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공 상대로 분양원가 공개 소송 내 이긴 고양시 풍동 주민들
▣ 고양=글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eyeshot@hani.co.kr
김승기(37)씨는 자신을 “평범한 시민”이라고 불렀다. “중학생 때 부모님의 손을 잡고 고양시 행신동으로 이사왔습니다. 20년 전이네요.” 그 무렵 한강 쪽으로 넓게 펼쳐진 일산의 들판은 너른 논이었고, 얕은 언덕이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 아파트는 없었어요. 그동안 참 많이 변했죠.” 일산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것은 1989년 6월20일이었고, 개발이 끝난 것은 6년 뒤인 1995년 12월31일이다.
일산이 아파트로 뒤덮이는 동안 김씨는 학교를 마쳤고, 직장을 잡았다. 그는 대학병원에서 일하는 방사선사다. 아파트 숲은 고양시 전체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슬금슬금 늘어나는 아파트 숲을 보며 결혼을 했다. 모두가 그런 것 처럼 인생 목표는 ‘내 집 마련’이었다. 2003년께 기회가 찾아왔다. “고양 풍동지구에 아파트 분양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고양시 토박이고 무주택자였으니까 가능성이 있었죠.” 김씨는 고양 풍동지구에 대한주택공사가 분양하는 33평짜리 아파트에 청약 신청을 했고, 당첨됐다. 경쟁은 치열했다. 물량은 1순위까지는 내려가지도 못하고 0순위에서 마감됐다. 대부분 몇 년 동안 고생해 겨우 자기 집을 갖게 된 서민들이었다.
“분양가 비싼 이유 주공에 물어보자”
김씨가 분양받은 고양 풍동 주공아파트 33평형의 분양가는 2억900만원, 평당 분양가는 630만원대였다. 지금은 1천만원이 넘는 평당 분양가가 상식인 시대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사정이 달랐다. 계약자들 사이에서 “분양가가 비싸다”는 말이 나돌았다. 그도 그럴 것이, 주공보다 먼저 분양된 주변의 성원아파트·동문아파트·SK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400만원선이었다. “그 와중에 한번 만나 얘기나 해보자는 말이 나온 거죠. 그게 2003년 말입니다.” 그 자리에서 사람들은 계약자 대표자회의를 만들고, 당시 위원장이었던 민왕기씨를 중심으로 “분양가가 왜 이렇게 비싼지 주공에 물어보자”는 결론을 내기에 이른다.
“지금 생각해보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였죠.” 처음 질문을 올린 곳은 주공의 홈페이지였다. 2004년 3월10일이었다. 아파트 값은 크게 두 가지 세부 항목으로 나뉜다. 하나는 아파트가 들어서는 땅값이고, 다른 하나는 그 위에 건물을 지을 때 드는 건축비다. 고양 풍동처럼, 한 지역이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되면 주공은 원래 땅 주인에게서 땅을 강제 수용해 땅을 평평하게 만든다. 이렇게 집을 지을 수 있도록 평평하게 다져진 땅을 택지라고 부른다. 그 위에 시멘트와 철근 등 다양한 건축자재를 동원해 아파트를 짓는다. 주민들이 궁금했던 것도 그런 점이었다. 주민들은 분양가 ‘평당 630만원’의 산출 근거를 확인하기 위해 주공 쪽에 △원주인들에게 땅을 사들일 때 지급한 보상가 △택지 조성 비용 △건축비 등 10개 항목의 질문을 던졌다. 답변은 일주일 만에 나왔다. 예상대로였다. “공개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분양원가와 관련된 내용은 영업상 비밀로 보호받고 있는 사항으로 공개가 불가하오니 양지해주시기 바랍니다.”
