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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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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③] 고부가가치 장애인 상품의 탄생

등록 2007-06-08 00:00 수정 2020-05-03 04:25

스위스·독일·오스트리아의 장애인작업장… 노동을 가치 있게 만드는 ‘마이스터’의 손길이 돋보여

▣ 취리히·뮌헨·쇤브룬·빈=글 구둘래 기자anyon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선진 장애인복지시설을 가다 ③

스위스 취리히의 장애인 작업장 RGZ(Reasonal Group Zu-움라우트-rich)의 총책임자 마르코 브리트는 사무실을 떠나 있을 때도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못한다. “언제 주문 전화가 걸려올지 모르는데, 전화를 안 받으면 주문을 취소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는 정부의 지원이 줄어들고 있어 고민스럽다고 말한다. 2년 전 통과한 법안으로 복지재원 관리가 각 칸톤(스위스의 주)에 맡겨졌다. 칸톤별로 예산을 배정하면 국가의 일은 끝이다. 칸톤마다 정책은 제각각인데, 취리히 칸톤은 사회복지 혜택을 축소해가는 주 가운데 하나다. RGZ는 회계회사에 감사를 맡겨 재정을 투명하게 하는 등 기금 유치에도 힘쓰고 있다. 초기에는 외부 기부금도 꽤 됐지만 현재는 충분한 기금이 들어오지 않는 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한국과 비교하면 그리 나쁜 편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50% 이상을 스위스 연방에서, 30% 이상을 대부분 장애인 보험회사의 지원을 받는다. 적자도 보험회사와 칸톤이 보전해준다.

원한다면 고용된다

중증장애인이 작업에 참여하는 방법이 독특하다. 나무젓가락을 씻어 일정한 크기로 자르고 다듬어서 만들어내는 것은 장난감이다. 잡지에서 오려낸 예쁜 그림으로는 냉장고 자석을 만든다. 오려낸 모양이 반듯하지 않아 ‘예술적’이다. 중증장애인이 종이에 크레파스로 그린 그림을 자르고 조합하면 늘어뜨리는 전등 등 ‘고가’의 소품이 만들어진다. 중증장애인이 작업장에 와서 하는 일은 그림을 그리는 것뿐이다. ‘치료 노동’ 혹은 ‘취미 생활’ 같은 이 작업은 부가가치 상품이 되는 것이다. 유럽 장애인작업장을 방문해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이런 장애인의 노동을 가치 있게 만드는 ‘장인’들의 방법이었다.

독일에서 장애인 노동 지원책은 풍족하다. 장애인 작업장에서 생산되는 상품은 19%의 부가세가 7%로 인하된다. 대기업 상품도 장애인 작업장에서 생산하면 마찬가지다. 그리고 직원 15명당 1명씩 고용하게 되어 있는 장애인고용촉진법을 지키지 않아 벌금을 내는 경우가 많은데, 장애인 작업장에 생산을 맡기면 상쇄가 된다. 그래서 재정자립도가 높은 편이다. 카리타스가 운영하는 뮌헨 장애인작업장(Caritas Werkstatt)의 가브리엘라 프란탁은 “(장애인 작업장은) 필요한 만큼 설치되어 운영된다”고 말한다. 그래서 “장애인이 원한다면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편이라지만 카리타스는 독일 정부가 공적으로 지원하는 6개 복지단체 중 하나로 정부재원 투입이 만만치 않다.

18살로 전 교육과정을 마친 장애인이 장애인작업장으로 주로 온다. 일할 수 있는지 적합성 검사와 직종선택과정을 3개월 거친 뒤 2년의 직업교육을 받는다. 작업시간은 개인에 따라 20~40시간으로 제각각이다. 청소나 화분에 물을 주는 작업을 맡아 하루에 2~3시간씩 일하는 파트타임도 있다. 임금은 92~300유로로 시간과 일의 성격에 따라 다르다. 뮌헨 장애인작업장에는 현재 186명이 고용되어 있다.

작업장의 ‘조립’(MONTAGE) 파트에서는 중증장애인이 자동차회사 MAN의 부속품을 포장하고 있다. 피스톤과 실린더, 링을 상자에 넣고 비닐 팩에 넣어진 작은 부품을 합쳐 규격에 딱 맞게 만들어진 큰 상자에 넣는다. 이 상자는 전세계 MAN의 AS매장으로 옮겨져 판매된다. 독일 최대의 제과회사인 달마이르(Dallmayr)의 작은 드롭스 제품 포장작업도 이루어진다. 드롭스를 삽으로 퍼서 담고 제품 설명 종이를 올리고 뚜껑을 닫고 박스에 포장하고 비닐을 씌워 포장기계로 밀봉하고 공기를 빼 압착하는 등의 일이 분담해 이루어진다. 금속금형 작업장은 요즘 주문이 많이 늘고 있는 분야다. 금속을 자르거나 구멍을 뚫는 등 언뜻 보기에 위험한 일이다. “작업 속도는 느리지만 집중력이 높아 정확하다.” 무엇보다 느려도 기다려준다. 드롭스를 담는 속도는 구경하러 온 방문객에 한눈팔면서 해도 충분해 보였다. 포장을 하는 한켠에서 책을 보는 사람도 있고 조는 사람도 있다. 숙련도가 문제라면 한 작업을 계속 하는 게 좋겠지만 수주받은 작업에 따라, 결근한 사람이 몇 명인지에 따라 작업조는 다시 구성된다. 그리고 기계가 개발되어 있더라도 위험한 작업은 수동으로 한다. 물론 시간은 더 걸릴 것이다. 작업장 안에 운동기구가 보인다. 치료사는 종일근무 1명, 오후 근무 1명식으로 파트마다 배치된다.

