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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에 빙하 속을 헤매다

등록 2007-07-06 00:00 수정 2020-05-03 04:25

북극 롱이어 빙하에 간 부부가 합류한 ‘오합지졸’ 빙하 트레킹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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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멋대로 떠나라
손끝이든 발끝이든 두근댄다면
몸으로든 맘으로든 느낄 수만 있다면…
뉴욕 뒷골목부터 북극까지, 절 뒷간부터 집 부엌까지
이 제안하는 일곱 느낌의 여름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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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남종영 기자 한겨레 매거진팀 fandg@hani.co.kr

북위 78도12분, 북극해의 스발바르섬.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보다 북극점이 더 가까운 곳. 전체 섬의 60%가 빙하로 덮여 있는 스발바르에선 여름이면 다양한 트레킹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비행기를 타고 북극점 근처까지 간 뒤 북극점을 다녀오는 코스에서부터 롱이어바이엔 마을 근처를 하루 동안 둘러보는 코스까지 일반인이 접근 가능한 북극 탐험 길이 여럿 있다.

지난해 여름 나와 아내는 마을 남쪽 롱이어 빙하를 다녀오기로 했다. 여행사에서 8만5천원짜리 롱이어 코스를 신청하자 안내문을 건네줬다. 처음 해보는 빙하 트레킹이라 긴장을 잔뜩 했건만, ‘점심 도시락은 각자 챙겨오세요’라는 주의사항을 보자 약간 허탈했다. 그래도 빵 한 조각도 없이 빙하 한가운데서 조난당하면 위험하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슈퍼마켓에 가서 식빵을 샀다. 식빵 봉지에는 북극곰이 그려져 있었다. 하얀 빙하에서 북극곰에게 쫓기는 장면을 잠깐 상상했다.

빙하의 정상, 숨어서 식빵 먹기

트레킹은 롱이어바이엔 마을 남쪽 니비엔에서 시작된다. 다음날 오전 10시, 빙하 트레킹에 나선 사람들이 모였다. 온대지방 한국에서 온 나와 아내, 난대지방에서 온 5명의 이탈리아 가족, 냉대지방에서 온 오슬로대학원생 2명 그리고 크루즈를 타고 온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부부까지 모두 네 그룹이었다. 한국어, 이탈리아어, 노르웨이어, 영어까지 모두 다른 언어를 썼다. 긴급 상황에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아 허둥대진 않을까 걱정이 들었다.

“위험하지도 힘들지도 않을 거예요. 일단 롱이어 빙하 왼쪽의 봉우리로 돌아 올라간 뒤, 빙하를 타고 내려오는 겁니다.” 가이드 크리스틴이 수십m가 넘는 자일과 크램폰(미끄럼을 방지하는 등산화 장비)을 가방에 우겨넣으며 말했다. 크리스틴은 오슬로에서 대학을 다니는 아마추어 산악인. 여름을 맞아 아르바이트 삼아 왔다고 했다.

사실 내가 머문 숙소는 롱이어 빙하 바로 밑에 있었다. 빙하는 마치 젊은 소의 길게 늘어진 혓바닥 같았다.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면 빙하는 햇살에 부딪혀 은빛으로 빛났다. 아침 산보 삼아 훌쩍 올라가고 싶었지만, 그건 금지 사항이었다. 가끔 출몰하는 북극곰 때문에 마을 밖에 나가려면 의무적으로 총기를 소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총기를 소지한 가이드가 안내하는 트레킹 프로그램을 이용한다.

‘난·온·냉대 혼성 빙하 원정대’는 줄을 지어 산을 올랐다. ‘석관’이라는 별명이 붙은 암산이었다. 석관의 좌우론 라스 빙하와 롱이어 빙하가 흘렀다. 빙퇴석이 너덜을 이룬 절벽을 1시간 정도 오르니 정상이었다. 해발 500m. 여기가 점심 장소였다. 하지만 나와 아내 말고는 아무도 점심을 싸오지 않았다. 크리스틴이 “그럴 줄 알았다”면서 씩 웃으며 비스킷과 커피를 꺼냈다. 나와 아내는 바위 뒤에 숨어서 식빵을 먹었다.

찢어진 삼겹살과 이겹살을 피하라

“식사를 했으니, 화장실에 다녀오세요. 신사분들은 왼쪽, 숙녀분들은 오른쪽.” 왼쪽 오른쪽을 둘러봤다. 아무 엄폐물도 없었다. 남성들은 역시나 줄을 서서 실례를 했고, 여성들은 어떻게 했는지 모르겠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빙하 길이었다. 만년설을 타고 내려가 롱이어 빙하에 도착했다. 빙하는 생각보다 푹신푹신했다. 빙하는 삼겹살 구조다. 맨 아래는 물, 중간은 얼음, 맨 위는 눈이다. 빙하에선 ‘삼겹살 부위’를 잘 찾아 걸어야 한다. 삼겹살 부위에선 발바닥으로 단단한 얼음의 굳기가 느껴진다. 하지만 도처에 존재하는 ‘찢어진 삼겹살’(크레바스)이나 ‘이겹살’(단단한 얼음이 없는 빙하 지류)을 피하지 못했다간 생명이 위험하다.