주공의 답변은 김씨의 상식과 어긋났다. “자기 집의 원가가 얼마인지 아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권리 아닌가요!” 우리나라에는 행정기관에 알고 싶은 정보를 공개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행정정보공개제도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계약자 대표회의는 주공 쪽에 정보공개 청구를 했다. 거부당했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어 이의신청을 했고, 그마저도 거부당했다. “솔직히 오기가 솟더라고요.” 주민들은 소송 비용 300만원을 갹출해 서울행정법원에 정보공개 청구를 거부한 주공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분양가와 매매가의 상승 악순환
김씨는 “소송을 진행하면서 우리나라 건설회사들이 어떻게 돈을 버는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2003년 초 분양된 고양 풍동 동문아파트의 평당 분양가는 400만원선이었다. 2003년 11월에 분양된 주공아파트 2·3단지의 분양가는 630만원선, 6개월 뒤 분양된 4단지 현대 ‘아이파크’의 분양가는 800만원으로 치솟았다. 분양가가 오를 때마다 주변 아파트들의 매매가도 같이 뛰어올랐고, 건설회사들은 주변 시세가 올랐다는 이유로 다시 분양가를 끌어올렸다. 집이 부족해 집을 지으면 집값이 더 뛰는 부동산 시장의 왜곡 속에서 돈을 버는 것은 건설회사들이었고, 허리가 휘는 것은 서민들이었다. “저희가 주공 쪽에 분양가를 정하는 가장 큰 원칙이 뭐냐고 물었죠. 주공 관계자가 그러더라고요, 주변 시세라고. 그게 아파트 시장이라는 거예요.”
그렇다면 주민들이 자체 산정해본 아파트의 분양원가는 어느 수준이었을까. 아파트 분양원가는 토지비와 건축비로 나뉜다. 이곳 33평형 아파트의 토지 지분은 16평이다. 여기에 주민들이 자체 산정한 택지 조성원가 183만원을 곱해 토지비를 산출했다. 건축비는 하청 건설업체 평당 낙찰가 185만원을 기준으로 삼았다. 그렇게 뽑아본 주공 2·3단지 아파트의 평당 분양원가는 329만원이었다. 그 계산이 맞다면 주공은 전체 분양가의 40%가 넘는 돈을 분양 차익으로 남겨먹은 셈이다. 조금 양보해 건축비를 건설교통부가 정한 표준건축비로 잡아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그 수치를 대입해 정장선 열린우리당 의원이 2004년 대한주택공사 국정감사에서 발표한 고양 풍동 지역 아파트의 평당 추정원가는 433만원이었다.
주민들의 기대대로, 법원의 판결은 명쾌했다. 1심 판결은 소장을 접수한 지 두 달 만에 나왔다. 승소였다. 2004년 7월, 서울 행정법원은 “정보들이 공개됨으로써 분양원가 산출 과정의 투명성을 확보할 수 있고, 나아가 행정기관이 내부적으로 빠지기 쉬운 행정편의주의와 형식주의 및 권한 남용으로 인한 폐해를 방지하는 데 유효한 수단이 될 것으로 판단된다”고 판결했다. 그 판결의 기조는 2006년 11월 서울 고등법원과 2007년 6월1일 대법원 판결까지 이어졌다. 대법원 재판부는 “분양원가는 영업상 기밀”이라는 주공의 주장을 일축하며 “그 정보가 공개된다고 해서 주공의 사업이 곤란해진다고 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이제는 부당 이익금 반환 소송
주민들은 이제 주공을 상대로 부당 이익금을 반환하라는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일단 주공 쪽에서 분양원가와 관련된 자료가 넘어오면 이를 분석해 부당 이익으로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면 다시 소송을 걸 예정입니다.” 김씨가 말했다. 공공택지의 분양원가 공개를 못박은 개정 주택법은 오는 9월 시행된다. 전국에서 고양 풍동과 비슷한 소송들이 줄을 이을 것이다. 개미들의 작은 몸부림이 미쳐버린 부동산 왕국을 제자리에 돌려놓을 수 있을까. 풍동의 작은 승리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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