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 ‘627억엔 변제’ 판결에 경매 위기인 총련 중앙본부, “정치적 냄새가 느껴진다”</font>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총련 궁지.”
지난 6월19일 일본에서 발행되는 거의 모든 일간지 1면에 실린 제목이다. 법원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이하 총련) 쪽에 “정리회수기구에 627억엔을 변제하라”는 판결을 내린 이후, 한-일 두 나라 언론은 앞다퉈 ‘총련 최대의 위기’라고 보도했다. 6월21일 도쿄지검 특수부가 총련의 허종만 부의장을 총련 중앙본부 건물 매각과 관련해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한 데 이어, 공동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이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국회에서 논의할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연금 문제로 극심한 지지율 하락세를 보이고 있는 아베 신조 총리 정부는 어떻게든 이번 사태를 비화시키려는 모양새다. ‘총련 50여 년 역사에서 가장 큰 위기’라는 이번 사건의 실체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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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의 ‘북한 때리기’와 ‘총련 옥죄기’
총련은 1955년 출범 이래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우익단체 회원이 도쿄 중심가 신주쿠에 있던 총련 옛 본부에 불을 지르기도 했고, 이 때문에 1963년 본부 건물을 이전해야 했다. 도쿄 지요다구 후지미에 있는 현재의 본부인 ‘조선중앙회관’은 1986년 완공했다. 대지 725평에 지상 10층, 지하 2층으로 총 건평이 3545평에 이르는 대형 건물이다. 총련이 본부 건물을 내주게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진 다음날인 6월20일 만난 재일동포 2세 신영희(가명·50)씨는 “이곳은 우리 부모인 ‘자니이치’ 1세들의 피땀이 서린 곳임은 물론, 우리에게도 단순한 공간적 의미가 아니라 말그대로 ‘자이니치의 세계’ 자체나 마찬가지”라며 “소식을 듣고 눈앞이 캄캄해졌다”고 말했다.
총련의 현 위기는 1997년 5월 재일 조선인계 신용조합인 ‘조은오사카신용조합’의 경영 파탄으로 시작됐다. 1999년엔 조은도쿄신용조합 등 ‘조은’ 계열의 13개 신용조합이 계속된 경영 파탄으로 어려움을 겪게 됐다. 급기야 2001년 11월 도쿄신용조합 사건으로 총련 전 재정국장이 경시청에 체포되는 사건이 벌어졌고, 중앙본부에 대한 수색영장이 집행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듬해인 2002년 9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 사건을 인정하면서, 재일동포 사회는 정신적인 충격을 받아 휘청이게 된다.
궁지에 몰린 총련, 여론도 매몰차
이어 2003년 7월 극우파인 이시하라 신타로 도쿄 도지사는 “총련 중앙본부가 토지, 건물에 대한 고정자산세 4200만엔을 체납했다”며 전격 압류 조처에 들어갔다. 2006년 들어 총련은 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민단)과 반세기 만에 화해의 악수를 나눴지만, 북한의 미사일 시험발사 소식에 묻혀버렸다. 이어 만경봉호 일본 입항 금지, 법무성의 재일 조선인 재입국 허가 제한 파문 등이 불거졌고, 10월엔 북한이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베 정권의 ‘북한 때리기’와 ‘총련 옥죄기’는 힘을 받았고, 여론은 북한과 총련에 ‘납치 원죄론’이란 날선 칼을 들이민다.
일본 정부와 정치·경제계가 합심해 재일 조선인들의 사업 관련 자금 회전을 법적으로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동포사회를 압박하는 아베 정권의 온갖 정치선전과 제재 조치를 온몸으로 절감해온 동포들은 불안에 떨면서도, 한목소리로 “총련이 다시 시작하는 한이 있더라도 현재의 민족학교만은 지켜내야 한다”고 다짐해온 터다.