무딘 손동작을 감안해 만든 기계

이런 일련의 과정은 하우스 마이스터(Haus Meister)의 숨은 노력이 있기에 가능하다. 20여 명이 일하는 각 파트에는 3명의 마이스터가 배치된다. 이들 마이스터는 “여기서 나오는 제품은 장애인들이 만든다. 우리는 손을 대지 않는다”며 자랑스럽게 말한다. 하지만 이들이 능률적인 작업장을 만들어냈다는 사실은 숨길 수 없다. 이들은 작업라인을 짜고 복잡한 과정을 단순화하고 간단한 기계 조작만으로 작업이 가능하도록 기계를 만들어낸다. 금속을 자르는 금형기계의 경우 위에서 아래로만 눌러도 되도록 만들어놓았다. 전선의 끝부분을 가지런하게 고르는 작업을 하는 기계는 무딘 손동작을 감안해 만들었다. 그렇게 솔라기계의 전선 연결도 작업장에서 이루어질 수 있게 된다. 이들 마이스터는 누구보다도(경영 파트를 포함해) 많은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이런 장애인 작업장이 독일 바이에른주만 해도 여러 곳이다. 뮌헨에만 25곳, 다카우에 2곳이 있고, 마을 전체가 장애인을 위한 숙소, 가게, 작업장으로 빼곡한 쇤브룬이 있다. 쇤브룬은 프란체스코 수도회 소속으로 1863년 5명의 수녀에 의해 만들어져 현재 1200여 명의 일자리를 창출해내고 있다. 기계 작업장에서는 BMW의 레저용 장착기를 조립하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빈의 비엔보르크(Wienwork)는 지난해 10월 25주년을 맞은 시설로, 423명(2006년 1월1일 집계)의 직원 중 75%가 장애인이다. 비엔보르크는 법으로 규정된 최저임금을 보장하는 장애인 작업장이다. 월급, 연금, 의료보험도 일반 회사와 똑같다. 그리고 노동법이 규정하는 대로 작업장에 들어와 일하는 사람을 해고할 수 없다. 해고할 필요도 없이 비엔보르크는 4년 전 240명의 직원을 400명으로 늘리며 성장했다. 이 성장에는 정부의 지원이 컸다. 비엔보르크의 책임자 볼프강 슈페알드(Wolfgang Sperl)는 “300만유로를 생산물품 판매로 벌어들인다”고 자랑스러워한다. 전체 예산은 1300만유로, 뒤집어 말하면 70% 이상이 정부와 시의 지원이다. 정부의 사회복지부가 60%, 시가 40%의 예산을 조달한다.

최저임금 보장, 해고 없는 작업장

빈 동서남북에 위치한 네 개의 비엔보르크는 사무·카피·목재, 세탁, 금속·접합, 사무보조·캐터링 등의 작업을 한다. 다른 장애인 작업장의 마이스터처럼 슈페알드 역시 장애인에게 적합한 ‘새로운 과제’를 개발하는 것이 큰 임무라고 이야기한다. 4년 전 작업을 세분화했고, 2005년에는 레스토랑 ‘미힐’(빈 시장이 하사한 자신의 이름이다)을 열면서 음식 사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6월 양로원, 12월 재활병원 식사 제공 사업을 마련했다. 벽수리 작업도 시작하려 한다. 진보는 다른 진보와 통한다. 이러한 사업 아이디어 외에도 화학약품이 들어가지 않는 세제를 사용한다든지, 레스토랑에서 유기농을 사용한다든지, 목재 작업을 하고 남은 것을 난방에 쓰도록 하는 등 자연친화적 아이디어를 실천해나가고 있다.

구멍 뚫는 것이 실수가 생길 수 있으므로 자동으로 자르게 하는 등 작업 편의를 위한 개선 활동도 많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단순한 작업에 불만을 가질 만도 하다. 슈페알드는 “다른 외부 작업장에 진출하고 나서 2주 만에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다. 얼마 전 조사를 했는데 20% 정도는 다른 회사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나머지 80%는 여기서 일하는 것이 편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비엔보르크는 작업장 외에도 장애인을 위한 7개월 교육 과정이 있다. 교육을 이수한 50%가 직장에 취직한다. 장애인을 위한 4년 과정의 직업학교도 있다(비장애인의 직업학교는 3년 과정이다). 이 교육과정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작업하는 ‘통합교육’을 지향한다. 일주일에 두 번은 일반 작업장에 나가 실습을 한다. 3~6주간 일하는 장기실습도 있다. 슈페알드는 “일반 회사와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큰 목표 중 하나”라며 “이 말은 장애인이 일반 작업장에도 일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반 기업의 장애인 고용이 더 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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