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운동에 앞장서는 종교인들… 고병수 가톨릭 제주교구청 사목국장 신부 인터뷰
▣ 제주=글 정인환 기자inhwan@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wjryu@hani.co.kr
“평화는 종교의 존재 이유다. 해군기지 유치로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을 묵과할 수 없었다.”
제주 해군기지 반대운동에는 지역주민과 시민·사회단체 외에 종교인들도 앞장서고 있다. 개신교 쪽에선 ‘제주평화를 위한 그리스도인 모임’에 5개 교단 종교인들이 참여해 5월25일부터 지속적으로 금식 기도를 잇고 있다. 김태환 제주지사의 해군기지 유치 발표 이후 사상 처음으로 교구청 차원의 사제단 단식을 이어갔던 가톨릭 쪽에선 제주교구청(교구장 강우일 주교) 산하에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까지 꾸리고, 기지 반대운동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6월7일 제주시 삼도동에 위치한 교구청 사무실에서 고병수 사목국장 신부를 만나, 가톨릭계가 해군기지 반대운동에 적극 나선 이유를 물었다.
5개 교단 종교인들이 금식 기도 이어가
가톨릭 교회의 해군기지 반대운동이 뜨겁다.
=평화는 종교의 가장 기본적인 존재 이유다. 진정한 평화는 너나 할 것 없이 군비를 줄이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제주도는 전체 도민의 12%에 이르는 6만5천여 명이 신자일 정도로 전국에서 가톨릭 인구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다. 해군기지로 제주의 평화가 위협받는 상황을 교회가 묵과할 순 없었다.
제주에 해군기지가 들어서면 안 되는 이유가 뭔가?
=제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상징성이 있다. 첫째, 노무현 대통령은 2년여 전 제주를 ‘평화의 섬’으로 지정했다. ‘4·3 항쟁’이란 아픔을 겪은 제주가 이념의 상처에서 벗어나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이유였다. 그런 제주에 군사기지를 추진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둘째, 제주로 관광객이 몰리는 이유인 천혜의 자연환경 때문이다. 해군이 아무리 환경을 생각하더라도, 군 기지가 들어오는 한 해양오염은 불을 보듯 뻔하다. 게다가 군사시설 주변은 철저히 봉쇄될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겐가? 셋째, 벌써부터 해군기지뿐 아니라 공군탐색구조부대도 들어설 것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한번 군사기지가 들어서면, 다른 기지가 따라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제주 전역의 군사기지화를 우려하는 것도 지나친 기우는 아니다. 해군기지는 결국 제주의 미래가 달려 있는 문제다.
제주도와 해군에선 국책사업임을 강조하고 있는데.
=도나 군은 경제적 논리와 부풀려진 보상 문제만 거론하고 있다. 제주의 진정한 가치인 평화가 깨지고, 자연파괴와 생존권 유린이란 근본적 문제에 대한 대책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님비현상’이라고 매도하는 이들이 있는데, 다른 지역에서 군사기지가 들어온다는 데 처음부터 찬성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근본적 대책 없이 홍보에만 열을 올리는 정부의 모습이 딱하다.
교구 차원의 사제단 단식은 유례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
=해군기지 유치 발표 직후 교구장께서 앞장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셨다. 제주도민 70%가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잘 모른다고 말하는 상황에서 여론조사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이를 정책 결정 수단으로 삼은 것은 말도 안 된다. 성명도 안 먹히고, 대화도 통하지 않았다. 평화를 지키지 못했으니, 사제단 스스로 반성과 희생이라도 해야 했다. 제주교구에 속한 25개 성당 40명의 신부들이 돌아가면서 단식에 나섰다.
제주도나 해군 쪽에선 강정마을 유치를 기정사실화하고 있는데.
=결정된 게 없는데도 문제가 끝났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체 도민을 우롱하는 처사다. 제주도민의 대표체인 도의회에서 유치 결정 과정에서 불거진 각종 의혹을 파헤치고 있는 상황이다. 주민 대부분도 해군기지 유치 결정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의혹은 당사자가 소명한다고 해소되는 게 아니다. 도와 군은 더 이상 도민의 대의기관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여선 안 될 게다. 해군기지 유치는 도민 전체가 참여하는 주민투표로 결정할 사안이다. 의혹투성이 여론조사를 정책 결정의 근거로 내세우는 건 온당치 못하다.
유치 결정 철회되더라도 활동 계속할 터
유치 발표 이후 반대운동이 더욱 거세지는 것 같다.
=교구 차원에서 ‘평화의 섬 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지금은 경제적 이익 문제로 찬반양론이 갈려 있는데, 실제 기지가 들어왔을 때 어떤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지에 대해 알려나가는 작업을 할 참이다. 국내외 해군기지 주변 지역을 돌며 피해조사 활동도 벌일 예정이다. 환경오염과 생존권 위협 등 해군기지가 들어섰을 때 벌어질 수 있는 일을 있는 그대로 보여줄 계획이다. ‘평화의 섬 특위’는 해군기지 유치 결정이 철회된 이후에도 영구적으로 교구청 산하 조직으로 남겨, 지역 현안과 평화 문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그동안의 관행에서 탈피하는 계기로 삼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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