다. 이들은 전체 진료비 중 선택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나 되는지 알아보기 위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하 심평원)에 진료비를 심사해달라고 요청했다. 놀라운 사실이 드러났다. 병원이 환자 한 명당 몇 천만원씩 부당하게 진료비를 청구해온 것이다. 환자들이 원래 궁금해했던 선택진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7%에 불과했다. 대신 ‘임의비급여’란 이름의 부당 청구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2356개 요양기관 중 70%가 부당청구

임의비급여란 진료비를 임의로 비급여 처리한 것을 뜻한다. 진료비는 건강보험·의료급여가 적용되는 요양급여와 적용이 안 되는 비급여로 나뉜다. 비급여 항목은 국민건강보험법에 정해져 있다. 그런데 법에는 없고 의료 현장에서는 임의로 존재하는 비급여가 있다. 이게 바로 임의비급여이다.

환자들이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 요청을 제기하면 임의비급여는 많은 부분을 돌려받을 수 있다. 병원이 공단에 청구해서 받기 어려운 돈을 임의로 환자에게 받은 것이기 때문이다. 임의비급여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의료계에서는 이를 ‘의학적 임의비급여’와 ‘불법 임의비급여’로 부른다.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법적 기준이 의학기술의 발전 속도를 따라오지 못해 발생하는 것이다. 요양급여 항목에 반영되지 않지만 효능이 좋다고 인정돼 치료를 위해 써야 하는 신약이나 첨단기술이라면 이에 해당한다. 꼭 필요해서 썼는데 급여 적용이 안 되는 것을 알기 때문에 환자들도 이런 의학적 임의비급여는 대체로 인정한다. 불법 임의비급여는 요양급여 적용이 되는 것인데, 용량·용법 등을 지키지 않아 나중에 건강보험공단에서 삭감될까봐 환자에게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큰 병원에서는 이에 대한 모니터링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적정 진료팀에서 “그렇게 처치하면 삭감된다”고 미리 알려주고, 해당 의사는 그래도 써야겠다면 소견서를 첨부해 청구한다. 이럴 경우 대체로 인정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제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거나 번거롭다는 이유로 환자들에게 손쉽게 부담을 돌리는 것이다. 의료소비자 단체가 가장 ‘부도덕’하다고 문제 삼는 내용이다.

이러한 ‘진료비 불법·과다 징수’는 앞서 백혈병 환자들이 심평원에 심사를 요청해 답변을 받은 진료비 환급 결정 내역을 보면 생생하게 드러난다. 이들은 모두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이하 성모병원) 환자들이다.

문제가 된 부분은 △급여 적용이 되는 항목을 비급여 항목으로 분류해 환자에게 임의로 징수한 불법·의학적 임의비급여가 72%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허가 기준을 넘어 사용하고 환자에게 징수한 것이 18% △불법적 선택진료비 징수가 7% △처치 및 치료 재료를 중복 징수한 것이 3% 등이다.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임의비급여는, 환자들이 급여 대상 항목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악용한 결과로 추정된다.

병원들이 ‘진료비 바가지’를 씌우고 있다는 건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의료계에는 이를 ‘관행’으로 여기는 분위기마저 퍼져 있다. 그래서일까? 진료비 바가지가 오래전부터 고질병이었음에도 상당수 병원들은 이에 아랑곳없이 여전히 ‘바가지 청구’를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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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평원이 2003~2005년 전국의 2356개 요양기관을 실사한 결과, 놀랍게도 전체의 70%인 1658개 기관이 진료비를 부당 청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모두 행정처분을 받았다(2006년 국감자료). 민원도 폭주하고 있다. 2006년 12월부터 최근까지 심평원에 신청된 ‘백혈병 환자 진료비 확인 요청’은 1010건에 달한다. 심평원은 이 민원들 가운데 심사가 끝난 올 4월까지의 접수분 353건에 대해서 “32억2천만원을 돌려줘야 한다”고 환급 결정을 내렸다. 이 중 28억원은 성모병원에 대해 내린 심사 결과이다. 성모병원은 한때 우리나라 백혈병 환자 치료의 60%를 담당했다는 말을 듣는 병원이다. 현재는 백혈병 환자의 34%가 이 병원을 찾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백혈병은 1인당 평균 진료비가 3187만원으로 환자 부담액이 가장 많은 질병이다. 성모병원에서 치료를 받은 백혈병 환자들이 주축인 한국백혈병환우회 안기종 사무국장은 “다른 병원보다 훨씬 더 환자 ‘후려치기’가 벌어진다는 얘기”라며 “실제 이 병원의 진료비 총액은 다른 병원의 두 배가 넘는다”고 말했다.