원정대는 몸과 몸을 자일로 묶었다. 굴비 두름이나 전쟁터에서 일렬로 끌려가는 포로를 상상하면 된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한 명이 크레바스로 추락했을 때, 나머지가 몸으로 버텨 추락자를 구해내기 위해서다. 마찬가지로 일행 중 한 명이 힘들어 주저앉으면, 모두가 앉아서 기다려야 한다. 이로써 빙하 원정대는 자일로 엮인 ‘운명 공동체’가 된 것이다.

이탈리아 가족은 아까부터 티격태격이었다. 알아들을 순 없었지만, 꼬마 녀석들이 힘들다고 그만 내려가자고 하는 것 같았고, 아버지는 ‘뭔 소리냐’며 혼내는 듯했다. 과연 이들과 운명을 함께할 수 있을까.

한참 빙하를 걷다가 눈밭에 누웠다. 다른 사람들은 지쳤는지 아무 말이 없었다. 세상은 하얗고 조용했다. 하얀 고요 사이로 ‘졸졸졸’ 소리가 커졌다. 빙하 아래로 물이 흐르는 소리. 수만 년의 세월이 녹아 바다로 향하는 행렬.

다시 일어나 걸었다. 30분을 내려가니 검은 땅이 보였다. 빙하가 끝나는 곳. 근데 거기서 문제였다. 크리스틴이 난감하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 길을 잘못 들었나보네!” 아파트 4~5층 높이의 눈길 낭떠러지. 어쩔 수 없었다. 몸을 낮추고 미끄럼틀을 탔다.

이 곳이 숲이었던 시절엔…

‘오합지졸’ 빙하 트레킹 부대는 빙하 아래 너덜지대에서 ‘화석 줍기’ 이벤트를 벌였다. 이 지역엔 6천만 년 전의 화석이 산재돼 있다. 빙하 아래 시냇물을 따라 내려온 세월의 흔적들이다. 나뭇잎 화석을 주웠다. 크리스틴이 말했다. “예전에 이곳이 따뜻한 지방이었다는 증거예요. 숲이 무성했던 거죠.”

화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물처럼 뻗은 나뭇잎의 잎맥이 판화처럼 박혀 있다. 옛날 이곳엔 사자와 표범이 뛰어다녔던 건 아닐까. 어떤 사람들이 그들을 쫓아다녔을까. 그 사람들도 오합지졸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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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고보면 다양한 극지방 체험 프로그램

롱이어바이엔까지는 알아서 가고, 현지 여행사 사이트엔 미리 들러 예약을

스발바르는 노르웨이 북쪽 북극해의 고도다. 4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백야이고, 10월 말부터 2월 중순까지는 해가 뜨지 않는다. 1900년대 초반 광산촌이 개발되면서 흥청거렸으나, 석탄 산업이 쇠퇴한 이후 주로 극지방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드나들었다. 한국의 북극 다산과학기지도 스발바르 니알레순에 있다.

스발바르는 최근 극지방을 체험하는 여행지로 떠오르고 있다. 탐험가형 여행자들은 열흘 안팎의 스키·개썰매 여행을 즐기고, 일반 여행자들은 하루짜리 트레킹과 빙하 크루즈 등을 선택한다. ‘스피츠베르겐 트래블’(www.spitsbergentravel.no)과 ‘스발바르 와일드라이프 서비스’(www.wildlife.no) 두 곳의 여행사가 있다. 매일 10여 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되며 사전에 예약한 뒤 출발한다. 국내에는 아직 스발바르의 극지방 체험 여행 상품이 없다. 따라서 스발바르까지는 알아서 도착해야 한다.

한국에서 스발바르의 주도인 롱이어바이엔에 가기 위해선 먼저 오슬로로 가야 한다. 프랑크푸르트나 런던, 파리 등에서 비행기를 갈아탄다. 왕복 항공권 약 90만~160만원(세금 제외). 스발바르의 주도 롱이어바이엔까지 가는 비행기는 오슬로에서 매일 1~2차례 있다. 직항 3시간, 트롬쇠 경유 4시간10분 소요. 시간과 예약 날짜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편도 약 20만~50만원. 스칸디나비아항공(www.sas.no)에서 인터넷으로 예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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