그러던 지난 6월13일, 아베 총리는 “총련의 구성원이 납치를 비롯해 각종 범죄에 가담한 사실이 분명하다”는 주장을 내놨다. 총련은 즉각 성명을 내어 “일본 정부의 수반이라는 총리가 사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하고, 총련을 납치 등에 관여한 범죄단체로 단정하는 발언을 매스컴을 통해 유포하는 것에 놀라움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고 반박했다. 총련이 ‘궁지’에 몰린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던 게다.
지난 6월19일 나온 판결은 각지의 조은신용조합이 파산하는 과정에서 불량채권을 양도받은 정리회수기구가, ‘실질적 채무자’인 총련을 상대로 627억엔을 변제해달라며 지난 2005년 제기한 소송에 따른 것이다. 대체적인 결과가 예측되는 상황이었다. 총련은 채무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조직 와해를 위한 정치적 의도에 따른 ‘청구권 남용’이라고 항변했지만, 법정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이제 ‘재일동포 단결의 상징’이었던 재일 조선인의 거점인 총련 중앙본부는 ‘전액 변제’ 판결에 따라 경매에 부쳐질 위기에 몰렸다.
궁지에 몰린 총련에 대한 여론은 매몰차다. 총련이 재일 조선인의 권리를 지키는 운동의 중심에 서왔고, 사실상 북한의 대사관 구실을 해왔다는 점도, “빌린 돈을 갚는 건 당연하다”는 지적 앞에 무용지물이다. 각지의 조은신용조합에서 회수 불능 상태가 늘어가는 상황에서도 총련이 거액의 자금을 인출했던 점이나, 그 용도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도 여론의 찬바람을 부추기고 있다. 게다가 1심 판결을 앞둔 지난 5월 말 총련이 중앙본부 압류를 막기 위해 전 공안조사청 장관 오가타 시게타케를 만났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파문이 커지고 있다. 총련 쪽에서 오가타 전 장관이 대표로 있는 ‘하베스트 투자자문회사’에 중앙본부 토지 및 건물 매각계약을 맺고 소유권을 이전해, 불리한 판결에 미리 대비하려 했다는 주장이다. 이 때문에 도코지검 특수부는 오가타 전 장관에 대한 가택수사를 벌인 데 이어, 판결 이후에도 수사를 강행하고 있다. 오가타 전 장관은 이에 대해 “허위 사실에 근거해 합법적인 시설 매매를 방해하려 한다”며 “정치적 냄새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아베 정권은 북한에 타격을 주고 싶어한다. 이런 사건들이 표면화할수록 정치적으로 압박해 들어가기 좋은 상황이 조성된다.” 참의원을 지낸 한반도 전문가인 요시오카 요시노리도 “총련 본부 매각 관련 수사가 즉시 이뤄진 것은 단순히 검찰의 권한만은 아닐 것”이라며 “직접적인 명령까지는 아니더라도, 총리의 ‘권한’과 ‘의지’가 미치는 영역”이라고 말했다. 총련이 궁지에 몰린 현 상황은 잇따른 악재로 정치적 위기에 몰린 아베 정권의 성동격서식 ‘북한 때리기’ 전략의 일환일 수 있다는 지적인 게다.
아베 정권 비판할 일본 언론은?
이런 주장이 나올 만한 ‘심증’은 충분하다.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 헌법과 교육법 개악 움직임, 최근 불거진 낙하산 인사 관련 공무원법 논란, 그리고 ‘허공에 뜬 거액의 연금’ 문제로 아베 총리의 인기는 끝 모를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적극적인 대국민 ‘설득’은커녕 ‘회피’로 일관해온 게 아베 총리 정부다. 반면 북한이나 총련 관련 사안에 대해선 언제 그랬냐는 듯 ‘국정 책임자 본연의 모습’으로 쉽게도 탈바꿈한다. ‘꼼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아베 정권의 이중적 태도를 지적하는 일본 언론은 없다. ‘북한’이란 말만 나와도 흥분해 맨발로 뛰기 시작하는건 언론도 마찬가지다. ‘총련’의 위기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낸 합작품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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