환급 결정만 받고 그걸로 끝

성모병원에서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박진석(35)씨의 사례를 보자. 박씨는 심평원에 진료비 확인심사를 요청했고, 심평원으로부터 환급 결정을 받은 상태이다. 박씨가 낸 본인부담금 3400만원 중 1990만원이 부당 청구됐다는 게 심사 결과였다. 그런데 이런 결과를 받은 뒤 박씨는 병원 관계자로부터 이상한 얘기를 들었다. “기준 이상으로 환자에게 약을 투여했다면, 병원은 공단(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돈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당신에게 치료비를 청구했다.” 불법 임의비급여의 전형적인 사례이다.

그러나 이렇게 부당하게 진료비를 낸 사실이 인정돼 환급 결정을 받은 환자 대부분은 돈을 되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2005년 백혈병으로 숨진 진영도(당시 44살)씨의 총 치료비는 8천만원이었다. 진씨가 사망한 지 8개월이 지난 뒤, 부인 김경희(43)씨는 심평원에 확인심사를 요청했고, 2889만원의 환급 결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것으로 끝이었다.

백혈병으로 2년 전 남편을 잃은 박아무개(34)씨도 오랜 싸움 끝에 “진료비 2500만원을 환급받을 수 있다”는 심평원의 결정을 얻었지만, 병원은 아직도 이를 따르지 않고 있다. 건강보험 대상자는 환급 결정이 나면 공단에서 이 돈을 받을 수 있다. 대신 나중에 공단은 병원에게 줄 급여에서 해당 금액을 빼고 준다(상계처리). 원래 병원이 ‘뱉어내야’ 하는 돈이지만 병원들이 이를 지급하지 않기 때문에 공단이 이를 대신하는 셈이다. 건강보험 대상자와 달리 의료급여 수급권자들은 지난해까지는 병원이 환급 결정을 이행하지 않으면 사실상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 의료급여는 지자체 재원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재원이 없거나 병원이 이의신청 등을 하면서 시간을 끌면 사실상 ‘대책’이 없었다. 올해부터 공단이 관리를 대신하면서 환급받을 수 있는 ‘숨통’이 트였다.

이들이 돈을 못 돌려받은 이유는 모두 올해 전까지 환급 결정을 받은 의료급여 대상자이기 때문이다. 성모병원은 이들 각각의 경우에 대해 가처분 신청 등 행정소송을 내어 시간을 끌면서 돈을 묶어놓았다.

심평원의 환급 결정에 대해 성모병원 김학기 부원장은 “의학적 발전을 법이 따라가지 못해 생긴 결과”라며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세이다(상자기사 참조). 김 부원장은 논란이 있는 ‘의학적 임의비급여’를 전제로 이런 얘기를 했지만, 실제 환급 결정된 내용 가운데 의학적 임의비급여가 차지하는 비율보다 불법 임의비급여 비율이 훨씬 높다. 그러나 김 부원장은 “병원이 불법 임의비급여에 해당하는 돈을 환자에게 받은 적은 없다. 불법 임의비급여는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백혈병환우회는 김 부원장의 주장을 반박했다. 안기종 사무국장은 “의사소견서만 쓰면 간단히 요양급여 적용을 해줄 수 있는데도 병원들이 비급여로 잡아 환자에게 진료비 전액을 청구하고 있다”며 “엄연한 불법”이라고 말했다. 환우회는 또 병원마다 진료 항목이 비슷한 ‘1차 항암 치료’를 근거로 성모병원이 환자에게 징수한 비급여 진료비가 다른 병원에 비해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아울러 “병원은 환급 결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환자에게 불법으로 비급여를 청구해 받은 돈을 공단에 다시 청구해 이중으로 받았다”고 주장했다. 환우회가 심평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한 결과, 앞서 진영도씨의 경우 환급 결정된 돈 2889만원 가운데 800만원 남짓 깎인 2042만원을 공단에서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쉽게 말해 애초 이 돈은 모두 공단에 신청했어야 할 돈인데 이렇게 깎일 게 예상돼 편의적으로 환자에게 ‘당겨’ 받은 것이다. 고작 800만원 아끼려고 환자에게 2800만원을 부당하게 청구했다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뿐만 아니라 아직도 환자에게 환급을 하지 않고 있으므로 병원은 현재 2042만원을 중복해서 챙기고 있다.

뱉어낼 돈 당겨받아 챙긴 돈 2042만원

2006년 12월6일 이전 성모병원은 이들을 포함해 6명의 환자(박진석, 진영도, ㅅ, ㄱ, ㅇ, ㅎ씨)에게서 받은 부당한 비급여 진료비를 공단에서 다시 받았다. 그 총액은 6659만원이다. 병원이 6명에게 환급해줘야 하는 돈 1억4991만원의 63.4%에 달하는 액수를 이중으로 챙긴 것이다. 그러나 박진석씨를 제외한 다른 사람에게는 진료비를 환급해주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해 김 부원장은 “환급해주고 나면, 공단에 이의신청을 해도 80%가 삭감되므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돈은 20%밖에 안 된다”며 “이런 식이면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병원이 공단에 청구해도 될 급여 항목을 환자에게 부담 지운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이다.

성모병원의 진료비 부당 청구 실태를 조사하기 위해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6월부터 12월까지 대대적인 실사를 벌였고, 그 결과는 7월 중에 발표될 예정이다. 통상 불법 청구 금액의 5배에 해당하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100억원이 넘는 대형병원 사상 초유의 과징금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진료비를 부당하게 청구하는 병원에 대한 환자들의 저항으로 시작된 이번 싸움에서 승자는 과연 누가 될까. 소송을 불사하며 끝까지 진료비를 주지 않겠다는 병원이 될 것인가, 병마와 병원을 동시에 상대하는 백혈병 환자들이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곪을 대로 곪아버린 병원의 부당한 임의비급여 관행을 이대로 둘 수 없다는 것이다.



“제도 허점 때문에 적자 봐서 되겠나”

성모병원 김학기 부원장 “결정 내려진다고 해도 환급하지 않겠다”


‘진료비 부당 청구’ 논란의 중심에 있는 가톨릭대학교 성모병원의 김학기 부원장은 7월4일 과 만나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내려진 28억원의 환급결정에 대해) 환급을 해줄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왜 환급을 못하겠다는 것인가.
= 성모병원은 ‘생명 존중’의 가치에 따라 환자를 치료했을 뿐이다. 현행 요양급여 기준만 갖고는 환자를 치료할 수 없다. 우리가 급여 항목에 해당하지 않는 치료를 하면서 (환자에게 부담을 지워) 실정법을 위반했다는 것은 알지만, 그렇지 않으면 치료를 제대로 할 수 없다. 환자의 목숨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그렇다고 환자들이 내지 않아도 될 돈을 낸 것은 부당하지 않나.
= 우리가 환급해주지 않아도 공단에서 직접 진료비를 상계처리해 돌려준다. 병원에 줄 돈을 제하고 환급해주는 것이다. 다만 상계처리하고 환급하는 데 5개월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아직 환자들이 돈을 못 받고 있는 것뿐이다.
지난해까지는 환급을 해줬던 것으로 알고 있다.
= 예전에 소수의 몇 명이 민원을 제기하면 병원에서 환급해주는 경우가 있었다. 그런데 집단적으로 (민원을 제기하면) 병원에서 줄 돈이 없다. 민원에 일일이 물어주고 나면 병원을 운영할 수 없다. 제도적 허점 때문에 병원이 계속 적자를 볼 수는 없지 않나.
제도 개선을 위해 병원은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
= 비급여 항목을 급여 항목에 포함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서 이러한 노력들을 게을리하고 있다.
급여 항목이 적다고 하지만, 특별한 경우 의사의 소견서가 있으면 인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 절차를 밟지 않고 환자들에게 부담을 지운 것은 지나치게 편의적인 것 아닌가.
= 그렇지 않다. 소견서는 요양급여 기준이 애매한 경우에만 쓴다. 병원이 심평원에 청구할 때 소견서를 내려면 여기에 따르는 의학적인 자료가 방대하다. 백혈병 환자가 생사기로를 왔다갔다 하는데 의사가 소견서만 쓰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나.
환자들에게 돌려주고 나서 심평원에 이의신청을 하면 되지 않나.
= 상당한 액수를 못 받는다. 신청한 금액의 80% 정도가 삭감된다.
보건복지부가 이 문제로 성모병원에 대해 전면적인 실사를 벌였다. 어떻게 예상하나?
= 아마 복지부는 의사들에게 책임이 있다고 할 것이다. 만약 그런 결과가 나온다면 병원은 복지부와 심평원을 상대로 소송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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